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봄 2026 소설 보다
김채원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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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다


소설 보다 : 2026

김채원, 위수정, 최예솔, 문학과지성사, 2026-03-10.

 


  서해에서후지다’.

   ‘후지고, 후져서, 후지니, 후짐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지배한다. 난 후진 쪽이라 서해라는 이름을 들으면 당연 동해, 남해, 서해를 연결짓고 바다를 떠올린다. 나아가 동해와 남해와는 달리 거의 가보지 못한 서해를 좀더 경직된 느낌의 바다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을 심어준 것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바다를 가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 서해가 후순위인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역시 후지다.

  ‘서해의 만남이야 그럴 수 있다 해도 둘의 관계가 재밌다. 헤어진 남자친구의 여자친구와 친구가 되는 일이 어디 쉬운가. 어쩌면 가 둘이 헤어지는 장면을 목격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을 것도 같지만, 그녀의 이름이 용서해라서 가능했다고 농담 섞어 말하고프다. 게다가 는 서해의 이름을 보자마자 포기브 미부터 생각했으니까.

  ‘는 계속 자신을 후지다고 말하고 있다. ‘허접한 놈과의 헤어짐에도 자신이 후지다고 생각하고, 주욱 후진놈들만 만나 연애했고 짝사랑 남자에게는 고백 이후의 걱정으로 고백하지 못하고, 간호대를 휴학하고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간이 1년이 다 되도록 복학 여부를 결정짓지 못하고, 복학을 하고 나면 졸업반으로서 국가고시를 보고 평생 간호사로 일해야 함을 생각하며 무책임한 아르바이트생으로 약국에 계속 있고 싶은 자신을 후지다라고 생각하는 . 이런 의 후짐은 불안과 소심함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더 적절하게 후지다를 정의하고 있다.


말하자면 얼마든지 멋지게 살 수 있었지만 대체로 후지게 사는 상태. 딱히 힘든 일도 없으면서 인생이 망한 것처럼 골골거리는 상태. 그런 걸 서해는 이해했다.

     딱히 힘든 일도 없으면서 인생이 망한 것처럼 골골거리는 상태.”

  이 장이 내게 꽂힌 건, ‘나 나나, 샘샘이라서. ‘후지다라는 말이 여러 상황에서 쓰이지만 이만큼 꽂혀드는 후짐의 정의. ‘와 그 소소한 내용은 다르다 해도 내가 후짐의 상태를 유지하며 살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오래오래. , 정말 후지다!

  ‘에게 있어 서해를 이해하고 늘 괜찮다 말해주는 존재다. 무조건적인 이해와 지지를 통해 는 성장한 것일지 모르겠다. 물론 생을 통틀어 는 무수한 후진상태에 있고 그런 생각을 하며 살지만 후지다를 말할 때 남자의 상대적인 형태로 부각되는 것이 아쉽다. 어쩌면 청년의 삶에는 진로이성이 가장 큰 문제이구나 싶고 이것이 요즈음 청년들의 모습과 이야기들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를 바라보는 나는 조금은 귀엽게 한편으로는 후지게소설을 따라갔다.

  소설에서 후진 만큼 특이한 용서해는 이름 때문인지 참 재밌는 캐릭터인데 소소한 위로를 아주 잘 건네는 사람인데다 무한 긍정의 힘을 갖는 사람이다(장호랑 헤어지고 나서도 장호항을 찾는 에게 정말 후지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세상에 후진 사람은 많다는 것을 아는 서해사슴도 없는 사슴 농장에게 보여준다거나 장호랑 장호항은 가지 못했어도 인천 송도를 구경시켜주며 서해랑 서해에 왔으니 된 거라고 얘기하며 를 다독인다. 생각해보면 내 옆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나의 후짐 또한 좀더 버무려질 수 있을 것 같다. ‘는 끝없이 후지다, 후지다말하고 있고 서해는 끝없이 아니다, 괜찮다말하는 이 관계를 보는 게 참 재밌다. ‘용서해의 동생은 감해는 아니고 서해는 중국 청두로 떠나지만 는 새롭게 우진을 만나 연애하며 첫 여행지로 작은후진해변을 찾는다. 이 해변은 강원도 삼척에 실제 있는 해변이다. 작은후진해변이라니!

