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공감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민음사, 2016.


  이 책이 보통의 베스트셀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응원에 힘입어 문학상의 수상까지 이뤄낸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책으로 또한 82년생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김지영이라는 이름이 신문에 인용되는 현상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내내 82년생 김지영의 돌풍이 이어져 웬만한 이들은 모두 이 책을 읽었으리라 의심치 않고 있었는데 얼마 전 알라딘에서 이 책에 대한 1000명 읽기였는지 구매였는지 그런 이벤트가 게재된 것을 봤다. 수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이제 더 이상 읽을 사람도 책을 구매할 사람도 없을 만큼 무수히 읽고 무수히 구매를 했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의 구매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어쨌든 좀 놀랐다.

  이 책이 한창 돌풍을 일으켰지만 이 책에 대한 나의 감상은 꽤나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한 열풍은 책 자체에서 기인한 저력 외에 외적인 요소가 상당 부분 작용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나 역시 기대만큼의 만족감이 없었기에 그 실망의 강도가 강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통해서 페미니즘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공감이라거나 82년생뿐만 아니라 여성 보편의 삶에 대한 인식을 달리한 것도 없고 무엇보다 소설에, 문학에 기대하는 문학적 요소를 느끼지 못해서 그냥 그랬는데, 그런 내 감상 때문인지 이 책에 대한 또한번의 이벤트라고 해야 할까, 아니 ‘주목해서 읽으세요’라는 어떤 강요의 느낌이 마뜩치 않았다. 이보다 더, 읽어야 할 책이 많은데. 아니 이것말고 다른 것을 더 읽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했다. 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베스트셀러라서 부러워서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책이 안 팔리는 시대에,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베스트셀러인 것이 마냥 부러워서.

  나는 왜 82년생 김지영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나를 생각했다. 책이 쉽게 읽힌다는 점은 장점인데 내게는 그 점이 단점으로 작용했나 보다. 나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자 했다. 그러나 이 책은 내게는 소설이 아니라 인터넷 까페나 게시판에 올라오는 사연으로 읽혀졌다. 그런 사연에 대해서는 위로나 공감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할 뿐이지 내 문학적 감수성이 특별히 더해지거나 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면서도 82년생 김지영이 겪는 일들은 너무도 특별할 게 없어서 별 감흥이 없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정도를 가지고, 뭘. 아마도 그런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더 자극적인 삶을 기대했나 싶기도 하다. 82년생 김지영의 삶의 여건은 확실히 평균 이상으로 느껴졌다. 나는 어쩌면 82년생 김지영이 삶이 지금보다는 특별한 층에 속하는 여성의 삶이라고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게시판에 올려진 사연같은 이 글이 처음엔 ‘너무 문학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다가 ‘문학적’인 것이었으면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겠나 하는 쪽으로 다소 옮겨갔다. 이런 형태로 작가가 글을 쓰면서 사람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게 사람들로부터 ‘김지영’에 대한 공감을 할 수 있도록 설계를 한 것이구나, 그런 생각으로. 82년에 태어났든 70년에 태어났든 90년에 태어났든 지금 현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같기에 김지영을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어쨌든 이 삶들은 왜 이토록 달라지지를 않았니, 그런 거였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갔고 여전히 경제적인 여건이 힘겨운 여성이 아님에도 그 삶이 자아를 상실할 정도로 치닫는 다는 건 얼마나 모순적이고 얼마나 문제적인가. 그렇다면 작가가 전달하고픈 의도는 내게도 잘 전달된 것이구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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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로 가기 위하여




청춘시대 - 박연선 대본집, 박연선, 2017-09-11.


 꽤 오래 길을 잃어버린듯했다. 그래서 지치고 가라앉고 우울하고 아프기까지 했던 건가. 이런 마음의 상태가 몸의 상태를 힘들게 이끈 모양이다. 그리고 서로가 앞서거니 하면서 몸과 마음이 엎치락뒤치락 가라앉고만 있다. 이런 침체 상태가 몇 개월을 지속되다 보니 이 상태에 익숙해진 듯, 습관화되어 버린 것도 같다. 도대체 시작이 언제였는지, 무엇 때문이었는지 모를 슬프고 아픈 소식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왔는데, 무엇 때문인지 언제인지를 명확히 알면서 이러한 상태가 종료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득 생각했다.

