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 ■


출생/사

1872.5.18 영국 웨일스 몬머스셔 주 / 1970.2.2. 귀네드 주

 

•활동 분야

철학자, 수학자, 사회운동가

 

•발 자 취

•저 서

1872. Wales의 Trelleck 귀족 집안에 출생. 조부, 자유당 수상 역임

철학이란 무엇인가(1912) 철학의 문제들(1912)

1875~1890(18-23세) 3세에 부모를 여의고 조부 댁에서 자람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1916), 수리철학의 기초(1919)

1895. Cambridge대학의 Trinity College에서 수학과 철학 전공

러셀 북경에 가다(1922), 상대성 이론의 참뜻(1925)

1911.  Royal Society 회원

러셀의 자녀교육론(1926),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1928) 

1940. New York 주립 대학 초청 교수의 부임 좌절

결혼과 도덕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 / 결혼과 성(1929)

1950. 노벨문학상 수상 <권위와 개인>

러셀의 행복론 / 행복의 정복(1930) 게으름에 대한 찬양(1935)

1951.  Oder of Merit 수상

종교와 과학(1935), 권력(1938), 의미와 진리의 탐구(1940)

1959. 핵무장 반대 운동

러셀 서양철학사(1945), 인간과 그 밖의 것들(1948)

1955. Einstein-Russell Manifest 발기

권위와 개인(1949), 반속적 에세이(1950), 서양의 지혜(1959)

1965. Labour Party의 당원

나는 이렇게 철학을 하였다(1959), 사실과 허구의 교차로(1961)

1966. Vietnam Tribunat 창설

인류에게 내일은 있는가(1961), 러셀자서전/러셀의 철학노트(1969)

……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

……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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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


출생/사

1875.7.26. 스위스 투르가우 주 로만스호른 근교 보덴 호숫가의 캐스빌 / 1961. 퀴스나흐트 자택에서 사망

활동분야

스위스 정신의학자, 분석심리학 창시자, 대학교수

 

• 발 자 취 •  

• 저 서 •

1886. 바젤 김나지움 입학

1887. 신경증 발작 일으킴

1895 바젤 대학에서 자연과학과 의학 공부. 1900년 4월 국가고시로 학업 마침

1896. 부친 사망

1903. 엠마 라우셴바흐와 결혼. 이후 다섯 자녀를 둠. 

     오이겐 블로일러 교수가 이끄는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 보조의사가 됨

1905. 1913년까지 취리히 대학 의과대 강사

1906.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서신교환 시작

1909. 병원 그만두고 퀴스나흐트의 새 집에서 개인병원 개업.

     9월 프로이트와 미국 클라크 대에서 강연. 명예박사학위 받음

1910. 국제정신분석협회 회장 취임

1912. 「리비도의 변용과 상징」에서 프로이트와 상이한 견해를 분명히 밝힘

1914. 동료들과 국제정신분석협회 탈퇴

1916~18. 베트란트 주 샤토-되에서 영국 국제포로수용소 위생장교로 근무

1920. 북아프리카 여행

1923. 모친 사망. 볼링엔 탑 건축 시작

1924 북아메리카 푸에블로 인디언 거주지 여행

1925. 아프리카 여행. 동아프리카 엘곤 산 밑 엘곤 사람들을 찾은 후 수단 경유 이집트로 감

1928. 「자아와 무의식의 관계」 연금술 연구 시작

1930. 에른스트 크레치머가 회장으로 있는 심리치료사협회 부회장이 됨

1932. 취리히 시가 주는 문학상 수상

1933. 크레치머 사임 후 회장. 취리히 연방공업대학에서 강의. 아스코나에서 에라노스 학회 출범

1934. 국제심리치료의사협회 창설

1935. 취리히 연방공업대학 명예교수 임명. 하버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 받음

1937. 예일대에서 “심리학과 종교”에 대해 테리 강연.

