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YES! YES! YES!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 로고테라피 행동강령
이 책은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으며 삶의 의미를 추구한 프랑클 박사의 체험 수기다. 이 시대의 체험수기가 수용소에서 느낀 감정이나 생활들에 대한 사실적인 기록과 그에 대한 생각들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프랑클 박사는 그가 창시한 정신분석방법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전개하고 있다.
이 책의 한국 번역본의 제목이 수용소라는 곳에서의 경험을 부각시킨 <죽음의 수용소에서>이다. 그러나 저자가 지은 제목은 그의 로고테라피 이론과 연결되는 ‘삶의 의미를 찾아서’이다. 물론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어 여러 판이 나오면서 <인간의 의미 탐구>로 번역된 책도 있으나 모두 그의 이론을 부각시킨 ‘의미’를 제목으로 하고 있다.
독립적이었을 각 장들은 서문을 쓴 고든 알포트에 의해 첨가되었다. 제1부는 프랑클의 대표적인 저서로 그의 수용소 체험을 토대로 한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 2부는 그가 창시한 로고테라피에 대한 개념과 이를 설명하는 내용, 3부는 비극 속에서의 낙관으로 로고테라피 세계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
프랑클은 1부 수용소에서의 체험을 그가 겪은 시간의 순서로 엮으면서 그 때의 체험들을 그가 주창하는 로고테라피의 이론을 정립하는 형태로 이끌며 기술하고 있다. 2부의 로고테라피 개념은 그 제목이 개념이듯이 그의 이론에서 제기하는 개념들을 설명해 나가고 있다. 각각 내용을 이어가는데 간략한 표제어를 두고 있다. 이 표제어만으로도 전체적인 내용이 이어질 정도로 매우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다. 그만큼 내용의 명확성을 더하도록 서술하고 있다.
인간의 삶에서 의미를 빼앗아가는 것은 고통만이 아니다. 죽음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인생에서 정말로 무상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잠재 가능성이라는 말을 입이 닳도록 해왔다. 가능성은 그것이 실현되는 순간 바로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과거로 옮겨간다. 이렇게 과거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일회성을 탈피해 영원한 실체로 보존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속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그 속에서는 모든 것이 고정된 상태로 보존된다. p197
읽어가면서 ‘삶의 의미’라는 단어는 확실히 각인되었다. 그것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었고 화두이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감동적으로 느끼는 것은 그의 생각인지 그의 경험인지가 대두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그의 체험의 사례들에서 이어가는 그의 사고는 분명 감동적이고 존경스럽다. 끊임없이 삶에의 의미를 찾으려 하고 의지를 찾으려는 일관된 그의 삶의 태도는 존경스럽다. 그리하여 운명에 대한 얘기, 수용소에서 타인의 삶들을 관찰하며 조심스럽게 그들에게서 자신의 이론들을 찾아내는 서술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의 사례와 이론을 적용함에 적절히 자리한 니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말들도 그의 글들을 이해하고 감동을 더하는데 크게 자리한다. 또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은 ‘테헤란의 죽음’이란 부분이다. 이것이 그의 삶에서도 분명 적용되는 기분이다. 이러한 운명론적인 얘기를 보며 수용소에서 맞닥뜨린 그 많은 그의 운명들과 비교해 보며 다시 한번 인간의 운명과 의미에 대해 숙연하게 고뇌하게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yes라고 말하라”는 인생관은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놀랍다. 그의 삶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그럼에도를 가지고 있으니까.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열등의식에 시달렸다. 그것은 복합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과거에 ‘대단한 사람’이었거나 혹은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하찮은 존재로 취급되고 있다. 일반적인 수감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계층이 하락했다는 것을 느꼈다. p115~116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퇴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 앞에서 우리는 이와는 다른 의미에서 수감자들이 공포로 가득 찬 현재를 덜 사실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과거를 회상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러나 실제 존재하는 현실에서 현재를 박탈하는 행위에는 어떤 일정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실 수용소에서도 긍정적인 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기회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린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 앞에 닥치는 모든 일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진다. p129~130
그는 왜 이 책을 썼을까? 그가 경험한 수용소에서의 삶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니면 로고테라피 이론이 무엇인가를 알리기 위해서?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신분석의 내용을 전개한다는 특징 외에 이 책은 작은 의미의 단락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니까 대분류, 중분류, 소분류의 체계적인 분류로 내용을 전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용의 연결이 지극히 부자연스럽거나 하지는 않다. 오히려 작은 표제어 속에서 그 내용과 의미를 명확히 한다는 장점을 가진다. 반면 이것이 단점으로도 작용한다. 큰 체계를 두고 관련 내용들을 하위의 항목으로 두고 내용들을 정리하는 전개방식이 아니므로 전체적인 틀로서의 체계나 의미를 찾아내는 데는 조금 더딜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나무를 보느라 숲이 무엇인지를 찾는데 약간은 방해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그의 저술 방식으로 인한 특성이 이렇게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는 세 명의 여성 속기사들에게 그의 구술을 받아쓰게 하여 원고를 작성했다. 자료 없이 오직 그 자신 안에 있는 것을 9일 동안의 구술로 정리한 것이다. 그의 체험으로 인해 생생한 묘사와 그의 생각들을 전하고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글로써 다듬어진 글의 느낌보다는 말로써 다음은 느낌이 강하다. 물론 그가 겪은 경험의 고통을 이토록 차분히 비교적 절제된 톤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긴 하지만 그의 수용소의 이야기, 경험들이 이론적인 연결로 인해 부족한 듯이 보인다. 나는 저자의 수용소의 체험 속에서 느끼는 생각의 전개가 더 보고 싶으니 말이다.
일단 로고테라피에 대한 설명이 서문을 쓴 고든에 의해 요구된 것이라고 하니 이는 처음부터 같이 연결되어 묶을 의도가 있던 내용들은 아니었다. 2부가 첨부되고 이어서 3부가 첨부되어 이들 각각의 독립적인 내용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졌을 뿐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각각 1부와 2부가 서로 간의 신빙성을 보완하고 있다고 기술했고 1부는 자전적인 이야기이며 2부는 경험에서의 교훈을 요약한 것이라 서술하고 있다.
제2부의 로고테라피의 개념의 표제어와 그의 체험의 표제어들이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실제 그 내용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반복된 내용이 연이어 3장이 중복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것이 저자의 수용소의 체험에 방점을 두었다면 수용소의 경험들이 조금 더 드러나는 것이 좋았을 듯하다. 그리고 로고테라피에 대한 개념과 이해에 방점이 있다면 그 개념에 대한 명쾌하고 체계적인 분류와 서술방식으로 내용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 저자는 로고테라피 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요약정리하여 3부로 첨가시켰는데 이론적인 결론을 갱신하기 위해 덧붙인 것이라 하고 있다. 그것이 발표된 자료로서는 그 의미를 더하였겠으나 1부와 2부에 연이어 첨부되어서는 오히려 2부의 내용들을 더욱 깔끔하게 체계화하여 정리하는 것이 이론적인 명확성과 완결성을 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