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119104입니다



     


•빅토르 E.프랑클 저, 박현용 옮김,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 책세상, 2012.

•안나 S. 레드샌드, 황의방 옮김, 빅터 프랑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다, 두레, 2008.



■ 그의 생에서 ‘강제수용소’는 어떤 의미였을까


  ‘죽음의 수용소에서’라고 번역된 책을 읽으며 이의 저자에 대해서 의사라는 이에게 가지게 되는 일반적이고 고정적인 이미지를 생각했다. 일견 건조해 보이고, 합리적이며, 다른 것에 관심두지 않는 모범생의 이미지. 폭발적이고 격정적인 감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냉철한 이성주의자. 투철한 직업관을 가진 성실한 의사.

  하지만 그 자신이 90세에 써내려간 회고록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와 안나 S. 레드샌드가 쓴 『빅터 프랑클』을 보면서 ‘의사 빅터 프랑클’이 아니라 한 사람의 빅터 프랑클을 만났다. 그러니까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원제가 ‘삶의 의미를 찾아서’인 만큼 빅터 프랑클의 인생을 좀더 생생하게 담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겠는가. 빅터 프랑클은 고작 3년 수용소에서 살았을 뿐이다(이렇게 말하는 것을 이해하고 용서해 주시길! 그 기간이 결코 짧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고통이 짧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92년의 생애에서 3년이란 기간은 지극히 한 부분이란 것이다. 물론 그의 생에 전반에 걸쳐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며 로고테라피 이론을 창시하게 된 것은 수용소 체험이 절대적이며 그의 삶을 지배하는 부분이지만, 거기서는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빅터 프랑클의 모습을 너무나 잘 보여주었을지언정, 인간 빅터 프랑클을 얘기하기에는 많이도 부족하다.

  그래서 92년의 생애에서 아우슈비츠에서의 3년은 매우 작게 느껴졌고, 수용소의 삶 또한 그가 선택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니까 그 수용소는 히틀러에 의해 자행된 학살의 장소가 아니라 빅터 프랑클이 그의 로고테라피 이론을 정립시키기 위해 그가 선택한 일종의 정신병원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모든 것을 하나로 보는 것은 무리이고 과장임을 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강조되는 ‘의미찾기’에 대한 그의 주장은 수용소의 삶과 경험이 그에게 의미를 준 게 아니라 그의 의미찾기의 일환으로 수용소의 삶이 주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어쩌면 그가 수용소를 선택한 것은 맞는 말이다. 많은 이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기 이전부터 그는 미국 이민 비자를 신청했고 1941년 수락 통보를 받았다. 많은 유대인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시점에서 나이 많은 유대인이 먼저 끌려갔으므로 그는 자신의 부모 역시 끌려 가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을 보호해줄 사람 역시 자신뿐이라는 것을, 로스차일드 병원의 신경과장이라는 직책이 그의 부모를 보호하고 돌봐줄 수 있으리란 생각을 했다. 그는 떠날 것이냐 남을 것이냐의 고민 끝에 성당에서 기도하였으나 아무런 응답을 얻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 날, 그의 식탁 위에는 대리석 조각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의 아버지에 의하면 그것은 유대인 교회에서 나온 조각으로 히브리 문자 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한다.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의 하느님 야훼가 준 땅에서 오래 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빅터 프랑클은 남았다. 그리고 다음 해, 수용소로 끌려갔다.


■ 프로이트와 마주하다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의 부모로부터의 양육경험이 개인의 성격을 결정짓는다는 생각을 가진다. 이 프로이트의 사고로 접근한다면 프랑클은 부모로부터 어떠한 양육을 받았기에 그의 성격을 형성하게 되었을까.

 1905년 오스트리아 빈,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랍비 집안이었고 부모 모두 유대교 교리를 엄격히 지켰다. 아버지는 의사를 꿈꾸었으나 돈 때문에 중퇴하여 공무원이 되었다. 어머니가 감성적이고 선하고 자애로운 성격을 가졌다면 아버지는 스파르타적인 인생관과 그 반대의 성격을 지닌 원칙주의자였다. 훗날 그가 심리테스트를 받은 결과 극단적인 합리주의에서 예민한 감정주의에 이르는 폭넓은 기진을 가진 사람으로 나타났는데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영향 받은 것으로 보인다.

 세 살 때부터 의사가 되기를 소원했던 프랑클은 철학과 심리학 서적을 읽고 프로이트를 만나면서 정신과 의사로 진로를 정하게 된다. 그리고 학창 시절, 당대 명성이 자자했던 프로이트에게 서신과 논문을 보냈다. 프로이트는 즉각 답장을 해 주었고 그의 논문을 정신분석학회지에 발표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17세에 쓴 그의 논문, 「긍정과 부정에 대한 연구」가  19세이던 1924년 전문적인 국제 학술잡지에 발표되었다. 그리고 의대생 시절 우연히 그는 프로이트를 만나게 된다. 그때 프로이트는 프랑클의 집 주소를 그대로 외쳤다 한다. 그들의 서신 왕래를 기억하는것이다. 다만, 이때는 프랑클이 아들러의 지도를 받을 때였다. 프랑클은 정신분석에 대해 차츰 비판적이 되었고 정신분석의 몇 가지 부분들-무의식에 존재하는 성적, 공격적 충동이 인간 행동을 결정한다-에 의문을 품고 다르게 접근하는 아들러 정신분석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이다.


■ 아들러에게서 배우다  


  체르닌가세 6번지에서 태어난 프랑클의 집 맞은편에 개인심리학(사회심리학)자의 창시자인 아들러가 살았었다 한다. 그와 아들러의 운명은 이렇게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었다. 아들러의 이론을 주창하는 이들은 아들러 학파로 불리며 그들의 이론-사회적으로 우월해지려는 욕구가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힘-을 발전시켰다. 1925년 아들러 학파의 정식 회원이 되어 논문을 발표하거나 기조연설을 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그러나 곧 이 이론에 대한 의문점으로 일부분을 비판하였기에 이들 개인심리학협회로부터 쫓겨났다. 그리고 그 후 아들러는 다시는 빅터와 얘기하려 하지 않았고 빅터의 노력에도 모른 체 했다. 그러나 빅터는 늘 프로이트와 아들러는 그의 이론을 정립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얘기한다. 무엇보다 제일 큰 영향은 프로이트였으며 그리고 아들러였다.


