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을 들이키며!




20-20-20


        내가 그를 만났다!

           언제였던가. 스무살. 그때였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이십대에 감옥으로 끌려가 20년이 넘는 세월을 감옥에서 생활한 그의 강연을 듣는 날. 스무살은 어찌 해도 방방뛰는 나이였으니 앉아서 그의 강연을 들을 때만 해도 ‘지루해’라는 느낌이 들려고 했다. 혁명투사의 이미지, 투옥될 정도의 혁명가의 이미지로 '투쟁' '투쟁' 할 거라 생각을 했던 건지도 모른다. 강연은 좀더 큰 목소리로 외치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인지 그의 조용조용하고 차분한 음성의 말들이 흘러가는 것이 내 뛰는 심장의 속도와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강연이 끝나고...되돌아가는 길,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부터 내 심장이 다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귓전에 울리는 그의 목소리, 그의 숨소리, 그의 몸짓, 그의 글들이 생각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조용한 그의 음성은 차분히 나를 뒤따라와 아주 오래도록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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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로부터


  또한 그 시절의 많은 청춘들이 그러했듯이 나는 신영복 또한 시골 출신의 가난한 농군의 아들인 줄 알았다. 흔히들 하는 말로 소팔고 논팔아 서울로 공부하러 보낸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 그리하여 그들 부모님은 어떻게 되었을까.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을까, 걱정하게 되는 그런. 

  그러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의 부모는 아들의 수감에 잘 견디어냈을 듯했다. 아마도 신영복의 가치와 신념이 그의 아버지로부터 전해졌을 테니 말이다. 신영복의 아버지 역시 지식인이었다. 그의 아버지 신학상은 대구사범학교를 나온 교사로 평생 교직에 몸담았다. 한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지만 천생 학자로 늘 책상에 앉아 무언가 집필하고 있었고 여든둘에 <사명당의 생애와 사상>, 여든다섯에 <김종직의 도학사상>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의 아버지는 1995년 여든여덟 나이로 타계하셨으니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책을 쓰셨던 것이다.

  신영복의 고향은 경남 밀양으로 밀양과 의령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가 교장으로 근무한 경남 의령의 간이학교 사택에서 태어났고 유년시절은 아버지의 고향인 밀양에서 고등학교는 부산에서 졸업했다. 그러니까 그는 가난한 농군의 아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밀양교육감을 역임했고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하면서 가세가 기울긴 했지만 말이다.


 청춘의 시절에

 


 가세 때문인지 그는 부산상고에 진학하고 한국은행 면접시험 대신 서울대에 시험을 봤고 합격했다. 당시국어 선생님의 권유였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에서 1, 2학년 때는 가정교사 일로 바빴고 공부따라 가기 바빴다. 그러다 4.19와 5.16을 겪으며 그가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3학년, 1961년이다. 군사정권이 들어선 현실에서 장기적인 학생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서울 상대에 독서 동아리를 만들게 된다. 경우회, CCC 산하 경제복지회, 동학연구회, 고대연대 학생 동아리 세미나 등에 참석하고 마오쩌둥, 마르크스, 케인스, 슘페터, 고리키들의 책을 읽었다. 대학원을 마치고 1965년 무렵에는 숙명여대 강사로 경제학을 가르쳤다. 강사로 있으면서 <청맥> 잡지의 예비 필자 모임 새문화연구회 모임에 안병직 등 선배를 따라갔다가 선배인 김질락을 만나게 되었다. <청맥> 은 통일혁명당의 핵심인물들이 당의 합법 기관지로 설정한 잡지로, 종종 반미적인 논설이 실렸다. 어느날 김질락과 이진영 등이 신영복에게 혁명을 지지하느냐 물었고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따로 만나게 되었는데 이것이 나중에 통혁당 산하의 민족해방전선으로 발표된 모임이라 한다. 통혁당 사건으로 김종태, 이문규, 김질락 등은 사형되었고 무기징역을 받은 신영복이 살아 있는 사건 관련자 중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 되는데 신영복은,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핵심 간부들이라 불리는 이들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김종태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다 한다. 그리고 김질락과 이진영이 따로 만난 것은 5번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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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숲(신영복 홈페이지)  http://www.shinyoungbok.pe.kr>


  그렇게 신영복은 통일혁명단 사건의 주동자로 엮이게 된다. 모진 고문을 받았고 그가 활동했던 모든 행적들이 조직적인 관곌 규정되어 수사 기록으로 남겨졌다. 고문을 받으면서 그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라는 노래가 생각났다고 한다. 수사기관의 논리, 무엇이든 갖다붙여 벗어날 수 없는 수사기관의 연상법 놀이.