  ‘는 서해로 인해 후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삶을 이어간다. 바닷가에서 발견한 작은후진 해변처럼 좀더 작고 작은 후짐이 계속되더라도 그것이 괜찮을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의 성장기. 가끔은 팩트라는 말로 설명하기보다 그냥, 그리고 마냥 괜찮다’, ‘잘한다라고 말해주는 것도 정말 괜찮은 거 같다고 생각했다. , 사람 봐 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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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선에서 생명선으로 - 소중한 동식물의 마지막 피난처 DMZ
전영재 지음 / 목수책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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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잠자리


분단선에서 생명선으로 - 소중한 동식물의 마지막 피난처 DMZ, 전영재, 목수책방, 2025-03-14.

 


  DMZ(비무장지대, Demilitarized Zone)가 이 땅에 생긴 지 벌써 73년이 되었다. 정전협정이 1953727일이니 곧 73주기가 다가온다. 이 여름, DMZ는 어떤 풍경일까.

   DMZ는 서해에서 동해를 가로지르는 248킬로미터, 군사분계선을 따라 남과 북 4킬로미터 양쪽으로 조성된 철책에 갇힌 땅으로,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래서 마냥 이곳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이 무너지고 암흑과 같은 이미지가 가득한 곳이었다. 그곳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마치 폐허가 들어차는 느낌이었는데, 오래 전 스치듯 DMZ에 관한 다큐를 보고 그 고즈넉하고 풍요로운 공간을 보고 싶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멸종위기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었고 전쟁의 흔적이 가득한 곳이기도 했다. 갈 수 없는 곳이기에 더더욱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가서는 안되는 곳이라고 각인도 되었던 곳이다. 이 책을 보고 나서야 DMZ에 관광투어 프로그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고싶은 형태는 아니지만 그 방법만이 제한적이라도 근처라도 가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이 책은 많은 DMZ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방송기자 전영재 작가가 그동안 취재했던 DMZ의 다양한 생태에 관해 기록한 책이다. DMZ는 전쟁의 모습을 담은 폐허의 폐쇄된 공간이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동물이 모여들고 식물이 자라도록 스스로가 회복한 공간이었다. 인간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던 공간이 인간의 손길과 발길이 사라지자 스스로 회복력을 갖추고 풍요로운 야생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자연 회복력, 그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이 살아고 있는 곳에서는 멸종이 되어가는 동식물이 이곳에서 제 이름을 드러내며 달리고, 피어나고 있는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멸종위기종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된 곳, DMZ. 그리하여 저자는 이곳을 이제 분단선이 아닌 생명선이라 명하고 있다.

  보지 않고 있는 동안 어떻게 그곳에 동식물이 모여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철새들이 날아오고 씨앗들이 자리잡으며 하나하나 희귀 동식물이 생명을 움트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풍요롭게 이곳을 변화시키고 있다.

  어쩌면 날개를 가진 들이 먼저 이곳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이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텃새들과 겨울을 보내려고 온 수많은 철새들우리나라를 찾는 철새 가운데 가장 기품 있고 아름다운 새로 여겨지는두루미, “전 세계에 50만 마리밖에 남지 않은 희귀종기러기, “ ‘새들의 황제라 불리지만 사실은 사냥 능력이 없어서 죽은 짐승의 사체를 뜯어 먹고 사는독수리, “목뼈가 14개나 있어서 몸체를 움직이지 않고도 머리만 270도 돌려 사방을 볼 수 있는수리부엉이,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던 천연기념물 제197호인 크낙새”, “1912년 함경북도에서 한 개체가, 1927년 서울에서 한 개체가 발견되었다라는 아주 낡은 기록만 있는 호사비오리 같은 멸종위기종 등 맹금류와 다양한 새들이 이곳 비무장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다.

  강원도 철원은 남한에서 가장 추운 곳이지만, 겨울 철새들에게 젖줄이 되는 샘통지역은 한 번도 언 적이 없는 곳으로 한겨울에 따뜻한 물이 흐르면서 늘 영상 15도의 온도를 유지한다고 하니 철새들에게 얼마나 낙원같은 곳이겠는가. 그리하여 두루미의 먹이가 되는 미꾸라지 등이 많아 두루미과 새들이 이곳을 찾아 겨울을 보내고 떠나는 모양이다.

