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욕구는 한국이 싫어서


   올림픽에 각 나라의 선수단의 행렬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줄기차게 등장하는 피켓을 보며 ‘저긴 어디지?’ 하는 나라들도 등장한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나라가 있는데 가본 곳은? 조금이라도 아는 곳은? 참……. 80일간의 세계일주도 가능한 시대지만 내가 그것이 가능하지 못하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이유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유가 있거나 없거나 세계를 누비는 사람도 많다. 이 세계는 수많은 나라에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만큼 여행, 다른 곳을 방문하는 일은 무한대로 일어날 일이다. 그 무한대 속에 역시나 증가하는 여행기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여행지에 대한 소개 책자가 아니라 순수 여행기, 여행에세이의 특징은 첫째 누가 썼느냐다. 그 글을 쓴 이가 아주 유명한 사람이거나 일반인이다. 너무도 당연한 걸. 그럼 일반인의 여행기는 어떤 특징이 있는가. 아주 특별하게 ‘여행을 떠난’ 이야기다.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여행기라 분류되는 여행의 에세이가 가진 차별성이 사실 없더라는 것이다.

   유명한 사람의 여행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의 여행이든 동경을 일게 만드는 여행을 떠나고 그 곳에서 자신의 감상을 가지고 그것을 서술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여행기가 하고자 하는 말은 늘 ‘나는 그곳에서 나를 찾았다’, ‘여행은 전환과 변화의 기회다’,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떠나라, 여행을 가보지 않고는 말하지 말라’. 뭐, 이런 이야기를 특별히 감상적인 문체로 글로 쓰고 있다.

   그 기록을 읽는 독자에게는 특정한 곳에 가기 위한 참고용이거나 대리만족을 얻기 위함이거나 유명하다니까, 베스트셀러라니까 하면서 책을 읽지만 가끔 타인의 여행기는 씁쓸한 만족을 남긴다. 여행기란 그래서인지 나의 여행의 기록이 아닌 다음에야 글쓴이들 자신의 힐링이 될 뿐 나의 힐링이 되지는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취향, 스타일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떠난 두 사람이 여행스타일이 맞지 않아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행기에 대한 감상 역시도 책들과 마찬가지로 스타일이 있으니까,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데도 어떤 글은 와닿고 어떤 글은 그저 그렇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스타일을 얘기하니 여행기에 대한 나의 취향은 여행에 대한 소개와 감상보다는 인문학이 가미된 책을 더 선호하는 듯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지 그곳 풍경을 바라보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이야기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어떤 여행기는 여행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오히려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을 결심하기 전의 이야기에 솔깃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또한 기억에 남는 여행에세이 또한 흐릿한 이유가 될지 모른다.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탄생한 이야기일 것이지만 모두 그런 이야기를 향해 가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기억에 남는 여행에세이가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이나 괴테의 여행기록처럼 문학작가들의 여행 기록은 인상적으로 남는다. 이들이 작가라는 점 때문인가 생각도 했지만 또한 시대적인 묘미도 있는 듯하다. 최근의 여행이 아니라 그들이 떠났던 시대의 느낌을 아울러 볼 수 있기 때문에. 읽은 여행책 중 좋은 느낌이었던 건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였다. 

작가도 낯선 이름이었고 처음 책을 쓴 사람이었지만 여행에 관한 책 중에서 다시 읽고 싶은 몇 안되는 책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런 스타일을 내가 선호하나.

 가을이 되었고 축제의 향연이다. 폭죽소리와 음악소리가 땅을 울리며 귀로 전해지는데 같이 마냥 즐겁지가 않다. 여행을 맘속에 품지만 발로는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를 또 생각하지만 맘속의 그 열망이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 이유인 듯도 하다. 아주 강렬한 열망으로 여행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면서도 미미하게 여행을 마음 속에 드리우고 있는 것은 여행이라기보다 그저 “떠남”에 대한 욕구라는 생각이 든다.