     인도 영국령 인도 정부 초청으로 캘커타, 바리나시 알라하바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 받음

1942. 취리히 연방공업대학 교수 사임

1943. 바젤 대학 심리학과 정교수로 임명

1944. 심근경색으로 교수직 사임

1945. 제네바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 받음

1948. 취리히에 카를 구스타프 융 연구소 설립

1955. 취리히 연방공업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 받음, 엠마 융 2월 27일 사망

1959. BBC 방송과의 인터뷰 “나는 신을 압니다”

1960. 85세 생일을 계기로 퀴스나흐트 명예시민이 됨

1902. 소위 신비현상의 심리학과 병리학(취리히 대학 박사학위논문)

1934. 심리학과 종교

1942. 파라겔수스

1944. 심리학과 연금술

1946. 심리학과 교육, 전이의 심리학

1948. 정신의 상징

1850. 무의식의 형성

1951. 아이온상징 역사의 연구

1952. 변용의 상징, 욥에 대한 답변

1953. 뉴욕에서 융 전집 출간 시작

1954. 의식의 뿌리

1955~56. 결합의 신비 1.2권

1957. 기억, 꿈, 사상 집필 시작

1958. 현대의 신화부터 전집 출간 시작

 

 

 

 

 

 

 

“나의 생에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

……


최초의 인간은 땅에서 유래하지만, 

두 번째 인간인 내적 인간은 ‘하늘에서’,

즉 현실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유래한다.”

- 융의 묘비에 씌어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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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셉 캠벨[Joseph John Campbell] ■



 

•출생/사망

1904.3.26.. 미국 뉴욕 / 1987.10.30. 하와이 호놀루루(83세)

 

•활동분야

미국 신화학자, 종교학자, 작가, 교수, 20세기 최고의 신화해설자

 

•발 자 취

1910. 「버팔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 쇼」관람.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에 관심

 

 

1913~1918. 인디언 신화에 관한 책 섭렵. 14세 병으로 집안에서 자연과학 공부

 

 

1919. 뉴로셀 집 화재로 할머니 사망. 수집한 인디언 책과 유물 불에 탐

 

 

1921. 다트머스 칼리지에서 생물학・수학 공부. 2학년, 콜럼비아 대 영문과로 전입

 

 

1924~1926. 육상팀 주자로 경주에서 기록 세움. 재즈 밴드에서 색소폰 연주. 배를 타고 유럽으로 가는 길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나 동양철학의 세계에 이끌림

 

 

1926. 콜럼비아대 중세문학 공부. 성배에 관한 석사 논문「가슴 아픈 일격」씀

 

 

1927~1928. 컬럼비아 대 장학금 제공으로 파리 및 뮌헨 대학 수학.

 

 

1929. 귀국 후 인도철학・미술 공부를 하려 하나 박사학위 취득 못하고 떠남

 

 

1929~1934. 우드스탁에 칩거하며 독서, 사색, 습작에 몰두

 

 

1931~1932. 친구로부터 존 스타인벡 부부, 생물학자 에드 리켓과 만나 교류

 

 

1933. 켄터베리 예비학교 취직. 연말 퇴직하여 우드스탁으로 돌아와 독서 및 집필

 

 

1934~1972. 미국 여대 새러 로렌스 칼리지 문학 담당 교수로 부임하여 재직

조셉 캠벨

 

 

1938. 결혼(제자 현대무용가 진 애드먼)

……

유리병 속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

 

 

1941. 하인리히 침머와 만나 교류. 침머 사망(1943) 후 그의 유작 편집 출판함

 

 

1954. 안식년에 인도, 스리랑카, 타이, 미얀마, 홍콩, 일본 등 여행

 

•저    서

1941. 그 두 사람이 아버지에게 온 곳:나바호족의 전쟁의례 주석본

 

 

1942. 스미 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 우파니샤트 번역 및 편집

 

1944. 피네간의 경야를 여는 곁쇠(헨리 모튼 공저.)

 

1949.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1957. 편집 회보, 의미없는 상징

 

1959. 원시시대 사냥꾼과 농부의 재생 신화와 의례

 

1959~1968. 신의 가면

 -1959 원시신화, 1962 동양신화, 1964 서양신화, 1968 창작신화

 

1969. 야생 수거위의 비행:신화적 차원의 탐험

 

 

1972. 신화와 함께하는 삶

1974. 신화의 이미지

1983~1989. 세계신화의 역사지도

1987. 신화의 힘 PBS반영(캠벨과 빌 모이어스와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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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소각의 여왕, 이유, 문학동네

 

지창씨는 딱 한마디만 했다.