  이야기하다가 ‘우리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지’란 말을 자주 하는 걸 알았는데 이 모든 것에 청춘의 시절을 보낸 안타까움이 있던 건가 싶어 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정말 늙어서, 하루하루 늙어가서 그런가. 어쨌든 이유를 찾으려는 생각이 그 속에 더 머물기 위함이 아니라 빠져나오기 위해서라는 쪽으로 1% 더 두기로 했다. 정말 정신을 차려야 할 때이기도 하고 이렇게 방황하는 동안 달력은 올해를 한달만 남겨두었으니까.


어딘가를 가려고 하니까 길을 잃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목표 같은 걸 세우니까 힘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오래 같은 자리에 있어도 길을 잃나 보다.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그 물속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계속계속 가라앉으면서….


  아니다. 생각해보니까 JSA 귀순 병사의 달리기 영상 때문인 거 같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분명한 저 몸짓. 현실감이 없는듯하면서도 현실감있는 영상에 붙들려서인 모양이다. 태어날 때부터 분단국가임을 알았으면서도 새삼 분단국가임이 어떤 것인지 뚜렷이 느껴지는 현장의 모습. 자신도 모르게 넘어버린 북한 병사처럼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군사경계선의 이미지. 스물다섯의 병사가 40여발의 총알속을 달리고 여러발을 맞고 쓰러져 마침내 의식을 찾은 열흘을 담고 있는 저 찰나의 순간. 영상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가 묘하게 느껴졌다. 아주 묘한.   

  허무를 끌어안고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돌림노래에 빠져 있었던 건지. 점심은 저녁은 무엇을 먹을지 그런 것을 생각하기 귀찮았던 건지. 공과금, 청구서, 일…이런 것들을 매달고 사는 것이 싫어서인지, 무엇을 하고 싶어서인지, 무엇을 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그저 모르게 흘러가 우울에 처박혀 버린 시간들을 불러내보니 고민인 것도 같고 그냥 그저 그런 귀차니즘인 것도 같고, 때론 심각해 보이기도 하다가 너무 가벼운 걱정에 매몰되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한.


평범하다는 것은 흔한 것, 평범하다는 것은 지루하다는 의미였다. 그때의 나에게 평범하다는 것은 모욕이었다.


  정말, 내가 이런 상태였던가. 지루한 일상에 스스로 지쳐서 방황했던 건가. 생과 사의 선을 넘은 병사의 달리기 영상을 보았다고 당장 달라질 내 몸과 마음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작은 돌멩이 하나 맞은 만큼이라도 각성은 하게 될까. 이젠 나이를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이든 하려고 하기보다 어떻게든 안하려 용을 쓰는 게 하루의 일과인 듯하다.

  작년 여름이던가. 청춘시대가 방영됐고 올해에 시즌2도 방영됐다. 방송됐던 드라마를 대본집으로 읽어보는 것은 처음인데 확실히 소설을 읽는 것과는 달랐다. 청춘시대를 보며 나또한 청춘시대의 등장인물들처럼 버티고 견뎌내는 청춘의 시대를 겪었다 생각했는데, 그 시절을 겪으며 느끼고 생각하고 결심한 것은 어디로 다 소멸해 버렸을까. 그때에는 견뎌냈는데 왜 지금은 오기도 객기도 없어진 걸까.

  이 선을 넘어와서는 안돼.

  누군가는 넘었고 누군가는 넘지 않았고 누군가는 넘어서 놀라 되돌아갔다. 가상의 선 하나가 주는 의미와 그 선을 바라보는 이들의 의미가 어떤 상황을, 변화를,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았다. 내가 둘러놓은 선이 너무 많구나 싶었다. 달리기까지는 아니라도 몇 발자욱 떼야 하리란 걸, 생각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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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 제155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세월이 가면 다 잊혀지겠죠.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오기와라 히로시, 2017-05-19.


  수채화같은 표지가 예뻤다. 이런 느낌의 책표지가 대체로 일본 소설이나 에세이에 자주 쓰이는 터라 예쁘네하고 오래도록 그냥 넘겼는데, 바다가 보고 싶을 때가 있고 바다에 가고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이 책을 읽고 싶을 때였나 생각해본다.

