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다, 엄친아다, 불온하다!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세계는 망신창이가 되었다.”

   더 볼 것도 없다. 이 문장에서부터 이 책은 내 맘에 쏘옥 들었다. 쉽고 편하게 다가오는 내용이 끝까지 책을 편하게 읽어 나가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살아가면서 묻게 되는 이 짜증나는 질문들을 속시원하게 비판해줘서 즐거웠다.

   경제는 어려운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한번쯤 생각해보고 경험해 보았을 의문들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는 책이다. 현재 통념처럼 되어 버린 자유시장 경제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자유시장을 주창하는 선진국의 논리와 그들이 시장에 가한 정책 사이의 문제를 지적하며 ‘정의롭지 않은’ 주장에 대해 사례들을 제시해 가며 반박하고 있다.

   그러니 23가지의 질문과 그 답들, 그들이 말하는 것과 그들이 말하지 않는다는 형태로 진행된 논쟁들이 재미를 더해 주었다.

   경제는 어렵다, 아무도 책에는 관심이 없다, 하물며 경제책인데,라는 통념을 비웃으며 승승장구하는 장하준의 책들이다. 이쯤되면 장하준 개인의 인기를 떠나 사람들이 얼마나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경제는 전문가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어려운 것처럼 포장되어 왔지만 사실 실생활에 밀접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이것을 실제 상황과 사례들에 비유하여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있다. 경제학의 ‘전문’책이지만 전혀 ‘전문’적이지 않은 듯한 방식이 아주 좋다.

   어쨌든 글은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시종일관 자신의 주장을 잘 이끌어가고 있는 점이 좋다. 이것은 저자가 가진 지식의 수준이 뒷받침되기 때문이겠지만, 일단 확고한 자기주장을 펼 수 있다는 것은 이야기의 방향을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그러니까 이러한 질문과 의문형태의 물음을 던지고 답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재미있게 읽다 보니 23가지 물음은 짧은데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저자가 한국 사람이다 보니 이 책이 번역본이라는데 생각이 미치게 된다. 번역보다 한국말로 설명해준다면 오히려 더 쉽고 절절하게 와 닿지 않았을까. 저자는 전문번역인을 통해 번역하게 했는데 자신이 번역하기엔 바쁘다 한다....그리고 자신이 한국말로 하다 보면 오히려 왜곡된 전달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영어로 쓰여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한국인이라 그런지 아쉽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번역본이 껄끄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매끄럽다.

    원체 유명한 저자라서 글의 맛과 더불어 저자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에 대해 처음 떠오른 것은 ‘젊다’ ‘엄친아’ ‘불온하다’였다.

    

 ■ 젊다 

 

  오랫동안 이름을 들어온 듯한데, 63년생이다. 오래도록 머리가 희끗한 노년의 교수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당연 그의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읽으려고 했었다, 읽었다고 착각했다가 사실이었다. 자세히 그의 저서들을 보니 읽은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저자의 글을 읽었다고, 저자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이러한 착각이 들었던 것일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번역본이기에 그제야 내가 완전 저자를 잘 모르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교포던가 또한 놀라며 다시 저자에 대한 소개를 뒤적였다. 역시, 한국에서 태어났고 대학 이후에야 영국에서 공부를 했다. 영국 대학 교수이니 영어로 당연 수업을 진행하고 글을 쓰고는 하겠지. 또한 우리나라를 향해 출판한 것이 아닐 터이니. 여러 번 칼럼이나 신문에서 저자의 글을 보곤 했는데 그것이 저자를 오래도록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 자주 언론에서 접한 이름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저자의 나이가 젊다는 것에 놀란 것은 내가 가지게 된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 탓이 크다. 정부로부터 금지 서적으로 분류된 탓에 저자의 이름이 더욱 공공연하게 오르내렸던 것 같다. 자본주의를 비판함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과도한 반응들이 오히려 그의 위상을 높여 주지 않았을까. 나 역시 요즘 시대에 ‘불온’ 서적이란 것이 지정되리라는 ‘설마’하는 안일한 생각에 당연스레 과거의 책이라고 생각을 했고 그리고 당연 저자도 희끄무레한 머리색을 가진 초로의 교수로 머릿속에 여기고 있던 것이다. 이런!

   암튼 저자가 젊다는 것이 중요하다. 젊다는 것은 요즘의 사회 속에서 성장하고 배웠다는 것이고 그 속에서 가치와 생각들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니까.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의 경제학적 관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더구나 온전히 한국적 시각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유럽에서 공부하였고 그 바탕을 가지고 있다. 좀 더 생각의 얼개가 자유스러우리라 생각한다.

 

엄친아시군!

    

   저자는 경제학자로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이다. 그의 동생 장하석 역시 케임브리지대학교 석좌교수이다. 저자의 아버지 장재식은 행정고시 합격한 3선 의원에 전 산자부 장관 출신이며 어머니 최우숙은 영문과를 졸업했다. 한국사회는 혈연 집단이니 사촌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고려대 장하성 교수, 전 여성가족부 장관 장하진이 저자와 사촌지간이다. 이렇듯 저자의 집안은 ‘특출’한 집안이다. 일찍부터 학자적일 수 있었고 또한 경제력과 영향력까지 갖춘 집안이다. 잘 아는 말로, 엄친아다. 더구나 놀라운 건, 그들의 1세대인 저자의 할아버지와 형제들은 모두 독립운동을 했다. 그러니까, 또한 독립군의 자손이기도 하다.

