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지 않도록.


바깥은 여름, 김애란, 2017-06-28.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비도 내리고 바람도 거칠게 불었다. 깊은 가을로 들어선지 오래다. 그러니, 바깥은 이미 여름이 아니다. 한 해가 두달도 남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면 이젠 겨울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니, 바깥은 여름을 향해 조금 더 가고 있다.

 올 여름께 베스트셀러였던『바깥은 여름』은 김애란 작가의 일곱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상문학상과 젊은작가상 수상작이 실려 있지만, 단편명에 『바깥은 여름』은 없다. 「풍경의 쓸모」에 스치듯 나오는 문장에서 단편집의 제목을 삼았다. 쓸모라는 단어를 보면서도 풍경의 쓸쓸함과 씁쓸함으로 읽혀진 것처럼 『바깥은 여름』의 이미지는 기인 그림자가 사그라지지 않는 풍경으로 남았다. 작품마다 상실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입동」과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상실은 같은 것처럼 다가왔다. 아이를 잃은 부부와 남편을 잃은 아내의 무너진 일상의 생활들이 아프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아이와 남편이 사망한 일이 하나의 사건으로 여겨졌다. 하나의 사건이 일으키는 파장이 얼마나 큰지, 당사자와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간극은 크다는 걸 소설을 통해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이 두 작품에서 세월호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생각나는 더없이 트라우마로 남은 큰 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두 작품에서 아무리 트라우마를 겪는다 해도 함께 공감을 나눈다한들 결국 타인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참으로 슬퍼졌다. 나 역시 그들처럼 결국엔 바깥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일 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우리는 자식을 잃은 부모는 남편을 잃은 아내는 ‘어떠해야 한다’ ‘어떠한 모습으로 있어야 한다’는 굴레를 씌우고 우리의 편의대로 애도를 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아직 화가 나 있었다. 잠시라도, 정말이지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생각은 안 했을까. 내 생각은 안 났을까. 떠난 사람 마음을 자르고 저울질했다. 그런데 거기 내 앞에 놓인 말들과 마주하자니 그날 그곳에서 제자를 발견했을 당신 모습이 떠올랐다.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당신을 보낸 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 제자를 구하다 사망한 교사의 아내의 말이다. “당신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아직 화가 나 있었다”는 문장에서 내 심장은 덜컥거렸다. 우리는, 그들에게 타인인 우리는 그가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대해서 더 특별히 애도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하지 않은 이들을 은근히 비난하며…. 13일, 세월호에서 제자를 구하다 사망한 교사의 장례가 있었다. 그날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소설 속 아내의 말이 계속 머리에 떠올랐다. 마치 「입동」에서 겪은 일로 이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아니라 기계에 대고 슬픈 물음들을 물어대는 것만 같았다.

  새삼 공감이라는 것이 언제나 내 경험치 안에서 움직이고 있음도 느껴졌다. 그것이 시리가 대답할 수 있는 최대치. 나는 타인의 일에 관해서 언제나 시리일 수밖에 없는 걸까. 조사 ‘은’이 가리키는 성실한 저 대조의 의미. 바깥은 여름이고…. 바깥은 여름이라고 제목 지은 작가의 의도를 알 것 같다 말함으로써 시리에서 비켜가고 싶은 나의 의지를 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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