  마침 이 그림이 가을이 들어서는 길목에 바라본 풍경과 닮아보였다. 그곳은 바다는 아니었고 강이었지만, 쌀랑한 가을풍경의 잔상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바다가, 강이 보이는 언덕, 그런 장소에 그런 공간에 아직 머물러 있고 싶은 마음 탓이다.

  단편집인 이 책엔 여섯 개의 이야기가 있다. 여섯 개의 이야기는 가벼웁게 잔잔히 흐르는 물처럼 흘렀다. 크게 출렁이지도 다른 것이 끼어들지도 않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 물이 나를 흘러갔구나 싶은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가족과 상실, 그리고 시간이란 단어도 흘러갔다.

  첫 번째 단편 「성인식」은 딸의 죽음으로 깊은 우울 속에서 살다가 딸의 성인식에 참가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억 속의 딸은 잊을 수 없어서 잊지 못해 방황하는 두 부부의 성인식에 참가하기 위한 고군분투가 참으로 애잔하게 다가오며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지금 돌아가면 또 한탄과 회한의 날들이 시작될 것이다. 오늘로 끝내고 싶었다. 스즈네를 위해서기보다 자신들을 위해서였다. 우리는 늘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슬픔을 어느 시점에서는 과감하게 떨쳐내야 한다. 나와 미에코에게도 성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언젠가 왔던 길」은 어릴 적부터 엄마의 억압에 갑갑해 하던 딸이 취업하면서 엄마로부터 독립해 살다가 16년이나 지나서 치매에 걸린 도움이 필요한 엄마를 만나는 이야기다. 지난날 자신을 힘들게 하던 엄마가 아니라 기억도 없이 아픈 엄마를 보면서 마음이 변화해 가는 딸의 이야기, 어쩌면 예상가능한 방향으로 흐르는 이야기다.  「멀리서 온 편지」는 일만 하는 남편 때문에 친정에 갔다가 남편이 보내는 거라 생각한 메일을 받으면서 점차로 남편과 그리고 조부모의 삶에 대해 이해해 가는 내용을 담았다. 「하늘은 오늘도 스카이」는 집을 나와 바다를 찾아 가는 소녀의 이야기다. 이럴 때면 늘 길에서 누군가를 동행하게 되는데 소녀의 동행인은 비닐봉투를 쓴 소년이다. 둘의 대화가, 재미있다. 「때가 없는 시계」는 아버지의 유품인 손목시계를 수리맡기면서 시계방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버지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책의 표제작인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한때는 아주 ‘잘 나갔던’ 이발소 주인. 유명인들이 드나들던 이발소는 망해서,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곳에서 운영된다. 멀리까지 찾아온 손님에게 이런 저런 자신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발소 주인. 오랜 전문가의 손길은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은데, 그의 이야기는 길고 여운도 길다.

 단편 하나하나가 가만 보면 가족 관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의 가족. 인생이란 가족이 기본적인 관계이고 또한 가장 큰 애증의 대상이 아니겠는가. 이 속에서 겪는 갈등과 상처와 그리고 애정들이 작가의 담백한 문체로 흩어져 있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에서 떠올리는 것은 한편으로는 ‘바다가 보이는’이라는 구절이다. ‘바다가 보이는, 바다가 보이는’ 이라는 이 말은 오래도록 다른 의미로 기억될 것 같다. 오랫동안 바다가 보이는 곳을 바라볼 사람들이 생각나는 말이다. 딸을 잃은 부부의 말에 누군가에게 위로랍시고 건네는 저 말 하나가 위로일 수 있는지 거듭 생각하게 된다.


마음의 아픔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흔히들 하는 말이다.

    그 말이 맞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몇 년이 지나야 해결될 수 있을까. - 성인식 中


  2017년 11월 16일, 3년 7개월이 흘렀고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온 지 8개월이 흘렀다. 미수습자 5명의 가족이 목포 신항을 떠나기로 발표했다. 이제는 정말로 미수습자 수색이 종료될 모양이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3년 7개월이라니. 목포를 떠나기로 하면서 미수습자 가족 중 어느 분이 이렇게 말을 했다.


“세월이 가면 다 잊혀져요. 온 국민이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이 세월호를.

 세월이 가면 다 잊혀지겠죠.”

  

  쓰러지며 오열하는 다섯 가족을 보는 것도 아렸지만 저 말을 하는 분의 표정과 말이, 거듭 거듭 떠올려졌다. 성인식 속에서 딸을 잃은 부모의 말과 오버랩됐다.