■ LOGOS


 “존재와 인생이 나에게는 하나의 꿈이 되었네“


  열 다섯 살 무렵 쓴 그의 시의 한 구절이다. 그에게 의미란 중요한 것이었다. 네 살 땐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치자 잠들기 직전 놀라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삶의 허무함이 인생의 의미를 파괴하지 않을까에 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어린 나이에서부터 ‘삶의 의미’와 관련한 질문에 매료되었던 그는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을 때 로고테라피 원고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아들러의 사회심리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그들의 일부분에 동의하지 않고 진정한 자아, 의미있는 삶을 찾고자 하는 욕구에 대한 관심이 깊었던 그이기에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도록 도움으로써 정서적 고통을 치료하는 그의 이론, ‘로고테라피’를 발전시켜 가고 있었다. 그리고 24세 무렵에는 이미 로고테라피를 위한 세 가지 주요한 방법까지 생각할 정도로 그의 이론은 이르게 정립되고 있었다. 이러한 자기 생각을 실제로 이용하는 방법을 궁리하며 빅터는 청소년 상담센터를 세워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성직자들이 봉사하도록 했다. 당시 청소년 자살율은 매우 높았으나 센터 설립 2년째 빈에서 학생 자살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가 뒷날 회상하듯 우연히 광장공포증을 가진 게슈타포와의 대화 도중 자신의 로고테라피 이론 중 역설적 의도를 사용하였던 것이 유효하여 그의 수용소로의 강제 징집이 1년간 유예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그는 자신의 로고테라피 이론을 적용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이는 수감자뿐만 아니라 카포, 당원들에게도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수용소에서 견딜 수 있었던 삶의 의미는, 그가 잃어버린 「의료 성직자」를 다시 쓰려는 의지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는 실제 마흔 살 생일에 그의 동료가 준 몽당연필과 두 어 장의 작은 친위대 서식 용지에다 원고를 다시 써 내려 갔다. 청소년 시절엔 단편소설을 쓰고 싶다는 꿈을 꾸었는데 사라진 노트를 열병에 걸린 사람마냥 찾아다니는 주인공에 관한 내용이었다는데 마치 수용소에서 잃어버린 원고로 상심하다 다시 작은 종이 조각에 그것을 쓰고 있는 빅터의 모습이 그려진다.

  정신과 의사가 된 후에는 빈 정신병원의 여성 자살미수자 병동을 책임졌으며, 1942년 체코의 테레친 수용소에 수감될 때까지 의사로서의 책무를 다하며 수많은 환자들이 나치의 안락사 계획에 희생되는 것을 막고 그 자신의 이론으로 수용소에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불러 일으키도록 도왔던 그, 그는 진정 학자였으며 또한 확고한 신념을 밀고 나가는 사람이었다.


■ 그의 이름은 119104입니다


  빅터는 서른 다섯 살에 로스차일드 병원의 간호사인 틸리 그로서를 만났고 결혼을 원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결혼을 허가하는 관공서는 따로 설치되어 있었고 아이를 낳을 수도 없었다. 임신이 확인되면 강제수용소로 호송되었던 것이다. 전쟁 중 빈에서 결혼을 허가받은 마지막 사람이 되는 그나마의 행운은 있었지만, 틸리는 태중에 있던 아이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저서 <의미를 향한 소리없는 절규>는 그 아이에게 헌정한 책이었다.

 이렇게 수용소 아닌 곳에서도 그 어떤 자유도 누리지 못하던 유대인 빅터의 가족은 1942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 갔다. 그러나 가족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그의 아버지는 테레지엔슈타트 수용소에서, 어머니는 아우슈비츠로 이송된 뒤 가스실에서, 형은 아우슈비츠 부속 수용소로 이송된 뒤 광산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아내 틸리는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죽었다. 그의 아내는 스물 다섯이었고 그와 결혼한지 일년도 되지 않았던 때였다. 그리고 그는 수용소에서 석방되고 난 몇 개월이 지난 1945년 가을에서야 그의 아내 틸리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가족을 다시 만나리라, 자신보다 15살이나 어린 아내가 살아남았으리라는 희망이 무너져 버린 경험으로 많은 이들이 자살을 하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가 되었다.

  실제 수용소에서 빅터는 의사도 아니었고 그저 유대인으로서 119104였다. 노예노동을 하며 그의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죽음에의 공포 속에서 생활하면서 그에게 힘이 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생각이라고 깨달았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가지고 있던 이들이 살아 남으며 시련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면 그 시련을 견디어 냄을 알았다. 그는 수용소에서도 사람들과 대화를 하게 되면 그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잃어버린 자신의 원고를 쓰는 작업이 또한 그의 생명을 부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 당신의 삶은 긍정이었습니까?


  프랑클의 책 제목 중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yes라고 말하라”가 있다. 그는 그의 삶에서 늘 긍정적이었다. 그것은 그의 의지의 산물이기도 했을 것이고, 그의 천성이기도 했다. 그의 삶에서 항상 의미를 찾으려고 했던 그는 가족 모두가 수용소에서 사망한 것을 알게 된 그 때에도, 그 시련 속에서도 그에게 주어진 의미를 찾으려 했다. 스스로도 밝혔듯이 그는 천성 자체가 삶을 즐기는 편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누군가가 좋은 행동을 하면 잊지 않지만, 나쁜 행동을 하면 담아두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마음이 상하거나 괴로운 일을 대부분 잘 이겨낸다고. 사소한 괴로움에는 화를 냈지만 큰 문제들에는 불평하지 않았다고 한다. 85세 어느 날인가 눈이 멀었음을 알았을 때에도 불평하지 않았다 한다. 그는 단지 이렇게 말했다 한다. “엘리, 나 장님이 됐어.”

 그는 92세까지 살았고, 90세에 그의 회고록을 썼다. 그렇다면 그는 실명을 한 채로 글을 썼다는 것이 된다. 그 때에 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좋아하는 암벽 등반이었을 뿐이다. 27개의 명예박사 학위보다 알프스 암벽 두 곳을 최초로 오른 뒤 ‘프랑클의 비탈길’이라는 이름을 받은 것을 더 좋아한 그였다. 67세에 첫 비행을 했고 이듬해 솔로 비행을 감행한 그였다. 삶의 많은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렇듯 열정적이었다. 단지 공부와 책만 아는 조용하고 학자적인 기질만이 넘쳐나는 사람은 아니었던 듯하다. 또한, 빅터 스스로도 유머러스하다고 하며 강연에서나 대화에서나 언제든 유머와 재치를 활용한다고 한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 넥타이에도 관심이 많고 안경테 전문업체가 시리즈를 출시하기 전 초안을 보여줄 정도로 안경테 디자인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작곡도 좀 할줄 안단다. 그가 작곡한 비가는 공식 오케스트라 연주로 공연되기도 했고 탱고 음악은 텔레비전에서도 사용되었다고 하고, 드라마도 좀 썼고 연기도 한 적 있고....이렇게 그는 다방면에 관심과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문득, 이러한 관심들이 그가 수용소에서 겪었던 일들, 수용소에서 가족을 잃었던 그 기억들로 인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적으로 그의 천성이 그러할 수도 있지만, 깊은 고통의 기억 속에서 다양한 분야에 눈을 돌리며 관심을 흩뜨리는 이들의 모습이 생각나서다.

