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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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곤


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돌베개.


  아르곤, 원소 주기율표의 가장 첫 번째에 있는?

  아르곤이 검색어에 오르락내릴 때 내 반응이었다. 화학 선생님의 탁월한 지도로 주기율표를 완벽히 외웠던 시절은 까마득해지고 마치 알파벳 순서에 따라 ‘A’가 첫 번째인 것이 맞는 양 아르곤이 첫 번째인 것이 당연하다는 착각에 빠진다. 잠시 생각해보니 이건 다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 때문이다. 그 책의 목차 첫 번째에 아르곤이 자리하고 있다. 내 기억은 이렇게 퇴화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의미없이 외웠던 기억은 희미해져 가고 주기율표는 앞으로도 딱히 인생에서 활용될 일은 없을 거라는 사실을 각인하며 화학자인 프리모 레비의 전공과 관련된 이야기인 줄 알고 프리모 레비의『주기율표』는 일찌감치 제껴두었던 책이다. 하지만 아유슈비츠에서의 경험을 얘기하는 프리모 레비의 저작 중에서 『주기율표』는 형식적인 면에서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이 책에서 프리모 레비는 자신의 인생을 원소 주기율표의 원소에 대입해 이야기한다. 내겐 낯선 원소의 특징이 그의 삶과 맞물려 이야기되는데 단순히 옛시절을 회상하고 있지만은 않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그의 삶은 화학자로서, 과학자로서 이루어졌겠구나 생각할 수 있을 만큼 과학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열정적이었던 모습들이 나타나고, 역사와 철학에 관한 성찰도 담겨 있다. 원소의 성질에 대해 잘 모르지만 원소의 성질에 대입한 철학적인 사유는 상당히 아름답게 느껴졌으며 프리모 레비가 얘기하는 대로 원소의 이미지가 그려졌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 속에는 이른바 비활성 기체라고 하는 것들이 있다. 이것들은 박식하게도 그리스어에서 따온 진기한 이름을 갖고 있는데, 각각 '새로운 것'(네온), '숨겨진 것'(크립톤), '움직임 없는 것'(아르곤), 그리고 '낯선 것'(제논)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들은 정말로 활성이 없어서, 그러니까 자신들의 처지에 만족하고 있어서 어떤 화학 반응에도 개입하지 않고 다른 원소와 결합하지도 않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비활성 기체는 수세기 동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아르곤은 비활성기체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고 한다. 전구, 진공관, 금속의 생산과 제조, 반도체 분야 등에서 널리 쓰이는 이유일 것이다. 프리모 레비는 자신의 선조들(이탈리아의 피에몬테 지방에 정착한 유대인)이 이런 비활성 기체와 비슷하다고 얘기한다.

  “물질적으로 활발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이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주기율표의 많은 원소들 중에서 아르곤을 첫 번째에 놓고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가 겪은 일은 혼자만의,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라 한 족(族, group)이 겪은 일이라고 말이다. 그가 줄곧 전쟁과 아우슈비츠에 관한 기록을 남기는 이유도 잊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아르곤으로 시작되는 첫 이야기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비활성 기체가 “희유(稀有) 가스”라고 불린다는 점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레비는 또 말한다. “그 양은 이 지구상에서 생명체의 흔적이 유지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이산화탄소보다 스무배 또는 서른 배나 더 많은 양이다.”라고.

  인종법이 공포되었고 프리모 레비는 외톨이가 되었다. 유대인에 대한 정체성을 확고히 가지고 있지 않았어도, 한세기 전부터 이탈리아에 정착한 조상의 후손으로 이탈리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무도 적대적인 말과 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불신과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를 느낄 수 있었다고 레비는 회상한다. 그런 레비에게 주기율표가 가지는 의미는 무언가.

