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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3 ㅣ 소설 보다
강보라.김나현.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3월
평점 :
오늘 하루, 삶의 풍경
소설 보다 : 봄 2023, 강보라, 김나현, 예소연, 문학과지성사, 2023-03-14.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이런 제목은 주로 그림 제목에서 보게 된다. 정물화가 떠올려지는 그림, 뱀과 양배추라는 이미지가 어떻게 어울릴까를 상상하다가 이런 제목의 그림이 정말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며 그림을 찾아보기부터 했다. 아는 화가의 이름을 떠올려보지만 딱히 이런 제목으로 그림을 그렸을 이는 떠오르지 않았고 그림 또한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내 나름대로 이런 제목으로 어떻게 뱀과 양배추가 그려질지 구도는 그려진다. 그러나 소설이라면?
사회적 명성을 얻은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흠집내는 것은 그 시절 현오와 나 사이에 통용된 은밀한 놀이였다. 우리는 습관처럼 그들을 의심하고 분류하고 비판했다.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친 사람인지, 시대의 흐름 덕에 과대평가받고 있는 건 아닌지, 애초에 부자여서 모든 게 가능했던 경우는 아닌지 꼼꼼히 살폈다. 처음에는 우리와 가까운 문화계 인사들이 주된 대상이었지만 어떤 때는 일종의 반작용으로, 그저 교양 없고 몰취미한 사람들이 심판대에 오르기도 했다.
소설을 읽자마자 특정한 이가 떠오르며 계속 생각이 났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는 속도가 더디게 되었는데, 아주 우습게도 소설 속 문장마다 그 사람이 일치되기 때문이었다.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지만 남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 이건 이런 류의 사람들이 가지는 전형성인가. 아니, 자신이 구별에 따라 남에게 함부로 한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아는 것 없이도 타인을 함부로 규정짓고, 제 허영에 맞추어, 제 기분과 안위에 맞추어 남을 재단하는 사람이 이 땅에 많다는 건, 많더라도 그 사람을 마주하며 잠시라도 함께 일해야 한다는 건 비극이다. 게다가 그런 행동이 ‘나와’ ‘현오’에겐 ‘놀이’라니…. 맞다. 숨쉬듯 당연하게 타인을 깎아내리며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끊임없이 드러내려는 사람을 나도 안다.
소설 속 ‘나’는 여행을 떠나 그 속에서 배낭여행자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가진 문제점을 ‘인식’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수히 여행을 하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흠집내는 것”을 통해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는 사람에게 보여주면 좋을 듯싶다. 아, ‘딱히 변화될 리 없는 사람’이라고 그 사람을 아는 모두가 얘기했지. 스스로의 성찰을 유도하느니 그 사람에 대해 글을 써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게 그 사람에게는 무용할지라도.
「오늘 할 일」을 보며 ‘그런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오늘의 다짐으로 굳게 하면 어떨까, 다시 생각해 보았다. 「오늘 할 일」의 두 사람처럼 나 또한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적는 것을 해왔다. 물론 그건 일상보다는 ‘업무’를 수행할 때 주로 하는 일이었다. 해야 할 목록이 길어질 때면, 삶이 이다지도 바빠서야 되는가 정신없이 미친 듯이 일을 해야 하는 버거운 삶을 벗어나고자 하지만 업무가 여유로울 때는 굳이 업무를 끄집어내어 미리 일 할 거리를 정리하느라 또한 바빴던. 결국 늘 바쁘고 바쁜 삶의 연속이 되어버리는 업무 목록 리스트 작성!
