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 구본형의 하루 경영 9가지 법칙, 개정판
구본형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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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징검돌을 놓는다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의 화두는 하루를 잘 보내는 방법이 될 것이다. 저자는 ‘변화’를 단순하고 감상적이 아니라 보다 체계적인 접근으로 ‘경영’할 것을 지속적으로 주문하고 있다. 첫 책에서부터 줄곧 저자의 메시지인 ‘변화’의 필요성은 여러 책을 출간하는 동안 차곡차곡 단단히 채워져 왔다. 특히 저자는 이 자기계발, 자기혁명을 주창하면서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말투가 아니라 조용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단있는 언어로 변화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저자 자신이 변화를 위해 느끼고 생각하고 실천한 방법들을 인문학적 사고와 감수성으로 잘 전달하고 있다.

  이것은 보통의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차별적인 책의 제목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저자의 책이 읽고 싶어진다면 다른 무엇보다 탁월한 책의 제목 때문일 것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낯선 곳에서의 아침><일상의 황홀><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떠남과 만남> 등등. 저자의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은 편하게 다가오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일상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주는 제목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봐도 될 듯하다.

  이 책은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타자의 욕망이 아닌 순수한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볼 것을 제안하며 일상을 차근히 들여다보며 새로운 의미 찾기를 모색하라고 했던 저자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하루를 보다 알차게 보내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이른바 하루를 더욱 더 아름답게 경영하는 방법이라고 할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위기가 도래했을 때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변화하기 위해 애썼노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하는데 주저하고 있지만 아마도 변화라는 것을 대단하고 거창한 ‘변혁’ 혹은 ‘사건의 전환’ 쯤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일상의 작은 것에서부터 변화를 넘어선 변화경영을 시작할 것을 말한다. 그것을 위해 9가지 하루 경영의 원칙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녹여내는 이 글은, 어쩌면 ‘시간관리’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간 관리는 시간의 통제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시간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우리를 통제한다. 시간을 통제하려는 사람은 시간 대신 자기를 통제하게 된다.

시간 관리는 ‘만일 내가 시간을 통제한다면, 나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그렇게 시간을 번 사람이 더 시간이 없다. 하루를 작은 조각으로 나누고 분해하는 사람은 적어도 그 일을 하느라 더 바쁘다. 그 사람은 하나의 약속에서 다른 약속으로 이동할 뿐이다. 여전히 그는 시간에 쫓긴다. 시간의 부족은 유감스럽게도 오히려 성공적인 시간 관리의 결과이다.

역설적으로 가장 한가로운 사람은 시간을 절대로 가지지 않은 사람이다. 그들은 시간을 그대로 놓아둔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선물(先物) 거래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다. 다시 말해 조각조각 분해된 시간의 조각을 먼저 어딘가에 배타적으로 묶어놓지 않는다는 말이다. p94


  자신의 이중성을 칭찬하고, 창조적 괴짜가 되고, 함께 춤추는 여인에게 배우고, 웃고 또 웃고, 쓸데없는 약속은 버리고, 스물 네 권의 책을 읽고, 놀지 않으면 창조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아빠 앞에 ‘부자’와 ‘가난’이란 말을 달지 말고, 남김없이 쓰고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이와 같은 아홉 가지 주제를 내세우며 “오늘에 몰두하고 빠져들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만들어 내게 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개인이 개인의 관점에서 조직의 관점에서 풀어주고 격려해줘야 할 원칙들을 이야기한다. 오늘이란 이미 내가 소유한 것으로 하루를 가볍고 경쾌하고 살만하고 몸에 안기는 시간으로 바꾼다면, 진검 승부가 가능하리라는 것이 저자가 말하고 싶은 바다.


“이 책은 도약이 불가능하다고 인식하는 그 지점에 징검돌 하나를 새로 놓으려는 시도가 아니다. 그곳은 물살이 너무 세고 물이 깊어 돌을 놓을 수 없는 자리다. 이 책이 시도하려는 것은 그 간격이 우리가 건너뛸 수 있는 거리 안에 있음을 알리는 일이다.”