  책속에 두루미 잠자리라는 사진이 있다. 야생의 동식물 이야기가 나오니 두루미잠자리가 연상되었는데 곤충 잠자리가 아니라 두루미의 침대(?), 침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 책에느 저자가 취재하여 찍은 다양한 휘귀종의 동식물, 예쁜 색감을 가진 다양한 새와 꽃, 식물 사진도 나오지만 두루미 잠자리사진이 인상깊었다. 왜인지 비무장지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미지처럼 느껴졌고 울컥했다. 책 속 사진과는 다르지만 저자가 촬영한 영상 속 이미지가 유사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어 캡쳐했는데, 책 속에 사진을 보면 기분이 다를 것이다. 아래 사진보다 더 많은 두루미떼가 비무장지대 그 어느 곳에서 편안히, 잠자고 있는 모습……. 평화롭고, 아득하고


두루미의 잠자리” https://v.daum.net/v/20160229211005154/MBC (www.imnews.com)


  새들 다음에는 비무장지대를 흐르는 물을 토대로 살아가는 생물들이 등장한다. 역시 멸종위기종인 수달과 물범, “야생에서 찾아보기 어렵고 증식도 어려워 복원이 쉽지 않다고 알려져 있는광릉요강꽃, 이 광릉요강꽃이 어떻게 군락지를 이루게 되었는지, ‘둠벙이라 부르는 물웅덩이 근처에 사는 수서곤충이며 희귀종 물거미며, ‘불새라고 불리는 호반새, 희망의 상징 희망새 등이 또 얼마나 기껍게 이 공간에서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다음으로는 가슴떨리게도 지뢰밭에서 살아가는 희귀한 동식물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준다. ‘한국의 에델바이스라고 불리는 솜다리꽃, 신비의 팔색조와 긴꼬리딱새, 고라니와 멧돼지, 삵과 너구리, 족제비와 하늘다람쥐, 호랑이, 반달가슴곰, 산양 등. 4000~4500살 정도되는 습지, ‘자연의 타임캡슐’, ‘자연사 박물관’, ‘자연의 고문서라 불리는 이탄층 용늪의 모습이 담겨있다.

마지막으로 이 아름다운 야생 생물들이 살아가는 이 비무장지대가 얼마나 역사, 문화, 생태학적으로 귀중한 자원이며 가치가 있는지를 알리고 이 땅이 계속 희망과 생명의 땅이 되도록 이곳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에 관해 독일이 동서독 국경 지역을 그뤼네스반트(Grunes Band)로 보전한 사례가 있으므로 우리도 이를 참조하여 보다 적극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 책을 보고 나면, 북한에 있는 옛 역사적 유적지와 이 생명력 넘치는 야생의 생물들을 직접 볼 수 있는 날이 얼른 오기를 기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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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겨울 2023 소설 보다
김기태.성해나.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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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물러 가소서


소설 보다 : 겨울 2023

김기태, 성해나, 예소연, 문학과지성사, 2023-12-07.

 

나는 지금도 인생이 적당한 시점에서 최악의 결말로 끝나버릴 거라는 염세적인 기분이 종종 들곤 한다. 하지만 최악의 결말은 존재하지 않고, 늘 최악의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건대, 그 감각은 세계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불가해한 상황으로 구성되고, 나는 속절없이 휘말릴 뿐이라는 것을 그 시절에 이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엔 그랬다. 웃음보다 인생의 고뇌를 짊어진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은 정의롭지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더더욱 논리를 따지고 정의를 따지면서도 운명이나 운, 감각적인 것들에도 쉬이 끌리던 시절이었다. 쉽게 감정의 파고가 출렁였던, 그래서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들 하나. 어쩌면 계절마다가 아니라 날마다 바뀌는 감정의 소용돌이였기에 삶이 다채로웠던 듯도 하다. 실제로 그러했다기보다 현실이나 상황은 늘 그렀듯 그저 덤덤하게 흘러갔대도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인식이 소용돌이였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그래서 돌아보면 어떠한 사건보다도 그저 늘 그러했던 감각만이 떠오를 뿐이다. 그렇게 학창 시절은 해야 할 일이 명백하게 주어져 뚜렷함에도 그저 삶이 불확실하고 모호하기만 했다. 우리는 계절마다희조미정의 모습에 옛날을 떠올리지만 그 시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요즈음 아이들은 정말 무섭구나’.