“요즘은 나쁜 짓 안 하고 잘사냐?”

“나쁜 짓 안 하고 어떻게 잘살아?”

해미가 끼어들었다.

 

   청소년소설 속 주인공들을 보다 보면 묘하게 하나로 정리가 된다. 그들은 모두 현실에서 보는 ‘문제아’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핍을 끌어안은 채 왜 그다지도 성숙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왜 그토록 의젓한지. 인터넷 속 사건·사고 속의 청소년들은 모두 문제를 일으키고, 반성하지 않는 모습으로 일관한다. 성숙이라는 건 아예 물 건너갔고, 반성이란 것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소설 속 청소년들은 끊임없이 반성하고 고뇌한다. 바쁘고 힘든 삶 속에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깊다. 그래서, 주인공이겠지.

  여기 소각의 여왕 해미 역시도 그런 청소년의 한 명이다. 그렇게 자라난 해미가 직업으로 모으는 고물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소각의 여왕> 속에 담겨 있다. 등장인물은 몇 되지 않는다. 해미와 해미 아버지 지창씨와, 지창 씨의 친구와, 고물상 직원이었던 두 명 정도. 그들의 삶은 정리해야 할 수많은 고물들보다도 단촐하다. 그래서 더욱, 쓸쓸함을 부추긴다. 낡은 고물들을 분류하는 것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긴 하지만 많은 물량으로 살아갈 수 있었지만, 산업의 변화와 함께 고물 사업도 위기를 맞게 된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라는 고물상의 진리처럼 이 세상에서 점점 사람들은 뭉치려고 하기보다 각자의 길을 가려는 것처럼.

  결핍이 가져다주는 것은 남들과는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서 해미는 여느 학생들처럼 대학생이기 되기보다 아버지와 함께 고물상을 운영하는 삶을 택한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고물상의 주인 해미 아버지, 지창 씨의 남다른 점이라면 면허도 없는 해미에게 1톤 포터를 몰게끔 한다는 것이다. 포터를 타고 이 골목 저 골목에서 고물을 수집하던 해미는 이제 고물 대신 유품정리사가 된다. 몰래 아버지가 하던 이 일을 해미는 선택한다. 죽음이 휩쓸고 간 공간을 말끔히 치우는 일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면서.

   그리고 아버지는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고물 속에서 희귀 금속 이트륨을 분리해 내는 꿈을. 폐허가 되어 가는 고물상의 운명에서 뽑아내기를 희망하는 것처럼 지창 씨는 이에 몰두한다. 다른 일은 하지 않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고물과 고물상을 팔면서까지 지창 씨는 이트륨을 뽑아내는 기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얻어지는 것은 늘 검은 돌덩어리. 지창씨가 삶을 위해 삶을 팽개치고 집 안에 머물며 기계를 들여다보는 동안 해미는 죽은 이의 공간에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 중엔 자살을 계획하는 사람들도 있다.


“무슨 과랬더라? 그래, 항공우주공학과.”

“얼마나 멀리 도망치고 싶었을까.”

 

  그들은 멀리 도망치고 싶었을까. 아마도 해미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 삶에서 보다 멀리, 멀리. 하지만 해미는 정말로 꿋꿋이 삶을 이겨내는 듯 보였다. 누구보다 열심히, 누구보다 묵묵히.

  세상은 수많은 물건들을 만들어내고 수많은 쓰레기를 내놓아 환경위기가 심각한데 고물상의 운영은 어렵다니. 하긴, 그만큼 수많은 고물들이 쏟아져 나오니 고물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도 납득이 간다. 그런데, 이 지점. 고물정리에서 유품정리사가 되는 자연스런 흐름이라는 해미의 말이 어쩐지 애달프다. 마치 인간의 죽음이 고물과도 같은 위치가 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일까. 인간의 삶이 죽음이 고물로 전락해버린 기분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한쪽밖에는 보이지가 않아서 한쪽으로밖에 갈 수 없는 사람들.

