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 제155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세월이 가면 다 잊혀지겠죠.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오기와라 히로시, 2017-05-19.


  수채화같은 표지가 예뻤다. 이런 느낌의 책표지가 대체로 일본 소설이나 에세이에 자주 쓰이는 터라 예쁘네하고 오래도록 그냥 넘겼는데, 바다가 보고 싶을 때가 있고 바다에 가고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이 책을 읽고 싶을 때였나 생각해본다.

  마침 이 그림이 가을이 들어서는 길목에 바라본 풍경과 닮아보였다. 그곳은 바다는 아니었고 강이었지만, 쌀랑한 가을풍경의 잔상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바다가, 강이 보이는 언덕, 그런 장소에 그런 공간에 아직 머물러 있고 싶은 마음 탓이다.

  단편집인 이 책엔 여섯 개의 이야기가 있다. 여섯 개의 이야기는 가벼웁게 잔잔히 흐르는 물처럼 흘렀다. 크게 출렁이지도 다른 것이 끼어들지도 않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 물이 나를 흘러갔구나 싶은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가족과 상실, 그리고 시간이란 단어도 흘러갔다.

  첫 번째 단편 「성인식」은 딸의 죽음으로 깊은 우울 속에서 살다가 딸의 성인식에 참가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억 속의 딸은 잊을 수 없어서 잊지 못해 방황하는 두 부부의 성인식에 참가하기 위한 고군분투가 참으로 애잔하게 다가오며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지금 돌아가면 또 한탄과 회한의 날들이 시작될 것이다. 오늘로 끝내고 싶었다. 스즈네를 위해서기보다 자신들을 위해서였다. 우리는 늘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슬픔을 어느 시점에서는 과감하게 떨쳐내야 한다. 나와 미에코에게도 성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언젠가 왔던 길」은 어릴 적부터 엄마의 억압에 갑갑해 하던 딸이 취업하면서 엄마로부터 독립해 살다가 16년이나 지나서 치매에 걸린 도움이 필요한 엄마를 만나는 이야기다. 지난날 자신을 힘들게 하던 엄마가 아니라 기억도 없이 아픈 엄마를 보면서 마음이 변화해 가는 딸의 이야기, 어쩌면 예상가능한 방향으로 흐르는 이야기다.  「멀리서 온 편지」는 일만 하는 남편 때문에 친정에 갔다가 남편이 보내는 거라 생각한 메일을 받으면서 점차로 남편과 그리고 조부모의 삶에 대해 이해해 가는 내용을 담았다. 「하늘은 오늘도 스카이」는 집을 나와 바다를 찾아 가는 소녀의 이야기다. 이럴 때면 늘 길에서 누군가를 동행하게 되는데 소녀의 동행인은 비닐봉투를 쓴 소년이다. 둘의 대화가, 재미있다. 「때가 없는 시계」는 아버지의 유품인 손목시계를 수리맡기면서 시계방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버지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책의 표제작인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한때는 아주 ‘잘 나갔던’ 이발소 주인. 유명인들이 드나들던 이발소는 망해서,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곳에서 운영된다. 멀리까지 찾아온 손님에게 이런 저런 자신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발소 주인. 오랜 전문가의 손길은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은데, 그의 이야기는 길고 여운도 길다.

 단편 하나하나가 가만 보면 가족 관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의 가족. 인생이란 가족이 기본적인 관계이고 또한 가장 큰 애증의 대상이 아니겠는가. 이 속에서 겪는 갈등과 상처와 그리고 애정들이 작가의 담백한 문체로 흩어져 있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에서 떠올리는 것은 한편으로는 ‘바다가 보이는’이라는 구절이다. ‘바다가 보이는, 바다가 보이는’ 이라는 이 말은 오래도록 다른 의미로 기억될 것 같다. 오랫동안 바다가 보이는 곳을 바라볼 사람들이 생각나는 말이다. 딸을 잃은 부부의 말에 누군가에게 위로랍시고 건네는 저 말 하나가 위로일 수 있는지 거듭 생각하게 된다.


마음의 아픔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흔히들 하는 말이다.

    그 말이 맞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몇 년이 지나야 해결될 수 있을까. - 성인식 中


  2017년 11월 16일, 3년 7개월이 흘렀고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온 지 8개월이 흘렀다. 미수습자 5명의 가족이 목포 신항을 떠나기로 발표했다. 이제는 정말로 미수습자 수색이 종료될 모양이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3년 7개월이라니. 목포를 떠나기로 하면서 미수습자 가족 중 어느 분이 이렇게 말을 했다.


“세월이 가면 다 잊혀져요. 온 국민이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이 세월호를.

 세월이 가면 다 잊혀지겠죠.”

  

  쓰러지며 오열하는 다섯 가족을 보는 것도 아렸지만 저 말을 하는 분의 표정과 말이, 거듭 거듭 떠올려졌다. 성인식 속에서 딸을 잃은 부모의 말과 오버랩됐다.

  가족. 삶이란 그런 것일 게다. 서로 다툼이 있더라도 그리워하고 결국은 그들에게서 위안을 얻으며 살아가는. 세월호 그 많은 이들이 가족들과 싸우며 화해하며 애증을 반복하면서, 자기들만의 삶을 흘러갔을 텐데. 잊지 말아주십시오는 당부이고 다 잊혀질 것이라는 건 체념일까. 이렇듯 기사, 뉴스 한줄 접하면 마음 아리더라도 소식없으면 잊어먹을 나일 것이다. 가족이 아니기에. 세월이 가면 다 잊혀질 것이다. 언젠가는. 그런데 아직까지는, 몇 년은 더 걸릴 것 같다. 잊혀지는데 몇 년은 걸릴 것 같다. 바다가 보이는, 바다가 보이는 그곳에 서면 계속 생각날 것이다. 

  내게도 성인식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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