  나의 생각들이 내 마음속에서 내게로만 뻗어나갔다면 요즘 아이들은 내향적이라고 하면서도 제 감각이나 감정의 파고를 외부로 표출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 할까. 잠시 잠깐 학생들 무리를 스칠 때면 어김없이 들리는 욕설에 놀라곤 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듯, 주위를 전혀 신경쓰지 않아서 그들의 언행은 꺾이지 않고 전달된다. 의식하며 사용하는지 의식도 하지 않은 채 자연스러운 건지 그것이 더 놀라운 청소년들. 보이지 않는 곳에선 보이는 곳에서와는 다른 또 어떤 폭력의 구도가 형성되어 있을지.

  경제적으로 풍족한 세대에 속하는 요즘 아이들의 결핍은 무엇일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표적인 결핍이라고 한다면 개개인이 맞닥뜨리는 상황들은 비슷할 듯한데, 어떤 점이 크게 다르고 어떤 조건이 그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인지, 크게 그들을 움켜쥐고 있는 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시절을 겪어 온 나로선 더더욱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같지 않을 테니까. 요즘 아이들은 게임에 익숙해 주위 사물을 게임 속 배경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코로나로 오래도록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고 자극적인 게임에 노출된 채 게임 속에 빠져 현실 속 사람과의 교류가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 그들이 세상이 사람들 대부분을 NPC로 인식한다는 게 머리로는 인식되면서도 가슴으로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이런 인식에 어른이 책임이 있다면, 미정의 엄마는 어른으로서 할 일을 하였다고 할까. 더불어, 너네가 결코 걸레가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라는 말까지를 붙인다면, 그래서 아이들이 눈물을 흘린다면, 조금은 달라질까.

 

우리는 더럽고 지저분한 곳에서 살아. 그렇지만, 결코 그들과 같아질 필요는 없단다. 나는 남편이 죽고 나서 활력을 되찾았어. 그건 내 탓이 아니지 않니?

 

  개학날 학교를 가지 못하면 이미 끼리끼리가 형성되어 한학기 내내 친구없이 생활하게 되는 일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시절은 아무래도 생활반경이 좁아서 잦은 시간을 보내는 집과 학교에서 맺게 되는 관계가 중요하기 마련이다. 인터넷 발달로 인터넷 속으로 빠지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리하여 관계맺음, 특별한 관계에 대한 열망에 집착하게 된다. 너와 나만이 지닌 비밀스러움으로 형성되는 유대, 단순히 친구 관계를 넘어선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가 미정에게 시작되었다.

 

네가 내 인생을 망쳤어.”

    나는 그 말을, 하고야 말았다. 우리가 짧은 키스를 나눈 이후로, 미정의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내가 그것을 미정의 은총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후로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음침한 청소년이 되고야 말았다. 세상은 죽음에 대한 열망을 지닌 청소년을 그런 식으로 판단했으니까. 하지만 도대체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존재하기나 한단 말인가?

웃기지도 않아. 은총이니 뭐니, 그건 다 거짓말이었어. 널 겁주려고 그랬던 거야.”

 

  왜 그 나이대는 수많은 긍정적인 단어 속에서도 죽음이나 허무와 같은 불온한 단어에 끌리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고선 그러한 단어 속에 빠진 나를 꺼내줄누군가를 기다리고……. 그에 절대성을 부여한다. ‘의 은총! ‘는 그것을 우리가 가진 열띤 열망이라 생각해왔다.

  열망이 해소되어야만 하는 시절이 청소년인 것은 아니다. 열망이란 특정한 세대의 소유물은 아니며 다만 그 열망을 성취하고 해소하는 방법이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 방법이 어리숙하고 다소 문제가 있다 하더라고 은총의 마음으로 다소 눈감아 주었다. 하지만 점점 변하는 시대, ‘비밀스러운 서사를 공유하고픈 청소년들의 열망은 정말 그랬던 것이 의심스럽게도 표출되고 노골적이 되어 간다. 청소년의 불온한 열망이 계절마다반복되는 그저 당연한 것이라면, 그들의 열망을 성취하고 해소하는 음침한 방법에 대해서는 다르게다루어야 할 때다. 그들은 이번이 처음인데요라고 할지라도 이전의 은총과는 다른 은총이 이들을 성장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꼰대같은 염려의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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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23 소설 보다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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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관계가 달라졌다면


소설 보다 : 가을 2023

김지연, 이주혜, 전하영, 문학과지성사, 2023-09-07.