  

인간의 고귀함, 수만 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얻은 그 고귀함은 물질을 정복하는 데 있으며, 내가 화학을 전공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 고귀함에 충실하기 위함이다. 물질을 정복한다는 것은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이며, 물질을 이해하는 것은 우주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가 요 몇 주 동안 힘들게 풀이법을 배워온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는 한 편의 시이며,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소화해온 그 어떤 시보다도 고귀하고 경건하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주기율표는 압운까지도 들어맞는다. 지도 위의 세계와 실재 세계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 다리를 찾는 사람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바로 여기 아우텐리트 교본 속에, 연기로 가득 찬 실험실 안에, 우리 미래의 직업 속에 있다.


  『주기율표』는 화학자인 레비에게 단순히 원소의 특징을 알려준다는 의미 이상이었다. 레비는 이 화학과 물리학을 통해서 당시 휩쓸고 있던 그 파시즘의 광폭을 이겨내려 힘쓰고 있던 것이었다. 학문적 순수성으로 이 파시즘의 허위를 잔혹함을 찾아가며 인간에 대한 고귀함을 인식하는 방법이었다.

  레비는 증류는 아름답다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느리고 철학적이며 조용한 작업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문장에서 당연 떠올리고 연관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증류. 순수한 것을 분리해내는 작업. 만족스러운 순도를 얻는 이 증류는 신성시되어왔고 종교적 행동으로도 여겨진다. 하지만 물질의 증류는 아름다웠을지언정 히틀러의 인종분리는 아름답지 않았다. 순수한 인종을 분리해내는 히틀러의 사고는 결코 철학적이지도 조용하지도 않았다. 무개념이었고 난폭한 광기로 행해졌다. 증류가 가지는 신성하고 종교적인 느낌은 전혀 없었다.

  레비가 겪은 일이 한 개인의 경험이 아닌 것처럼 인종주의자 히틀러라는 범죄인이 개인적으로 저지른 일만도 아니다. 레비는 수용소생활에서 만난 독일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어 그에게 편지를 띄운다. 하지만 그 독일인은 아우슈비츠에서의 사건들을 전 인류의 탓으로 돌렸다. 이에 대해 레비는 단연코 주장한다. 그들이 아우슈비츠를 만들었으며, 그러니 아우슈비츠에 대해서는 모든 독일인이 대답해야만 한다고.

  역사의 청산이란 말이 적확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히틀러와 나치로 대변되는 독일인들은 이 문제에 관해 열의를 보이고 있다. 인종학살에 대해 참회하며 전범자 처벌을 국가가 나서서 행하고 있고 피해자들 역시도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경험을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런 경험들로 나타난 수많은 자료들을 토대로 전인류가 나치의 인종학살에 대해 기억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독일의 행동들을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같은 경험에서 피해자인 한국은 어떤가. 국가가 나서서 피해자들을 억압하거나 외면하고 가해자를 옹호하고 있다. 가해자의 반성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 이에게 계속 용서한다고 용서를 받아 달라고 구걸하고 있는 형국이다. 가해자의 편에 서서 피해자를 바라보며, 가해자들이 승승장구하는 나라. 생각해보면 히틀러와 나치의 만행과 일본인의 만행이 다른 것이 무엇이 있는가. 유대인 학살과 생체실험처럼 일본 역시 731부대와 마루타, 위안부 학살의 만행을 자행했다. 이 역사적 사실이 전세계인의 뇌리에 각인되지 못하는 이유 역시 일본인이 반성하지 않는다는 사실 이전에 피해자인 한국이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해결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지식인’이라는 ‘사회지도층’이라는 한 인간의 막말은 이어졌다. “위안부는 끼가 있어서 따라간 것”이라는 말이 이 한 ‘개인’의 그릇된 사고방식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 끔찍하다. 제 한몸 잘 살기 위해, 권력을 갖고 돈을 갈취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제게 맞게끔 퍼뜨리는 한국의 지배자들이 있는 한 한국은 이 상태로 계속 비활성기체로, 아르곤으로 머물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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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막다


항상 나를 가로막는 나에게  

- 왜 우리는 언제나 같은 곳에서 넘어지는가?  


