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로 가기 위하여




청춘시대 - 박연선 대본집, 박연선, 2017-09-11.


 꽤 오래 길을 잃어버린듯했다. 그래서 지치고 가라앉고 우울하고 아프기까지 했던 건가. 이런 마음의 상태가 몸의 상태를 힘들게 이끈 모양이다. 그리고 서로가 앞서거니 하면서 몸과 마음이 엎치락뒤치락 가라앉고만 있다. 이런 침체 상태가 몇 개월을 지속되다 보니 이 상태에 익숙해진 듯, 습관화되어 버린 것도 같다. 도대체 시작이 언제였는지, 무엇 때문이었는지 모를 슬프고 아픈 소식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왔는데, 무엇 때문인지 언제인지를 명확히 알면서 이러한 상태가 종료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득 생각했다.

  이야기하다가 ‘우리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지’란 말을 자주 하는 걸 알았는데 이 모든 것에 청춘의 시절을 보낸 안타까움이 있던 건가 싶어 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정말 늙어서, 하루하루 늙어가서 그런가. 어쨌든 이유를 찾으려는 생각이 그 속에 더 머물기 위함이 아니라 빠져나오기 위해서라는 쪽으로 1% 더 두기로 했다. 정말 정신을 차려야 할 때이기도 하고 이렇게 방황하는 동안 달력은 올해를 한달만 남겨두었으니까.


어딘가를 가려고 하니까 길을 잃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목표 같은 걸 세우니까 힘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오래 같은 자리에 있어도 길을 잃나 보다.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그 물속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계속계속 가라앉으면서….


  아니다. 생각해보니까 JSA 귀순 병사의 달리기 영상 때문인 거 같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분명한 저 몸짓. 현실감이 없는듯하면서도 현실감있는 영상에 붙들려서인 모양이다. 태어날 때부터 분단국가임을 알았으면서도 새삼 분단국가임이 어떤 것인지 뚜렷이 느껴지는 현장의 모습. 자신도 모르게 넘어버린 북한 병사처럼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군사경계선의 이미지. 스물다섯의 병사가 40여발의 총알속을 달리고 여러발을 맞고 쓰러져 마침내 의식을 찾은 열흘을 담고 있는 저 찰나의 순간. 영상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가 묘하게 느껴졌다. 아주 묘한.   

  허무를 끌어안고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돌림노래에 빠져 있었던 건지. 점심은 저녁은 무엇을 먹을지 그런 것을 생각하기 귀찮았던 건지. 공과금, 청구서, 일…이런 것들을 매달고 사는 것이 싫어서인지, 무엇을 하고 싶어서인지, 무엇을 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그저 모르게 흘러가 우울에 처박혀 버린 시간들을 불러내보니 고민인 것도 같고 그냥 그저 그런 귀차니즘인 것도 같고, 때론 심각해 보이기도 하다가 너무 가벼운 걱정에 매몰되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한.


평범하다는 것은 흔한 것, 평범하다는 것은 지루하다는 의미였다. 그때의 나에게 평범하다는 것은 모욕이었다.


  정말, 내가 이런 상태였던가. 지루한 일상에 스스로 지쳐서 방황했던 건가. 생과 사의 선을 넘은 병사의 달리기 영상을 보았다고 당장 달라질 내 몸과 마음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작은 돌멩이 하나 맞은 만큼이라도 각성은 하게 될까. 이젠 나이를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이든 하려고 하기보다 어떻게든 안하려 용을 쓰는 게 하루의 일과인 듯하다.

  작년 여름이던가. 청춘시대가 방영됐고 올해에 시즌2도 방영됐다. 방송됐던 드라마를 대본집으로 읽어보는 것은 처음인데 확실히 소설을 읽는 것과는 달랐다. 청춘시대를 보며 나또한 청춘시대의 등장인물들처럼 버티고 견뎌내는 청춘의 시대를 겪었다 생각했는데, 그 시절을 겪으며 느끼고 생각하고 결심한 것은 어디로 다 소멸해 버렸을까. 그때에는 견뎌냈는데 왜 지금은 오기도 객기도 없어진 걸까.

  이 선을 넘어와서는 안돼.

  누군가는 넘었고 누군가는 넘지 않았고 누군가는 넘어서 놀라 되돌아갔다. 가상의 선 하나가 주는 의미와 그 선을 바라보는 이들의 의미가 어떤 상황을, 변화를,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았다. 내가 둘러놓은 선이 너무 많구나 싶었다. 달리기까지는 아니라도 몇 발자욱 떼야 하리란 걸, 생각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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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 제155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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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 다 잊혀지겠죠.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오기와라 히로시, 2017-05-19.


