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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3 ㅣ 소설 보다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6월
평점 :
품절
삶의 오지랖[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소설 보다 : 여름 2023, 공현진, 김기태, 하가람, 문학과지성사, 2023-06-09.
제법 되뇌던 말이다. ‘어차피 다 죽을 몸인데’,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이 말을 소설 제목으로 맞닥뜨렸을 때, ‘어차피’라는 말에 가득한 허무를 살짝 비켜내고 다른 이들은 어떤 순간에 저러한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물론 ‘어차피’란 말이 중간중간 간섭하며 ‘어차피 결론은 하나일 텐데’라고 하고 있었지만.
희주는 자신을 저격하며 말하는데도 뚱한 표정으로 맨 앞에 서 있는 남자도, 대놓고 회원님은 뒤쪽으로 가주세요, 라고 말하지 않는 강사도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기싸움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가만히 보니 남자는 그게 자신을 가리키는 말인 줄 모르는 것 같았다.
희주의 눈에 비친 것처럼 나 또한 주호가 답답했고 상황 자체가 어이없게 느껴졌다. 수영 초급반에서 강사는 늘 이렇게 말한다. “잘하는 사람은 앞으로 못하는 사람 뒤로.”
누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쭈뼛쭈뼛 사람들의 움직임이 몇 번 있고 나면 적당히 자리잡은 질서 속에 수업은 이어진다. 수영은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운동이고 초급반 수강생들은 줄줄이 일정한 흐름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막혀 버린다. 그건 선두에 선 주호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다. 주호는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주호는 매번 늘 앞에서 물살을 가른다. ‘잘 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누구도 주호를 밀치고 앞으로 나오지 않았으니까. ‘주호’가 수영을 잘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면, 주호로 인해 동선이 막히는 상황을 여러 날 겪었다면 왜 주호보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은 주호를 앞질러 나서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에 이토록 소심한 사람들이 많았던가? 눈치없는 남자 주호에게 폭발하는 강사를 보며 생각했다. 왜 강사는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말을 하지 않고 뒤늦게 자기 화를 못 누르고 주호를 문제의 근원으로 보는 건가.
수영장의 주호를 보면 일상에서도 어벙벙하며 세상일에 무심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주호는 예민한 사람이다. 주호는 “정의로운 사람도, 가슴이 뜨거운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직장에서 안전문제로 인해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감을 느끼고 마음을 쓰는 사람이다. 어느 직장이든 이런 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공장은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 상황에서 쉬이 마음이 추슬러지지 않는 주호의 마음을, 그 ‘난리’를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희주 또한 주호와 같은 면이 있는 사람이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다큐를 본 후 ‘우리 모두 30년 후에는 다같이 물에 잠겨 죽는다’는 말을 아이들에게 했다가 사립학교에서 쫓겨난 교사다. 희주의 이 말은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 것이지만 누구도 희주의 마음을 알아줄 리 없다. 어차피 지구는 죽고 인간은 죽는데,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인데.
주위 사람들에게서 이해받지 못한 두 사람이 수영 강습반에서 만나 물 속에서도 숨쉴 수 있음을 배우고 서로를 건져 올리는 과정이 소설에 담겼다. 언뜻 보면 ‘찐따’일 것 같은 두 사람이 서로의 불안과 상처를 보듬으며 서로를 연민하는 과정은 제목이 주는 체념이나 부정적 이미지와는 달리 매우 긍정적이고 한편으론 동화같기도 하다. 전혀 융화될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의지하며 상처받은 삶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내려는 모습은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라’는 빅터 프랭클의 말을 떠오르게 한다.
˝전 죽고 싶다거나 죽으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거든요. 그런데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이상해요. 그럴 수가 있는 걸까요.˝
주호는 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밀려오는 자신이 이상했다. 그런 충동은 죽음에 대한 충동이 있어야 짝을 이루는 것 아닌가. 삶이, 살아 있음이 자연스럽다면 살고 싶다는 충동 자체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호는 최근 들어 죽음에 대한 중동이나 갈망 없이도 절실하게 살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살고 싶다. 더욱 살고 싶다.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럼에도 결국 ‘함께’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라 생각했다. 소설을 보면서 그동안 있었던 많은 사고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릿해졌는데, 어차피 멸망할 세상 남을 해하는데 애쓰기보다는 희주처럼 애틋한 마음을 주위로 돌려 오지랖 좀 부린들 어떠하랴 싶었다. 누군가는 허무를 누군가는 사랑을. 아직 버티고 나아가는 세상에서 후자가 더 필요할 듯 싶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다르지만 비슷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다큐멘터리는 50년 뒤, 빠르면 30년 뒤에 지구가 완전히 물에 잠긴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희주는 반짝이던 도시가, 사람들이, 색색의 거리들이 물에 잠긴 모습을 상상했다.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같이 잠기고 같이 사라지는 것. 그런 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희주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