  이 책은 일본어와 영어 번역본으로도 출간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저자가 말하는 아홉 가지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고 그것이 그들의 하루를 경영하는데 의미있는 방법이 되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눈부신 하루를 보내는데 아홉 가지를 모두 행하느라 낑낑댈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이런 조언들을 들을 때면 그 조언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해내기 위해 안달하곤 한다. 이런 맘을 아는지 저자는 모든 것을 다하려 애쓰지 말고 하나만이라도 기억하라고 말한다. 자신이 가장 맘에 닿는 것,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나라도 실천하여 가라고. 저자가 말한 징검돌의 의미가 새롭게 와 닿는다. 내가 건너뛸 수 있는 거리 안에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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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 일상의 황홀
구본형 지음 / 을유문화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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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의미



  이 책이 출간된 2004년 당시만 해도 스스로를 “변화경영전문가”라 칭하던 구본형 선생님의 하루하루의 기록이다. 그 하루하루를 일기 형식으로 담은 것으로 이 일상의 기록이 중요한 것은 이 기록을 통해 “나는 변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꽤나 일기를 써본 우리일 테니 일기란 어떤 것인지 안다. 아니, 일기를 쓰는 날의 기분 정도를 금세 떠올릴 수 있다. 일기는 내게 의미있는 사건이나 의미있는 감정의 변화가 있을 때에 자발적으로 써진다.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일기란 반복적인 일상을 기록하는 참 하기 싫은 숙제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저자는 하기 싫은 숙제인 일기를 기록함으로 일상의 의미를 새롭게 할 수 있는 ‘변화’의 의미를 되새긴다. 하루하루를 기록하다 보면 ‘사건’이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그저 아무것도 아닌 듯한 일에 시선이 갈 때도 있다. 그것이 그 감정 그대로 기록이 되면 그것 또한 내게 새로운 의미를 주는 ‘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우리의 일상의 느낌을 새롭게 가질 수 있다. 내가 하루 속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으며 어떤 것에 의미를 두고, 의미를 두지 않고 또한 다른 시선을 보내는지. 나의 그런 일상에서 황홀을 발견할 수 있다고, 황홀함을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저자는 알려 주는 것이다.

  

일상의 끈을 놓치지 말 것, 그것이 현실이니까.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뜨릴 것, 그것이 실천으로서의 변화니까. 하루를 잘 보낼 것, 그것이 삶이니까.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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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의 아침
구본형 지음, 윤광준 사진 / 을유문화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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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아침을 맞지 않기 위하여



  잠에서 깨었을 때 마주하게 된 사물과 공간이 낯설 때, 어떤 느낌이 들까. 불안함과 당혹감일지 황홀함과 충만함일지 혹은 기대감과 신기함일 수도 있겠다. 어떤 경우라도 감정의 파장은 셀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마다 내가 절대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하나라면 참 슬퍼질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은 어떤 감정을 가지든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맞을 때마다 변하지 않는 일관된 감정만을 지속하게 될까 슬퍼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위안이 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변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변화한다. 변화하지 않는 것들은 죽은 것이다. 1년 전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1년 동안 죽어 있었던 것이다. 만일 어제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지난 24시간은 당신에게 있어 죽어 있던 것이다. p19


  슬퍼지는 이유가 이러했던 때문이었다. 어떤 경우라도 감정을 가진 상황이지만 그 감정에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활성화되지 않은 감정을 느끼는 나를 바라보는 기분.

  저자는 이 책에서 또다시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모습을 이야기한다. 그때, 그 아침을 신선하게 받아들일 것을! 그 신선한 아침은 자기혁명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그 자기 혁명을 위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 다음의 책이다. 전자의 책에서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면 이 책에선 변화에 대한 저항을 거두고 변화를 수용하려는 이들을 위한 첫걸음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인간이 변화에 저항하게 된 이유는 많다. 저자에 의하면 33가지의 이유가 있다. 우선 변화 자체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기도 하고 불확실성, 의지부족 등등의.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욕망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에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지라고 권한다. 그렇게 욕망을 찾아 떠나라고 말한다. 변화는 일상에서 자신의 욕망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기에 하루하루 자신의 시간을 넓혀가는 것이 바로 변화이자 자기혁명의 걸음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낯선 곳으로 여행하며 1주일간의 단식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기 위한 욕망의 목록을 작성했다. 저자는 이 딘식 경험과 욕망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을 소개하며 마침내 자기혁명을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변화에 대해 관대할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상냥할 것은 물론이고 자신을 매일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변화, 왜 변화를 시작하려 했는지 그것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성공적인 변화의, 자기혁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나를 잘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저 청중이나 관객으로 객석에 앉아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주인공인 음악회나 축구 경기를 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의 삶을 구경하는 증인이 될 수도 있지만, 자신은 한 번도 주인공이 된 적이 없다면 슬픈 일이다. 인류를 위해 한순간의 빛조차 된 적도 없다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삶의 길을 걸어오다가 나에게 이르러, 눈을 크게 뜨고 잠시 매료되는 순간을 만들어 낼 수 없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무엇이었던 것인가? 미치지 못하고 세상을 산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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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 지음, 윤광준 사진 / 을유문화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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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별이 이룩하는 축복