 ‘통일혁명단(통혁당사건)’은 1968년 일어난 대규모 간첩사건이다. 거물간첩 김종태가 운수업으로 위장하여 북한노동당의 재남지하당인 통일혁명당을 조직하고 전(前)남로당원·혁신적 지식인·학생·청년 등을 대량 포섭하여 결정적 시기가 오면 무장봉기하여 수도권을 장악하고, 요인암살·정부전복을 기도하려고 하다가 일망타진된 사건이다. 이 사건에 관련되어 검거된 자는 158명으로 문화인·종교인·학생 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중 73명이 송치(23명은 불구속)되었는데, 김종태는 1969년 7월 10일 사형이 집행되고, 이문규 등 4명은 9월 23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다. 당시 그는 1966년부터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과 교관으로 활동하던 중이었기에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는데 1심에서는 사형, 대법원에서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가 최종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안양과 대전, 전주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성폭력, 살인 등으로 감옥에 가는 이들의 형량이 10년을 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허접한 수사와 당연한 귀결로 결론맺은 이 사건으로 무기징역 선고도 개탄받을 일이긴 하지만 무려 20년이 지나서야 가석방으로 감옥문을 열고 나올 수 있었다. 청춘의 그가 중년이 되어 세상을 밟았다. 당연,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걱정이 없을 리 없다. 다행히 그는 한한기 후에 성공회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수 있었다.


 

휴지와 봉함엽서 속의 살아있는 글


  그는 오래도록 살았다. 감옥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수감 생활. 무기징역이라는 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힌 젊은 청년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그 시대가 수많은 젊은 청춘을 감옥에 몰아넣었다. 그 시대의 특정한 이들이 많은 이들의 영혼을 억압하고 신체를 억류할 권리를 부여받은 듯이 행동했다. 그리고 다시, 그것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그는 감옥에서 책을 읽었고 글을 썼다. 그러나 읽을 수 있는 책 수는 제한적이었고 글을 쓸 종이도 없었고 검열도 당했다. 20년하고도 20일의 시간 동안 그는 부모님, 형수, 제수에게 편지를 썼고 그렇게 그가 옥중에서 쓴 편지들이 책으로 엮이게 되었다. 그는 휴지와 봉함엽서 속에 가족에게 보낼 글들을 띄웠던 것이다. 그렇게 1976년부터 1988년까지 감옥에서 그가 감옥에서 휴지와 봉함엽서 등에 써내려간 글들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어떻게 그러한 힘든 일을 겪고도 사람의 마음이 고요하고 예쁠 수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산문집이다.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도. 그는 사형선고를 선고 받고 곧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첫 번째 책이 바로 <청구회 추억>이다. 1966년 봄 서오릉으로 가는 소풍길에서 만나 약 2년 동안 우정을 나눈 여섯 어린이들과의 추억을 담은 글이다. 이 글 역시 교도소 두루마리 휴지에 볼펜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의 글들은 이렇게 흐물흐물 사라질지도 모르는 아주 얇은 휴지 속에 위태롭게 기록되어 있다. 그렇기에 더욱 애잔하다.

  교도소의 생활들을 어떻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으랴. 다만 그의 책의 제목처럼 그에겐 그 긴 시간이 ‘사색’의 장소가 되었다. 그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물론 그는 다른 장소에서도 역시 ‘사색’하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교도소에서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많은 책들을 만났다. 대전교도소 복역 시절에는 남파공작원 출신 한학자 노촌(老村) 이구영(李九榮)과 4년간 한 방을 쓰면서 한학과 서예를 익혔다. 이구영 선생과의 만남은 그를 동양고전에 대한 깊이 있는 독서를 가능하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동양고전을 접하면서 ‘관계의 철학’에 대한 보다 깊은 사유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감옥생활을 하면서 자살하지 않은 것은 두가지 이유라고 한다. 햇빛과 그가 죽으면 슬퍼할 가족, 친구들이다. 그가 있었던 방은 북서향으로 2시간쯤 햇빛이 들어오는데 가장 햇빛이 클 때가 신문지 펼쳤을 때 정도였다 한다. 그 햇빛을 무릎에 올려 놓고 앉아 있을 때 정말 행복했다고 한다. 내일 햇빛을 기다리고 싶어 안죽었다고, 그는 그렇게 말한다.


