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겨울 2023 소설 보다
김기태.성해나.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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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물러 가소서


소설 보다 : 겨울 2023

김기태, 성해나, 예소연, 문학과지성사, 2023-12-07.

 

나는 지금도 인생이 적당한 시점에서 최악의 결말로 끝나버릴 거라는 염세적인 기분이 종종 들곤 한다. 하지만 최악의 결말은 존재하지 않고, 늘 최악의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건대, 그 감각은 세계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불가해한 상황으로 구성되고, 나는 속절없이 휘말릴 뿐이라는 것을 그 시절에 이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엔 그랬다. 웃음보다 인생의 고뇌를 짊어진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은 정의롭지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더더욱 논리를 따지고 정의를 따지면서도 운명이나 운, 감각적인 것들에도 쉬이 끌리던 시절이었다. 쉽게 감정의 파고가 출렁였던, 그래서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들 하나. 어쩌면 계절마다가 아니라 날마다 바뀌는 감정의 소용돌이였기에 삶이 다채로웠던 듯도 하다. 실제로 그러했다기보다 현실이나 상황은 늘 그렀듯 그저 덤덤하게 흘러갔대도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인식이 소용돌이였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그래서 돌아보면 어떠한 사건보다도 그저 늘 그러했던 감각만이 떠오를 뿐이다. 그렇게 학창 시절은 해야 할 일이 명백하게 주어져 뚜렷함에도 그저 삶이 불확실하고 모호하기만 했다. 우리는 계절마다희조미정의 모습에 옛날을 떠올리지만 그 시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요즈음 아이들은 정말 무섭구나’.

  나의 생각들이 내 마음속에서 내게로만 뻗어나갔다면 요즘 아이들은 내향적이라고 하면서도 제 감각이나 감정의 파고를 외부로 표출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 할까. 잠시 잠깐 학생들 무리를 스칠 때면 어김없이 들리는 욕설에 놀라곤 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듯, 주위를 전혀 신경쓰지 않아서 그들의 언행은 꺾이지 않고 전달된다. 의식하며 사용하는지 의식도 하지 않은 채 자연스러운 건지 그것이 더 놀라운 청소년들. 보이지 않는 곳에선 보이는 곳에서와는 다른 또 어떤 폭력의 구도가 형성되어 있을지.

  경제적으로 풍족한 세대에 속하는 요즘 아이들의 결핍은 무엇일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표적인 결핍이라고 한다면 개개인이 맞닥뜨리는 상황들은 비슷할 듯한데, 어떤 점이 크게 다르고 어떤 조건이 그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인지, 크게 그들을 움켜쥐고 있는 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시절을 겪어 온 나로선 더더욱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같지 않을 테니까. 요즘 아이들은 게임에 익숙해 주위 사물을 게임 속 배경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코로나로 오래도록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고 자극적인 게임에 노출된 채 게임 속에 빠져 현실 속 사람과의 교류가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 그들이 세상이 사람들 대부분을 NPC로 인식한다는 게 머리로는 인식되면서도 가슴으로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이런 인식에 어른이 책임이 있다면, 미정의 엄마는 어른으로서 할 일을 하였다고 할까. 더불어, 너네가 결코 걸레가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라는 말까지를 붙인다면, 그래서 아이들이 눈물을 흘린다면, 조금은 달라질까.

 

우리는 더럽고 지저분한 곳에서 살아. 그렇지만, 결코 그들과 같아질 필요는 없단다. 나는 남편이 죽고 나서 활력을 되찾았어. 그건 내 탓이 아니지 않니?

 

  개학날 학교를 가지 못하면 이미 끼리끼리가 형성되어 한학기 내내 친구없이 생활하게 되는 일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시절은 아무래도 생활반경이 좁아서 잦은 시간을 보내는 집과 학교에서 맺게 되는 관계가 중요하기 마련이다. 인터넷 발달로 인터넷 속으로 빠지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리하여 관계맺음, 특별한 관계에 대한 열망에 집착하게 된다. 너와 나만이 지닌 비밀스러움으로 형성되는 유대, 단순히 친구 관계를 넘어선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가 미정에게 시작되었다.

 

네가 내 인생을 망쳤어.”

