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겨울 2023 소설 보다
김기태.성해나.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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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물러 가소서


소설 보다 : 겨울 2023

김기태, 성해나, 예소연, 문학과지성사, 2023-12-07.

 

나는 지금도 인생이 적당한 시점에서 최악의 결말로 끝나버릴 거라는 염세적인 기분이 종종 들곤 한다. 하지만 최악의 결말은 존재하지 않고, 늘 최악의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건대, 그 감각은 세계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불가해한 상황으로 구성되고, 나는 속절없이 휘말릴 뿐이라는 것을 그 시절에 이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엔 그랬다. 웃음보다 인생의 고뇌를 짊어진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은 정의롭지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더더욱 논리를 따지고 정의를 따지면서도 운명이나 운, 감각적인 것들에도 쉬이 끌리던 시절이었다. 쉽게 감정의 파고가 출렁였던, 그래서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들 하나. 어쩌면 계절마다가 아니라 날마다 바뀌는 감정의 소용돌이였기에 삶이 다채로웠던 듯도 하다. 실제로 그러했다기보다 현실이나 상황은 늘 그렀듯 그저 덤덤하게 흘러갔대도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인식이 소용돌이였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그래서 돌아보면 어떠한 사건보다도 그저 늘 그러했던 감각만이 떠오를 뿐이다. 그렇게 학창 시절은 해야 할 일이 명백하게 주어져 뚜렷함에도 그저 삶이 불확실하고 모호하기만 했다. 우리는 계절마다희조미정의 모습에 옛날을 떠올리지만 그 시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요즈음 아이들은 정말 무섭구나’.

  나의 생각들이 내 마음속에서 내게로만 뻗어나갔다면 요즘 아이들은 내향적이라고 하면서도 제 감각이나 감정의 파고를 외부로 표출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 할까. 잠시 잠깐 학생들 무리를 스칠 때면 어김없이 들리는 욕설에 놀라곤 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듯, 주위를 전혀 신경쓰지 않아서 그들의 언행은 꺾이지 않고 전달된다. 의식하며 사용하는지 의식도 하지 않은 채 자연스러운 건지 그것이 더 놀라운 청소년들. 보이지 않는 곳에선 보이는 곳에서와는 다른 또 어떤 폭력의 구도가 형성되어 있을지.

  경제적으로 풍족한 세대에 속하는 요즘 아이들의 결핍은 무엇일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표적인 결핍이라고 한다면 개개인이 맞닥뜨리는 상황들은 비슷할 듯한데, 어떤 점이 크게 다르고 어떤 조건이 그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인지, 크게 그들을 움켜쥐고 있는 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시절을 겪어 온 나로선 더더욱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같지 않을 테니까. 요즘 아이들은 게임에 익숙해 주위 사물을 게임 속 배경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코로나로 오래도록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고 자극적인 게임에 노출된 채 게임 속에 빠져 현실 속 사람과의 교류가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 그들이 세상이 사람들 대부분을 NPC로 인식한다는 게 머리로는 인식되면서도 가슴으로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이런 인식에 어른이 책임이 있다면, 미정의 엄마는 어른으로서 할 일을 하였다고 할까. 더불어, 너네가 결코 걸레가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라는 말까지를 붙인다면, 그래서 아이들이 눈물을 흘린다면, 조금은 달라질까.

 

우리는 더럽고 지저분한 곳에서 살아. 그렇지만, 결코 그들과 같아질 필요는 없단다. 나는 남편이 죽고 나서 활력을 되찾았어. 그건 내 탓이 아니지 않니?

 

  개학날 학교를 가지 못하면 이미 끼리끼리가 형성되어 한학기 내내 친구없이 생활하게 되는 일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시절은 아무래도 생활반경이 좁아서 잦은 시간을 보내는 집과 학교에서 맺게 되는 관계가 중요하기 마련이다. 인터넷 발달로 인터넷 속으로 빠지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리하여 관계맺음, 특별한 관계에 대한 열망에 집착하게 된다. 너와 나만이 지닌 비밀스러움으로 형성되는 유대, 단순히 친구 관계를 넘어선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가 미정에게 시작되었다.

 

네가 내 인생을 망쳤어.”

    나는 그 말을, 하고야 말았다. 우리가 짧은 키스를 나눈 이후로, 미정의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내가 그것을 미정의 은총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후로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음침한 청소년이 되고야 말았다. 세상은 죽음에 대한 열망을 지닌 청소년을 그런 식으로 판단했으니까. 하지만 도대체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존재하기나 한단 말인가?

웃기지도 않아. 은총이니 뭐니, 그건 다 거짓말이었어. 널 겁주려고 그랬던 거야.”

 

  왜 그 나이대는 수많은 긍정적인 단어 속에서도 죽음이나 허무와 같은 불온한 단어에 끌리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고선 그러한 단어 속에 빠진 나를 꺼내줄누군가를 기다리고……. 그에 절대성을 부여한다. ‘의 은총! ‘는 그것을 우리가 가진 열띤 열망이라 생각해왔다.

  열망이 해소되어야만 하는 시절이 청소년인 것은 아니다. 열망이란 특정한 세대의 소유물은 아니며 다만 그 열망을 성취하고 해소하는 방법이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 방법이 어리숙하고 다소 문제가 있다 하더라고 은총의 마음으로 다소 눈감아 주었다. 하지만 점점 변하는 시대, ‘비밀스러운 서사를 공유하고픈 청소년들의 열망은 정말 그랬던 것이 의심스럽게도 표출되고 노골적이 되어 간다. 청소년의 불온한 열망이 계절마다반복되는 그저 당연한 것이라면, 그들의 열망을 성취하고 해소하는 음침한 방법에 대해서는 다르게다루어야 할 때다. 그들은 이번이 처음인데요라고 할지라도 이전의 은총과는 다른 은총이 이들을 성장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꼰대같은 염려의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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