   마침 떠오르는 책이 <한국이 싫어서>이다. 이 책은 소설책으로 문학적으로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문체며 전개방식이며 말들이 전혀 울림이 없었다. 그저, 책 제목만이 인상적이었다. 나의 스타일과는 역시 달랐다고 말하면 되겠다만 이 책이 그토록 열광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보면 나만큼 한국이 싫은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이 얘기에 공감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이 떠남에 대한 욕구는 다른 이유 없이 한국이 싫어서이다. 그러니 여행에 대한 욕구와는 다른 종류의 욕구이다. 축제의 음악이 난무하는 현장에서도 이탈하고 싶은 마음 가득한데 이 난장판인 나라를 뜨고 싶은 마음이랴 오죽하랴. 한국의 뉴스가 들려오지 않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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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글엔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제목 때문에 라오스 여행기인 줄 알았다. 역시나, 라오스에 어떤 매력이 있기에 작가가 라오스를 여행했고 그리고 라오스만의 특별함을 작가식대로 펼쳐내는 이야기인줄 알았건만 라오스는 어디로 가고 보스턴이 튀어나왔다. 찰스 강변의 오솔길을 걷던 보스턴, 뉴욕과 포틀랜드, 아이슬란드, 그리스 미코노스 섬과 핀란드, 라오스의 루앙프라방, 이탈리아 토스카나, 일본 구마모토. 이 여행기에서 작가가 담아온 나라들이다.

  이 책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이고 해외에서 곧잘 머물렀던 작가의 경험을 담은 책이다. 이미 잡지에 기고한 에세이들을 다시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을 했던 그 시간의 경험이 지금보다 더 생생한 기억일 수 있겠다 싶긴 했다. 그런데 작가는 그때도 벌써 책으로 엮기 위한 글을 따로 써두고 있었다 한다. 참, 여러 면에서 놀랍다.

  온전한 여행의 느낌보다 조금 길게 낯선 나라에 머물며 여행자와 생활인의 느낌이 섞인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기억도 끄집어낸다. 작가의 대표작인 <노르웨이의 숲>은 그리스 섬에서 탄생했다. 또한 숲과 섬, 바다 등의 풍경이 가득한 곳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일상생활자로서 방문했던 장소에 대한 글도 상당하다. 던킨 도너츠 방문기와 더불어 스타벅스 비교하기, 재즈 클럽 ‘빌리지 뱅가드’ 및 레스토랑 방문기들이 그렇다. 자연을 보며 느끼는 감상과 이러한 현대의 공간을 마주하며 느끼는 감상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물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린 것은 아니다. ‘여행지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라는 것이 나의 철학(비슷한 것)이다. p137


  그렇다고, 이 여행기에서 작가가 딱히 안 풀리는 얘기를 해 놓진 않았다. 작가의 철학 때문인지 작가의 여행에서 잘 안 풀리는 일들은 비켜간 건가 싶을 정도로 특별한 ‘사건’들이 있진 않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여행을 행하고 그곳을 감상하고 생각하는 한 사람의 시선만이 담겨 있다.

  책의 제목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인 만큼 라오스에 대한 인상이 기억에 남는다. 이 말은 작가가 일본에서 라오스로 가는 직항편이 없어 갈아타는 경유지 하노이에서 들은 말이다. 라오스로 가기 위해 하노이에서 1박을 하던 중에 베트남사람이 물은 말, “왜 하필 라오스같은 곳에 가시죠?” 이 말에서 작가는 “베트남에는 없고 라오스에만 있는 것이 대체 뭐길래요?”라는 뉘앙스를 읽으며 라오스 여행의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그때까지도 이유가 없었지만, 가서 그 ‘무언가’를 찾겠다고. 그 질문은 작가에게 여행이란 본래 그런 것이라고 느끼게 만들어 주었고 보다 더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다.


“라오스(같은 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베트남 사람의 질문에 나는 아직 명확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라오스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는, 소소한 기념품 말고는 몇몇 풍경에 대한 기억뿐이다. 그러나 그 풍경에는 냄새가 있고, 소리가 있고, 감촉이 있다. 그곳에는 특별한 빛이 있고, 특별한 바람이 분다. 무언가를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다. 그때의 떨리던 마음이 기억난다. 그것이 단순한 사진과 다른 점이다. 그곳에만 존재했던 그 풍경은 지금도 내 안에 입체적으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꽤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p181~182


  작가가 여행한 시간은 지금보다 오래 전이지만 그 시간의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곳에 가본 적 없고 작가 또한 재방문하지 않았으니 기억은 작가가 여행한 그 시간 속에 그곳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작가의 여행에 대한 생각은 그대로일까?