  수용소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지만 그의 아픈 기억들을 조금씩 치료해줄 새로운 여성이 나타난다. 그렇기에 그의 삶은 또한 긍정이었다. 수용소에서 홀로 살아남아 그 경험에 관한 책을 쓰던 1946년 2월, 그는 빈 폴리클리닉 병원에 신경과 과장으로 취임했다. 수용소의 경험과 가족을 잃은 슬픔은 그에게도 우울증을 주었고 또한 그 자신의 성급한 기질로 언성을 높이는 일이 더러 있었다 한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그에게 부탁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했는데 그 때, 그의 아내가 된 엘레오노레 슈빈트를 만났다. 그녀의 나이 20세였고 그 병원의 간호사였다. 그는 그녀에게 첫 눈에 반했고 빅터에게 그녀는 수용소의 경험, 인생의 목표 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였다. 틸리의 공식적인 사망진단서가 없어 그들은 결혼하지 못하다가 1947년 7월 16일 공식적인 사망 통보를 받고 7월 18일 간단히 결혼식을 올렸다. 빅터는 유대인이었고 엘리는 가톨릭 신자였기에 아무도 이 결혼을 주재할 수 없었다 한다. 어찌 보면 수용소에서 나오고, 그들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 엘리를 만나고 결혼하기까지의 기간이 너무 빠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슬픔과 고통을 경험하고 그것에 무뎌지기까지 말이다. 그러나 그 자신이 정신의학과 교수이며 학자이니, 그 나름의 치료 방법을 찾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그가 슬픔에서 빨리 벗어나도록 엘리라는 의미가 주어진 것은 아닐까. 시련에서 사랑으로 그를 살아나게 한 의미인지도, 그 무수한 고통을 경험하고 슬픔과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 그의 로고테라피를 전파시켜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라는 의미였을지도. 전쟁을 겪은 그들에게 보다 큰 의미이자 희망이 될 아기가 탄생했다. 빅터의 나이 마흔 두 살이었다. 그가 92세로 심장마비로 사망하기까지, 그는 엘리의 도움과 사랑 속에서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로고테라피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독려하며 그의 삶을 마쳤다. 손가락 하나 까딱으로 이뤄지는 선별 심사에서 어쩌면 가스실로 끌려 갈 뻔한 그 상황에서 스스로 움직여 가스실을 벗어난 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고 의지를, 책임감을 가지려던 그이다. 그러니, 그의 삶 곳곳에서 yes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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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YES! YES! YES!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 로고테라피 행동강령


  이 책은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으며 삶의 의미를 추구한 프랑클 박사의 체험 수기다. 이 시대의 체험수기가 수용소에서 느낀 감정이나 생활들에 대한 사실적인 기록과 그에 대한 생각들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프랑클 박사는 그가 창시한 정신분석방법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전개하고 있다.

  이 책의 한국 번역본의 제목이 수용소라는 곳에서의 경험을 부각시킨 <죽음의 수용소에서>이다. 그러나 저자가 지은 제목은 그의 로고테라피 이론과 연결되는 ‘삶의 의미를 찾아서’이다. 물론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어 여러 판이 나오면서 <인간의 의미 탐구>로 번역된 책도 있으나 모두 그의 이론을 부각시킨 ‘의미’를 제목으로 하고 있다.

  독립적이었을 각 장들은 서문을 쓴 고든 알포트에 의해 첨가되었다. 제1부는 프랑클의 대표적인 저서로 그의 수용소 체험을 토대로 한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 2부는 그가 창시한 로고테라피에 대한 개념과 이를 설명하는 내용, 3부는 비극 속에서의 낙관으로 로고테라피 세계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

  프랑클은 1부 수용소에서의 체험을 그가 겪은 시간의 순서로 엮으면서 그 때의 체험들을 그가 주창하는 로고테라피의 이론을 정립하는 형태로 이끌며 기술하고 있다. 2부의 로고테라피 개념은 그 제목이 개념이듯이 그의 이론에서 제기하는 개념들을 설명해 나가고 있다.  각각 내용을 이어가는데 간략한 표제어를 두고 있다. 이 표제어만으로도 전체적인 내용이 이어질 정도로 매우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다. 그만큼 내용의 명확성을 더하도록 서술하고 있다.


인간의 삶에서 의미를 빼앗아가는 것은 고통만이 아니다. 죽음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인생에서 정말로 무상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잠재 가능성이라는 말을 입이 닳도록 해왔다. 가능성은 그것이 실현되는 순간 바로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과거로 옮겨간다. 이렇게 과거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일회성을 탈피해 영원한 실체로 보존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속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그 속에서는 모든 것이 고정된 상태로 보존된다. p197


  읽어가면서 ‘삶의 의미’라는 단어는 확실히 각인되었다. 그것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었고 화두이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감동적으로 느끼는 것은 그의 생각인지 그의 경험인지가 대두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그의 체험의 사례들에서 이어가는 그의 사고는 분명 감동적이고 존경스럽다. 끊임없이 삶에의 의미를 찾으려 하고 의지를 찾으려는 일관된 그의 삶의 태도는 존경스럽다. 그리하여 운명에 대한 얘기, 수용소에서 타인의 삶들을 관찰하며 조심스럽게 그들에게서 자신의 이론들을 찾아내는 서술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의 사례와 이론을 적용함에 적절히 자리한 니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말들도 그의 글들을 이해하고 감동을 더하는데 크게 자리한다. 또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은 ‘테헤란의 죽음’이란 부분이다. 이것이 그의 삶에서도 분명 적용되는 기분이다. 이러한 운명론적인 얘기를 보며 수용소에서 맞닥뜨린 그 많은 그의 운명들과 비교해 보며 다시 한번 인간의 운명과 의미에 대해 숙연하게 고뇌하게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yes라고 말하라”는 인생관은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놀랍다. 그의 삶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그럼에도를 가지고 있으니까.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열등의식에 시달렸다. 그것은 복합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과거에 ‘대단한 사람’이었거나 혹은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하찮은 존재로 취급되고 있다. 일반적인 수감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계층이 하락했다는 것을 느꼈다. p115~116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퇴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 앞에서 우리는 이와는 다른 의미에서 수감자들이 공포로 가득 찬 현재를 덜 사실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과거를 회상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러나 실제 존재하는 현실에서 현재를 박탈하는 행위에는 어떤 일정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실 수용소에서도 긍정적인 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기회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린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 앞에 닥치는 모든 일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진다. p129~130


  그는 왜 이 책을 썼을까? 그가 경험한 수용소에서의 삶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니면 로고테라피 이론이 무엇인가를 알리기 위해서?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신분석의 내용을 전개한다는 특징 외에 이 책은 작은 의미의 단락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니까 대분류, 중분류, 소분류의 체계적인 분류로 내용을 전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용의 연결이 지극히 부자연스럽거나 하지는 않다. 오히려 작은 표제어 속에서 그 내용과 의미를 명확히 한다는 장점을 가진다. 반면 이것이 단점으로도 작용한다. 큰 체계를 두고 관련 내용들을 하위의 항목으로 두고 내용들을 정리하는 전개방식이 아니므로 전체적인 틀로서의 체계나 의미를 찾아내는 데는 조금 더딜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나무를 보느라 숲이 무엇인지를 찾는데 약간은 방해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그의 저술 방식으로 인한 특성이 이렇게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는 세 명의 여성 속기사들에게 그의 구술을 받아쓰게 하여 원고를 작성했다. 자료 없이 오직 그 자신 안에 있는 것을 9일 동안의 구술로 정리한 것이다. 그의 체험으로 인해 생생한 묘사와 그의 생각들을 전하고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글로써 다듬어진 글의 느낌보다는 말로써 다음은 느낌이 강하다. 물론 그가 겪은 경험의 고통을 이토록 차분히 비교적 절제된 톤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긴 하지만 그의 수용소의 이야기, 경험들이 이론적인 연결로 인해 부족한 듯이 보인다. 나는 저자의 수용소의 체험 속에서 느끼는 생각의 전개가 더 보고 싶으니 말이다.