  가족. 삶이란 그런 것일 게다. 서로 다툼이 있더라도 그리워하고 결국은 그들에게서 위안을 얻으며 살아가는. 세월호 그 많은 이들이 가족들과 싸우며 화해하며 애증을 반복하면서, 자기들만의 삶을 흘러갔을 텐데. 잊지 말아주십시오는 당부이고 다 잊혀질 것이라는 건 체념일까. 이렇듯 기사, 뉴스 한줄 접하면 마음 아리더라도 소식없으면 잊어먹을 나일 것이다. 가족이 아니기에. 세월이 가면 다 잊혀질 것이다. 언젠가는. 그런데 아직까지는, 몇 년은 더 걸릴 것 같다. 잊혀지는데 몇 년은 걸릴 것 같다. 바다가 보이는, 바다가 보이는 그곳에 서면 계속 생각날 것이다. 

  내게도 성인식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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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계절
구효서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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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로 남은 이야기


아닌 계절, 구효서, 문학동네, 2017-04-03.


  많은 작품을 쓴, 수많은 문학상 수상작가 구효서의 소설집 「아닌 계절」은 아닌 계절 겨울, 여름, 봄, 가을에 관해 이야기한다. 통상적으로 사계절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말하나 작가는 아니다. 통상적인 말의 수순을 버리고 아닌, 특정한, 사계절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이야기, 이야기는 계절을 배경으로 그러나 계절을 주인공으로 불러낸다. 그 계절에, 그 겨울과 여름과 가을과 봄에 겪었던 이야기들은 그 계절이 ‘아닌’ 계절을 떠올리기 아려울 만큼 그 계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아닌 계절은 그 계절을 느끼느라 그 계절에 갇혀 있느라 더디게 읽힌다. 작가가 전하는 말의 리듬은 터벅터벅, 고독을 아픔을 짊어진채 느리게 느리게 나아간다. 그럼에도, 읽은 문장을 다시 읽는 일이 반복되어도, 그래서 문장들과 이미지는 반복해서 마음에 쌓이는 모양이다. 모호한, 부정칭 같은 인물들의 이름이 멀게 느껴져 거리를 두고 이들을 보다가도 한발자국씩 가까이 가게 만든다.  적당히 떨어진 채로 말이다.


나는 지금 여기서 누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하고 중얼거렸다. 알 수 없는 일이므로 누구든 어디든 상관없었다. 분명한 건 각막을 에는 듯한 추위뿐이었다.


  주위 누군가 사라져도, 온통 낙서로 뒤덮인 벽이 늘어가도, 세상이 어떤 일이 벌어져도 기억하는 것은 오직 겨울, 춥다는 느낌과 생각인 「세한도」의 [세한도]의 여자처럼. 아이가 물에 빠져도, 양식장 주인이 아이를 죽이는 것을 보아도, 어느 어머니에게서 촌지를 받아 다른 어머니에게 부치는「바다, 夏日」의 ‘미음’처럼. 세상을 보고 있지만 보고만 있는 그러한인물들의 모습이다. 이것은 「봄나무의 말」속 회화나무의 역할이 아닌가. 오히려 이 회화나무가 감정을 가지고 이야기를 건넨다. 다른 인물들이 그들이 겪는, 그들이 보고 있는 상황을 익숙한 거리감으로 그저 ‘보고만 있는’데, 회화나무만이 마을의 일꾼 닷근이와 꽃서방과 새악시의 이야기를 전한다. 화자의 목소리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감정을 토로하는 것이 이렇듯 다른 인물들이 아니라 ‘회화나무’인 것이 우연일까.


찌고 숨 막히는 듯하다가 더위는 고스란히 살을 에는 통증이 되었다. 어떤 느낌도 여자에게 이토록 명징했던 적이 없었다. 혹독했으며 처음이며 마지막일 것 같았다.