  수채화같은 표지가 예뻤다. 이런 느낌의 책표지가 대체로 일본 소설이나 에세이에 자주 쓰이는 터라 예쁘네하고 오래도록 그냥 넘겼는데, 바다가 보고 싶을 때가 있고 바다에 가고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이 책을 읽고 싶을 때였나 생각해본다.

  마침 이 그림이 가을이 들어서는 길목에 바라본 풍경과 닮아보였다. 그곳은 바다는 아니었고 강이었지만, 쌀랑한 가을풍경의 잔상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바다가, 강이 보이는 언덕, 그런 장소에 그런 공간에 아직 머물러 있고 싶은 마음 탓이다.

  단편집인 이 책엔 여섯 개의 이야기가 있다. 여섯 개의 이야기는 가벼웁게 잔잔히 흐르는 물처럼 흘렀다. 크게 출렁이지도 다른 것이 끼어들지도 않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 물이 나를 흘러갔구나 싶은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가족과 상실, 그리고 시간이란 단어도 흘러갔다.

  첫 번째 단편 「성인식」은 딸의 죽음으로 깊은 우울 속에서 살다가 딸의 성인식에 참가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억 속의 딸은 잊을 수 없어서 잊지 못해 방황하는 두 부부의 성인식에 참가하기 위한 고군분투가 참으로 애잔하게 다가오며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지금 돌아가면 또 한탄과 회한의 날들이 시작될 것이다. 오늘로 끝내고 싶었다. 스즈네를 위해서기보다 자신들을 위해서였다. 우리는 늘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슬픔을 어느 시점에서는 과감하게 떨쳐내야 한다. 나와 미에코에게도 성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언젠가 왔던 길」은 어릴 적부터 엄마의 억압에 갑갑해 하던 딸이 취업하면서 엄마로부터 독립해 살다가 16년이나 지나서 치매에 걸린 도움이 필요한 엄마를 만나는 이야기다. 지난날 자신을 힘들게 하던 엄마가 아니라 기억도 없이 아픈 엄마를 보면서 마음이 변화해 가는 딸의 이야기, 어쩌면 예상가능한 방향으로 흐르는 이야기다.  「멀리서 온 편지」는 일만 하는 남편 때문에 친정에 갔다가 남편이 보내는 거라 생각한 메일을 받으면서 점차로 남편과 그리고 조부모의 삶에 대해 이해해 가는 내용을 담았다. 「하늘은 오늘도 스카이」는 집을 나와 바다를 찾아 가는 소녀의 이야기다. 이럴 때면 늘 길에서 누군가를 동행하게 되는데 소녀의 동행인은 비닐봉투를 쓴 소년이다. 둘의 대화가, 재미있다. 「때가 없는 시계」는 아버지의 유품인 손목시계를 수리맡기면서 시계방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버지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책의 표제작인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한때는 아주 ‘잘 나갔던’ 이발소 주인. 유명인들이 드나들던 이발소는 망해서,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곳에서 운영된다. 멀리까지 찾아온 손님에게 이런 저런 자신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발소 주인. 오랜 전문가의 손길은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은데, 그의 이야기는 길고 여운도 길다.

 단편 하나하나가 가만 보면 가족 관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의 가족. 인생이란 가족이 기본적인 관계이고 또한 가장 큰 애증의 대상이 아니겠는가. 이 속에서 겪는 갈등과 상처와 그리고 애정들이 작가의 담백한 문체로 흩어져 있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에서 떠올리는 것은 한편으로는 ‘바다가 보이는’이라는 구절이다. ‘바다가 보이는, 바다가 보이는’ 이라는 이 말은 오래도록 다른 의미로 기억될 것 같다. 오랫동안 바다가 보이는 곳을 바라볼 사람들이 생각나는 말이다. 딸을 잃은 부부의 말에 누군가에게 위로랍시고 건네는 저 말 하나가 위로일 수 있는지 거듭 생각하게 된다.


마음의 아픔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흔히들 하는 말이다.

    그 말이 맞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몇 년이 지나야 해결될 수 있을까. - 성인식 中


  2017년 11월 16일, 3년 7개월이 흘렀고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온 지 8개월이 흘렀다. 미수습자 5명의 가족이 목포 신항을 떠나기로 발표했다. 이제는 정말로 미수습자 수색이 종료될 모양이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3년 7개월이라니. 목포를 떠나기로 하면서 미수습자 가족 중 어느 분이 이렇게 말을 했다.