  지금까지 몇 번의 개정판이 나온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IMF 당시를 휘감은 베스트셀러다. 누구랄 것도 없이 혼란과 울분과 자괴의 분위기에 듬뿍 젖어 있을 때, 분위기의 반전을 일깨운 책이다. 아마도 그 상황을 타개하기를 원하던 모든 이들의 마음이 이 책 속에서 희망을 발견했던 건지도 모른다.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려는 의지가 남아 있던, 어떤 힘이라도 끌어 모으려던 사람들에게 건네진 ‘지푸라기’ 아니었을까.

  분명 IMF는 위기였고 상황의 변화는 연쇄적인 변화를 요한다. 그 변화의 방향과 농도를 찾아가는 것은 한편으론 개인의 일이다. 하지만 IMF 같은 상황에선 한 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변화의 방향과 농도를 정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 때에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혁명적’ 변화를 역설했다.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은 그보다 더 ‘변화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그러나 변화에 대처하는데 주저하고 망설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변화의 방향과 농도를 찾는 방법을 얘기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IBM에서 경영혁신 팀장으로서 자신의 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 변화경영의 방법들을 여운있는 글로써 표현해낸다. 이 책 뿐만 아니라 저자의 책 전반이 자기계발서로 분류되지만 이 갖는 도식적인 글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마냥 선동적이지도 않고 누구나 쉽게 아는 것을 장황하게 떠들어 대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니가 잘 해야지”하는 식의 찍어 누르는 듯한 압력도 질책도 없다. “난 이렇게 잘했어”와 같은 자기 과시 또한 없다.

  깊은 생각과 깊은 공감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글들로 사람들이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킨다. 동시에 ‘변화’에 대한 의지를 가능케 하고 싶은 욕구를 증가시키며 의지를 독려케 해준다. 그런 힘이 조용히 파고드는 글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미풍처럼 조용하고 잔잔하게 다가오는 글귀들이 많은 독서와 사색의 힘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려주며 다정한 이의 위로 같기도 하다.

  이 책이 1998년의 시간에 절대적인 힘을 가진 책이었다고 지금 읽는다고 해서 그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다르진 않다. 그때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화두가 되고 있는 ‘변화’에 대해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역시 IMF 만큼의 격랑이 일고 있는 나라이고 세계이니까.

  여전히 변화는 ‘나’ 하나만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달라질 리 없는 사회에 나 혼자 변해서 이 세상에 맞춰가리라는 생각은 적극적인 생각인가. 아니면 패배주의적 생각인가. 기회주의적인 건가. 변화는 안팎으로 필요하다. 세상에 맞추어 변화하겠다는 것을 잘 생각하고 잘 골라내야 한다. 그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권력의 세상인지 아닌지를.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잘못된 깨달음으로 우리를 몰아간 것은, 우리를 기존의 체제에 묶어두고 통제하고 싶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세상이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과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때때로 우리 부모의 모습으로, 선생의 얼굴로, 직장 상사의 이름으로, 그리고 친구의 한숨 섞인 충고로 우리를 설득시켜 왔다. 그들의 말을 따르는 것은 어쩌면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무난한 처신이었는지도 모른다. p15


  우리의 변화는 나의 변화와 세상의 변화를 같이 생각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고선 ‘변화’의 긍정성은 상쇄될 뿐이다. 내가 변화해야 한다는 혁명적인 변화에의 욕구는 ‘내가 잘 살기 위해서’인 것을 부정할 순 없다. 그러나 그것이 ‘나만, 나라도 잘 잘기 위해서’라면 변화의 종착역에 서 있을 때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나만 달라져서는 안되는 상황일 때, 우리는 진정 ‘변화의 대상’에 대해 ‘변화의 목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욕망이 반사회적일 때, 인간은 불행해진다. ‘욕망은 개인적인 것이므로 사회 속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통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개인이 가져야 할 생각이 아니다.