    나는 그 말을, 하고야 말았다. 우리가 짧은 키스를 나눈 이후로, 미정의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내가 그것을 미정의 은총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후로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음침한 청소년이 되고야 말았다. 세상은 죽음에 대한 열망을 지닌 청소년을 그런 식으로 판단했으니까. 하지만 도대체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존재하기나 한단 말인가?

웃기지도 않아. 은총이니 뭐니, 그건 다 거짓말이었어. 널 겁주려고 그랬던 거야.”

 

  왜 그 나이대는 수많은 긍정적인 단어 속에서도 죽음이나 허무와 같은 불온한 단어에 끌리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고선 그러한 단어 속에 빠진 나를 꺼내줄누군가를 기다리고……. 그에 절대성을 부여한다. ‘의 은총! ‘는 그것을 우리가 가진 열띤 열망이라 생각해왔다.

  열망이 해소되어야만 하는 시절이 청소년인 것은 아니다. 열망이란 특정한 세대의 소유물은 아니며 다만 그 열망을 성취하고 해소하는 방법이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 방법이 어리숙하고 다소 문제가 있다 하더라고 은총의 마음으로 다소 눈감아 주었다. 하지만 점점 변하는 시대, ‘비밀스러운 서사를 공유하고픈 청소년들의 열망은 정말 그랬던 것이 의심스럽게도 표출되고 노골적이 되어 간다. 청소년의 불온한 열망이 계절마다반복되는 그저 당연한 것이라면, 그들의 열망을 성취하고 해소하는 음침한 방법에 대해서는 다르게다루어야 할 때다. 그들은 이번이 처음인데요라고 할지라도 이전의 은총과는 다른 은총이 이들을 성장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꼰대같은 염려의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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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23 소설 보다
김지연.이주혜.전하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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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관계가 달라졌다면


소설 보다 : 가을 2023

김지연, 이주혜, 전하영, 문학과지성사, 2023-09-07.

 

   반려빚? 제목을 보며 직관적으로 떠오른 건 반사였다. 그러니까, ‘을 반사하는 것. 동물을 키우지 않아서인지 반려묘’, ‘반려견’, ‘반려인’, ‘반려동물’,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많은데도 전혀 그런 의미의 반려로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생각이란 내가 익숙한 단어에, 상황에 맞추어 하게 된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문자로 반려라는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어찌나 반려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지. 소설의 반려는 반려동물을 이야기할 때의 그 반려였다. 사전에서 정의하는 바로는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 하는 짝’.

  이 소설은 정현인생의 반려인 16천만원의 빚에 대한 이야기다. 여자친구 서일로 인해 생겼으나 서일이 떠난 뒤로도 정현이 갚아야 하는 것으로 남은 빚. ‘을 두고 뉴스에서나 벌어질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소설은 어떻게 빚을 떠안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보다 정현에게 어떤 형태로 반려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가도 믹스커피를 생각하고, 장보기 품목이 달라지고 숨쉬는 순간마다 을 생각하고 있게 되는데, 한마디로 빚이 정현의 목줄을 잡고있는 형태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돼?”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안 될까?

얼마나 더? 하도 오래돼서 요샌 빚이 내 반려자 같고 그래.

정현의 말에 서일은 정색을 했다.

넌 진짜 뭘 아껴본 적이 없구나. 어떻게 반려자랑 빚을 비교해? 그건 반려라는 단어한테 모욕이야.

 

  힘들고 죽고 싶은 순간도 있음을 서술하지만 반려빚이라 칭하며 그저 덤덤하게 이를 받아들일 뿐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노력 또한 없고 서일에 대한 분노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외면하며 견디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반려빚으로 자조하며 을 일상화하는 정현의 행동에 크게 공감되지 않았다. 서일의 말처럼 진짜 뭘 아껴본 적 없는이의 방식은 이런가 싶었다. 한편으론 감정을 폭발하지 않는 정현의 모습이 현실적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불편한 것이 끊임없이 나를 옭아매고 끊임없이 생각나게 하며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 그것을 떨쳐내고 싶어도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하지만, 분명 전세사기를 비롯하여 팍팍한 사회현실이 반영된 얘기인데, 그렇다고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를 기대한 건 아님에도 소설이 주는 분위기가 다소 꿈처럼 여겨졌다. 정현이 늘 꿈속에서 맞닥뜨리는 반려빚의 에피소드들처럼, 아직 꿈인 듯 몽롱한 기분. 소설은 마지막까지 꿈,이었다.