  일단 로고테라피에 대한 설명이 서문을 쓴 고든에 의해 요구된 것이라고 하니 이는 처음부터 같이 연결되어 묶을 의도가 있던 내용들은 아니었다. 2부가 첨부되고 이어서 3부가 첨부되어 이들 각각의 독립적인 내용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졌을 뿐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각각 1부와 2부가 서로 간의 신빙성을 보완하고 있다고 기술했고 1부는 자전적인 이야기이며 2부는 경험에서의 교훈을 요약한 것이라 서술하고 있다.

  제2부의 로고테라피의 개념의 표제어와 그의 체험의 표제어들이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실제 그 내용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반복된 내용이 연이어 3장이 중복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것이 저자의 수용소의 체험에 방점을 두었다면 수용소의 경험들이 조금 더 드러나는 것이 좋았을 듯하다. 그리고 로고테라피에 대한 개념과 이해에 방점이 있다면 그 개념에 대한 명쾌하고 체계적인 분류와 서술방식으로 내용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 저자는 로고테라피 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요약정리하여 3부로 첨가시켰는데 이론적인 결론을 갱신하기 위해 덧붙인 것이라 하고 있다. 그것이 발표된 자료로서는 그 의미를 더하였겠으나 1부와 2부에 연이어 첨부되어서는 오히려 2부의 내용들을 더욱 깔끔하게 체계화하여 정리하는 것이 이론적인 명확성과 완결성을 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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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말 걸 그랬다 


 이 엄청난 분량의 책을 쓴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자료수집과 쓰는데 많은 시간

이 소요되었다고 하는데, 읽는 나 역시 그러했으므로 저자의 노고가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하나하나 얼마나 공들인 것일까. 사실, 서두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부분에서 저자와는 다르게 팔레스타인에 감정이입해 탈무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저자가 그러했듯이 나는 유대와 유대인에 많은 매혹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에 관한 생각을 강하게 접어두고 탈무드의 내용으로 보고자하며 책을 읽었다. 쉽지 않더라는 것이 함정이었다. 관점이나 감정을 어디에 두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다.


p69 인류 역사에서 유대인은 제국을 세우지도, 대성전을 짓지도 않았다. 다만 그들은 모든 에너지를 인간성 연구에 쏟았다.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예지 습득에 힘써 왔다. 그것은 인내와 더불어 이스라엘 민족이 역사로부터 받은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p103~104 수천 년에 걸쳐서 기록된 인간의 행동양식, 사고방식, 반응, 기쁨이나 슬픔, 고난, 성공이라는 것을 배움으로써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라는 전체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인간의 능력이나 가능성이나 한도를 알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여러 나라로 흩어진 유랑인이 되어도 힘을 잃지 않고 늘 새로운 힘을 유지한 것은 오로지 유대인이 성서를 마음의 지주로 삼고 탈무드를 지력의 지주로 삼아서 배워왔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익숙하게 들어 와 유대인을 남다르게 여겨 온 것이 바로 위와 같은 유대인의 상황일 것이다. 이 상황 속에서 영향력있는 수많은 인물을 배출했다는 것, 그것에 ‘탈무드’가 있다는 것이 유대인 정신과 탈무드를 뛰어난 경전으로 받들게 하는 요인이라는 걸, 그래서 탈무드가 신비로워 보일 것이라는 것. 어릴 땐, 랍비가 들려주는 우화의 이야기들을 접해서 조금은 그런 적도 있다. 우화는 항상 그러니까. 하지만, 성인이 되고 보다 방대한 탈무드를 접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을 보고, 세계사를 조금 알고 세계경제를 조금 알고, 권력과 자본을 조금 알고, 그렇게 조금 알다 보니 내 세계가 너무 좁은 건가.

  세상 모든 나라들에서 자기들 나라 특유의 ‘탈무드’를 가지고 있다.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원리와 원칙이 그 안에 담겨 있을 것이다. 다만, 유대인들이 그것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 아주 결정적인 차이가 아닐까. 하지만, 읽다보면 탈무드는 도덕윤리와 가치보다 어째 ‘성공'철학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지.

  솔로몬 탈무드는 크게 총 15장으로 구성된다. 전체적으로 유대인과 랍비, 탈무드에 대한 소개가 1장과 2장에서 제시된다. 3장과 4장은 유대인의 경제적인 부분인 돈과 그에 따른 철학을 살펴본다. 5장과 6장은 유대인의 발상과 유대인의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7장은 유대인의 세상살이, 8장은 유대인의 교육에 대해 말하고 있다. 9장에서 14장까지는 탈무드 우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9장과 10장은 각각 유대인의 예지와 지혜에 대한 우화를 11장은 걱정하지 말아라, 12장은 뿌린 대로 거두리라, 13장은 행복을 만드는 유대 사고방식, 14장은 불멸의 영원한 가르침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제목에 맞는 우화들을 엮어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15장은 토라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솔로몬 탈무드는 1장에서 8장, 15장은 저자가 탈무드와 유대인에 대해서 서술식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9장부터 10장은 우화들을 엮어 놓고 있다.