알프레드 아들러,  카시오페아, 2014.  


  심리학, 정신분석뿐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 늘 프로이트와 융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특히 프로이트는 모든 인간행동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가였고 아들러의 이름은 늘 책 한구석에 차지하고 있었다. 때로, 이들이 동시대를 살고 있었다는 것을 잊어 먹고 있다가 이들 셋이 같은 학회에서 활동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동시대 사람이었음을 다시 또 새겼다. 그렇게 늘 프로이트와 융의 뒤에 있던 아들러가 몇 년 전 서점가를 휩쓸었다. 갑작스럽게 아들러가 돌풍을 일으킬 때 그 아들러가 프로이트와 융의 이름 뒤에 있던 그 아들러가 맞는가 재확인하면서 아들러 열풍을 지켜봤다.

  중요한 것은 프로이트와 융에 치우쳐 잘 드러나지 않았던 아들러 심리학에 관한 책이 해석되고 쏟아져 나왔다는 점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어쨌든 그에 관한 책이 없었다면 읽을 수도 관심 가질 수도 없었을 테니까. 타이밍이라는 요소도 중요하지만 아들러 심리학 열풍이 일본 작가의 미움받을 용기에서 출발했다는 것과 여타의 상황을 보니, 출판계가 일본시장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본관련 책은 만화시장이 휩쓰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와 추리소설 작가 몇이 이끄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일본 서적보다 우리나라의 책들이 경쟁력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개별적인 작가의 영향뿐만 아니라 출판시장에서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특히 에세이류는 일본 내 출판 분위기를 따라가고 있다는 출판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씁쓸해졌다. 우리의 출판시장이 엄청 작다는 것,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것, 권위있는 누군가의 권해주거나 입시에 유용한 책만이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까. 출판시장을 두고도 일본에 대한 열등감을 느끼고 있으니 아들러 책의 인기를 이해할 만도 하다. 

  그림책, 시와 같은 구성과 내용의 이 책을 보면서 나를 가로막는 것이 무언지 생각하고 그것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나를 가로막는 건 똑같다. 처음 이 책을 읽은 후로부터의 내가 나를 가로막는 것에 대한 분석과 깨달음을 얻었을지언정 달라진 건 딱히 없었다. 난 여전히 나를 가로막는 것이 무언지는 알고 있으면서도 그 가로막음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필요한 건 역시, 행동인가.


    모든 개인의 문제는 사회적인 문제이다.

    사회적 관계를 회복할 때 개인은 진정 치유될 수 있다.

    우울하고 신경질적이며 무기력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가 당신을 필요로 한다, 당신을 원한다.”는 메시지이다.


     개인의 심리는 집단의 정서를 만들고, 집단의 정서는 개인의 심리에 영향을 끼친다.

     개인이 겪는 문제의 구조를, 그리고 그 문제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짐이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한 상태에서 개인의 심리 상태를 추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시 내가 이 책을 좋아했던 것은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동일선에서 보는 생각때문이었다. 나의 주장은 언제나 이것을 전제로 했지만 그러면 사람들은 사회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를 늘 묻는다. 그러면 또 쉽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들러는 이러한 심리적 문제의 해결책으로 “직접 참여와 연대 의지”를 강조했다. 나는 이 직접 참여와 연대에 대한 의지가 약해져 가고 있다.