  나는 뉴스를 보는 것이 아니니, 이렇게 생각지 못한 다른 결로 나아가야 그것이 소설이겠지. 또한, 뉴스 기사에 나오지 않은 많은 이들이 소설 속 정현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순응, 아니니 목줄에 잡힌 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 빚이 이성애 관계에서 생긴 빚이라면 정현의 태도가 같았을까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소설에서 내내 정현의 태도는 이 아니라 서일과의 관계’, ‘서일에 대한 마음으로 보이기도 했다. 반려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되돌려 주는것으로 생각했던 첫 이미지에 맞게 정현에게 반려빚은 평생은 아니었다. 원인인 서일이 돈을 되돌려 줌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실제 의 주도자인 서일에게 미련이 있어 보이던 정현은 어떻게 하려나.

 

반려빚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코트 깃을 세우고 현관에 서서 정현과 작별 인사를 했다. 반려빚은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정현을 떠났다.

정현 역시 현관에 오래 서 있지 않았다. 찬장에서 소금을 꺼내 와 현관밖에 팍팍 뿌렸고 문이 닫히자마자 걸쇠를 단단히 걸어 잠갔다. 다시는 얼씬도 못 하도록. 꿈속에서 정현은 마냥 홀가분했고 깨어서도 그랬다. 마침내 0이 된 기분. 정현은 그 이상을 바라는 것도 이상하게 무섭기만 해서 그저 0인 채로 오래 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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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3 소설 보다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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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오지랖[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소설 보다 : 여름 2023, 공현진, 김기태, 하가람, 문학과지성사, 2023-06-09.

 


  제법 되뇌던 말이다. ‘어차피 다 죽을 몸인데’,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이 말을 소설 제목으로 맞닥뜨렸을 때, ‘어차피라는 말에 가득한 허무를 살짝 비켜내고 다른 이들은 어떤 순간에 저러한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물론 어차피란 말이 중간중간 간섭하며 어차피 결론은 하나일 텐데라고 하고 있었지만.

 

희주는 자신을 저격하며 말하는데도 뚱한 표정으로 맨 앞에 서 있는 남자도, 대놓고 회원님은 뒤쪽으로 가주세요, 라고 말하지 않는 강사도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기싸움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가만히 보니 남자는 그게 자신을 가리키는 말인 줄 모르는 것 같았다.

 

  희주의 눈에 비친 것처럼 나 또한 주호가 답답했고 상황 자체가 어이없게 느껴졌다. 수영 초급반에서 강사는 늘 이렇게 말한다. “잘하는 사람은 앞으로 못하는 사람 뒤로.”

  누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쭈뼛쭈뼛 사람들의 움직임이 몇 번 있고 나면 적당히 자리잡은 질서 속에 수업은 이어진다. 수영은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운동이고 초급반 수강생들은 줄줄이 일정한 흐름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막혀 버린다. 그건 선두에 선 주호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다. 주호는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주호는 매번 늘 앞에서 물살을 가른다. ‘잘 해서가 아니라그냥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누구도 주호를 밀치고 앞으로 나오지 않았으니까. ‘주호가 수영을 잘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면, 주호로 인해 동선이 막히는 상황을 여러 날 겪었다면 왜 주호보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은 주호를 앞질러 나서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에 이토록 소심한 사람들이 많았던가? 눈치없는 남자 주호에게 폭발하는 강사를 보며 생각했다. 왜 강사는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말을 하지 않고 뒤늦게 자기 화를 못 누르고 주호를 문제의 근원으로 보는 건가.

  수영장의 주호를 보면 일상에서도 어벙벙하며 세상일에 무심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주호는 예민한 사람이다. 주호는 정의로운 사람도, 가슴이 뜨거운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직장에서 안전문제로 인해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감을 느끼고 마음을 쓰는 사람이다. 어느 직장이든 이런 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공장은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 상황에서 쉬이 마음이 추슬러지지 않는 주호의 마음을, 난리를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희주 또한 주호와 같은 면이 있는 사람이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다큐를 본 후 우리 모두 30년 후에는 다같이 물에 잠겨 죽는다는 말을 아이들에게 했다가 사립학교에서 쫓겨난 교사다. 희주의 이 말은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 것이지만 누구도 희주의 마음을 알아줄 리 없다. 어차피 지구는 죽고 인간은 죽는데,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인데.