“세월이 가면 다 잊혀져요. 온 국민이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이 세월호를.

 세월이 가면 다 잊혀지겠죠.”

  

  쓰러지며 오열하는 다섯 가족을 보는 것도 아렸지만 저 말을 하는 분의 표정과 말이, 거듭 거듭 떠올려졌다. 성인식 속에서 딸을 잃은 부모의 말과 오버랩됐다.

  가족. 삶이란 그런 것일 게다. 서로 다툼이 있더라도 그리워하고 결국은 그들에게서 위안을 얻으며 살아가는. 세월호 그 많은 이들이 가족들과 싸우며 화해하며 애증을 반복하면서, 자기들만의 삶을 흘러갔을 텐데. 잊지 말아주십시오는 당부이고 다 잊혀질 것이라는 건 체념일까. 이렇듯 기사, 뉴스 한줄 접하면 마음 아리더라도 소식없으면 잊어먹을 나일 것이다. 가족이 아니기에. 세월이 가면 다 잊혀질 것이다. 언젠가는. 그런데 아직까지는, 몇 년은 더 걸릴 것 같다. 잊혀지는데 몇 년은 걸릴 것 같다. 바다가 보이는, 바다가 보이는 그곳에 서면 계속 생각날 것이다. 

  내게도 성인식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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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계절
구효서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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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로 남은 이야기


아닌 계절, 구효서, 문학동네, 2017-04-03.


  많은 작품을 쓴, 수많은 문학상 수상작가 구효서의 소설집 「아닌 계절」은 아닌 계절 겨울, 여름, 봄, 가을에 관해 이야기한다. 통상적으로 사계절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말하나 작가는 아니다. 통상적인 말의 수순을 버리고 아닌, 특정한, 사계절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이야기, 이야기는 계절을 배경으로 그러나 계절을 주인공으로 불러낸다. 그 계절에, 그 겨울과 여름과 가을과 봄에 겪었던 이야기들은 그 계절이 ‘아닌’ 계절을 떠올리기 아려울 만큼 그 계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아닌 계절은 그 계절을 느끼느라 그 계절에 갇혀 있느라 더디게 읽힌다. 작가가 전하는 말의 리듬은 터벅터벅, 고독을 아픔을 짊어진채 느리게 느리게 나아간다. 그럼에도, 읽은 문장을 다시 읽는 일이 반복되어도, 그래서 문장들과 이미지는 반복해서 마음에 쌓이는 모양이다. 모호한, 부정칭 같은 인물들의 이름이 멀게 느껴져 거리를 두고 이들을 보다가도 한발자국씩 가까이 가게 만든다.  적당히 떨어진 채로 말이다.


나는 지금 여기서 누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하고 중얼거렸다. 알 수 없는 일이므로 누구든 어디든 상관없었다. 분명한 건 각막을 에는 듯한 추위뿐이었다.


  주위 누군가 사라져도, 온통 낙서로 뒤덮인 벽이 늘어가도, 세상이 어떤 일이 벌어져도 기억하는 것은 오직 겨울, 춥다는 느낌과 생각인 「세한도」의 [세한도]의 여자처럼. 아이가 물에 빠져도, 양식장 주인이 아이를 죽이는 것을 보아도, 어느 어머니에게서 촌지를 받아 다른 어머니에게 부치는「바다, 夏日」의 ‘미음’처럼. 세상을 보고 있지만 보고만 있는 그러한인물들의 모습이다. 이것은 「봄나무의 말」속 회화나무의 역할이 아닌가. 오히려 이 회화나무가 감정을 가지고 이야기를 건넨다. 다른 인물들이 그들이 겪는, 그들이 보고 있는 상황을 익숙한 거리감으로 그저 ‘보고만 있는’데, 회화나무만이 마을의 일꾼 닷근이와 꽃서방과 새악시의 이야기를 전한다. 화자의 목소리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감정을 토로하는 것이 이렇듯 다른 인물들이 아니라 ‘회화나무’인 것이 우연일까.


찌고 숨 막히는 듯하다가 더위는 고스란히 살을 에는 통증이 되었다. 어떤 느낌도 여자에게 이토록 명징했던 적이 없었다. 혹독했으며 처음이며 마지막일 것 같았다.