  각 장마다 소제목을 두고 있고 소제목에 또 다시 하위 범주의 제목을 두어 내용을 전개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을 보다 보면 저자가 한 단락 정도의 내용에도 소제목을 제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단락의 내용을 나타내는 핵심의미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와 같이 핵심의미를 단락마다 마다 제시하고 있어 내용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요점을 파악하게끔 해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로 인해 전체적으로 복잡하고 산만한 느낌이 들게 한다. 탈무드의 우화들이 각각이 제목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러한 형태가 전체적으로 제시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탈무드에 대해 지금까지 알아왔던 것이 우화이다 보니, 자연스레 다양한 랍비들의 이야기, 우화부분을 재미있게 읽었다. 어릴 적 보았던 우화들도 있고 처음 접하는 우화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각각의 우화에 대해 나름의 결론과 해석은 나의 몫이기에 내가 부여한 우화의 해석을 쫓으며 즐겼다. 비교적 인상깊게 남았던 부분은 유대인의 경영원칙인 78:22의 법칙에 대한 설명이다. 유대인들의 부자철학은 유대인의 특성을 대표적으로 나타내주는 부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탈무드가 다른 나라의 그것과 차별적인 것이 바로 이 부분인 듯이 느껴지니까 더욱 그럴 것이다. 유교적인 틀에 묶인 우리나라에게 상인에게 가지는 생각이 다르기에 그 다름으로 유대인의 금전에 대한 생각들이 재미있게 읽혀지기도 했다. 원체 유대인의 경제관념을 부각하는 부분이 많다 보니 어쩌면 이것이 특징인가, 인식해서 일수도 있겠다. 이 부분은 3장이다. 3장 중 유대인의 기본 법칙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유대상술의 기본 법칙에 ‘78:22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1의 오차가 있으므로 이는 때에 따라 79:21이 되기도 하고 78.5:21.5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정사각형과 그에 내접하고 있는 원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정사각형의 면적을 100이라 한다면 그에 내접하는 원의 면적은 약 78이 되고 나머지는 22가 된다. 또 공기의 성분이 질소 78에 산소와 기타가 22인 비율로 이뤄져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람의 신체도 수분이 78, 기타 물질이 22의 비율로 이뤄져 있다. 이 ‘78:22의 법칙‘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대자연의 법칙이다.

이 법칙 위에 유대인의 상술이 성립되어 있다. 세상에는 ‘돈을 빌려주고 싶어하는 사람’과 ‘돈을 빌려쓰는 사람’이 있는데, 그 중에는 ‘빌려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단연코 만다. 은행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돈을 빌어다가 일부 사람들에게 빌려주고 있다. 만일 ‘빌려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으면 은행은 당장 문을 닫는다. 이를 유대식으로 말하면 이 세상은 ‘빌려주고 싶다는 사람’ 78에 ‘빌려쓰고 싶어하는 사람’ 22의 비율이 성립한다. 이와 같이 돈을 ‘빌려주고 싶어하는 사람’과 ‘빌려쓰고 싶어하는 사람’ 사이에도 ‘78:22의 법칙’은 존재한다. 무슨 일이든지 성공률은 78이고 실패율은 22인 것이다. 실패율 22을 생각지 말고 나도 하면 78이 성공률 속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p249).

 

  다시 탈무드를 읽게 되면 그때는 또 다른 마음이 들게 될까. 머리가 크지 말았어야 했나. 어릴 적 아동과 청소년들이 알고 있는 그 수준의 탈무드 우화만 기억하고 있을 걸 그랬나. 탈무드를 읽는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땅을 찾은 것을 마냥 축하해 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탈무드에서 보라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마음을 추스르며 이 책이 조금은 정리가 되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1. 유사 내용의 카테고리 재분류

 탈무드의 내용을 보면 전체적으로 반복되는 패턴의 느낌이 든다. 그것은 유대인의 지혜를 이야기하며 유대인의 금전에 관한 탁월한 철학을 논하면서 지혜의 내용들이 금전의 내용과 연결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많은 책의 내용이 유사한 내용을 한데 묶어 장을 통합하면 장이 줄어들어 보다 간결한 형태로 이루어질 것이다.


 

2. 제목 및 소제목 형태의 통일성

  솔로몬 탈무드는 제목이 많다. 각 장을 나누기 위해 15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각 장에서도 소제목으로 분류한데 이어 거기다가 단락단락마다 제목을 뽑아서 제시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소제목을 포함한 제목만으로도 내용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제목만으로도 많은 페이지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 제목의 형태가 전 장에 걸쳐 통일적이지 않다. 물론 특성에 따라 적절한 제목을 붙이겠지만 각 장의 제목만이라도 그 형태를 통일적으로 이어간다면 보다 더 체계적인 느낌이 들 것이다.

  아래 보는 바와 같이 어떤 장의 제목은 서술형, 의문형 종결어미 형태로 제시한다. 어떤 제목은 명사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을 서술형태이든 의문형태이은 명사형이든 통일적인 체계로 정리한다면 제목에서 느끼는 복잡함이나 산만함이 경감될 수 있을 듯하다. 예를 들어 ‘불굴의 방패, 절대의 가치는 무엇인가’, ‘유대 부자철학은 무엇인가,’ ‘유대 역정의 발상을 찾아라’로 한다거나 간결하게 ‘유대인이해’, ‘유대정신’ 이런 형태로 말이다.

3. 책의 집필 의도 고려한 우화 삽입

  저자는 유대인과 유대인의 철학에 매혹되어 여러 탈무드를 모아 재정리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저자의 매혹이 어떤 부분이었는지 특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무엇이었는지에 관한 논점이 점차 흐려진듯하다. 탈무드와 유대인에 대한 설명이 중심이었는지, 탈무드의 우화를 얘기하는 것이 중심이었는지 말이다. 처음 시작에서 9장까지는 우화가 설명 속에 제시되어 있다가 9장 중반부터는 우화만 제시되고 있다. 우화를 소개하고 이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했다면 조금 더 설명 부분에 우화를 삽입하여 제시하는 것이 더 좋았을 듯하다. 그리고 많은 우화들은 따로 탈무드 우화로 책을 낸다거나 아니면 솔로몬 탈무드에서 독립적인 장으로 제시하여 소제목으로 분류하여 엮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4. 탈무드 우화의 출처 제시

  솔로몬 탈무드에는 많은 우화들이 몇 장에 걸쳐 삽입되어 있다. 저자가 많은 책들을 참고하여 이 책을 저술하였던 만큼 책 전반에 대한 참고문헌이나 자료의 출처가 명시되었으면 한다. 특히 우화들도 그 출처들이 궁금해진다. 1,000페이지 분량의 책을 저술하면서 저자의 목소리가 충분히 녹아들었겠지만 설명과 의견들을 분리하여 좀더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각주를 통해 설명을 첨가하였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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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바보들! 자네들은 나를 기관단총처럼 써먹어야 돼.


      노먼 베쑨이 자기 시대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 해결해 나감으로써 역사의 진보에 기여한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앞선 자의 길인 것이다(p14).