  주위 사람들에게서 이해받지 못한 두 사람이 수영 강습반에서 만나 물 속에서도 숨쉴 수 있음을 배우고 서로를 건져 올리는 과정이 소설에 담겼다. 언뜻 보면 찐따일 것 같은 두 사람이 서로의 불안과 상처를 보듬으며 서로를 연민하는 과정은 제목이 주는 체념이나 부정적 이미지와는 달리 매우 긍정적이고 한편으론 동화같기도 하다. 전혀 융화될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의지하며 상처받은 삶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내려는 모습은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라는 빅터 프랭클의 말을 떠오르게 한다.

 

˝전 죽고 싶다거나 죽으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거든요. 그런데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이상해요. 그럴 수가 있는 걸까요.˝

주호는 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밀려오는 자신이 이상했다. 그런 충동은 죽음에 대한 충동이 있어야 짝을 이루는 것 아닌가. 삶이, 살아 있음이 자연스럽다면 살고 싶다는 충동 자체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호는 최근 들어 죽음에 대한 중동이나 갈망 없이도 절실하게 살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살고 싶다. 더욱 살고 싶다.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럼에도 결국 함께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라 생각했다. 소설을 보면서 그동안 있었던 많은 사고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릿해졌는데, 어차피 멸망할 세상 남을 해하는데 애쓰기보다는 희주처럼 애틋한 마음을 주위로 돌려 오지랖 좀 부린들 어떠하랴 싶었다. 누군가는 허무를 누군가는 사랑을. 아직 버티고 나아가는 세상에서 후자가 더 필요할 듯 싶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다르지만 비슷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다큐멘터리는 50년 뒤, 빠르면 30년 뒤에 지구가 완전히 물에 잠긴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희주는 반짝이던 도시가, 사람들이, 색색의 거리들이 물에 잠긴 모습을 상상했다.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같이 잠기고 같이 사라지는 것. 그런 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희주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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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3 소설 보다
강보라.김나현.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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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삶의 풍경


소설 보다 : 2023, 강보라김나현예소연, 문학과지성사,  2023-03-14.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이런 제목은 주로 그림 제목에서 보게 된다. 정물화가 떠올려지는 그림, 뱀과 양배추라는 이미지가 어떻게 어울릴까를 상상하다가 이런 제목의 그림이 정말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며 그림을 찾아보기부터 했다. 아는 화가의 이름을 떠올려보지만 딱히 이런 제목으로 그림을 그렸을 이는 떠오르지 않았고 그림 또한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내 나름대로 이런 제목으로 어떻게 뱀과 양배추가 그려질지 구도는 그려진다. 그러나 소설이라면?

 

사회적 명성을 얻은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흠집내는 것은 그 시절 현오와 나 사이에 통용된 은밀한 놀이였다. 우리는 습관처럼 그들을 의심하고 분류하고 비판했다.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친 사람인지, 시대의 흐름 덕에 과대평가받고 있는 건 아닌지, 애초에 부자여서 모든 게 가능했던 경우는 아닌지 꼼꼼히 살폈다. 처음에는 우리와 가까운 문화계 인사들이 주된 대상이었지만 어떤 때는 일종의 반작용으로, 그저 교양 없고 몰취미한 사람들이 심판대에 오르기도 했다.

 

  소설을 읽자마자 특정한 이가 떠오르며 계속 생각이 났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는 속도가 더디게 되었는데, 아주 우습게도 소설 속 문장마다 그 사람이 일치되기 때문이었다.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지만 남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 이건 이런 류의 사람들이 가지는 전형성인가. 아니, 자신이 구별에 따라 남에게 함부로 한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아는 것 없이도 타인을 함부로 규정짓고, 제 허영에 맞추어, 제 기분과 안위에 맞추어 남을 재단하는 사람이 이 땅에 많다는 건, 많더라도 그 사람을 마주하며 잠시라도 함께 일해야 한다는 건 비극이다. 게다가 그런 행동이 나와’ ‘현오에겐 놀이라니. 맞다. 숨쉬듯 당연하게 타인을 깎아내리며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끊임없이 드러내려는 사람을 나도 안다.