 

처음처럼을 마신다! 


원샷!  신4.jpg 원샷!  


  소주회사는 처음처럼이라는 도수 낮은 소주를 내놓았다. 이름은 처음처럼. 이 처음처럼이란 글자, 어딘가 낯설지 않다. 세상에, 신영복 글씨란다. 세상에, 신영복 선생님이 소주회사에 글씨를 넘겼단 말이야? 놀라고. 놀라고.

  성공회대학교 퇴임 무렵 두산에서 브랜드명과 상표 글씨체로 시 <처음처럼>의 제목과 글씨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그는 수락하고 1억 원을 받는데, 성공회대학교에 기부했다 한다.

  그의 그림과 글씨체는 이미 유명하다. 그는 감옥에 서예반이 생기면서 만당(晩堂) 성주표(成周杓)와 정향(靜香) 조병호(趙柄鎬)에게 지도를 받았다 한다. 그는 자신만의 서체를 구사하고 많은 글씨와 그림들을 창작한다. 그리고 그의 붓글씨는 '신영복체', '어깨동무체', '협동체, '연대체'로 불리며 곳곳에 그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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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신영복의 60년을 사색한다 -한겨레21[2006.05.16 제609호]

•한길사 '사회와 사상 제 15호':대담/인터뷰 통일혁명당사건으로 20년 만에 가석방된 신영복씨 - 월간 '사회와 사상' 1989년 11월 통권 제15호

•다음 백과사전, 신영복(브리태니커)

•네이버 지식백과, 통혁당사건(두산백과)

•더불어 숲(신영복 홈페이지)  http://www.shinyoungbok.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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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제창하며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돌베게, 2004.

 

 

 

   이 책의 제목이 ‘강의’인 이유가, 이 책이 실제 강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성공회대학교 교양과목인 ‘고전 강독’의 강의 내용을 정리하여 묶은 것이다. 고전에 대한 저자 나름의 읽기 방법으로 고전을 재해석하고 있다.

  <강의>에서 다루는 고전은 춘추전국시대 대표적인 사상가인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 등의 핵심 사상이다. 즉 이들 사상가들이 서술한 <시경>, <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에 담긴 사상과 철학이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때의 사상을 현재와 미래에서 '관계론'에 초점을 두어 이들 사상을 풀어내고 있다.


 

 우리가 걸어놓는 화두는 ‘관계론’입니다. 존재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 단위로 인식하고 그 개별적 존재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개별적 존재는 부단히 자기를 강화해가는 운동 원리를 갖습니다. 그것은 자기 증식을 운동원리로 하는 자본 운동의 표현입니다. p23


  이와 같이 관계론적인 관점에서 이들 사상을 풀어가는 것은 작가가 보기에 동양의 사회 구성원리가 관계론이기 때문이다. 동양적 삶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가치가 바로 인성, 인간관계라고 보는 까닭이다. 작가는 ‘관계론’에 집중하여 이 책들을 살펴보고 있었기에 전반적으로 일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양한 ‘관계론’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어 좋았다.

  고전은 늘 읽어본 듯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다. 오래도록 접했지만 직접적으로 접한 것은 없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고전의 맛보기라도 새로움을 준다. 그래서 장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학자의 사상에 매료되어 사상가의 책들을 읽어야지라는 마음이 지속되었다. 그렇게 공자 다음엔 맹자, 맹자 다음엔 노자, 노자 다음엔 장자...이런 식으로 학자들의 사상이나 그에 대한 해석이 좋게 여겨지는 것은 작가의 의도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글의 순서는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의 흐름에 따른 것일 뿐인데도 점점 더 좋아지는 글의 내용으로 인해 이것이 작가가 의도한 차례야라는 생각까지도 했다.