그것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주장한 홉스로부터 시작된 지배자들의 논리이다. 자율성이 없는 사회가 붕괴하는 것은 외부에서 눌러오는 욕망에 대한 압살 때문이다. 욕망이라는 걷잡을 수 없는 에너지에 대한 통제와 관리는, 각 개인의 몫이다.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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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대한 연민과 위로


백영옥, 애인의 애인에게


  백영옥 작가의 그들은 스타일리쉬한 느낌이다. 제목이나 느낌 때문에 그런 듯하고 패션잡지에서 일한 작가의 이력 때문에 은연 중 그런 생각이 굳어진 것도 같다. 작가의 첫장편 <스타일>이 출간될 시기에 한창 칙 릿(Chick Lit, chick + literature)이 인기를 끌던 시기였다. 아니, 작가가 이런 소설을 써서 한국의 칙 릿 분위기를 이끌은 건가. 칙 릿 소설은 젊은 현대 여성, 대체로 20대 여성 독자를 겨냥한 소설이라 하는데 이런 스타일의 책 중엔 마음에 드는 작품도 있었고, 전혀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었다.

  백영옥 작가가 기억 속에 특별히 자리한 것은 칙 릿의 선두 작가라서가 아니었다. 어쩌다 읽게 된 작가의 단편 제목 때문이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제목이었다. 이 책 출간 당시(2007년 봄)는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저 말을 달고 사는 분위기였던 것을 기억하기에 그것을 소설화 한 작가에게 놀랐던 기억. 이 작가는 정말 트렌드에 밝구나라고 느끼기도 했고.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지 사실 글을 보면서 파악하기엔 애매했던. 작가 역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소설을 쓴 건 그저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기 때문이고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던 듯한데 언젠가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이 소설을 다시 찾아보려니 제목이 바뀐 듯 했던 것도 같아 이상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는데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생각해보니 그때엔 저런 소설 제목도 그런 이야기도 쓸 수 있었고 당당히 출간이 되는 시대였구나! 검열이란 것이 존재하지도 언론이든 정치권에서든 문제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지도 않는 시대였기도 한, 온전히 문학은 문학으로서 바라보는 시대였구나 싶기도 하고. 아니면 2007년은 대선이 있던 시기였으니 세기말적인 분위기로 묻혀진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부추겨진 것인가. 어쨌든 새삼, 검열이 일상화된 시대에 저 소설의 제목이 너무나 달리 느껴진다.

  


  이 책은 <애인의 애인에게 들은 말>이라는 단편을 확장시킨 것이다. 이 단편은 여러 작가들과 함께 여행 소설 형태로 출간된 책에 삽입되어 있다. 짝사랑하는 남자를 알고 싶어 서블렛을 이용하여 남자의 자취를 느끼는 여자, 이정인의 이야기를 그려낸 이 단편의 뒷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이 많아 장편으로 만들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제목은 <애인의 애인에게>로. 이정인이 바라보고 서술하는 이야기에서 더 풍부하게 나아간 이야기의 시점은 2부와 3부가 첨가되어 이정인이 짝사랑하는 조성주의 아내 장마리의 시점이 2부에서, 조성주가 짝사랑하는 김수영의 시점의 이야기가 3부로 전개된다. 세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주요 등장인물은 그렇게 4명이 된다. 먹이사슬이 아닌데도 이렇게 물리고 물린 관계의 양상을 보다 보면 아련하고 쓸쓸한 맛이 맴돈다. 젊은 청춘들의 어긋나는 사랑의 작대기는 그들이 가진 아릿한 사연을 서로에게 품어주는데 사용되지 못한 채 서로를 밀어버린다. 우습게도 표면적으로 보면 한 남자를 사랑하는 세 명의 여자 이야기다. 무대는 뉴욕이고 이들은 예술가들이고.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서 생기는 외로움과

