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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23 ㅣ 소설 보다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평점 :
절판
관계가 달라졌다면
소설 보다 : 가을 2023
김지연, 이주혜, 전하영, 문학과지성사, 2023-09-07.
반려빚? 제목을 보며 직관적으로 떠오른 건 ‘반사’였다. 그러니까, ‘빚’을 반사하는 것. 동물을 키우지 않아서인지 ‘반려묘’, ‘반려견’, ‘반려인’, ‘반려동물’,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많은데도 전혀 그런 의미의 반려로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생각이란 내가 익숙한 단어에, 상황에 맞추어 하게 된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문자로 ‘반려’라는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어찌나 ‘반려’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지. 소설의 ‘반려’는 반려동물을 이야기할 때의 그 반려였다. 사전에서 정의하는 바로는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 하는 짝’.
이 소설은 ‘정현’ 인생의 반려인 1억 6천만원의 빚에 대한 이야기다. 여자친구 ‘서일’로 인해 생겼으나 서일이 떠난 뒤로도 정현이 갚아야 하는 것으로 남은 빚. ‘빚’을 두고 뉴스에서나 벌어질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소설은 어떻게 빚을 떠안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보다 정현에게 어떤 형태로 ‘반려’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가도 믹스커피를 생각하고, 장보기 품목이 달라지고 숨쉬는 순간마다 ‘빚’을 생각하고 있게 되는데, 한마디로 빚이 ‘정현의 목줄’을 잡고있는 형태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돼?”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안 될까?”
“얼마나 더? 하도 오래돼서 요샌 빚이 내 반려자 같고 그래.”
정현의 말에 서일은 정색을 했다.
“넌 진짜 뭘 아껴본 적이 없구나. 어떻게 반려자랑 빚을 비교해? 그건 반려라는 단어한테 모욕이야.”
힘들고 죽고 싶은 순간도 있음을 서술하지만 ‘반려빚’이라 칭하며 그저 덤덤하게 이를 받아들일 뿐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노력 또한 없고 서일에 대한 분노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외면하며 견디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반려빚’으로 자조하며 ‘빚’을 일상화하는 정현의 행동에 크게 공감되지 않았다. 서일의 말처럼 “진짜 뭘 아껴본 적 없는” 이의 방식은 이런가 싶었다. 한편으론 감정을 폭발하지 않는 정현의 모습이 현실적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불편한 것이 끊임없이 나를 옭아매고 끊임없이 생각나게 하며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 그것을 떨쳐내고 싶어도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하지만, 분명 전세사기를 비롯하여 팍팍한 사회현실이 반영된 얘기인데, 그렇다고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를 기대한 건 아님에도 소설이 주는 분위기가 다소 꿈처럼 여겨졌다. 정현이 늘 꿈속에서 맞닥뜨리는 반려빚의 에피소드들처럼, 아직 꿈인 듯 몽롱한 기분. 소설은 마지막까지 꿈,이었다.
나는 뉴스를 보는 것이 아니니, 이렇게 생각지 못한 다른 결로 나아가야 그것이 소설이겠지. 또한, 뉴스 기사에 나오지 않은 많은 이들이 소설 속 정현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순응, 아니니 목줄에 잡힌 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 빚이 이성애 관계에서 생긴 빚이라면 정현의 태도가 같았을까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소설에서 내내 정현의 태도는 ‘빚’이 아니라 ‘서일과의 관계’, ‘서일에 대한 마음’으로 보이기도 했다. ‘반려’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되돌려 주는’ 것으로 생각했던 첫 이미지에 맞게 정현에게 ‘반려빚’은 평생은 아니었다. 원인인 ‘서일’이 돈을 되돌려 줌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실제 ‘빚’의 주도자인 서일에게 미련이 있어 보이던 정현은 어떻게 하려나.
반려빚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코트 깃을 세우고 현관에 서서 정현과 작별 인사를 했다. 반려빚은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정현을 떠났다.
정현 역시 현관에 오래 서 있지 않았다. 찬장에서 소금을 꺼내 와 현관밖에 팍팍 뿌렸고 문이 닫히자마자 걸쇠를 단단히 걸어 잠갔다. 다시는 얼씬도 못 하도록. 꿈속에서 정현은 마냥 홀가분했고 깨어서도 그랬다. 마침내 0이 된 기분. 정현은 그 이상을 바라는 것도 이상하게 무섭기만 해서 그저 0인 채로 오래 있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