사회적 관심이란 사회에 대한 흥미나 호기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는 행위이며 연대 의지이다. 그러므로 단순한 정신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보는 관점과 태도, 그리고 사회 안에서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고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과 태도가 나를 항상 가로막았다. 늘 넘어지는 지점을 알면서도 그곳에서 당연 넘어질 준비를 하고 있음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타인들이 해주기를 더욱 기대하고 있음이고 그 안에 나 역시 내가 하기엔 부족하다는 열등감이 켜켜이 쌓여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음도 사실이다. 여하튼 이 소화되지 못하는 이 불편함과 추욱 쳐지고 마는 감정이 반복되다 보니 세상 모든 심리학의 사례를 실행하고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환절기의 일시적인 감정일까. 새로운 날이 밝기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날을 맞기 위해 무엇을 할까를 생각해야 하는가가 치유일텐데 원인을 파악하는 행동력과 문제를 해결하는 행동력 사이의 이 간극은 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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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기대의 심리학 - 잘못된 기대로 힘들어하는 12가지 이유 

선안남, 2010. 

  


  결론이란 생각하기에 지친 지점이다.

                                    - 마틴 피셔

 

  그러고보니, 어떤 회의에서는 지쳐서 ‘이만 결론내자’고 외친 적이 있다. 더 이상 생각할 거리가 없이 지친 지점에 이르러 결론이 난다. 이렇게 해서 결정된 결론에 대한 만족감이란, 그리 높지 않다. 처음 시작할 땐 분명 최고의 결론을 이끌어 내리라 생각했던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대란, 기대하고 있는 그 순간의 만족감은 높을지언정 기대하는 바가 추구하는 종착역에서 늘 만족감을 최대로 높여주진 않는다. 그럼에도 희망없는 나날을 견딤에 기대가 이끄는 공이 있음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기대란, 나에게나 타인에게나 같은 무게를 달고 오는 것이 아닐까.

  기대의 심리학은 자신에 대한 스스로와 타인의 기대가 심리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익숙하게 얘기되는 것처럼 그 기대로 인한 긍정적,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다룬다. 피그말리온 효과나 아틀라스증후군, 피터팬 증후군이 이 기대와 연결되어 있음 또한 설명한다.


피그말리온 효과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희망적이고 교훈적이다. 이 메시지는 발전을 거듭해 개인적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안과 절망의 시대에 좋은 것을 기대함으로써,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기대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리리’는 메시지는 지금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의지와 에너지를 심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효과에도 맹점은 있다. 주변의 관심과 기대가 그들의 성취에 압박을 주고, 기대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를 넘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로 발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현상들은 긍정과 부정을 안고 있다. 그것이 발현되는 방식에 따라 긍정이냐 부정이냐의 결과가 나타나겠지만 사람들은 부정적 효과를 더 염려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처럼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기도 하고, 결과에 따라 그 효용성이 가려질 것만 같은 기대가 그 과정에도 부정성을 한껏 안고 있다는 것도 안다. 타인의 기대에 의해 더욱 더 가해지는 부담감이 그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가족 또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기에 느끼는 부담은 크다. 이 모든 것들이 현실적이지 않은 기대에서 비롯된다. 꿈꾸는 것은 좋지만 마구 달려나가는 비현실적인 기대 하나가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 버린다.

  저자는 그렇기에 기대에 합리와 현실을 주문한다. 타인이 던지는 기대에 부합하려 발버둥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힘겨움의 이유 속에 들어찬 기대에 대해 잘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친 기대라는 것을, 비현실적인 것임을 안다한들 “오우, 그건 이뤄질 가능성이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더, 더, 더 노력해보겠습니다”가 해야 할 말이고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이 사회는 보여준다. 생각보다 오로지 나 자신을 인식하고 산다는 건, 어렵다. 그럴 수 있었다면 애당초 타인의 기대 때문에 힘들 일이 무엇 있었겠는가.

  이 책에서 할애하는 많은 부분은 타인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느라 힘들어하는 나에 대한 것이 주다. 그로 인한 다양한 문제점들과 빠져버리게 되는 오류들을 실제 사례와 임상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그에 관한 이야기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겪고 있는 모습들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행하지 못함에서, 인식이 재빨리 전환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이론이든 경험이든 이런 글들을 통해 더더 깨우치고 느끼면서 변화할 수 있기를 노력해봐야 하는 것인지도.