사람을 좋아해서 생기는 서러움 중 어느 것이 더 힘든 건지 모르겠다. p18


  분명 어긋난 사랑의 이야기인데 내가 이 이야기를 읽으며 떠오른 생각은 분명,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랑에 적극적이구나, 그런 생각이었다. 아마도 누구보다 이를 대표하는 이가 이정인이다. 정인은 짝사랑하는 성주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 그가 한달간 세놓은 집으로  들어가는 적극성을 보인다. 정인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서 생기는 외로움과 사람을 좋아해서 생기는 서러움 중 어느 것이 더 힘든 건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데 아마도 후자를 선택하기로 한 건가. 아이러니하게도 그 공간에서 정인은 성주의 흔적 위에 놓인 그의 아내 마리의 흔적에 점점 끌려간다. 그의 아내에게 느끼는 연민은 아마도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가 아니라 또다른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쯤되면 세 여자의 감정을 쥐고 있는 조성주가 궁금하다. 아내가 있고 사랑하는 여자가 있으며 자신을 짝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의 주위에 맴돌고 있는 남자. 포토그래퍼란 직업을 가진 이 남자는 예술가의 성공에 집착하는 남자로 그것을 위해 마리에게 적극적이었다. 그런 욕망과 병행한 또다른 욕망이 그에겐 있다. 남편이 있는 여자에 대한 사랑이다. 조성주가 사랑하는 여자 김수영은 큐레이터로 결혼 10년차지만 계속된 유산과 더불어 불행한 결혼생활에 지쳐 있는 중에 조성주의 끈질긴 구애에 흔들린다. 이들 등장인물들 모두 예술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열정적인 듯 혹은 무모한 듯한 기질을 예술가적 기질이라 뭉뚱그리면 너무나 단순하고 단정적인 편견이겠지. 


자기 결혼이 영주권 획득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진실한 사랑때문이었다는 걸 법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남자가 있어요. 아마 그건 가장 숨기고 싶은 사적인 경험을 온갖 공식적인 서류들로 증명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일일 거예요. 여전히 사랑하지만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그와 헤어져야 한다고 결심한 여자가 있어요. 그런데 만약 이혼 소송 중인 남편이 이미 깨져버린 사랑이 진실한 사랑이었다는 걸 법적으로 증언 해달라고 부탁한다면 그건 어떤 고통일까. 남자의 변호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도움을 요구하듯 끝없이 전화를 해댄다면. 남자와 여자.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힘들고 괴로울까. p258

      

  글쎄. 누가 더 힘들고 괴로울까. 여기 등장하는 이정인, 장마리, 김수영, 조성주. 그들 각자는 닿지 않는 욕망 속에 힘들어 하고 충분히 괴로워 한다. 뉴욕이란 도시에서의 그들의 삶은 화려한 도시 뉴욕만을 생각하며 보지 못한 뉴욕 골목의 풍경처럼 감춰진 속내가 보이는 것과는 다른 삶들이었다. 사랑이란 이토록 제도와 어긋난 미묘함을 안고 있다. 그렇기에 이 뉴욕의 연인들은 어긋난 사랑의 감정을 품고 있는 잔뜩 쓸쓸한 표정으로 각인된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연민을 이용한다.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의 감정을 손쉽게 착취한다. 나의 부모님이 그것을 ‘상황이 거짓말하게 한다’라거나 ‘철든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나는 그 말의 뜻을 몰랐다. 진실과 진심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 것인지도. p100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이 애인들의 행동이다. 아마도 가장 관찰자적인 눈으로 조성주를 바라보기만 할 것 같은 이정인은 뉴욕 조성주의 집에 찾아 들어가고 그의 감정, 불륜까지도 알아낸다. 조성주는 어떤가. 사랑인듯 열병처럼 행동하며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장마리를 이용하는데 적극적인 남자. 그런 적극성으로 또다시 김수영에 대한 사랑을 갈망하는 남자. 거침없이 제 욕망을 발산하는 그런. 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속으로 울부짖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엔 아주 미세하게 자신의 마음을 애인의 애인에게 툭, 뱉는다.


건너편 창틀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여전히 길가를 내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누구의 사랑도 이어지지 않는 저녁 속에 앉아 있었다. 그런 것들이 더 이상 서글프지 않았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나 이외의 누구도 상처받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짝사랑은 선한 인간들이 선택하는 자학이며 자책이니까. p36


  작가는 “실패로 끝난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는 아무리 길어도 귀 기울여 듣게 된다”라고 말한다. 그런 것도 같다. 하지만 고약한 심보로 듣는 것이 아니라,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이야기를 듣는다. 어쨌든 누군가의 감정에 대한 위로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내 감정에 대한 연민과 위로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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