  「여름은 지나간다」의 인물은 전쟁통에 헤어져 육십년이 지나 재회한 노부부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묻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이 있음에도 그 말들을 하지 않는다. 그들 부부의 이름을 기억하려 해도 그들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아 기억하기 어려울 지경인데 이름마저도 ‘파’와 ‘하’다. 감탄사이거나 혹은 의미없는 소리일 뿐이 이 단어가 이름이 되면서, 이 노부부의 이미지는 그 주위를 둘러싼 배경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그러니, 선명하게 부각되는 계절. 이들이 만난 그 계절, 지나갈 여름, 아닌 여름이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모호한 이름이나 모호한 시공간적 배경을 의도했다고 했다. 이 의도가 문학적 익숙함은 아닐지언정 일상적 공간에서는 익숙하다는 것, 아닌 계절을 덮은 후 선명하게 느껴지는 감정이었다. 말이 회화처럼 번지는 통에 한참을 이미지에 갇혀 있게 하는 맛이 있었다. 요즘처럼 스토리를 부각하는 소설이 인기임을 생각한다면 이 책을 잡는 손길은 더뎌지겠구나 싶었다. 한편으론 이 책에서 추리와 미스터리를 읽을 때와 같은 장르적 느낌을 짙게 받았다. 단편소설에서 ‘문학’이란 느낌이 가득한, 문장 때문에 더디게 읽게 되는 글들을 만나는 즐거운 일이 계속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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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지 않도록.


바깥은 여름, 김애란, 2017-06-28.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비도 내리고 바람도 거칠게 불었다. 깊은 가을로 들어선지 오래다. 그러니, 바깥은 이미 여름이 아니다. 한 해가 두달도 남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면 이젠 겨울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니, 바깥은 여름을 향해 조금 더 가고 있다.

 올 여름께 베스트셀러였던『바깥은 여름』은 김애란 작가의 일곱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상문학상과 젊은작가상 수상작이 실려 있지만, 단편명에 『바깥은 여름』은 없다. 「풍경의 쓸모」에 스치듯 나오는 문장에서 단편집의 제목을 삼았다. 쓸모라는 단어를 보면서도 풍경의 쓸쓸함과 씁쓸함으로 읽혀진 것처럼 『바깥은 여름』의 이미지는 기인 그림자가 사그라지지 않는 풍경으로 남았다. 작품마다 상실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입동」과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상실은 같은 것처럼 다가왔다. 아이를 잃은 부부와 남편을 잃은 아내의 무너진 일상의 생활들이 아프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아이와 남편이 사망한 일이 하나의 사건으로 여겨졌다. 하나의 사건이 일으키는 파장이 얼마나 큰지, 당사자와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간극은 크다는 걸 소설을 통해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이 두 작품에서 세월호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생각나는 더없이 트라우마로 남은 큰 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두 작품에서 아무리 트라우마를 겪는다 해도 함께 공감을 나눈다한들 결국 타인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참으로 슬퍼졌다. 나 역시 그들처럼 결국엔 바깥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일 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우리는 자식을 잃은 부모는 남편을 잃은 아내는 ‘어떠해야 한다’ ‘어떠한 모습으로 있어야 한다’는 굴레를 씌우고 우리의 편의대로 애도를 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아직 화가 나 있었다. 잠시라도, 정말이지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생각은 안 했을까. 내 생각은 안 났을까. 떠난 사람 마음을 자르고 저울질했다. 그런데 거기 내 앞에 놓인 말들과 마주하자니 그날 그곳에서 제자를 발견했을 당신 모습이 떠올랐다.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당신을 보낸 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 제자를 구하다 사망한 교사의 아내의 말이다. “당신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아직 화가 나 있었다”는 문장에서 내 심장은 덜컥거렸다. 우리는, 그들에게 타인인 우리는 그가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대해서 더 특별히 애도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하지 않은 이들을 은근히 비난하며…. 13일, 세월호에서 제자를 구하다 사망한 교사의 장례가 있었다. 그날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소설 속 아내의 말이 계속 머리에 떠올랐다. 마치 「입동」에서 겪은 일로 이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아니라 기계에 대고 슬픈 물음들을 물어대는 것만 같았다.

  새삼 공감이라는 것이 언제나 내 경험치 안에서 움직이고 있음도 느껴졌다. 그것이 시리가 대답할 수 있는 최대치. 나는 타인의 일에 관해서 언제나 시리일 수밖에 없는 걸까. 조사 ‘은’이 가리키는 성실한 저 대조의 의미. 바깥은 여름이고…. 바깥은 여름이라고 제목 지은 작가의 의도를 알 것 같다 말함으로써 시리에서 비켜가고 싶은 나의 의지를 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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