  「여름은 지나간다」의 인물은 전쟁통에 헤어져 육십년이 지나 재회한 노부부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묻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이 있음에도 그 말들을 하지 않는다. 그들 부부의 이름을 기억하려 해도 그들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아 기억하기 어려울 지경인데 이름마저도 ‘파’와 ‘하’다. 감탄사이거나 혹은 의미없는 소리일 뿐이 이 단어가 이름이 되면서, 이 노부부의 이미지는 그 주위를 둘러싼 배경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그러니, 선명하게 부각되는 계절. 이들이 만난 그 계절, 지나갈 여름, 아닌 여름이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모호한 이름이나 모호한 시공간적 배경을 의도했다고 했다. 이 의도가 문학적 익숙함은 아닐지언정 일상적 공간에서는 익숙하다는 것, 아닌 계절을 덮은 후 선명하게 느껴지는 감정이었다. 말이 회화처럼 번지는 통에 한참을 이미지에 갇혀 있게 하는 맛이 있었다. 요즘처럼 스토리를 부각하는 소설이 인기임을 생각한다면 이 책을 잡는 손길은 더뎌지겠구나 싶었다. 한편으론 이 책에서 추리와 미스터리를 읽을 때와 같은 장르적 느낌을 짙게 받았다. 단편소설에서 ‘문학’이란 느낌이 가득한, 문장 때문에 더디게 읽게 되는 글들을 만나는 즐거운 일이 계속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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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지 않도록.


바깥은 여름, 김애란, 2017-06-28.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비도 내리고 바람도 거칠게 불었다. 깊은 가을로 들어선지 오래다. 그러니, 바깥은 이미 여름이 아니다. 한 해가 두달도 남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면 이젠 겨울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니, 바깥은 여름을 향해 조금 더 가고 있다.

 올 여름께 베스트셀러였던『바깥은 여름』은 김애란 작가의 일곱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상문학상과 젊은작가상 수상작이 실려 있지만, 단편명에 『바깥은 여름』은 없다. 「풍경의 쓸모」에 스치듯 나오는 문장에서 단편집의 제목을 삼았다. 쓸모라는 단어를 보면서도 풍경의 쓸쓸함과 씁쓸함으로 읽혀진 것처럼 『바깥은 여름』의 이미지는 기인 그림자가 사그라지지 않는 풍경으로 남았다. 작품마다 상실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입동」과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상실은 같은 것처럼 다가왔다. 아이를 잃은 부부와 남편을 잃은 아내의 무너진 일상의 생활들이 아프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아이와 남편이 사망한 일이 하나의 사건으로 여겨졌다. 하나의 사건이 일으키는 파장이 얼마나 큰지, 당사자와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간극은 크다는 걸 소설을 통해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이 두 작품에서 세월호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생각나는 더없이 트라우마로 남은 큰 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두 작품에서 아무리 트라우마를 겪는다 해도 함께 공감을 나눈다한들 결국 타인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참으로 슬퍼졌다. 나 역시 그들처럼 결국엔 바깥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일 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우리는 자식을 잃은 부모는 남편을 잃은 아내는 ‘어떠해야 한다’ ‘어떠한 모습으로 있어야 한다’는 굴레를 씌우고 우리의 편의대로 애도를 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아직 화가 나 있었다. 잠시라도, 정말이지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생각은 안 했을까. 내 생각은 안 났을까. 떠난 사람 마음을 자르고 저울질했다. 그런데 거기 내 앞에 놓인 말들과 마주하자니 그날 그곳에서 제자를 발견했을 당신 모습이 떠올랐다.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당신을 보낸 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 제자를 구하다 사망한 교사의 아내의 말이다. “당신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아직 화가 나 있었다”는 문장에서 내 심장은 덜컥거렸다. 우리는, 그들에게 타인인 우리는 그가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대해서 더 특별히 애도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하지 않은 이들을 은근히 비난하며…. 13일, 세월호에서 제자를 구하다 사망한 교사의 장례가 있었다. 그날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소설 속 아내의 말이 계속 머리에 떠올랐다. 마치 「입동」에서 겪은 일로 이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아니라 기계에 대고 슬픈 물음들을 물어대는 것만 같았다.

  새삼 공감이라는 것이 언제나 내 경험치 안에서 움직이고 있음도 느껴졌다. 그것이 시리가 대답할 수 있는 최대치. 나는 타인의 일에 관해서 언제나 시리일 수밖에 없는 걸까. 조사 ‘은’이 가리키는 성실한 저 대조의 의미. 바깥은 여름이고…. 바깥은 여름이라고 제목 지은 작가의 의도를 알 것 같다 말함으로써 시리에서 비켜가고 싶은 나의 의지를 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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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을 모셨지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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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를 모셨지

 

영국 왕을 모셨지, 보흐밀 흐라발, 문학동네, 2009.