  이 인물사는 베쑨의 생애를 시간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물론 시작은 그의 죽음으로 출발하여 과거를 회상하는 형태이다. 베쑨이 성장하던 어린 시절과 의학을 공부하기까지의 시절을 제1부 우리 시대의 영웅에서 기록하고 있다. 제2부는 생명의 칼 정의의 칼이라는 제목으로 의사로서 결핵에 걸려 이 병을 극복하고 다양한 수술기구들을 개발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다루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될 당시의 제목이 바로 이 제2부의 제목이다. 제3부는 스페인내전이 일고 있는 전장에서 혈액을 공급하며 활약한 모습을 다루고 있다. 제4부는 중국에서 부상병들을 치료하고 병원을 세우고 의료진을 양성하는 베쑨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공저자들이 서문에서 밝혔듯이 그들은 베쑨의 일기와 편지 등을 수록하고 그의 생애를 설명하기보다는 기술하였다고 했다. 전체적으로 잔잔한 영화 한편을 보는 느낌이랄까. 도입부와 결말 부분이 일치하는 것 역시, 현재에서 과거 회상씬으로, 그 현재에서 또다시 과거 회상씬으로 연결되는 것 역시 영화적인 느낌을 갖게 했다. 그러고 저자를 찾아보니, 저자가 각본가였다. 그렇기 때문인지, 묘사적인 부분이 매우 부족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베쑨 자신의 기록으로서 그 감정이나 사고를 제시하고 있지만, 저자들의 일종의 해석이랄까. 저자의 의지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느낌이 덜했다는 것이다. 물론 서문이나 에필로그에서 기술한 노먼 베쑨에 대한 직접적인 저자의 의견이 없이도 닥터 노먼 베쑨의 삶에서 그의 인생철학에서 우리는 노먼 베쑨이 어떠한 의사이고, 혁명가이며, 사람인지를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어느 시대이든 영웅이란 자기 시대가 모든 사람들에게 제기하고 있는 주요 과제들을 뛰어난 결단력과 용기와 능력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오늘날 이러한 과제들은 전세계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따라서 현대의 영웅은 그가 자국에서 활동하든 타국에서 활동하든 간에 역사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당대적인 의미에서도 세계적인 영웅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p22).


 노먼 베쑨은 의사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무기를 가지고, 즉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그 일을 통해 투쟁했다. 그는 자신의 분야인 의학에서 전문가이자 개척자였다. 그는 자신의 무기를 늘 새로이 날카롭게 갈았다. 그리고 그는 파시즘과 제국주의 반대투쟁의 선봉에 서서 자신의 능력을 초지일관의 자세로 열성적으로 발휘했다. 그가 볼 때, 파시즘이란 인류에게 그 어느 질병 못지않게 사악한 질병이었다. 그것은 무수한 사람들의 정신과 육체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의 가치 자체를 완전히 부정함으로써 인간의 건강과 활력과 번영에 기여하는 모든 과학들을 부정해 버리는 전염병과도 같은 것이었다(p22~23).


 그 후 또 많은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사람들에 대한 평가 역시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의 명성은 감소되었고, 어떤 사람들의 명성은 증대되었다. 그러나 베쑨의 명성은 아무런 도전없이 계속 커질 뿐이다(p612).


닥터 노먼 베쑨, 1922년

(http://ko.wikipedia.org)

지금은 노먼 베쑨 기념관으로 활용되는 베쑨의 생가

<출처: http://blog.naver.com/lebendiges>


  아무래도 실제 삶을 살아간 이의 인생을 엿보게 되면, 특히 그가 영웅으로 칭송받는 이라면, 그가 살아온 인생 전체가 감동이다. 따라서 어떠한 부분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가 살아온 인생을 평가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약간의 주저함이 생긴다. 결국 나는 그의 삶에서 애처롭고 애처로운 사건에 대해 감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전기를 인물의 생애로 보지 않고 그냥 하나의 글로서 생각한다면, 그의 일기와 편지들이 생동감이 느껴져 좋았다. 1부에서의 그의 글들은 그의 내적인 변화와 비교적 개인적인 상황과 인과에 의한 변화와 각성이라면 2부 3부와 4부는 개인을 탈피하여 세계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의 변화를 보다 힘차게 각성하는 것이라 유달리 느껴진다. 실제 그가 공산당원이 되면서 하는 연설이나 병원을 설립하면서 하게 되는 연설들, 친우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에서 그의 현실 속에서의 생각이나 느낌이 묻어나 있어 그러한 편지들에 담긴 글이 매우 좋다.

  베쑨은 의사로서 자신의 본분을 통해서 사회적인 변혁까지를 생각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작은 의사에서 큰 의사로 변화되기까지 사회현실을 인식하며 주장하는 국민보건에 대한 그의 생각, 사회복지에 대한 생각에 대한 담긴 글들이 인상깊게 다가온다. 복지과잉시대라고 부르지만 아직 보편적 복지보다는 잔여적 복지에 대한 개념이 행해지는 이 시대에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대표적인 그의 말을 덧붙인다. 


  국민보건을 확보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질병을 재생산하는 경제체제 자체를 변혁시킴으로써 무지와 빈곤가 실업을 없애는 것입니다. 환자 개개인이 자신의 치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현재의 관행으로는 국민보건을 확보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관행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이며 소비적이며 완전히 시대착오적인 것입니다. 우리 의사들과 개인 자선가들 그리고 박애단체들이 그 존속을 도와왔습니다. 그것은 19세기의 개막기에 일어난 산업혁명과 함께 이미 1세기 전에 마땅히 사멸되었어야 했습니다. 사회의 각 부문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사적 건강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건강문제가 다 공적인 것입니다. 일단의 사람들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병에 걸린다면, 그것은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국민보건이라는 문제는 정부의 주요한 책임이자 의무로서 인식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p205).


  사회주의 의료제도의 반대자들이 강조하는 주요 반대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첫째, 창의력이 사라지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아마도 인간 당나귀들은 이 현대적 야만상태 속에서 당근이 코 앞에서 자신을 유혹해 주기를 바라는 모양입니다만, 그 당근이 반드시 황금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명예의 꽃다발도 그 역할을 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관료주의화의 위험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밑에서 꼭대기까지의 민주적 조직통제에 의해 억제될 수 있습니다. 셋째, 환자 자신이 의사를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역시 가공의 신화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유감스럽게도 환자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 자신의 입에서 나오고 있을 뿐입니다. 예컨대 환자에게 제한된 선택권을 주어서 소수의 의사들 가운데 담당의사를 선택하도록 한다는 것인데, 만약 환자가 그 의사들 모두가 다 싫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입니까? 이 의사는 이렇고 저 의사는 저렇다면서 따지고 드는 환자가 있다면, 그런 환자는 정신병원으로 보내야 할 것입니다. 암거위를 요리하기 위해 쓰는 소스는 또한 숫거위를 요리하는 데에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의사가 환자의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언어도단입니다. 99%의 환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치료의 결과이지 의사의 개성이 아닙니다(p208).


  많은 페이지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쉽게 읽혀진다. 한편으로 베쑨의 삶을 단순하게 묘사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삶의 굴곡을 굳이 롤러코스터처럼 기술할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 극적인 장치는 필요하리라 보는데, 매우 조용조용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것은, 어쩌면 처연한 느낌이기도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아마도 어떠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인생을 그가 보낸 편지와 일기들로 정적인 느낌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따라서 이 책은 그가 의사로서 활동한 것과 전쟁이라는 특수하고도 당시 보편적인 상황에 처한 역동적인 그의 삶을 조용히 보여주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면서 그보다 더 역동적인 그의 생각들이 더욱 부각되는 듯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의 생각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베쑨 자신이므로 공저자들이 그의 생각을 평가한다면 매우 어정쩡했으리라 보는데, 그만큼 그의 일기와 편지들이 수집되어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다행이라고 본다.