  그런데 타인의 기대로 인해 힘든 것과 더불어 이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타인에게 기대하는 것이 충족되지 못해 힘든 경우도 많다. 사회는 더불어 사는 것이니까. 이때의 기대란 사회가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되는 마땅한 상식과 정의에 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공동체적 질서와 가치,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인간존중을 지켜 가리라는 기대 말이다. 그래서 지난 겨울엔 이런 기대로 희망에 부풀었을 테고 여전히 기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날이 사그라진다는 것은 또 얼마만큼의 좌절을 안겨줄까. 이런 기대로 인한 힘겨움 역시 이 책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수용하면 되는 것일까. 묻혀두었던 일들이 하나씩 끄집어 나오는데도 도로 들어가버리는 분위기가, 그것들만을 공고하게 묶으며 감싸는 분위가가 얼마나 강했고, 얼마나 강한지를 새삼 느끼며 이것은 과연 잘못된 기대인가를 묻게 된다. 좀더 현실적인 기대로 합리적인 수준으로 그 기대를 정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도대체 그 수준은, 그 기준은 얼마만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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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자와 비판자


나는 왜 눈치를 보는가- 나를 발견하는 심리학, 가토 다이조저, 고즈윈.


  눈치를 본다는 건 흔히들 말하는 한가지만이 아니라 행동에 대한 여러 의미를 말해 준다. 나약하고 부족한 자아를 눈치의 표상으로 보통 얘기하지만 세심하고 배려심이 많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또한 눈치없다는 말은 타박으로 주로 사용되느니만큼 센스있음을 위한 전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눈치를 본다’는 건 그리 유쾌한 상황과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하다.

  ‘나를 발견하는 심리학’이란 부제가 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발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항상 불안하고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처방전처럼 이야기를 펼친다. 인간관계는 누구나 어려운 것이며 그 이유에 대해 찾고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불안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유아적 의존욕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그 해결책은 내재된 의존욕구를 파악하며 자신과 자신의 삶의 태도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자주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나를 사랑하는 일, 그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방안이라면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은 나를 잘 아는 데서 시작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60개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가령,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는 것이나 타인에게 헌신적으로 대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이 하는 말이 ‘불만투성이’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유아적 욕구를 억누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살아가면서 부닥치는 많은 애로사항은 결국 내면아이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의 일정 부분들이 이 책을 지탱하는 기본이다.

  결국 유아기 때 제대로 충족되지 못한 욕구들이 성인이 되어서 ‘자아’를 뚫고 나와서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인데, 심술궂고 미성숙한 어린 나의 모습들이 지금 불완전한 생각들 때문에 힘겨워하는 나의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거듭 말한다. 얼핏 인지는 하면서도 실제 생활을 하면서는 늘 까먹게 되는 마음속 깊은 유아적 의존 행동들. 뒤돌아서는 후회하고 답답해하면서도 사실, 쉽게 그 마음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심리학책을 백번 읽은들 머릿속에서는 알고 있지만 마음에서 아이가 튀어나와 버리는 일이 빠를 때도 있으니까. 어쩌면 더 깊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진정 떨쳐내지 못했을 지 모를 일이고. 인간의 마음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이해자와 비판자가 순서를 무시해서일지도. 이해자와 비판자가 적절하게 나오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나의 마음속을 잘, 들여다보고 알아가는 일이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핵심요소이다.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부끄럼을 잘 타는 사람은 자신에 대한 최악의 비평가’라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의 마음이 성장하는 데는 순서가 있다. 자상한 이해자가 존재하고 그 다음 단계에서 비판자가 등장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자상한 이해자가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비판자를 만나게 되면 마음이 파괴되고 만다. 이렇게 되면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잃게 되고 스스로를 비판하게 되어 모든 일에 지나치게 부끄럼을 타게 된다.