 

혼자서 낯선 땅을 여행 하다보니 단순히 숨을 쉬고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쯤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더랬다. p220


  사람마다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듯이 여행에 대한 생각 역시도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그리고 여행을 글로 풀어내는 방식도 감정도 차이가 있다. 작가의 여행기는 한창 노르웨이 숲이 아니라 <상실의 시대>로 번역되던 시절의 절정의 인기 시절의 글 몇편만을 기억하고 있는 터라, 생각했던 스타일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잔잔했다.

  전세계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열풍이 불고 우리나라에서도 인기있는 대표 작가이기에 이 작가의 에세이도 많은 이들에게 관심이 증폭되었을 테다. 여러 여행기를 읽다 보니 이 작가의 여행기의 차별성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건, 그만큼 작가가 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토록 수많은 여행기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를 더불어 생각한다. 출판시장에서 여전한 열풍을 지속하기 때문에?

  이렇든 저렇든 항상 여행기의 결론은 이것인 것 같다. 자, 떠나라!

  하루키 역시 그렇게 끝맺는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면, 아무도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여행을 가진 않을 겁니다. 몇 번 가본 곳이라도 갈 때마다 ‘오오, 이런 게 있었다니!’ 하는 놀라움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행입니다.

여행은 좋은 것입니다. 때로 지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곳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있습니다. 자, 당신도 자리에 일어나 어디로든 떠나보세요. p26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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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쉽Blue Sheep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4편의 장편소설을 탈고하고 한국문학계에서 특히 장르소설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정유정은 열심히 달려온 만큼 탈진 상태에 이른다. 헛헛함과 허망함을 뛰어넘어 작가로서의 공포까지를 느낀다. 욕망이 결여된 상태에 놀란 작가의 처방은, 여행이었다. 캐리어를 끌고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여행도 아니고 돛단배 띄어진 풍경을 바라보는 휴양도 아니라, 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것.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외치며 작가는 안나 푸르나를 향해 마음을 굳힌다.

   이것이 일시적으로 떠오른 생각인지 오래 내재한 꿈이었는지 모르지만 작가는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안나푸르나를 가기 위해 돌입한다. 일단, 작가는 그곳을 혼자 가기는 주저한다. 여권도 없었던 해외여행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던 것이다. 여행 일정을 알아보는 것도 여행 채비를 꾸리는 것도 모두가 낯선 경험인 작가는 동료 작가이자 어린 김혜나 작가를 파트너로 17일간의 안나푸르나 환상 종주를 떠난다.

   이 17일간의 안나푸르나의 여행은 장엄하고 낭만적일 듯 보이지만 정유정이 겪고 기록하는 이 여행의 기록은 서투른 여행자의 당혹스런 경험에 대한 일기이다. 글을 읽다 보면 작가로서의 느낌이 아니라 처음 가는 여행에서 난관에 부딪히며 힘겹게 안나푸르나 일정을 마친 이야기를 고생스럽게 늘어놓는 ‘아는 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이 느껴진다. 문학적이고 진지한 느낌보다는 좀더 발랄하고 막상 첫 여행에서 내가 겪으며 어떡해야 할지 몰라 울상짓는 이야기를 보게 되는 것만 같다. 낯선 여행지에서 겪는 자잘한 병치레들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웃음터지는 일들이 엮인 이야기다. 뭔가 어리버리하면서도 결국엔 세계 최고의 히말라야 안나 푸르나의 봉우리를 넘는 이 트래킹 일정을 소화해내는 작가의 집념은 놀랍다. 작가는 자신의 용기는 늘 절박함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토록 작가에게 글을 쓰는 일이란 안나 푸르나, 그 높고 험준한 산봉우리를 넘는 일과 비견되는 것이었던가.

   네팔 히말라야 산맥의 안나 푸르나. 유명한 산악인들이 즐겨 이곳을 찾았고 힘겨운 트레킹 코스로 알려진 이 곳은 맞닥뜨리게 될 아름다운 풍경에 그 모든 힘겨움을 이겨내고 힘을 얻게 된다. 해발 5,416미터의 쏘롱라패스가 마의 지역이라 불리는 곳이고 많은 이들이 고산병에 힘들어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저 막연히 작가가 이 책을 내었을 땐, 이 곳을 통과해 코스를 마쳤으니 당당히 책을 낸 것이 아닌가 생각하긴 했지만, 작가가 이토록 어설픈 여행의 경험자이자 소소한 예민미를 가진 약체력인 줄 알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처음의 여행에 낯선 곳에서 맞닥뜨린 것은 자연에 대한 경이를 뒷전으로 하고 그 일정을 소화해내는 여정에서 겪게 되는 소소한 ‘사건’들이 경치에 대한 무한한 찬사와 감상보다 괜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같이 힘든 코스를 등반하며 그 경치를 감상하는 기분이 되었기 때문일까.