  고전을 읽는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고전은 꼭 읽어야 하는지 세상은 ‘고전읽기’를 강조하고 강요하고 있다. 지금도 넘쳐나는 수많은 책들이 많건만, 화려하고 깔끔하게 포장된 책들로 줄줄이 나와 주고 있건만 아주 오래전의 사상들을, 책들을 끊임없이 읽으라고 재촉한다. 도대체 왜!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관점입니다. 고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중요합니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고전 독법 역시 과거의 재조명이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고전 강독에서는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 관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p21


      우리가 이 지점에서 합의해야 하는 것은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라는 사실입니다. 공자의 사상이 서주 시대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폄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 공자의 인간 이해를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의 인권사상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의 고전 독법은 그 시제를 혼동하지 않음으로써 인에 대한 담론이든 민에 대한 담론이든 그것을 보편적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관점이 고전의 담론을 오늘의 현장으로 생환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141


   책읽기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고 자기만의 질서와 체계가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책읽기라는 것은 교과서조차도 읽을 시간없이 문제집 풀이에 혈안이 된 현실이다(이런 교육현실을 겪은 나를 기꺼이 불쌍히 여겨주며). 또한 너무나 획일적인 풀이로 일관되었는데 그러한 관점의 전환을 해볼 수 있어 좋았다. 다만, 어쩌면 너무나 맛뵈기 식의 고전 소개가 사람에게 애간장을 끓게 하는 면은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소개된 모든 고전을 마구마구 읽고 싶어진다. 수많은 사상가들의 사상들을 막 아우르고 싶어진다. 읽는 것에만 매달리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

 

     사상은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것입니다. 단지 주장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의 사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입니다. p509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무수히 입만 떠벌이지 말라고 공약만 남발하지 말라고 립서비스만 남발하지 말라고 쇼좀 그만 하라고 제발 자신의 것, 사상을 가져라, 라고 무수히 벽에 대고 외치는 말을 또 막 질러 댄다. 이 말들을 끊임없이 제창하는 게 안 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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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사람들에게 - 공감하라! 행동하라! 세상을 바꿔라!

원제 An Die Emporten Dieser Erde!

 

 스페판 에설 저, 유영미 옮김, 뜨인돌, 2012.

 

 

   저자는 말만 내지르는 사람이 아니다. 앞서 저자는 “분노하라”고 외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분노했다. 대한민국에는 엉뚱한 방향으로 분노하는 사람들이 가득하지만. 어쨌든 저자의 메시지들을 ‘옳게’ ‘바르게’ 이해한 이들은 분노했다. 그렇다. 그러고 난 다음엔?

아 책은 분노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이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분노하라고 해서 분노했고 분노한 사람들에게 다시 저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공감하고 행동하라고. 그래서 세상을 바꾸라고 말한다. 이 책은 또다시 저자의 연설을 글로 바꾸었고 다른 학자들과 청중들과의 대담을 함께 묶어 만든 책이다.

   1부에는 저자의 연설문으로 저자의 신랄함이 나타나며, 2부 「지금은 깨어날 때)」에서는 앙드레 마티와 청중들과의 대담으로 인류의 현안들에 대한 일관된 신념이 나타난다. 3부 「공감하라! 지속적으로 항의하라」에서는 롤란트 메르크와의 대담으로 역사, 철학, 문학, 예술을 넘나드는 해박하고 독창적인 사유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프랑스의 문필가 몽테스키외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는 좋지만 가족에게 나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안 된다고 말한다. 가족에게 좋지만 조국에게 나쁜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안 된다고 말한다. 내 조국에는 좋지만 이 세계에 나쁜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안 된다고 말한다.” 바로 이런 자세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올바른 세계시민의 자세라 할 수 있겠지요. p78

 

 "저항, 그것은 창조이며 창조, 그것은 저항이다!“ 텍스트 속에서 읽지 않으면 굉장히 추상적인 문장입니다. 이 문장은 무슨 뜻일까요? 창조는 언제나 저항에 부딪히고 저항은 뭔가를 창조할 때만 실현된다는 것을 생각하며, 마티 씨를 비롯한 귀한 청중들과 작별을 하고자 합니다. 자, 다시 일어나 저항하고 창조합시다! p79

 

   스테판 에셀의 말은 군더더기가 없고 핵심을 명확히 하고 있기에 읽기에 편하다. 또한 그것이 연설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저자의 얘기에 빨려 들어갔는지 알 수 있을 듯하다.

