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
바보들! 자네들은 나를 기관단총처럼 써먹어야 돼.
노먼 베쑨이 자기 시대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 해결해 나감으로써 역사의 진보에 기여한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앞선 자의 길인 것이다(p14).
이 인물사는 베쑨의 생애를 시간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물론 시작은 그의 죽음으로 출발하여 과거를 회상하는 형태이다. 베쑨이 성장하던 어린 시절과 의학을 공부하기까지의 시절을 제1부 우리 시대의 영웅에서 기록하고 있다. 제2부는 생명의 칼 정의의 칼이라는 제목으로 의사로서 결핵에 걸려 이 병을 극복하고 다양한 수술기구들을 개발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다루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될 당시의 제목이 바로 이 제2부의 제목이다. 제3부는 스페인내전이 일고 있는 전장에서 혈액을 공급하며 활약한 모습을 다루고 있다. 제4부는 중국에서 부상병들을 치료하고 병원을 세우고 의료진을 양성하는 베쑨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공저자들이 서문에서 밝혔듯이 그들은 베쑨의 일기와 편지 등을 수록하고 그의 생애를 설명하기보다는 기술하였다고 했다. 전체적으로 잔잔한 영화 한편을 보는 느낌이랄까. 도입부와 결말 부분이 일치하는 것 역시, 현재에서 과거 회상씬으로, 그 현재에서 또다시 과거 회상씬으로 연결되는 것 역시 영화적인 느낌을 갖게 했다. 그러고 저자를 찾아보니, 저자가 각본가였다. 그렇기 때문인지, 묘사적인 부분이 매우 부족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베쑨 자신의 기록으로서 그 감정이나 사고를 제시하고 있지만, 저자들의 일종의 해석이랄까. 저자의 의지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느낌이 덜했다는 것이다. 물론 서문이나 에필로그에서 기술한 노먼 베쑨에 대한 직접적인 저자의 의견이 없이도 닥터 노먼 베쑨의 삶에서 그의 인생철학에서 우리는 노먼 베쑨이 어떠한 의사이고, 혁명가이며, 사람인지를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어느 시대이든 영웅이란 자기 시대가 모든 사람들에게 제기하고 있는 주요 과제들을 뛰어난 결단력과 용기와 능력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오늘날 이러한 과제들은 전세계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따라서 현대의 영웅은 그가 자국에서 활동하든 타국에서 활동하든 간에 역사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당대적인 의미에서도 세계적인 영웅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p22).
노먼 베쑨은 의사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무기를 가지고, 즉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그 일을 통해 투쟁했다. 그는 자신의 분야인 의학에서 전문가이자 개척자였다. 그는 자신의 무기를 늘 새로이 날카롭게 갈았다. 그리고 그는 파시즘과 제국주의 반대투쟁의 선봉에 서서 자신의 능력을 초지일관의 자세로 열성적으로 발휘했다. 그가 볼 때, 파시즘이란 인류에게 그 어느 질병 못지않게 사악한 질병이었다. 그것은 무수한 사람들의 정신과 육체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의 가치 자체를 완전히 부정함으로써 인간의 건강과 활력과 번영에 기여하는 모든 과학들을 부정해 버리는 전염병과도 같은 것이었다(p22~23).
그 후 또 많은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사람들에 대한 평가 역시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의 명성은 감소되었고, 어떤 사람들의 명성은 증대되었다. 그러나 베쑨의 명성은 아무런 도전없이 계속 커질 뿐이다(p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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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노먼 베쑨, 1922년 (http://ko.wikipedia.org) | 지금은 노먼 베쑨 기념관으로 활용되는 베쑨의 생가 <출처: http://blog.naver.com/lebendiges> |
아무래도 실제 삶을 살아간 이의 인생을 엿보게 되면, 특히 그가 영웅으로 칭송받는 이라면, 그가 살아온 인생 전체가 감동이다. 따라서 어떠한 부분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가 살아온 인생을 평가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약간의 주저함이 생긴다. 결국 나는 그의 삶에서 애처롭고 애처로운 사건에 대해 감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전기를 인물의 생애로 보지 않고 그냥 하나의 글로서 생각한다면, 그의 일기와 편지들이 생동감이 느껴져 좋았다. 1부에서의 그의 글들은 그의 내적인 변화와 비교적 개인적인 상황과 인과에 의한 변화와 각성이라면 2부 3부와 4부는 개인을 탈피하여 세계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의 변화를 보다 힘차게 각성하는 것이라 유달리 느껴진다. 실제 그가 공산당원이 되면서 하는 연설이나 병원을 설립하면서 하게 되는 연설들, 친우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에서 그의 현실 속에서의 생각이나 느낌이 묻어나 있어 그러한 편지들에 담긴 글이 매우 좋다.
베쑨은 의사로서 자신의 본분을 통해서 사회적인 변혁까지를 생각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작은 의사에서 큰 의사로 변화되기까지 사회현실을 인식하며 주장하는 국민보건에 대한 그의 생각, 사회복지에 대한 생각에 대한 담긴 글들이 인상깊게 다가온다. 복지과잉시대라고 부르지만 아직 보편적 복지보다는 잔여적 복지에 대한 개념이 행해지는 이 시대에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대표적인 그의 말을 덧붙인다.
국민보건을 확보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질병을 재생산하는 경제체제 자체를 변혁시킴으로써 무지와 빈곤가 실업을 없애는 것입니다. 환자 개개인이 자신의 치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현재의 관행으로는 국민보건을 확보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관행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이며 소비적이며 완전히 시대착오적인 것입니다. 우리 의사들과 개인 자선가들 그리고 박애단체들이 그 존속을 도와왔습니다. 그것은 19세기의 개막기에 일어난 산업혁명과 함께 이미 1세기 전에 마땅히 사멸되었어야 했습니다. 사회의 각 부문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사적 건강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건강문제가 다 공적인 것입니다. 일단의 사람들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병에 걸린다면, 그것은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국민보건이라는 문제는 정부의 주요한 책임이자 의무로서 인식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p205).