  이런 저런 상황에 대해 심리학적 접근은 항상 재미있다. 이 책 역시 쉽고 간편하게 설명하고 있다. 미용실에 가득한 잡지에서 자주 보는 심리학테스트 같은 느낌이 들어서인지 사실,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을 일깨우고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들인데도 가볍게 여겨지고 가뿐하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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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거짓말을 해봐!


거짓말의 심리학 - CIA 거짓말 수사 베테랑이 전수하는 거짓말 간파하는 법


필립 휴스턴, 마이클 플로이드, 수잔 카니세로, 돈 테넌트 지음/박인균 옮김, 추수밭, 2013..


   상대방의 몸짓에서 거짓말을 읽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상의 대화는 상대방을 예의 주시하면서 이뤄지지는 않는 까닭에 행동에서 나타나는 메지시를 간과하기 쉽다.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평소와는 다른 행동이 눈에 띌 수 있겠지만 다르다는 것을 알아낼지언정 그 세세한 의미를 간파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호기심은 알고 싶다고 계속 신호를 보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전직 CIA 거짓말 탐지 조사관들이 조사와 심문경험을 바탕으로 한 거짓말 탐지 방법을 소개한다.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그들의 경험과 경력에 기대어 증폭하는데, 여러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조사의 방법들이 결국 인간에게 적용되는 것이니만큼 일상생활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요즘은 원체 거짓과 사기가 판치는 세상이라는 점에서, 몇가지 방법들을 작 숙지하고 있다면 사기꾼들의 거짓에 속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뉴스들은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은 황당한 사기와 술수들이 넘쳐나는데 그렇기에 속인 자들보다 ‘어떻게 속아 넘어가는가’ 하면서 속은 자들에 더욱 놀랄 때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충분히 그럴 요인들에 대해서도 속속 설명하며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당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심리학을 안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재밌고 유용하다는 점은 확실하다. 이론과 적용이 따로 놀아서 그렇지…. 정권에서 국민세금을 동원하며 인력을 동원하며 했다는 활동, 인터넷상에서 판치는 댓글부대들은 ‘심리전단’이다. 앞선 정권이 공권력으로 기가 찰 수준으로 활동해 왔음이 증거로 속속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전직 대통령을 수사하면서 행한 일들도 드러나고 있다. “논두렁 시계’…국정원, 더 치명적 프레임 위해 심리학자들 동원”. 가장 모멸감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강행하기 위해 심리학자들을 동원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짰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히틀러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레니 리펜슈탈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고 괴벨스를 통해 선전 또한 극대화하는데 몰두한 히틀러 역시 온갖 선전전을 동원했고 그 선전술에 심리학을 동원했다.

 

악한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거짓말을 더 능숙하게 하는 방법을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둬도 좋다. 거짓을 탐지하는 우리의 방법론은 인간이 자극에 반응하는 방식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반응을 통해 나타나는 특정 행동을 최소화하거나 없앨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행동들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런 마음을 아는 듯 저자는 다음과 같이 우려를 안다는 듯 쓰고 있다. 이 문장에 웃음이 났다. 동원되지 않고 이용당하지 않을 심리에 관해서도 물론 분석되고 있다. 어쨌든 ‘거짓말’을 알아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인해 타인에게 이용당하지 않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결국 이러한 노하우를 안다는 것은 사물을 생각하고 판단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당장은 대화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알아서 뭐해 할 지 모르지만 생각을 확장시키는데도 필요한 일이다. 마냥 무언가에 휩쓸리지 않게 될지도. 인터넷은 하루가 멀다 하고 ‘진실공방’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있지만 그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결국 그 글을 읽는 사람의 몫이 되어버리는 일도 다반사이니까. 언제든 내 판단력을 조금 믿을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는 일도 좋을 수도.

  한편으론 이렇게 거짓말을 판별하는 법까지 배워야 하나 싶다. 산다는 건 참으로 복잡하고 씁쓸한 일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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