 

   기차를 탔다. 배가 고파 잠시 정차한 역에서 급하게 핫도그를 샀다. 가진 건 만원 지폐라 어린 장사꾼이 돈을 거슬러 줄 때까지 기다린다. 기차가 떠날 시간은 다가오고 마음은 급해지는데 어린 소년 장사꾼의 행동은 굼뜨기만 한다. 기차가 출발하려 한다. 기차냐 잔돈이냐. 한발은 기차를 향해 한발은 소년을 향해 가는 몸은 결국 기차속으로 빨려가 소년과 작별하고 만다. 가면서 생각하겠지. 저 맹랑한 녀석, 두고보자! 저 맹랑한 녀석, 그래 잘 벌어서 잘 먹고 잘 살아라! 저 맹랑한 녀석, 저 녀석!

   그 맹랑한 녀석 디테는 호텔 수습 웨이터이다.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말라”는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모든 걸 봐야 하며 모든 걸 들어야 한다”는 교육을 받는다. 호텔이란 그런 곳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지만 그들을 보면서도 보지 않은 척해야 한다. 디테는 집시들이 피를 튀기는 난동이 벌어져도 아무런 동요없는 호텔에서 그가 교육받은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알아간다. 호텔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다. 온갖 기행들을 일삼는 이들이 있고 그 행동의 바탕이 돈이라는 것을. 돈의 힘! 핫도그를 팔아 등친 돈으로 드나들고 라이스키 창녀촌에 드나들며 거금을 뿌리며 돈의 위력을 알아간다. 물론 디테의 꿈도 자연스레 백만장자가 된다. 돈의 힘!

   디테는 호텔 파리에서 영국 왕을 모셨다는 스크르지바네크 지배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지배인은 겉모습만으로도 손님이 원하는 것과 손님에 대해 척 파악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그 이유를 물으면 지배인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영국왕을 모셨지.”

   디테에게도 이런 날이 왔다. 아비시니아 황제에게 봉사할 기회를 얻게 된다. 황제를 영접하는 호텔의 풍경은 상당히 재밌게 펼쳐진다. 신난 디테의 모습이 상황을 묘사하는 속에 가득하다. 이 맹랑한 소년 디테도 이제 “아비시니아 황제를 모셨지”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건가. 훈장까지 받았으니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거다 마침내 지배인처럼 호텔리어로 성장하게 되는 걸까. 다음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디테가 이끄는 대로.

   작가는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어 보이는 등장인물들을 화자로 내세워 유머와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블랙코미디를 펼친다. 이야기의 표면은 아, 참 재밌네 싶지만 곧 닥치는 슬픔의 감정은 끝이 없다. 그의 별명이 바로 ‘체코 소설의 슬픈 왕’아니던가. 그럼에도 표면적으로 밝게 이끄는 그의 이야기의 힘은 이 소설에서도 초반까지는 유지된다. 체코의 그 파란만장한 역사에서 체코를 떠난 적 없는 작가의 이 작품은 1971년도지만 출판 금지로 비밀리에 유통되다 1989년에서야 체코에서 공식 출판되었다 한다. 18년을 떠돌다 정식출판된 이 책은 출판을 저지하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 맹랑한 디테, 과연 성장하면서 어떤 일들을 겪기에!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디테는 들어간다. 아니 제 발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저 있었을 뿐인데 그런 상황을 맞았을 뿐이다. 디테는 자신의 생에서 불행과 행운이 함께 했다고 말한다. 디테가 독일인 리자를 만난 것은 사랑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지만 그것은 불행과 행운을 몰고 왔다. 어쩌면 그때부터 디테의 삶은 역사 속으로 깊이 관여된다.   