소설 속 는 여행을 떠나 그 속에서 배낭여행자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가진 문제점을 인식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수히 여행을 하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흠집내는 것을 통해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는 사람에게 보여주면 좋을 듯싶다. , ‘딱히 변화될 리 없는 사람이라고 그 사람을 아는 모두가 얘기했지. 스스로의 성찰을 유도하느니 그 사람에 대해 글을 써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게 그 사람에게는 무용할지라도.

 

 오늘 할 일을 보며 그런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오늘의 다짐으로 굳게 하면 어떨까, 다시 생각해 보았다오늘 할 일의 두 사람처럼 나 또한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적는 것을 해왔다. 물론 그건 일상보다는 업무를 수행할 때 주로 하는 일이었다. 해야 할 목록이 길어질 때면, 삶이 이다지도 바빠서야 되는가 정신없이 미친 듯이 일을 해야 하는 버거운 삶을 벗어나고자 하지만 업무가 여유로울 때는 굳이 업무를 끄집어내어 미리 일 할 거리를 정리하느라 또한 바빴던. 결국 늘 바쁘고 바쁜 삶의 연속이 되어버리는 업무 목록 리스트 작성!

선일은 다이어리에 할 일을 작성한다. 그건 업무 목록을 작성하는 것과 참 다른 느낌인데, 실제 두 사람이 쓴 할 일 목록이란 의 경우 출근길에 책을 읽는 것, 바닐라라테를 마시는 것, 그리고 일을 맡아줄 업체를 찾는 것”, 직장을 그만두고 웹소설을 쓰려고 하는 남편 선일의 경우 원고지 30매 쓰기. 이들의 하루하루의 목록이 특별히 달라지는 일은 없다. 그렇다고 계획한 대로 이뤄지는 일도 없다. 또한, 해야 할 일 뒤로 집 대출금, 미래에 대한 걱정, 이사한 집의 소음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불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실에 산적한 일들 속에서 작은 일하나 게획대로 해내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지만 그럼에고 그들은 매일 '오늘 할 일'을 적는다. 신혼부부, 이 두 청년들이 불안을 안고서 그럼에도 미래를 위해 힘껏 하루하루를 달려나가는 모습이 애틋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나 또한 청년이던 시절에는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편으로는 불안한 현실에 대한 요즈음 청년들의 문제적인 행동들에 관한 뉴스를 주로 접해서인지 이런 모습의 주인공들이 귀엽게 느껴지고 흔하지 않은 느낌이라는 생각도 했다. 원체 삶이 팍팍하여 작은 일 하나하나에 행복을 느끼려는 청년들이 많다고 했는데, 그것이 생각 나 안쓰럽기도 하고.

 

지금 식탁에는 환한 속을 펼쳐 보인 다이어리가 놓여 있었다. 그것이 오직 감상될 목적으로 거기 있는 것처럼 한동안 바라만 보았다. 그것은 가능성 같아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 속에 두서없이 할 일을 욱여넣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백지로 남길 수도 있었다. 무거운 닻이라도 내린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그것을 보며, 나 역시 두 발을 묵직히 디딘 채 멈춰 있었다. 발을 들어 올리면 새로운 날이 시작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도 괜찮은 것인지 아무에게나 묻고 싶었다.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눈앞에는 없었다. 정말로 오긴 오는 것인가. 다가올 계절이 아직은 믿어지지 않았다.

 

  사랑과 결함은 위 두 소설보다 감정적인 격동이 많이 느껴진 작품이다.