   작가는 17일간의 이 여정을 세세히 기록한다. 안나푸르나의 일반적인 트레킹 코스의 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어 같이 등반하는 기분이 된다. 힘들게 오르며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서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일들이란 마냥 힘들다, 죽겠다가 아니다. 그런 속에서도 머릿속으로는 하염없이 무언가를 미지의 어떤 것들, 과거의 일들, 그런 저런 일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그 여행을 떠나 그 속에 있는 작가는 작가대로, 글을 읽는 이는 읽는 그대로.

손 전체가 짙은 보랏빛이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저체온증에서 온 말단청색증이었다. 그대로 두면 동상이 되고, 심화되면 절단해야 하는 위험한 징후였다. p175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작가의 육체적인 고통을 인지하면서 내가 저 상황이라면 끝가지 안나푸르나를 종주했을까를 질문하게 된다. 어떤 상황을 가정한다고 해서 막상 닥쳤을 때 그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생각을 해본다면 나 역시 놓치고 싶지 않은 일이란 생각을 하면서 꾸역꾸역 산을 올랐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그 상황에서 따라야 할 것들과 더 우선해야 하는 것들이 있긴 하겠고 그것들을 잘 조율해야 하겠지만.

   또한 모든 것은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긴 하고. 하지만 의지라도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며, 무엇을 할 게 있을까. 작가는 여행에서 "블루 쉽(Blue Sheep)"을 만난다. 4000미터 이상 고지대에만 산다는 야생 양으로 경계심이 많아 사람 눈에는 좀처럼 띄지 않는 신비로운 동물이라는데 안내인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그들의 앞길에 행운이 있을 거라는 안나푸르나의 계시라고. 작가의 의지와 계시가 서로 맞물려 아니 작가의 의지가 계시를 이끌어낸 건 아닐까 잠깐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때가 있어 인간으로서 성숙해지고 삶이 단단해지지 않았겠느냐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 어둠은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인생과 싸우는 법보다는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p133

 

   작가는 여행에서 확신을 얻었다 말한다. 자신을 지치게 한 것이 삶이 아니었다고. 자신의 본성은 싸움닭이었다고. 그래서 죽을 때까지, 죽도록 덤벼들겠다는 다짐을 하며 새삼스럽게 처음 여행을 떠날 때와 다를 바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이다. 많은 이들이 놓는 것을 배우고 편안함을 배우고 삶의 여유를 여행에서 얻었노라 하던 것을 생각하면 작가의 결론은 의외다. 작가에 대해 잘 모르니 의외라고 할 것도 없긴 하다. 어쨌든 작가는 오히려 힘이 남아도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 곳에서 병을 얻어왔다. 이름하여 네팔병. 누구나 여행에의 경험은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자신을 새로이 발견하고 온 이 여행을 그리워하고 생각할 것임을 의심치 않을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앞으로 쓰게 될 작가의 이야기 속에는 이 여행에서의 경험과 감상들이 은은히 배어날 것이다.

 

‘네팔병’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한 번 히말라야에 다녀오면 반드시 또 가고야 만다는 불치병이란다. 여정의 험난함과 육체적 고통 속에서 누리는 영혼의 자유로움, 온전히 자기 자신과 만나는 특별한 순간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산병만큼이나 흔하게 걸린다는 이 지병에서 나 역시 피해가지 못했다.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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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꿈만 꾸어도 좋다, 당장 떠나도 좋다

정여울, 홍익출판사, 2014.


  유럽을 여행할 때면 가고 싶은 곳, 해보고 싶은 것은 타인의 경험에서 기인한다. 먼저 여행을 한 이들을 통해 어느 장소의 노을이 멋졌더라, 어디의 무엇이 맛있더라, 어디의 뭔가가 재밌는 체험이더라. 그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뇌리에는 차곡차곡 여행지와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리스트로 정리되고 있다.