   현재 서구사회에 나타나는 문제점을 정확히 집어내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오랜 시간 활동한 이의 확신과 사회에 대한 통찰과 관심이 묻어난다. 똑같은 말을 한다 해도 ‘스테판 에셀’이니까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그의 삶과 함께 저자가 말하는 목소리에 감동하게 되는 것이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경험에 대해 사람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같은 말을 전하는 것에서 울림이 다른 것이 오로지 스테판 에셀이 말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프랑스 사회에서의 울림이 그러했던 것, 스페인으로 이어진 것,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스테판 에셀이 전하는 메시지는 한결같기에 또다른 이야깃거리가, 있을 수 있긴 하겠지만, 이전의 메시지보다 강렬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것엔 대안이 따라야 하는 것이니 메시지에 대한 삶의 철학들을 파악할 수 있는 책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분노하라와 마찬가지로 연설이라는 짧은 분량을 책으로 만들어 내다 보니 느껴지는 아쉬움을 위해 여러 대담을 싣고 있다. 이런 대담 덕분에 이 책의 아쉬움이 달래 진다. 자칫, 스테판 에셀을 앞세워 책팔아 먹기로 호도될 뻔한 출판사인데, 이런 노력들 덕분에 그 점은 쉽게 가라앉혀진다.

   특히 한국어판에서는 신자유주의에 관한 사진이 있다. 사진작가인 이상엽, 정택용 씨의 사진이다. 저자가 말하는 신자유주의의 문제점과 오버랩되며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시각적으로도 각인할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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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Indignez Vous!

    

  스페판 에설 저, 임희근 옮김, 돌베게, 2011.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맞섰던 레지스탕스 투사이고 외교관을 지낸 93세 노인이 외친 연설을 출판사의 적극적인 권유로 책으로 만들어 엮은 것이다. 연설을 묶은 책이라 지극히 짧다. 연설문이라서인지 전하는 메시지가 확실하고 내용이 불충분하지 않다. 또한 힘이 있다. 거기에 저자인 스테판 에셀에 대해 소개하고 특히 인터뷰를 통해 저자의 인생과 메시지를 더 이해하게끔 해주고 있다.

   저자가 전하는 핵심은 프랑스가 처한 지금의 현실에 대해 분노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전후 프랑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레지스탕스 정신이 반세기만에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사회 양극화, 외국 이민자에 대한 차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금권 등에 저항할 것을 주문한다.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며, 인권을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찾아가 기꺼이 힘을 보태라고 호소한다. 대한민국에도 확실히 딱 알맞은 메시지 아닌가!

 

p22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태도다.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들은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 책은 ‘글’의 문장력 때문에, 전하는 메시지 때문에 흡인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오늘날의 사회를 살다보면 한번쯤 듣게 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100세에 가까운 노인이, 젊은 시절 나치에 맞서 투쟁하고 수용소를 전전하며 목숨을 잃을 뻔했던 당사자가 오늘날의 현실을 보며 전하는 메시지이기에 더 울림이 크다. 스테판 에셀은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유대인이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이 프랑스에 산 덕분에 프랑스 예술가들을 보며 자란 그는 이후 1937년 프랑스인으로 귀화한다. 하지만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군에 징집된다. 1941년에 런던으로 가 드골 장군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에 합류하여 방첩・정보・행동 담당 총국에서 일하는데 1944년에 그는 게슈타포에 체포된다. 이때 그의 체포는 누군가의 밀고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특히 물 담긴 욕조에 머리를 밀어 넣는 고문을 많이 받은 모양인데, 교수형을 당하기 전날 극적으로 탈출한다. 그는 수용소 안에서 티푸스로 사망한 프랑스인과 신분을 바꿔치기 해서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수용소로 이감되던 중 탈출하고 또 다시 잡히고 또 다시 탈출했다. 2차 세계대전의 전장에서 그는 그렇게 살았다.