  어린 나에게 고모 순정은 맹목적인 사랑을 가졌다가 어느 순간부터 참을 수 없이 미워지기 시작한 대상이다. ‘순정은 여러 가지로 문제적인 인물이다. 아이가 있는 남자와 결혼했다가 1년도 되지 않아 소박당하고 친정으로 돌아왔으며, 조울증으로 인한 정신질환과 불안정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드세고 충동적인 행동으로 인해 가족과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다. 어린 시절 고모가 제게 준 사랑으로 그리고 자신 또한 삶에서 겪은 많은 일들로 고모의 행동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 ‘성혜는 고모가 가진 그 결함이 사랑할 수도, 사랑받을 수도 없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란 그럼에도라는 것을 이해한다. 흔히 이야기하듯 사랑이란 상대를 내 기준에 맞추어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라는 말을 소설로 보여준다면 이러할까. 그 대상을 이성이 아니라 가족으로 부모와 형제자매가 아니라 고모를 설정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감으로써 이성적 사랑을 넘어선 사랑이라는 감정, ‘사랑하다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한편으로는 종잡을 수 없는 고모가 사랑을 쏟아주었던 기억과 감정을 성혜가 가지고 있기에 고모 순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한 마음없이 마냥 순정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결국 사랑이란 주고 받는 것이구나 싶기도 하다. 또한, 사랑받았던 기억이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것이기도 힘들게 하는 것인지도 느끼게 한다.

소설에선 이렇게 말한다. ˝평생 외로움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 그 사람을 보살필 수 있니?˝ 그렇다. 어떤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이다. 내가 얼마만큼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중요치 않을 수 있다. 사랑은 존재를 따지지 않는다. 다만, ‘사랑의 방식과 내용이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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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고선우.이연파.최장욱 지음 / 허블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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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타임즈의 재생


2025 8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고선우,이연파,최장욱, 허블, 2025-09-19.

 

 

  유럽 폭염이 심각한 상태로 지속되고 있다. 파리를 비롯해 스페인, 이탈리아 지중해뿐만 아니라 독일,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으로 번지고 있다고. 뉴스를 보면 폭염 지역 기온은 40도 이상이며 45도 이상을 기록한 곳도 있다. 고온에 트램, 신호등, 선로까지 녹아내려 기차가 멈추고 전력공급 차질 등 도시 인프라가 마비파괴되고 있다. 무엇보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1,300명 이상이라고 하는데, 냉방시설이 제대로 갖추어 있지 않아 위험에 노출된 더 많은 사망자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유럽 폭염 속 우리나라는 장마 소식이 들린다. 장마가 끝나고 나면 여름, 우리에게도 폭염이 닥칠 거라고 하는데……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의 미래가 어떻게 흘러가려는지 막막하고 아득하기만 하다. 어릴 적 미래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저 우주를 유영하거나 로봇이 등장하고 세상은 더할나위 없이 각진, 그러니까 기계가 가득한 세계로 그려지곤 했다. 공상과학 글짓기나 그림에서 아이들이 상상할 수 있는 공상과학의 세계엔 이토록 원시적인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문명이 제아무리 발전한다 한들 자연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이, 자연을 극복해 내야 한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내가 어릴 적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공상과학 글짓기 대회가 아닌 한국과학문학상속 세계는 어떠할까. 미래과학이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놀라움, 경이, 찬탄보다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어떻게 인간을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많다. 인간의 한계에 대한 경각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인간의 삶이 늘, 그러한 것인지도.

  한국과학문학상 여덟 번째 작품집 카나트는 이러한 느낌을 주는 대표적인 소설이었다. 아주 먹먹한 느낌이 드는. 순간, 과학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을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는.

  카나트는 고대 페르시아에서 개발된 지하수로로 사막 지역의 한계를 극복하여 유용하게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인간 기술의 집합체다. 고선우의 소설 카나트의 세계 역시 여전히 카나트가 필요한 사회다. 기후변화로 인한 극심한 사막화로 물이 비싼 도시, 거대한 수로 카나트에서 물을 공급받는다면 물을 가진 자가 아마도 상위의 권력자가 아닐까. 거대 기업 오아시스가 이 역할을 맡는다. 오아시스는 물의 공급과 유통을 독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전까지 제시한다.

 

오아시스는 바이오 로봇 스타트업을 인수하고 오랜 기간 연구 개발한 끝에, 인체의 장기와 팔다리의 일부분을 로봇화하는 하이브리드 생체 로봇 기술을 선보였다. 이 기술로 인체의 물 의존율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보고서가 곧바로 학계에도 발표되었다.