‘나’와 ‘선일’은 다이어리에 할 일을 작성한다. 그건 업무 목록을 작성하는 것과 참 다른 느낌인데, 실제 두 사람이 쓴 할 일 목록이란 ‘나’의 경우 “출근길에 책을 읽는 것, 바닐라라테를 마시는 것, 그리고 일을 맡아줄 업체를 찾는 것”, 직장을 그만두고 웹소설을 쓰려고 하는 남편 ‘선일’의 경우 “원고지 30매 쓰기”다. 이들의 하루하루의 목록이 특별히 달라지는 일은 없다. 그렇다고 계획한 대로 이뤄지는 일도 없다. 또한, 해야 할 일 뒤로 집 대출금, 미래에 대한 걱정, 이사한 집의 소음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불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실에 산적한 일들 속에서 작은 일하나 게획대로 해내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지만 그럼에고 그들은 매일 '오늘 할 일'을 적는다. 신혼부부, 이 두 청년들이 불안을 안고서 그럼에도 ‘미래’를 위해 힘껏 하루하루를 달려나가는 모습이 애틋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나 또한 청년이던 시절에는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편으로는 불안한 현실에 대한 요즈음 청년들의 문제적인 행동들에 관한 뉴스를 주로 접해서인지 이런 모습의 주인공들이 귀엽게 느껴지고 흔하지 않은 느낌이라는 생각도 했다. 원체 삶이 팍팍하여 작은 일 하나하나에 행복을 느끼려는 청년들이 많다고 했는데, 그것이 생각 나 안쓰럽기도 하고.
지금 식탁에는 환한 속을 펼쳐 보인 다이어리가 놓여 있었다. 그것이 오직 감상될 목적으로 거기 있는 것처럼 한동안 바라만 보았다. 그것은 가능성 같아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 속에 두서없이 할 일을 욱여넣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백지로 남길 수도 있었다. 무거운 닻이라도 내린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그것을 보며, 나 역시 두 발을 묵직히 디딘 채 멈춰 있었다. 발을 들어 올리면 새로운 날이 시작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도 괜찮은 것인지 아무에게나 묻고 싶었다.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눈앞에는 없었다. 정말로 오긴 오는 것인가. 다가올 계절이 아직은 믿어지지 않았다.
「사랑과 결함」은 위 두 소설보다 감정적인 격동이 많이 느껴진 작품이다.
어린 나에게 고모 ‘순정’은 맹목적인 사랑을 가졌다가 ‘어느 순간부터 참을 수 없이 미워지기 시작’한 대상이다. ‘순정’은 여러 가지로 ‘문제’적인 인물이다. 아이가 있는 남자와 결혼했다가 1년도 되지 않아 소박당하고 친정으로 돌아왔으며, 조울증으로 인한 정신질환과 불안정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드세고 충동적인 행동으로 인해 가족과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다. 어린 시절 고모가 제게 준 사랑으로 그리고 자신 또한 삶에서 겪은 많은 일들로 ‘고모’의 행동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나, ‘성혜’는 고모가 가진 그 결함이 사랑할 수도, 사랑받을 수도 없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란 ‘그럼에도’라는 것을 이해한다. 흔히 이야기하듯 사랑이란 상대를 내 기준에 맞추어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라는 말을 소설로 보여준다면 이러할까. 그 대상을 이성이 아니라 ‘가족’으로 부모와 형제자매가 아니라 ‘고모’를 설정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감으로써 이성적 사랑을 넘어선 ‘사랑’이라는 감정, ‘사랑하다’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한편으로는 종잡을 수 없는 ‘고모’가 사랑을 쏟아주었던 기억과 감정을 성혜가 가지고 있기에 고모 ‘순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한 마음없이 마냥 ‘순정’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결국 ‘사랑’이란 주고 받는 것이구나 싶기도 하다. 또한, 왜 ‘사랑’받았던 기억이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것이기도 힘들게 하는 것인지도 느끼게 한다.
소설에선 이렇게 말한다. ˝평생 외로움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 그 사람을 보살필 수 있니?˝ 그렇다. 어떤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이다. 내가 얼마만큼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중요치 않을 수 있다. 사랑은 존재를 따지지 않는다. 다만, ‘사랑의 방식과 내용’이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