  더 이상 소년이 아닌 만큼 어릴 적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 행동해서는 안될지 모르겠지만 디테는 여전히 그가 호텔 속에서 배우고 익힌 방식 그대로, 그저 그 틀에서 성장해 갔다. 독일인 리자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데 따르는 일은 체코 민족주의 운동의 단원과는 배치되는 일들이 요구되지만 디테는 그런 것엔 깊은, 명민한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고 디테의 행동은 독일을 위한 삶이 된다. 나치가 벌인 혈통주의 체코인들에겐 외면당하고 호텔에서는 쫓겨나지만 독일이 체코를 합병하면서 디테는 다시 행운의 삶이 되었다가 폭격에 리자를 잃는, 머리가 잘린 아내의 시신을 보는 일을 겪지만 디테는 살아남는다. 리자가 남긴 희소 우표로 백만장자가 되고 호텔을 인수해 유명해진다. 이런 행운과 불운의 반복된 삶 속에 마침내 그가 원하던 백만장자가 되지만, 다른 이들이 디테를 백만장자의 부류에 넣기를 꺼린다. 공산정권이 들어서며 백만장자들의 재산을 압수하고 수용소로 보내기 위해 소환장을 발부한다. 디테만 제외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디테는 백만장자임을 인정받기 위해 기꺼이 수용소로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수용소에서는 디테를 아는 척하는 백만장자도 호텔 사장들도, 아무도 없다.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을 잃고 수용소에서 나온 노년의 디테는 산 속으로 들어간다. 자연과 동물들과 함께 하며 지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과 대화한다.

 

나는 사람들의 눈에 띄거나 칭찬을 받는 일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았다. 그런 모든 건 내게서 사라졌다. 거의 한 달 내내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원래의 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뼈 빠지게 일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종종 나는 도로를 정비하는 일을 내 인생의 길을 정비하는 것과 비교해보았다. 인생을 돌아보니 마치 다른 사람에게 일어났던 일인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의 인생 전체가 누군가 다른 사람이 쓴 한 편의 소설이며 내 인생이란 책의 열쇠는 나 자신만이 갖고 있는 것이었다. 내 인생의 유일한 증인은 바로 자신이었다. 비록 내 인생이라는 길의 처음과 끝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을지라도 곡괭이와 삽 대신 기억의 도움을 빌려 아주 먼 과거까지 돌아갈 수 있게 정비해놓고, 기억하고 싶은 곳으로 돌아가 회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영국왕을 모셨던 최고급 호텔 파리의 지배인에게 배워 아비시니아 황제를 모신 자그마한 체구의 디테가 회상하는 자신의 삶은 어디에 방점이 있을까. 백만장자의 꿈을 쫓아 전진하던 소년 디테, 독일인 아내를 만나 사랑하며 나치의 점령속에 살았던 청년의 디테, 공산정권에 의해 수용소에서 살아야 했던 중년의 디테. 체코의 파란만장한 현대사에 휩쓸려 살았던 디테의 삶에서 “영국왕을 모셨지”라는 말을 내뱉을 수 있던 때는 역시, 운명을 수용하는 노년의 삶에서 가장 잘 어울린다. 늘 작았던 자신을 더 커 보이게 애쓰지도 않으며 호텔을 갖고 싶어하던 욕망도 디테에게선 사라졌다. 그의 삶에서의 불행에 기뻐하며 운명을 수용하는 태도는, 그가 지나온 삶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배인의 “영국왕을 모셨지”가 약간 뻐김의 느낌이 가득하다면 노년의 디테의 “영국왕을 모셨지”는 자조가 가득하게 느껴진다. 자본주의와 나치즘과 공산주의 사회에서 디테가 느낀 삶의 태도와 방향은 전면 수정되었다. 앞으로 남은 생애, 마주할 자신과의 이야기에서 디테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갈까.

   시대에 휩쓸렸다는 말은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무책임해질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503, 박근혜 변호인단이 모두 사퇴한 날, “영국왕을 모셨지”를 말하는 지배인의 표정과 얼굴을 생각했다. 이들은 되돌아볼 어느 날 자신의 삶에 “공주를 모셨지”라며 어깨를 치켜올리며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을까. 시대의 흐름에 휩쓸린 것이 아니라 시대가 합의한 헌법질서를 파괴하고 합법적 절차에 의해 탄핵된 것에 대해 막무가내 땡깡으로 비호하며 제 욕망을 위해 상식과 정의를 무시하며 살고 있는 것에 대해 만족감을 느낄까. 어떤 행운을 기대하기에, 그와 같은 몰상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도 역사에 무책임해도 살아감에 양심의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들의 “공주를 모셨지”가 너무나 오래도록 그들 권력과 욕망을 채워주었기에 여전히 “공주를 모셨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여전히 “공주를 모셨지”로 세상을 살고 있는 이들로 인해, 생의 마지막 날에도 그러고 있을 것 같다. 영원히 자신을 공주의 노예, 심부름꾼으로 자처하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디테의 회고가 참 다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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