사회주의 의료제도의 반대자들이 강조하는 주요 반대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첫째, 창의력이 사라지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아마도 인간 당나귀들은 이 현대적 야만상태 속에서 당근이 코 앞에서 자신을 유혹해 주기를 바라는 모양입니다만, 그 당근이 반드시 황금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명예의 꽃다발도 그 역할을 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관료주의화의 위험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밑에서 꼭대기까지의 민주적 조직통제에 의해 억제될 수 있습니다. 셋째, 환자 자신이 의사를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역시 가공의 신화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유감스럽게도 환자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 자신의 입에서 나오고 있을 뿐입니다. 예컨대 환자에게 제한된 선택권을 주어서 소수의 의사들 가운데 담당의사를 선택하도록 한다는 것인데, 만약 환자가 그 의사들 모두가 다 싫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입니까? 이 의사는 이렇고 저 의사는 저렇다면서 따지고 드는 환자가 있다면, 그런 환자는 정신병원으로 보내야 할 것입니다. 암거위를 요리하기 위해 쓰는 소스는 또한 숫거위를 요리하는 데에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의사가 환자의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언어도단입니다. 99%의 환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치료의 결과이지 의사의 개성이 아닙니다(p208).
많은 페이지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쉽게 읽혀진다. 한편으로 베쑨의 삶을 단순하게 묘사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삶의 굴곡을 굳이 롤러코스터처럼 기술할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 극적인 장치는 필요하리라 보는데, 매우 조용조용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것은, 어쩌면 처연한 느낌이기도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아마도 어떠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인생을 그가 보낸 편지와 일기들로 정적인 느낌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따라서 이 책은 그가 의사로서 활동한 것과 전쟁이라는 특수하고도 당시 보편적인 상황에 처한 역동적인 그의 삶을 조용히 보여주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면서 그보다 더 역동적인 그의 생각들이 더욱 부각되는 듯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의 생각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베쑨 자신이므로 공저자들이 그의 생각을 평가한다면 매우 어정쩡했으리라 보는데, 그만큼 그의 일기와 편지들이 수집되어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다행이라고 본다.
서문을 통해 이 책의 저자가 베쑨과 안면 없는 기자이고 그 기자에게 베쑨의 이야기를 전한 이가 친구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저자에 대한 기록을 통해 신문기자 출신인 저자가 베쑨과 친분이 있고 베쑨과 친분없는 저자의 친구가 자료를 수집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하고 다시 보니 저자는 자신과 베쑨의 친분이 있으면서도 개인적으로 본 베쑨과의 일화를 묘사하지 않고 있다는 데 놀랐다. 그 자신이 희곡이나 영화각본을 많이 쓰고 신문기자로 활동해서인지 영화적 대본 느낌과 함께 전체적으로 기사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저자가 본 베쑨의 모습이라거나, 다른 모습들을 기술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다. 오히려 베쑨 자신의 기록들을 중심으로 엮어 가다 보니 이는 자서전을 읽은 듯한 모습이다. 다른 인물에 대한 평전들을 보면, 어쩔 때는 지나치게도 저자의 개입이 흐름을 방해하기도 한다. 물론 이 책은 그런 방해를 조장하는 느낌은 없지만,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보다 베쑨을 이끌어내는 묘사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회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가 각 장의 시작뿐만 아니라 베쑨의 일기나 편지와 함께 나타나면 더 좋았을 듯 했고, 베쑨이 죽는 장면에서 멈춰지는 것이 아니라 베쑨의 행동과 그의 존재가 변화를 이끌었던 중국 마을에 대한 이야기도 더 덧붙여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살아남은 베쑨의 가족과, 친구, 동료들에 관한 이야기가 부록으로 소개되었으면 한다거나 이 책에서 많은 등장인물들은 분명 실존인물임에도 가명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아쉽다. 아마도 익명으로 요청받았던 듯한데 이 전기가 보다 사실적일 수 있기 위해서는 그런 부분들에 대한 세심함이 필요했을 듯 보인다. 더구나 베쑨 자신 그의 생애에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의 일들을 이루어냈을 터인데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가 별로 없어서, 베쑨이 살았던 그 시대 그 인물들과 베쑨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도록 설명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베쑨은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홀로 각성하고 홀로 행동하는 인물인 듯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조금 언급되는 인물에 대한 주석을 통한 소개와 관련된 사진들이 첨부되었으면 하고, 무엇보다 베쑨의 기록들을 참고하고 있으니, 어느 한 장이라도 베쑨의 자필 편지나 일기를 보여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끔은 커피라든가 로스트 비프 또 애플파이라든가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이 간절히 생각날 때가 있다네. 천국의 음식에 대한 망상이랄까……. 그리고 정말로 보고 싶은 것은 책이라네. 지금도 여전히 책이 씌어지고 있는가? 음악이 아직도 연주되고 있는가? 자네는 여전히 춤도 추고 맥주도 마시고 그림도 구경하는가? 부드러운 침대의 깨끗한 시트 위에서 잠을 잔다면 어떤 기분일까?(p572)
전쟁속에서 이와 같은 기록을 남긴 그의 필적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내밀한 저 마음들을 함께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애틋하고, 감사한 마음에.
바보들! 자네들은 나를 기관단총처럼 써먹어야 돼!
이 역시도 전쟁통에서 노먼 베쑨이 한 말이다. 그의 마음과 그의 행동들이 기관총처럼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