  서문을 통해 이 책의 저자가 베쑨과 안면 없는 기자이고 그 기자에게 베쑨의 이야기를 전한 이가 친구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저자에 대한 기록을 통해 신문기자 출신인 저자가 베쑨과 친분이 있고 베쑨과 친분없는 저자의 친구가 자료를 수집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하고 다시 보니 저자는 자신과 베쑨의 친분이 있으면서도 개인적으로 본 베쑨과의 일화를 묘사하지 않고 있다는 데 놀랐다. 그 자신이 희곡이나 영화각본을 많이 쓰고 신문기자로 활동해서인지 영화적 대본 느낌과 함께 전체적으로 기사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저자가 본 베쑨의 모습이라거나, 다른 모습들을 기술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다. 오히려 베쑨 자신의 기록들을 중심으로 엮어 가다 보니 이는 자서전을 읽은 듯한 모습이다. 다른 인물에 대한 평전들을 보면, 어쩔 때는 지나치게도 저자의 개입이 흐름을 방해하기도 한다. 물론 이 책은 그런 방해를 조장하는 느낌은 없지만,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보다 베쑨을 이끌어내는 묘사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회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가 각 장의 시작뿐만 아니라 베쑨의 일기나 편지와 함께 나타나면 더 좋았을 듯 했고, 베쑨이 죽는 장면에서 멈춰지는 것이 아니라 베쑨의 행동과 그의 존재가 변화를 이끌었던 중국 마을에 대한 이야기도 더 덧붙여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살아남은 베쑨의 가족과, 친구, 동료들에 관한 이야기가 부록으로 소개되었으면 한다거나 이 책에서 많은 등장인물들은 분명 실존인물임에도 가명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아쉽다. 아마도 익명으로 요청받았던 듯한데 이 전기가 보다 사실적일 수 있기 위해서는 그런 부분들에 대한 세심함이 필요했을 듯 보인다. 더구나 베쑨 자신 그의 생애에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의 일들을 이루어냈을 터인데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가 별로 없어서, 베쑨이 살았던 그 시대 그 인물들과 베쑨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도록 설명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베쑨은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홀로 각성하고 홀로 행동하는 인물인 듯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조금 언급되는 인물에 대한 주석을 통한 소개와 관련된 사진들이 첨부되었으면 하고, 무엇보다 베쑨의 기록들을 참고하고 있으니, 어느 한 장이라도 베쑨의 자필 편지나 일기를 보여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끔은 커피라든가 로스트 비프 또 애플파이라든가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이 간절히 생각날 때가 있다네. 천국의 음식에 대한 망상이랄까……. 그리고 정말로 보고 싶은 것은 책이라네. 지금도 여전히 책이 씌어지고 있는가? 음악이 아직도 연주되고 있는가? 자네는 여전히 춤도 추고 맥주도 마시고 그림도 구경하는가? 부드러운 침대의 깨끗한 시트 위에서 잠을 잔다면 어떤 기분일까?(p572)


  전쟁속에서 이와 같은 기록을 남긴 그의 필적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내밀한 저 마음들을 함께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애틋하고, 감사한 마음에.

  바보들! 자네들은 나를 기관단총처럼 써먹어야 돼!

  이 역시도 전쟁통에서 노먼 베쑨이 한 말이다. 그의 마음과 그의 행동들이 기관총처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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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다, 엄친아다, 불온하다!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세계는 망신창이가 되었다.”

   더 볼 것도 없다. 이 문장에서부터 이 책은 내 맘에 쏘옥 들었다. 쉽고 편하게 다가오는 내용이 끝까지 책을 편하게 읽어 나가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살아가면서 묻게 되는 이 짜증나는 질문들을 속시원하게 비판해줘서 즐거웠다.

   경제는 어려운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한번쯤 생각해보고 경험해 보았을 의문들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는 책이다. 현재 통념처럼 되어 버린 자유시장 경제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자유시장을 주창하는 선진국의 논리와 그들이 시장에 가한 정책 사이의 문제를 지적하며 ‘정의롭지 않은’ 주장에 대해 사례들을 제시해 가며 반박하고 있다.

   그러니 23가지의 질문과 그 답들, 그들이 말하는 것과 그들이 말하지 않는다는 형태로 진행된 논쟁들이 재미를 더해 주었다.

   경제는 어렵다, 아무도 책에는 관심이 없다, 하물며 경제책인데,라는 통념을 비웃으며 승승장구하는 장하준의 책들이다. 이쯤되면 장하준 개인의 인기를 떠나 사람들이 얼마나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경제는 전문가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어려운 것처럼 포장되어 왔지만 사실 실생활에 밀접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이것을 실제 상황과 사례들에 비유하여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있다. 경제학의 ‘전문’책이지만 전혀 ‘전문’적이지 않은 듯한 방식이 아주 좋다.

   어쨌든 글은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시종일관 자신의 주장을 잘 이끌어가고 있는 점이 좋다. 이것은 저자가 가진 지식의 수준이 뒷받침되기 때문이겠지만, 일단 확고한 자기주장을 펼 수 있다는 것은 이야기의 방향을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그러니까 이러한 질문과 의문형태의 물음을 던지고 답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재미있게 읽다 보니 23가지 물음은 짧은데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저자가 한국 사람이다 보니 이 책이 번역본이라는데 생각이 미치게 된다. 번역보다 한국말로 설명해준다면 오히려 더 쉽고 절절하게 와 닿지 않았을까. 저자는 전문번역인을 통해 번역하게 했는데 자신이 번역하기엔 바쁘다 한다....그리고 자신이 한국말로 하다 보면 오히려 왜곡된 전달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영어로 쓰여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한국인이라 그런지 아쉽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번역본이 껄끄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매끄럽다.

    원체 유명한 저자라서 글의 맛과 더불어 저자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에 대해 처음 떠오른 것은 ‘젊다’ ‘엄친아’ ‘불온하다’였다.

    

 ■ 젊다 

 

  오랫동안 이름을 들어온 듯한데, 63년생이다. 오래도록 머리가 희끗한 노년의 교수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당연 그의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읽으려고 했었다, 읽었다고 착각했다가 사실이었다. 자세히 그의 저서들을 보니 읽은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저자의 글을 읽었다고, 저자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이러한 착각이 들었던 것일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번역본이기에 그제야 내가 완전 저자를 잘 모르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교포던가 또한 놀라며 다시 저자에 대한 소개를 뒤적였다. 역시, 한국에서 태어났고 대학 이후에야 영국에서 공부를 했다. 영국 대학 교수이니 영어로 당연 수업을 진행하고 글을 쓰고는 하겠지. 또한 우리나라를 향해 출판한 것이 아닐 터이니. 여러 번 칼럼이나 신문에서 저자의 글을 보곤 했는데 그것이 저자를 오래도록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 자주 언론에서 접한 이름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저자의 나이가 젊다는 것에 놀란 것은 내가 가지게 된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 탓이 크다. 정부로부터 금지 서적으로 분류된 탓에 저자의 이름이 더욱 공공연하게 오르내렸던 것 같다. 자본주의를 비판함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과도한 반응들이 오히려 그의 위상을 높여 주지 않았을까. 나 역시 요즘 시대에 ‘불온’ 서적이란 것이 지정되리라는 ‘설마’하는 안일한 생각에 당연스레 과거의 책이라고 생각을 했고 그리고 당연 저자도 희끄무레한 머리색을 가진 초로의 교수로 머릿속에 여기고 있던 것이다. 이런!

