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대한 연민과 위로
백영옥, 애인의 애인에게
백영옥 작가의 그들은 스타일리쉬한 느낌이다. 제목이나 느낌 때문에 그런 듯하고 패션잡지에서 일한 작가의 이력 때문에 은연 중 그런 생각이 굳어진 것도 같다. 작가의 첫장편 <스타일>이 출간될 시기에 한창 칙 릿(Chick Lit, chick + literature)이 인기를 끌던 시기였다. 아니, 작가가 이런 소설을 써서 한국의 칙 릿 분위기를 이끌은 건가. 칙 릿 소설은 젊은 현대 여성, 대체로 20대 여성 독자를 겨냥한 소설이라 하는데 이런 스타일의 책 중엔 마음에 드는 작품도 있었고, 전혀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었다.
백영옥 작가가 기억 속에 특별히 자리한 것은 칙 릿의 선두 작가라서가 아니었다. 어쩌다 읽게 된 작가의 단편 제목 때문이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제목이었다. 이 책 출간 당시(2007년 봄)는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저 말을 달고 사는 분위기였던 것을 기억하기에 그것을 소설화 한 작가에게 놀랐던 기억. 이 작가는 정말 트렌드에 밝구나라고 느끼기도 했고.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지 사실 글을 보면서 파악하기엔 애매했던. 작가 역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소설을 쓴 건 그저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기 때문이고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던 듯한데 언젠가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이 소설을 다시 찾아보려니 제목이 바뀐 듯 했던 것도 같아 이상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는데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생각해보니 그때엔 저런 소설 제목도 그런 이야기도 쓸 수 있었고 당당히 출간이 되는 시대였구나! 검열이란 것이 존재하지도 언론이든 정치권에서든 문제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지도 않는 시대였기도 한, 온전히 문학은 문학으로서 바라보는 시대였구나 싶기도 하고. 아니면 2007년은 대선이 있던 시기였으니 세기말적인 분위기로 묻혀진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부추겨진 것인가. 어쨌든 새삼, 검열이 일상화된 시대에 저 소설의 제목이 너무나 달리 느껴진다.
이 책은 <애인의 애인에게 들은 말>이라는 단편을 확장시킨 것이다. 이 단편은 여러 작가들과 함께 여행 소설 형태로 출간된 책에 삽입되어 있다. 짝사랑하는 남자를 알고 싶어 서블렛을 이용하여 남자의 자취를 느끼는 여자, 이정인의 이야기를 그려낸 이 단편의 뒷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이 많아 장편으로 만들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제목은 <애인의 애인에게>로. 이정인이 바라보고 서술하는 이야기에서 더 풍부하게 나아간 이야기의 시점은 2부와 3부가 첨가되어 이정인이 짝사랑하는 조성주의 아내 장마리의 시점이 2부에서, 조성주가 짝사랑하는 김수영의 시점의 이야기가 3부로 전개된다. 세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주요 등장인물은 그렇게 4명이 된다. 먹이사슬이 아닌데도 이렇게 물리고 물린 관계의 양상을 보다 보면 아련하고 쓸쓸한 맛이 맴돈다. 젊은 청춘들의 어긋나는 사랑의 작대기는 그들이 가진 아릿한 사연을 서로에게 품어주는데 사용되지 못한 채 서로를 밀어버린다. 우습게도 표면적으로 보면 한 남자를 사랑하는 세 명의 여자 이야기다. 무대는 뉴욕이고 이들은 예술가들이고.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서 생기는 외로움과
사람을 좋아해서 생기는 서러움 중 어느 것이 더 힘든 건지 모르겠다. p18
분명 어긋난 사랑의 이야기인데 내가 이 이야기를 읽으며 떠오른 생각은 분명,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랑에 적극적이구나, 그런 생각이었다. 아마도 누구보다 이를 대표하는 이가 이정인이다. 정인은 짝사랑하는 성주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 그가 한달간 세놓은 집으로 들어가는 적극성을 보인다. 정인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서 생기는 외로움과 사람을 좋아해서 생기는 서러움 중 어느 것이 더 힘든 건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데 아마도 후자를 선택하기로 한 건가. 아이러니하게도 그 공간에서 정인은 성주의 흔적 위에 놓인 그의 아내 마리의 흔적에 점점 끌려간다. 그의 아내에게 느끼는 연민은 아마도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가 아니라 또다른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쯤되면 세 여자의 감정을 쥐고 있는 조성주가 궁금하다. 아내가 있고 사랑하는 여자가 있으며 자신을 짝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의 주위에 맴돌고 있는 남자. 포토그래퍼란 직업을 가진 이 남자는 예술가의 성공에 집착하는 남자로 그것을 위해 마리에게 적극적이었다. 그런 욕망과 병행한 또다른 욕망이 그에겐 있다. 남편이 있는 여자에 대한 사랑이다. 조성주가 사랑하는 여자 김수영은 큐레이터로 결혼 10년차지만 계속된 유산과 더불어 불행한 결혼생활에 지쳐 있는 중에 조성주의 끈질긴 구애에 흔들린다. 이들 등장인물들 모두 예술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열정적인 듯 혹은 무모한 듯한 기질을 예술가적 기질이라 뭉뚱그리면 너무나 단순하고 단정적인 편견이겠지.