 

“이렇게 삶을 되찾았으니, 이젠 그 삶을 걸고 참여해야 했다”

 

   이 말이 그의 회고록에 있다는데, 수없는 시도 끝에 그곳에서 살아남은 그의 인생에 대해 대변하는 말 같기도 하다.

   저자가 단지 지난날 나치에 대항한 레지스탕스였다는 이력만으로 이런 메시지를, 이런 말을 했다는 것 외에 그의 이력 또한 중요하다.. 저자는 이후에도 외교관 활동을 했고 유엔에서 비서직을 맡아 1948년에 세계 인권 선언문의 초안 작성에 참여하기도 했다.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 유엔 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를 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러한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끊임없이 사회에 관심을 쏟고 활동을 이어나갔다. 아프리카 노동자 교육협회를 창설했고, 1996년에는 80세의 나이로 교회를 점거한 이주노동자와의 협상주재에 나서기도 했고 환경문제, 인권문제 등등에 관심을 쏟으며 관심을 쏟는 만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런 저자, 자신의 경험과 그리고 실천적인 활동이 함께 했기에 그의 메시지는 진정성이 있고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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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Live 갈림길에서 삶을 묻다

윌리엄 브리지스 저, 이명원 옮김, 이끌리오, 2008.


The way of Transition



 저자, 윌리엄 브리지스는 이 책을 통해 ‘변화’와 ‘전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변화와 전환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인생에 있어서의 변화와 전환이 왜 필요한지를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변화가 새로운 시작이라 강조하고 우리가 가지게 되는 변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보다 긍정적으로 바꾸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변화가 외적인 사건을 이야기한다면 전환은 심리적인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아내가 암으로 사망하는 경험을 함으로써 ‘변화’와 ‘전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 상황과 그에 따른 변화와 전환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변화와 전환은 인생에서 누구나 겪게 되는 것으로서 이 변화와 전환을 통해 보다 성숙한 삶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전한다. 또한 그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자신의 ‘아내와의 사별’이란 경험을 녹여 풀어 가고 있으며 단락의 전환은 다른 저자들의 인용구-격언, 소설이나 시의 글귀 등-를 제시하면서 하고 있다. 자신의 글에 관련된 의미의 문장을 삽입하면서 저자의 감정이나 생각을 뒷받침하게 하고, 나아가 공감하도록 하고 있다. 저자의 책에 대한 구절을 보면 다음과 같다.

p298-299 이 책은 내가 저술한 10권의 책 중에서 가장 어려운 책이었다. 나는 처음 경험했던 때만큼이나 기억하기도 힘든 개인적인 경험을 모두 드러내야만 했다. 또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 나의 경험에 일반화라는 옷을 입혀 대부분의 이야기를 감추어두었다.


p299 소로가 자서전에서 말했듯이, 내 이야기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나는 다른 누군가를 이용했을 것이다. 처음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개인적인 이야기와 나의 생각을 각각 다른 장에 실어서 서로 대비되는 방식으로 써나가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제를 깊이 파고들수록 일은 더 어려워졌다.

    첫 번째는 내가 아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나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얼마나 오랫동안 오해받고 있다는 느낌에 우울한 날들을 보냈던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하나가 반으로 나뉜 것이었다.


 우선, 마음에 드는 글귀를 적고 보니 저자의 글보다는 저자가 인용한 다른 이들의 문구가 훨씬 많았다. 어떤 장은 저자의 글은 없고 인용구만 나열된 장도 있었다. 장마다 인용된 다른 이들의 글귀가 그만큼 내게 와 닿았다.

 인용구 이외 저자의 글을 많이 기록한 것은 1장이다. 전체적인 글이 시작하는 첫 장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모두 드러나는 것이었다. 저자 또한 시작할 때는 심혈을 기울인 듯하다. 이렇게 저렇게 읽다 보니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막 쏘아댄다. 저자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저자 자신은 힘들게 고민하고 토로한 것을 바탕으로 너무 쌍심지를 키고 읽는 건 아닌지 싶다가도. 어쩌랴........