   암튼 저자가 젊다는 것이 중요하다. 젊다는 것은 요즘의 사회 속에서 성장하고 배웠다는 것이고 그 속에서 가치와 생각들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니까.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의 경제학적 관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더구나 온전히 한국적 시각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유럽에서 공부하였고 그 바탕을 가지고 있다. 좀 더 생각의 얼개가 자유스러우리라 생각한다.

 

엄친아시군!

    

   저자는 경제학자로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이다. 그의 동생 장하석 역시 케임브리지대학교 석좌교수이다. 저자의 아버지 장재식은 행정고시 합격한 3선 의원에 전 산자부 장관 출신이며 어머니 최우숙은 영문과를 졸업했다. 한국사회는 혈연 집단이니 사촌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고려대 장하성 교수, 전 여성가족부 장관 장하진이 저자와 사촌지간이다. 이렇듯 저자의 집안은 ‘특출’한 집안이다. 일찍부터 학자적일 수 있었고 또한 경제력과 영향력까지 갖춘 집안이다. 잘 아는 말로, 엄친아다. 더구나 놀라운 건, 그들의 1세대인 저자의 할아버지와 형제들은 모두 독립운동을 했다. 그러니까, 또한 독립군의 자손이기도 하다.

가진 자들에게 무수히 당해와서인지 일찌감치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대충봐도 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대략 언론을 통해 소개된 이 집안의 분위기는 일반적인 가진 자들의 행로와는 사뭇 다르다. 앞서 독립군 자손에 저자의 부친과 형제들은 6·25전쟁에 참전하였고 상이용사가 된 이들도 있다. 그들의 집안은 형제애와 가족애가 돈독했고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깔려 있었다. 장하진 전 장관은 이렇에 집안의 분위기를 전한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현대사에 항상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러나 정의롭지 못한 일엔 절대 타협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자기 일에 성실해야 한다는 게 가풍으로 자리 잡은 거죠. 우리는 한번도 ‘좋은 대학에 가라, 좋은 과에 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다만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과를 선택하라’는 말씀은 하셨죠.” 이러한 분위기에 저자의 아버지의 역할이 아주 컸다고 한다.

   저자의 아버지는 아들의 태몽을 기억한다. 멧돼지를 품에 안는 꿈을 꾸었다 한다. 저자의 사진을 보면 통통한 얼굴 인상이 조금 닮았다(^^:::) 싶다. 우리들이 늘 꿈꾸고 싶어 하는 돼지꿈을 꾸고 잉태된 아이, 그가 바로 장하준 교수다. 이런, 꿈까지 ‘되는’ 사람이라니! 꿈의 기운 덕분이었을까. 저자는 영국에서 공부한 지 4년 만에 케임브리지 교수가 되었다. 나이로 얘기하자면 27세 때다.

놀라운 성과, 결과를 쥔 저자이기에 과정 역시도 순탄했을 듯 보이는데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기까지는 한번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1986년 케임브리지 대학은 석사과정이 아닌 디플로마(diploma:학위를 주지 않고 수료증만 주는 과정) 과정만을 저자에게 허용했다. 대학이 석사과정에 저자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가 참 놀랍다. ‘세계 20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대학 졸업생’이라는 이유였다고 하니...저자는 이 과정에 들어가서 4개월 만에 실력을 인정받았는데, 학과 교수들이 1년 만에 석사를 주겠다고 했고 박사과정도 마찬가지였고 박사과정이 끝나기 전에 “경제학과 교수를 하라"고 했다 한다. 그렇게 교수로 임명되고 나서 박사를 받았다 한다.

   도대체 얼마나 놀라운 실력을 보였기에 단순 감탄을 떠나 실제로 교수가 되었을까. 어떻게 공부하였기에 그러할까.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독서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많은 양의 책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었는데 도서관 직원이 아버지가 그 책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독서의 정도를 가늠하면 사례로 중학교 2학년 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영어원서로 11번, 번역판으로 12번을 읽었다 한다. 더구나 저자인 칼 세이건으로부터 직접 편지까지 받았다 한다.

    

불온하다구! 

 

   서울대에서 개발경제학을 전공하고 케임브리지에서도 같은 전공이었다. 저자는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로버트 로손(Robert Rowthorn) 아래서 연구하였는데 로손은 계획 경제와 시장경제의 절충안인 산업 정책 이론을 구체화시킨 학자이다. 저자 역시 그의 아래 공부를 하며 비주류 경제학 분야에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저자 자신이 제도주의적 정치경제학이라 부르는 경제학을 구체화하였다. 또한 저자는 옥스팜의 일원으로서 세계 은행, 아시아 개발 은행, 유럽 투자 은행 등의 자문을 맡았고 워싱턴 D.C.에 있는 정치 경제학 연구 센터의 회원이다. 에콰도르의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의 경제 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장하준은 《사다리 걷어차기》로 2003년도 뮈르달상을 수상했고 또 2005년에는 국제개발환경연구원(G-DAE)으로부터 2005년 바실리 레온티에프상을 수상했다. 세계 경제학계와 출판계에 저자는 유명한 인물이며 비주류경제학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그런 그가 영국의 대학에서 잘 연구하며 살아갈 줄 알았더니 모교인 교수직에 세번이나 지원했다고 한다. 매번 탈락하였는데도 말이다. 이쯤되면 그래도 지속적으로 한국에서 살고 싶었나 보다 싶다. 그런데 그의 임용탈락에 한가지 이유가 떠돈다. 이른바 저자가 비주류경제학자라는 이유가 그것이라 한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경제에 치중한 서울대 교수진들 사이에 홀로이 신자유주의 경제학자가 아니라는 이유란다. 표면적인 이유는 논문 자격요건이 어쩌고 한다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실질적인 이유는 공공연하게 나온 이 이유, 저자는 한국사회에서도 받아들이지 않고 대학에서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경제학자라는 것이다. 여전한 한국사회의 이러한 인식들이 세상살이를 서글프게 한다.

   아무튼 오히려 더 잘 되었다. 저자가 더 좋은 환경에서 자신이 펼치고 싶은 대로 주장을 이뤄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불온서적이라는 지적도 당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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