 

   반려빚? 제목을 보며 직관적으로 떠오른 건 반사였다. 그러니까, ‘을 반사하는 것. 동물을 키우지 않아서인지 반려묘’, ‘반려견’, ‘반려인’, ‘반려동물’,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많은데도 전혀 그런 의미의 반려로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생각이란 내가 익숙한 단어에, 상황에 맞추어 하게 된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문자로 반려라는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어찌나 반려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지. 소설의 반려는 반려동물을 이야기할 때의 그 반려였다. 사전에서 정의하는 바로는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 하는 짝’.

  이 소설은 정현인생의 반려인 16천만원의 빚에 대한 이야기다. 여자친구 서일로 인해 생겼으나 서일이 떠난 뒤로도 정현이 갚아야 하는 것으로 남은 빚. ‘을 두고 뉴스에서나 벌어질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소설은 어떻게 빚을 떠안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보다 정현에게 어떤 형태로 반려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가도 믹스커피를 생각하고, 장보기 품목이 달라지고 숨쉬는 순간마다 을 생각하고 있게 되는데, 한마디로 빚이 정현의 목줄을 잡고있는 형태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돼?”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안 될까?

얼마나 더? 하도 오래돼서 요샌 빚이 내 반려자 같고 그래.

정현의 말에 서일은 정색을 했다.

넌 진짜 뭘 아껴본 적이 없구나. 어떻게 반려자랑 빚을 비교해? 그건 반려라는 단어한테 모욕이야.

 

  힘들고 죽고 싶은 순간도 있음을 서술하지만 반려빚이라 칭하며 그저 덤덤하게 이를 받아들일 뿐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노력 또한 없고 서일에 대한 분노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외면하며 견디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반려빚으로 자조하며 을 일상화하는 정현의 행동에 크게 공감되지 않았다. 서일의 말처럼 진짜 뭘 아껴본 적 없는이의 방식은 이런가 싶었다. 한편으론 감정을 폭발하지 않는 정현의 모습이 현실적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불편한 것이 끊임없이 나를 옭아매고 끊임없이 생각나게 하며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 그것을 떨쳐내고 싶어도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하지만, 분명 전세사기를 비롯하여 팍팍한 사회현실이 반영된 얘기인데, 그렇다고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를 기대한 건 아님에도 소설이 주는 분위기가 다소 꿈처럼 여겨졌다. 정현이 늘 꿈속에서 맞닥뜨리는 반려빚의 에피소드들처럼, 아직 꿈인 듯 몽롱한 기분. 소설은 마지막까지 꿈,이었다.

  나는 뉴스를 보는 것이 아니니, 이렇게 생각지 못한 다른 결로 나아가야 그것이 소설이겠지. 또한, 뉴스 기사에 나오지 않은 많은 이들이 소설 속 정현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순응, 아니니 목줄에 잡힌 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 빚이 이성애 관계에서 생긴 빚이라면 정현의 태도가 같았을까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소설에서 내내 정현의 태도는 이 아니라 서일과의 관계’, ‘서일에 대한 마음으로 보이기도 했다. 반려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되돌려 주는것으로 생각했던 첫 이미지에 맞게 정현에게 반려빚은 평생은 아니었다. 원인인 서일이 돈을 되돌려 줌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실제 의 주도자인 서일에게 미련이 있어 보이던 정현은 어떻게 하려나.

 

반려빚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코트 깃을 세우고 현관에 서서 정현과 작별 인사를 했다. 반려빚은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정현을 떠났다.

정현 역시 현관에 오래 서 있지 않았다. 찬장에서 소금을 꺼내 와 현관밖에 팍팍 뿌렸고 문이 닫히자마자 걸쇠를 단단히 걸어 잠갔다. 다시는 얼씬도 못 하도록. 꿈속에서 정현은 마냥 홀가분했고 깨어서도 그랬다. 마침내 0이 된 기분. 정현은 그 이상을 바라는 것도 이상하게 무섭기만 해서 그저 0인 채로 오래 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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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3 소설 보다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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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오지랖[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소설 보다 : 여름 2023, 공현진, 김기태, 하가람, 문학과지성사, 2023-06-09.

 


  제법 되뇌던 말이다. ‘어차피 다 죽을 몸인데’,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이 말을 소설 제목으로 맞닥뜨렸을 때, ‘어차피라는 말에 가득한 허무를 살짝 비켜내고 다른 이들은 어떤 순간에 저러한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물론 어차피란 말이 중간중간 간섭하며 어차피 결론은 하나일 텐데라고 하고 있었지만.

