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여행, 한 번의 삶


길은 사람사이로 흐른다-967일, 낯선 여행 길에서 만난 사람들


김향미, 양학용


  한 며칠, 아니면 조금 긴 보름. 그보다 더 한달. 휴식에의 욕구는 항상 길다. 그리고 휴식의 카테고리에는 여행이 꼭 끼어 있다. 그런 휴식의 날들이 찾아온다면 정말로 여행을 맞이할 수 있을까. 단 하루라도.

  이 책은 장기여행의 기록이다. 3년 가까이의 시간, 967일을 여행한 두 부부의 ‘길’의 기록이다. 여행의 여정. 에피소드를 기록하고 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과 알아듣기도 하고 알아듣지 못하기도 한 대화들을 나무며 어색하기도 즐겁기도 아쉬워하기도 하는 모습들이 담겨 있다.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의 여행객이 언제 급증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해외 여행 후의 여행기가 쏟아진 것은 10년 정도인 듯하다. 그것도 특정한 유명인이나 학자들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일반인들에 의한 여행의 기록은.

  어떤 목적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결혼 전의 약속이었기에 결혼 10년 째 여행을 떠난 부부의 이야기는 놀라움을 전한다. 일단 바라던 꿈을 지속하며 실행했다는 것이 크지만 사소한 의견의 대립마저도 일상화되어 가는 부부 사이에 인생 일대의 모험을 감행하는데 서로가 동의하며 어긋남없이 그 오랜 시간 다른 나라를 여행했다는 것에 절대적인 존경심이 솟는다. 전셋값을 빼들고 떠난 여행은 처음엔 1년이 목표였다. 하지만 그들이 떠나는 길 위에서 만난 매혹에 이끌려 그들은 967일을 여행한다. 모두 47개의 나라들. 중국, 인도, 이란, 볼리비아, 루마니아, 미국, 이집트, 페루, 아르헨티나, 탄자니아, 시베리아 등. 지도에서 알던 올림픽 입장할 때나 보던 수많은 나라들을 방문한 것이다. 어떤 나라에는 잠깐 머물렀고 어떤 나라에는 몇 개월을 머물렀다.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의 사람들을 만났고 그래서 이 여행기는 그들이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 실려 있다. 그들이 계획된 여정보다 오래 여행을 이끌어 갈 수 있었던 것이 이들 사람들 덕분이니까.

  그래서 그들은 여행 뒤에 그 도시의 풍경과 더불어 그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 친구들을 떠올린다. 그리움으로 그들을 되새기는 마음이 이 책들에 담겨 있어 다양한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실존 인물들이며 그들은 낯선 나라의 여행객, 방문객을 맞이하는 모습들은 재밌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다. 어쨌든 그들은 그들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는 일상에서 뜻하지 않은 따스함을 발견할 때 깊은 감정에 젖게 되니까.

  두 부부가 여행하는 기간 동안 이러한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왔다는 것은 축복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관광과는 다르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관광이 여행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지만 관광여행에서는 항상 조심이 뒤따른다. 바가지 요금, 강도 등등의. 하지만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여행은,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냥 그렇게 자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에게 굳이 호객 행위를 하려 애쓰지 않고 굳이 그들에게 가식적인 삶을 보여주려 한다거나 특별히 경계할 필요도 특별히 애써 접대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전재산을 들고서 떠난 여행이기에 이들의 전재산이 궁금하기도 하다. 그것은 곧 그들의 여행경비가 되니까. 이것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은 듯 두 부부는 여행의 경비와 여행을 떠나서 겪은 일들에 대한 여행팁을 부록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금보다는 오래 전이기에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얼마가 되려나.....재밌는 부부라기 보다는 멋진 부부란 말이 더 적절한 두 부부의 여행의 기록을 보면 정말로 ‘즐기는구나’라는 느낌이 절로 든다. 물론 순간순간의 어려움은 있었겠지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고 그들과의 소통이 어려워도 알아들으면 듣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순간순간을 잘 보낸다. 그래서 또한 식당에서 일하며 영어를 배우기도 하고 볼리비아에서는 스페인어를 배우고 트래킹에 홍해 스쿠버다이빙까지 하며 배우고 즐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들이 이 여행으로 갈 수 있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 여행 또한 새로운 삶을 위한 기회이자 노력이었으니 그들의 삶은 여행 후에 더더욱 달라졌다고 그들은 말한다. 이미 여행에서 한 번의 삶을 살았으니 새로운 삶이 전개되었을 것은 당연하다.


 여행자의 시간은 압축적이라서 한 번의 여행에서 한 번의 삶을 산다고 했던가. 아내와 나는 평생 만날 사람들을 만나 평생 받을 사랑을 받고 평생 아파할 이별을 하며 매일매일 길 위에 서 있었다.

 세상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일하고 노래하며 시를 쓰며, 제각기 크고 작은 삶의 무게를 지고서 때로는 울고 웃으며 고단하고도 따뜻한 삶을 끌어안고 있었다. 우리는 피부색과 언어와 국적이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서 ‘나와 우리의 삶’을 발견하고는 묘한 연대감에 눈시울을 적셔야 했다. 또 어떤 만남은 그들 삶 속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그 순간 평범했던 도시는 매력적이고도 성스러운 나의 도시도 변했다. 마법 같은 일이었다. 지저분하고 우울하며 한없이 낯설게만 굴었던 도시가 한순간에 따뜻한 백열등을 밝히고 여행자를 향해 가슴을 내밀었다. p8


  이 여행기는 사람 중심이라는 점 이외 두 부부가 집값을 모두 털어 배낭을 꾸려 여행을 떠났다는 것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색다른 여행의 방법을 알려 주었을 것이다. 한편으론 여행이란 그렇게 일상의 삶을 포기하며 이룰 수 있는 머나먼 꿈이구나라는 생각도 들게끔 된다. 멀리 있는 꿈이었다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꿈이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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