자기 결혼이 영주권 획득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진실한 사랑때문이었다는 걸 법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남자가 있어요. 아마 그건 가장 숨기고 싶은 사적인 경험을 온갖 공식적인 서류들로 증명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일일 거예요. 여전히 사랑하지만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그와 헤어져야 한다고 결심한 여자가 있어요. 그런데 만약 이혼 소송 중인 남편이 이미 깨져버린 사랑이 진실한 사랑이었다는 걸 법적으로 증언 해달라고 부탁한다면 그건 어떤 고통일까. 남자의 변호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도움을 요구하듯 끝없이 전화를 해댄다면. 남자와 여자.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힘들고 괴로울까. p258
글쎄. 누가 더 힘들고 괴로울까. 여기 등장하는 이정인, 장마리, 김수영, 조성주. 그들 각자는 닿지 않는 욕망 속에 힘들어 하고 충분히 괴로워 한다. 뉴욕이란 도시에서의 그들의 삶은 화려한 도시 뉴욕만을 생각하며 보지 못한 뉴욕 골목의 풍경처럼 감춰진 속내가 보이는 것과는 다른 삶들이었다. 사랑이란 이토록 제도와 어긋난 미묘함을 안고 있다. 그렇기에 이 뉴욕의 연인들은 어긋난 사랑의 감정을 품고 있는 잔뜩 쓸쓸한 표정으로 각인된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연민을 이용한다.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의 감정을 손쉽게 착취한다. 나의 부모님이 그것을 ‘상황이 거짓말하게 한다’라거나 ‘철든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나는 그 말의 뜻을 몰랐다. 진실과 진심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 것인지도. p100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이 애인들의 행동이다. 아마도 가장 관찰자적인 눈으로 조성주를 바라보기만 할 것 같은 이정인은 뉴욕 조성주의 집에 찾아 들어가고 그의 감정, 불륜까지도 알아낸다. 조성주는 어떤가. 사랑인듯 열병처럼 행동하며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장마리를 이용하는데 적극적인 남자. 그런 적극성으로 또다시 김수영에 대한 사랑을 갈망하는 남자. 거침없이 제 욕망을 발산하는 그런. 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속으로 울부짖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엔 아주 미세하게 자신의 마음을 애인의 애인에게 툭, 뱉는다.
건너편 창틀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여전히 길가를 내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누구의 사랑도 이어지지 않는 저녁 속에 앉아 있었다. 그런 것들이 더 이상 서글프지 않았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나 이외의 누구도 상처받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짝사랑은 선한 인간들이 선택하는 자학이며 자책이니까. p36
작가는 “실패로 끝난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는 아무리 길어도 귀 기울여 듣게 된다”라고 말한다. 그런 것도 같다. 하지만 고약한 심보로 듣는 것이 아니라,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이야기를 듣는다. 어쨌든 누군가의 감정에 대한 위로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내 감정에 대한 연민과 위로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