1) 인용구의 조절


  저자는 영문학 전공자답게 문학작가들의 글귀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마음을 흐르게 한다. 여러 사람들의 글들을 인용하여 자기의 생각인 것 마냥 글 속에 배치를 하고 있다. 적절하게 배치된 인용구는 좋다. 글의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다면 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또 다른 이들의 이름에 기대어 저자의 글에 대한 명확성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너무 많다. 이 책에서 이 글들을 다 빼버린다면 어떨까? 내가 마음에 드는 글귀로 적은 글들은 보다 보면 저자의 글보다 다른 이들의 인용구였다. 이 책은 인용한 글들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타인의 글의 인용은 자신의 글에 맞게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 경험과 이론 사이의 조절


 이 책은 무슨 책인가? 자서전인가? 지난 삶을 돌아보는 에세이인가? 전환에 대한 방법을 알려주는 책인가? 이 책의 지금의 모양은, 자기계발서도, 자서전도 아닌 듯하다. 책의 원제를 보면 더욱 그렇다. “The way of Transition”(전환의 방법). 저자는 전환의 방법적 측면보다는 아내와의 사별과 재혼하는 과정에서의 감정 토로를 더욱 많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 책은 자신의 영혼 치유, 상실감 극복의 치유책인 듯이도 생각되기도 한다.

 감정적인 토로와 그 감정을 겪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어떤 생각을 미칠지 염려한 부분이 있던데, 오래동안 전환관리의 전문가의 책이라고 보기엔 경험과 이론 사이의 조절이 적절하지 않게 느껴졌다. 아니, 아내의 사별을 핵심으로 두고 모든 내용을 전개하기에는 오히려 무리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감정적인 토로를 하다 ‘전환’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전개와 방법이 자연스럽게 가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글의 배치나 문장 부분의 차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많은 컨설팅을 하고 수많은 기업을 상대하는 컨설턴트로서 생각할 수 있는 사례가 많았을 것인데 아내와의 사별만을 이야기하며 ‘전환’을 재생각 했기에 차라리 6장의 제목을 이 책의 제목으로 하는 것이 더 이야기의 흐름이 맞는 듯이도 생각했다. ‘결혼이 인생의 전환점이다’라는 제목 아래, 결혼과정과 자연스러운 사별 과정, 재혼과정에서 겪게 되는 인생의 ‘전환’으로.


3) 번역, 장의 구분과 제목


원제목과의 차이가 있다. 책의 원제목은 “The way of Transition”(전환의 방법)이다. 글을 읽어보니 우리나라 번역 제목이 더 어울리는 내용이었다. “How to live, 갈림길에서 삶을 묻다”이다.

 11장으로 나누어 소제목을 서술형으로 달고 다시 개념 정리 형태의 제목을 두고 있다. 그러나 본문에는 개념 정리 형태의 제목이 없다. 이것이 번역과 편집상의 누락인지, 원본 자체에 없는 것인지 확인하려 했으나 확인을 못했다. 그래서 제목 구분 역시 저자에 의한 것인지, 번역자와 출판사에 의한 것인지의 확인이 필요하다.

 이것은 제목과 내용의 조합이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관념적인 개념 설명, 개인적인 경험 토로, 개인적인 감정 토로, ‘전환’의 이론적 방법 소개 등등.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이 중언부언하는 부분이 있기에 조절이 필요하다.

4) 그 외


 ‘전환’에 저자는 너무 집착한 듯하다. 자신이 전환관리자이며 그 분야의 전문가로서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전환’으로 연결되는 듯하다. 그렇기에 개인적인 경험도 ‘전환’이란 틀을 거치는 것일 게다. 물론, 개인적 경험이 그간 자신이 강조해 왔던 ‘전환’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론은 같지 않은가. 인생에서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 오히려 ‘전환’의 방법적 측면을 빼고 저자가 혼란을 느꼈던 경험과 감정적 토로의 형태로, 그간의 이론적 측면을 강조했던 부분에서 ‘심리적’ 측면이 강조된 전환의 자연스러운 이야기로 책의 흐름이 이어졌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한다. 이미 저자는 ‘전환’의 이론서들을 널리 알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내용적인 분리와 서술방식의 분리를 했다면, 조금 과하게 반응하여 이 책이 개인의 재혼에 대한 당위성과 필요성을 강조하는 느낌을 가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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