가진 자들에게 무수히 당해와서인지 일찌감치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대충봐도 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대략 언론을 통해 소개된 이 집안의 분위기는 일반적인 가진 자들의 행로와는 사뭇 다르다. 앞서 독립군 자손에 저자의 부친과 형제들은 6·25전쟁에 참전하였고 상이용사가 된 이들도 있다. 그들의 집안은 형제애와 가족애가 돈독했고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깔려 있었다. 장하진 전 장관은 이렇에 집안의 분위기를 전한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현대사에 항상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러나 정의롭지 못한 일엔 절대 타협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자기 일에 성실해야 한다는 게 가풍으로 자리 잡은 거죠. 우리는 한번도 ‘좋은 대학에 가라, 좋은 과에 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다만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과를 선택하라’는 말씀은 하셨죠.” 이러한 분위기에 저자의 아버지의 역할이 아주 컸다고 한다.

   저자의 아버지는 아들의 태몽을 기억한다. 멧돼지를 품에 안는 꿈을 꾸었다 한다. 저자의 사진을 보면 통통한 얼굴 인상이 조금 닮았다(^^:::) 싶다. 우리들이 늘 꿈꾸고 싶어 하는 돼지꿈을 꾸고 잉태된 아이, 그가 바로 장하준 교수다. 이런, 꿈까지 ‘되는’ 사람이라니! 꿈의 기운 덕분이었을까. 저자는 영국에서 공부한 지 4년 만에 케임브리지 교수가 되었다. 나이로 얘기하자면 27세 때다.

놀라운 성과, 결과를 쥔 저자이기에 과정 역시도 순탄했을 듯 보이는데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기까지는 한번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1986년 케임브리지 대학은 석사과정이 아닌 디플로마(diploma:학위를 주지 않고 수료증만 주는 과정) 과정만을 저자에게 허용했다. 대학이 석사과정에 저자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가 참 놀랍다. ‘세계 20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대학 졸업생’이라는 이유였다고 하니...저자는 이 과정에 들어가서 4개월 만에 실력을 인정받았는데, 학과 교수들이 1년 만에 석사를 주겠다고 했고 박사과정도 마찬가지였고 박사과정이 끝나기 전에 “경제학과 교수를 하라"고 했다 한다. 그렇게 교수로 임명되고 나서 박사를 받았다 한다.

   도대체 얼마나 놀라운 실력을 보였기에 단순 감탄을 떠나 실제로 교수가 되었을까. 어떻게 공부하였기에 그러할까.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독서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많은 양의 책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었는데 도서관 직원이 아버지가 그 책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독서의 정도를 가늠하면 사례로 중학교 2학년 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영어원서로 11번, 번역판으로 12번을 읽었다 한다. 더구나 저자인 칼 세이건으로부터 직접 편지까지 받았다 한다.

    

불온하다구! 

 

   서울대에서 개발경제학을 전공하고 케임브리지에서도 같은 전공이었다. 저자는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로버트 로손(Robert Rowthorn) 아래서 연구하였는데 로손은 계획 경제와 시장경제의 절충안인 산업 정책 이론을 구체화시킨 학자이다. 저자 역시 그의 아래 공부를 하며 비주류 경제학 분야에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저자 자신이 제도주의적 정치경제학이라 부르는 경제학을 구체화하였다. 또한 저자는 옥스팜의 일원으로서 세계 은행, 아시아 개발 은행, 유럽 투자 은행 등의 자문을 맡았고 워싱턴 D.C.에 있는 정치 경제학 연구 센터의 회원이다. 에콰도르의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의 경제 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장하준은 《사다리 걷어차기》로 2003년도 뮈르달상을 수상했고 또 2005년에는 국제개발환경연구원(G-DAE)으로부터 2005년 바실리 레온티에프상을 수상했다. 세계 경제학계와 출판계에 저자는 유명한 인물이며 비주류경제학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그런 그가 영국의 대학에서 잘 연구하며 살아갈 줄 알았더니 모교인 교수직에 세번이나 지원했다고 한다. 매번 탈락하였는데도 말이다. 이쯤되면 그래도 지속적으로 한국에서 살고 싶었나 보다 싶다. 그런데 그의 임용탈락에 한가지 이유가 떠돈다. 이른바 저자가 비주류경제학자라는 이유가 그것이라 한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경제에 치중한 서울대 교수진들 사이에 홀로이 신자유주의 경제학자가 아니라는 이유란다. 표면적인 이유는 논문 자격요건이 어쩌고 한다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실질적인 이유는 공공연하게 나온 이 이유, 저자는 한국사회에서도 받아들이지 않고 대학에서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경제학자라는 것이다. 여전한 한국사회의 이러한 인식들이 세상살이를 서글프게 한다.

   아무튼 오히려 더 잘 되었다. 저자가 더 좋은 환경에서 자신이 펼치고 싶은 대로 주장을 이뤄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불온서적이라는 지적도 당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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