 

  이건 폭염 문제 해결방안으로 인간이 폭염에 견딜 수 있도록 신체 일부를 로봇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인데, ‘로봇화수술의 대상은 사회에서 부를 가진 자의 몫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왜냐고? 로봇화 수술 비용 문제를 생각하더라도 그건 가진 자나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떡하든 위험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로봇 신체를 갖고자 가지지 못한 이들은 처절하게 발버둥치고……. , 이래서 내가 작가가 못되는 모양이다.

 

학교에서 배운 노동자 계층을 위한 역사에서 선생님이 가장 강조했던 건 여러 세기에 걸쳐 반복되었던 혁명과 투쟁 뒤에도 결국 순응한 자들만이 살아남았다는 교훈이다. 역사는 되풀이되었다. 인류의 90퍼센트가 사라졌던 그날에도 살아남은 건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자본과 권력의 편에 섰던 노동자, 그에 맞서지 않고 길들여진 사람들. 딱 할아버지의 삶이 그랬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할아버지의 한 손에는 마실 물이, 다른 손에는 먹을 음식이 있었다. 그 이상을 쥘 손이 없기에 더 많은 걸 꿈꾸지 않아야 했다.

 

  소설은 시작부터 노동자 계층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어쩌면 시작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시감은 소설의 결말이 예견되어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노동자의 삶이란 결국 늘 그래 왔던 것을. 현재의 노동 시장은 점점 인간 대신 AI가 대체할 것이라 하고 있다. 나아가 피지컬 AI가 등장하며 인간의 노동력이 점점 필요없어짐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카냐트 속 세계에선 일반 로봇보다는 인간의 몸을 기초로 만들어진 하이브리드 로봇이 더 대접을 받는다. ‘오아시스노동자들에게 효율성을 강조한다. 물부족 사회에서 인체의 물 의존율을 낮춘 노동자란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주겠지. 그렇다면 아예 하이브리드 로봇보다 그냥 일반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이 더욱 더 효율적이진 않을까? 굳이 라이더들에게 하이브리드 로봇화를 해주는 오아시스의 세계. 이 사회에선 인간화 지수 20%, 로봇화 지수 80%면 인간 등록이 말소된다.

  ‘오아시스의 라이더 아이작은 업무 중에 잦은 실수를 하고 종종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할아버지와 친구들과 함께 했던 날들, 몰래 우물에 들어가 물을 훔쳤던 날의 기억, 훔친 물맛이 주는 기쁨과 두려움. 그의 기억은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이 떠올리는 옛기억처럼 그립고 먹먹하다. 기억은 부분부분 생각나지 않기도 하는데 뭔가 계속 희미하거나 파편화되고 지명이나 이름이 생각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작의 신체는 건강하다.

  아니, 아이작의 몸에 이상이 나타난다. 생체에 수분을 공급하는 장치에 문제가 생겼다. 필연적으로 재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다. 생체에 수분을 공급하는 장치라 한다면, 아이작은 하이브리드 로봇인 건가. 아이작은 재수술을 받고 배달 업무에서 물 저장소 감시자의 지위로 올라서고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했고, 자부심을 느낀다”. 오아시스는 효율적인 업무와 생존을 위해 노동자에게 '신체 기계화 수술'도 진행해주며 하이브리드 로봇지수가 높아질수록 더 좋은 업무를 제공하는 아주 착실한 체계를 갖추고 있으니, ‘오아시스에는 얼마나 많은 아이작들이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들 아이작들은 꿈꾸지 않는, 꿈꿀 수 없는…….

  소설을 읽고 나면 왜 먹먹한지 눈물이 날 것 같은 느낌은 아이작이 보여주는 파편화된 어린 날들의 얘기가 큰 몫을 차지한다. 과거는 서정적으로 서술되어 있고 되돌아가지 못할 추억들은 언제나 그립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생을 마감하는 자의 의식처럼 점점 흐릿한 기억이기에 더더욱. 생을 마감하는 자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작은 이미 인간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로봇화 수술의 부작용이 기억상실이라면 아이작은 점점 더 기억을 잃어버리고 건강한 신체만을 가진 채 업무 매뉴얼만 정확히 숙지하며 충실한 업무를 지속할 것이다. 1936년 영화 모던타임즈의 찰리처럼 오아시스가 만든 철저한 하이브리드 노동자로서 말이다. 이것이 과거에도 미래에도 이어지는 노동자 계층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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