  이 책 내가 사랑한 유럽은 그런 여행에 대한 소개다. 작가는 정여울이지만 작가가 선정한 여행지라기보다 대한항공과 유럽 여행자들이 특정한 테마별에 따라 선정한 유럽이다. 몇몇 여행자가 아니라 무려 33만 명이 선정했다니 다수에게 인상적인 장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열 개의 테마에 각 열 곳의 지역을 선정했으니 100군데의 유럽 여행지가 소개된다. 물론 나라는 중복되더라도 같은 나라에서도 지역에 따라 느낌이 다르니 이것은 나라에 대한 기억도 더하거니와 무엇보다 ‘어떤 여행’일까 하는 그 주제를 더 떠올리면 될 것이다.

  주제, 테마는 그런데 구체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다. 내가 사랑하는 유럽이라거나 직접 느끼고 싶은 유럽, 달리고 싶은, 갖고 싶은, 한달쯤 살고 싶은, 시간이 멈춘 듯에서 볼 수 있듯이. 그러니 보다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여행의 이미지가 이 장소들을 특별하게 보이게 할 것이다. 거기에 정여울의 글이라 이 감성은 배가되는 듯하다. 작가는 10년 동안 가장 열심히 한 일이 여행을 간 일이라고 할 정도로 여행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이 장소들에 척척 감상을 쏟아낸다. 이 여행지를 다 눈에 손에 발에 담아봤다니 역시나 부러움이......

  타인들의 여행경험을 읽다 겪게 되는 문제는 여행지의 안내책자처럼 내가 그곳에 갔을 때, 나는 그들과 같은 ‘경험’을 하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누군가는 여기서, 이렇게, 누군가를, 무엇을, 어떻게…. 그런 것들. 마치 매뉴얼처럼 만나고 해야 하고 느껴야 하는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허탈하다. 하지만 사람의 느낌이란, 감성이란 차이가 있는데 어쩌면 여행에서의 감성과 감상까지 타인의 것을 가져오려는 데서 오는 선망과 욕구 때문 아닐까. 아니, 타인들이 한 것이라면 나도 꼭 해봐야 하는 그런 욕망들....

  오롯이 여행에서 내 느낌을 가지는 일, 타인이 그렇게 느꼈더래도 그것은 그의 기억이며 내가 마주치는 경험에 귀기울여야 할 것인데도 ‘익숙한 것’ ‘선망하는 것’에 치우치는 여행이 되는 때가 있다. 어떤 정보가 내게 주어지느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여행 자체, 여행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에서 ‘나의 이유’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어쨌든 이 책은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전해 준다. 어떤 장소. 어느 나라에 어떤 곳이 있더라, 그곳은 심금을 울리기에 좋은 장소더라, 그런 식의 정보를. 거기에 작가는 문학평론가 답게 여러 책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장소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을 떠올리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그림을 기억에 떠올리며 여행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여행을 떠나고는 싶으나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를 이들에게 인상적인 유럽의 곳곳을 보여주고 있어 유럽여행을 떠나려는 이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줌과 동시에 이토록 많은 여행지 중에서 어느 한 곳은 가봐야지 않겠니라는 묘한 선동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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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여행, 한 번의 삶


길은 사람사이로 흐른다-967일, 낯선 여행 길에서 만난 사람들


김향미, 양학용


  한 며칠, 아니면 조금 긴 보름. 그보다 더 한달. 휴식에의 욕구는 항상 길다. 그리고 휴식의 카테고리에는 여행이 꼭 끼어 있다. 그런 휴식의 날들이 찾아온다면 정말로 여행을 맞이할 수 있을까. 단 하루라도.

  이 책은 장기여행의 기록이다. 3년 가까이의 시간, 967일을 여행한 두 부부의 ‘길’의 기록이다. 여행의 여정. 에피소드를 기록하고 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과 알아듣기도 하고 알아듣지 못하기도 한 대화들을 나무며 어색하기도 즐겁기도 아쉬워하기도 하는 모습들이 담겨 있다.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의 여행객이 언제 급증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해외 여행 후의 여행기가 쏟아진 것은 10년 정도인 듯하다. 그것도 특정한 유명인이나 학자들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일반인들에 의한 여행의 기록은.