 

희주는 자신을 저격하며 말하는데도 뚱한 표정으로 맨 앞에 서 있는 남자도, 대놓고 회원님은 뒤쪽으로 가주세요, 라고 말하지 않는 강사도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기싸움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가만히 보니 남자는 그게 자신을 가리키는 말인 줄 모르는 것 같았다.

 

  희주의 눈에 비친 것처럼 나 또한 주호가 답답했고 상황 자체가 어이없게 느껴졌다. 수영 초급반에서 강사는 늘 이렇게 말한다. “잘하는 사람은 앞으로 못하는 사람 뒤로.”

  누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쭈뼛쭈뼛 사람들의 움직임이 몇 번 있고 나면 적당히 자리잡은 질서 속에 수업은 이어진다. 수영은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운동이고 초급반 수강생들은 줄줄이 일정한 흐름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막혀 버린다. 그건 선두에 선 주호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다. 주호는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주호는 매번 늘 앞에서 물살을 가른다. ‘잘 해서가 아니라그냥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누구도 주호를 밀치고 앞으로 나오지 않았으니까. ‘주호가 수영을 잘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면, 주호로 인해 동선이 막히는 상황을 여러 날 겪었다면 왜 주호보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은 주호를 앞질러 나서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에 이토록 소심한 사람들이 많았던가? 눈치없는 남자 주호에게 폭발하는 강사를 보며 생각했다. 왜 강사는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말을 하지 않고 뒤늦게 자기 화를 못 누르고 주호를 문제의 근원으로 보는 건가.

  수영장의 주호를 보면 일상에서도 어벙벙하며 세상일에 무심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주호는 예민한 사람이다. 주호는 정의로운 사람도, 가슴이 뜨거운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직장에서 안전문제로 인해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감을 느끼고 마음을 쓰는 사람이다. 어느 직장이든 이런 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공장은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 상황에서 쉬이 마음이 추슬러지지 않는 주호의 마음을, 난리를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희주 또한 주호와 같은 면이 있는 사람이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다큐를 본 후 우리 모두 30년 후에는 다같이 물에 잠겨 죽는다는 말을 아이들에게 했다가 사립학교에서 쫓겨난 교사다. 희주의 이 말은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 것이지만 누구도 희주의 마음을 알아줄 리 없다. 어차피 지구는 죽고 인간은 죽는데,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인데.

  주위 사람들에게서 이해받지 못한 두 사람이 수영 강습반에서 만나 물 속에서도 숨쉴 수 있음을 배우고 서로를 건져 올리는 과정이 소설에 담겼다. 언뜻 보면 찐따일 것 같은 두 사람이 서로의 불안과 상처를 보듬으며 서로를 연민하는 과정은 제목이 주는 체념이나 부정적 이미지와는 달리 매우 긍정적이고 한편으론 동화같기도 하다. 전혀 융화될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의지하며 상처받은 삶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내려는 모습은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라는 빅터 프랭클의 말을 떠오르게 한다.

 

˝전 죽고 싶다거나 죽으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거든요. 그런데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이상해요. 그럴 수가 있는 걸까요.˝

주호는 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밀려오는 자신이 이상했다. 그런 충동은 죽음에 대한 충동이 있어야 짝을 이루는 것 아닌가. 삶이, 살아 있음이 자연스럽다면 살고 싶다는 충동 자체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호는 최근 들어 죽음에 대한 중동이나 갈망 없이도 절실하게 살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살고 싶다. 더욱 살고 싶다.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럼에도 결국 함께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라 생각했다. 소설을 보면서 그동안 있었던 많은 사고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릿해졌는데, 어차피 멸망할 세상 남을 해하는데 애쓰기보다는 희주처럼 애틋한 마음을 주위로 돌려 오지랖 좀 부린들 어떠하랴 싶었다. 누군가는 허무를 누군가는 사랑을. 아직 버티고 나아가는 세상에서 후자가 더 필요할 듯 싶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다르지만 비슷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다큐멘터리는 50년 뒤, 빠르면 30년 뒤에 지구가 완전히 물에 잠긴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희주는 반짝이던 도시가, 사람들이, 색색의 거리들이 물에 잠긴 모습을 상상했다.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같이 잠기고 같이 사라지는 것. 그런 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희주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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