  어떤 목적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결혼 전의 약속이었기에 결혼 10년 째 여행을 떠난 부부의 이야기는 놀라움을 전한다. 일단 바라던 꿈을 지속하며 실행했다는 것이 크지만 사소한 의견의 대립마저도 일상화되어 가는 부부 사이에 인생 일대의 모험을 감행하는데 서로가 동의하며 어긋남없이 그 오랜 시간 다른 나라를 여행했다는 것에 절대적인 존경심이 솟는다. 전셋값을 빼들고 떠난 여행은 처음엔 1년이 목표였다. 하지만 그들이 떠나는 길 위에서 만난 매혹에 이끌려 그들은 967일을 여행한다. 모두 47개의 나라들. 중국, 인도, 이란, 볼리비아, 루마니아, 미국, 이집트, 페루, 아르헨티나, 탄자니아, 시베리아 등. 지도에서 알던 올림픽 입장할 때나 보던 수많은 나라들을 방문한 것이다. 어떤 나라에는 잠깐 머물렀고 어떤 나라에는 몇 개월을 머물렀다.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의 사람들을 만났고 그래서 이 여행기는 그들이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 실려 있다. 그들이 계획된 여정보다 오래 여행을 이끌어 갈 수 있었던 것이 이들 사람들 덕분이니까.

  그래서 그들은 여행 뒤에 그 도시의 풍경과 더불어 그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 친구들을 떠올린다. 그리움으로 그들을 되새기는 마음이 이 책들에 담겨 있어 다양한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실존 인물들이며 그들은 낯선 나라의 여행객, 방문객을 맞이하는 모습들은 재밌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다. 어쨌든 그들은 그들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는 일상에서 뜻하지 않은 따스함을 발견할 때 깊은 감정에 젖게 되니까.

  두 부부가 여행하는 기간 동안 이러한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왔다는 것은 축복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관광과는 다르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관광이 여행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지만 관광여행에서는 항상 조심이 뒤따른다. 바가지 요금, 강도 등등의. 하지만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여행은,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냥 그렇게 자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에게 굳이 호객 행위를 하려 애쓰지 않고 굳이 그들에게 가식적인 삶을 보여주려 한다거나 특별히 경계할 필요도 특별히 애써 접대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전재산을 들고서 떠난 여행이기에 이들의 전재산이 궁금하기도 하다. 그것은 곧 그들의 여행경비가 되니까. 이것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은 듯 두 부부는 여행의 경비와 여행을 떠나서 겪은 일들에 대한 여행팁을 부록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금보다는 오래 전이기에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얼마가 되려나.....재밌는 부부라기 보다는 멋진 부부란 말이 더 적절한 두 부부의 여행의 기록을 보면 정말로 ‘즐기는구나’라는 느낌이 절로 든다. 물론 순간순간의 어려움은 있었겠지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고 그들과의 소통이 어려워도 알아들으면 듣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순간순간을 잘 보낸다. 그래서 또한 식당에서 일하며 영어를 배우기도 하고 볼리비아에서는 스페인어를 배우고 트래킹에 홍해 스쿠버다이빙까지 하며 배우고 즐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들이 이 여행으로 갈 수 있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 여행 또한 새로운 삶을 위한 기회이자 노력이었으니 그들의 삶은 여행 후에 더더욱 달라졌다고 그들은 말한다. 이미 여행에서 한 번의 삶을 살았으니 새로운 삶이 전개되었을 것은 당연하다.


 여행자의 시간은 압축적이라서 한 번의 여행에서 한 번의 삶을 산다고 했던가. 아내와 나는 평생 만날 사람들을 만나 평생 받을 사랑을 받고 평생 아파할 이별을 하며 매일매일 길 위에 서 있었다.

 세상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일하고 노래하며 시를 쓰며, 제각기 크고 작은 삶의 무게를 지고서 때로는 울고 웃으며 고단하고도 따뜻한 삶을 끌어안고 있었다. 우리는 피부색과 언어와 국적이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서 ‘나와 우리의 삶’을 발견하고는 묘한 연대감에 눈시울을 적셔야 했다. 또 어떤 만남은 그들 삶 속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그 순간 평범했던 도시는 매력적이고도 성스러운 나의 도시도 변했다. 마법 같은 일이었다. 지저분하고 우울하며 한없이 낯설게만 굴었던 도시가 한순간에 따뜻한 백열등을 밝히고 여행자를 향해 가슴을 내밀었다. p8


  이 여행기는 사람 중심이라는 점 이외 두 부부가 집값을 모두 털어 배낭을 꾸려 여행을 떠났다는 것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색다른 여행의 방법을 알려 주었을 것이다. 한편으론 여행이란 그렇게 일상의 삶을 포기하며 이룰 수 있는 머나먼 꿈이구나라는 생각도 들게끔 된다. 멀리 있는 꿈이었다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꿈이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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