죽음이 아니면 달리 편안해지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해미의 어조가 시종일관 무덤덤하고 건조해 서린 느낌이 들었다. 결국, 아버지도 허파에 바람이 들어 버렸다. 유전병이라는 허파에 바람이 드는 병. 유전병이 아닌 다음에야 해미는 허파에 바람이 들 수 없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해미는 건조한 웃음을 날린다. 일찍 세상을 알아버리고 그만큼 세상을 산 아이의 시선이 골목골목, 보이지 않는 방 안까지 스며들어 죽음의 뒷모습까지 끌어내 보여준다.


죽음은 당연하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안 된다. 

여러 명의 의지가 하나의 죽음을 이끌어낸다. 

누군가의 의지와 누군가의 동의와 누군가의 묵인.

 

  이 말이 동의되는 것도 참 씁쓸한 일이다. 사람을 믿는 것은 희망을 믿기 때문일까. 믿고 의지하며 세상을 버텨내지만, 결국 믿은 이들에 대해 실망하게 될 때, 그들에게 배신을 당할 때 그것은 죽음을 이끌어내는 의지와 동인이 된다. 더할 나위 없이 허망한 이트륨의 추출 성공. 헛웃음을 일으키는 그 소식. 이 소식 또한 뒤통수다. 삶을 더욱 잔인하게 비트는 저 것, 그것, 그런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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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헛함

 

홀, 편혜영

 

 

 글을 읽어가면서 계속 ‘이걸 읽었는데, 어디서 봤더라?’ 묻고 있었다. 분명 이 내용을 알고 있기에 같은 책을 또 읽었나 하며, 나의 기억력을 탓했다. 역시 책은 읽은 후 바로 기록을 남겨야 한다라는 생각을 했다. 오래 전 기억에 사라져 버린 책들을 다시 읽지 않는 한 “읽었다”와 “읽었던 것 같은데”로 남을지 모른다. 물론 읽은 기억이 있는 책이라 해도 “재밌다”로만 기억될 것이고. 그래서 기록의 이유는 기억과 편리일 것이다. 안타깝지만 게으름이 기억력마저도 게으르게 만들었다.

  다행히 나의 기억력은 완전히 죽은 건 아니었다. 이 장편소설은 작가의 단편 <식물 애호>를 전개시킨 것이었다. 2015년 현대문학상 <소년이로>수상집에 수상작가 자선작으로 실려 있던 것이었다. 불과 1년 새 기억이 가물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다니......후반부로 갈수록 이 책을 읽었다고 생각한 익숙함은 그 때문이었다.

  작가 자신도 자선작으로 이 단편을 꼽았고 다시 단편에서 확장시켜 장편으로 전개시킨 만큼 이 단편에 애착을 느끼는 모양이다. 하긴, 오기 씨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심리를 더욱 더 세심하게 그리며 내용을 전개시켰다.

  편혜영 작가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아오이가든>에서 느꼈던 것처럼 전반적으로 공포를 동반한다. 피터지는 끔찍스러움이 아니라 몸을 오싹하게 만드는 괴기스러움, 기이함. 극도의 불안을 동반하는 심리적인 긴장감이 느껴졌다. ‘홀’이라는 제목만을 보고선 요즘 증가하는 싱크홀을 연상했다가 표지의 ‘집’그림 때문에 집안에서, 가정에서 느끼는 삶의 구멍, 인생의 헛함을 생각했다.

 

기억이 선명해지고 정황이 분명해질수록 오기는 슬퍼지고 서글퍼져서 비통할 것이다. 차라리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기억이 떠오를수록 아내를 잃었다는 것을, 다시는 아내를 볼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테니까. p34

 

  사고로 아내를 잃고 반신불수로 누워 있는 사내. 오기 씨. 오기 씨의 시선으로 그에게 안타까움을 보낸다. 더구나 운전자가 자신이었으니 스스로에 대한 자책은 얼마나 더할 것인가. ‘그래도 의지를 가지고 살아야지요, 오기 씨’라고 응원하는 마음을 계속 갖게 될까. 삶의 의지를 다질까 말까를 고민하는 오기 씨의 사고 이전의 기억들은 그에 대한 응원을 지속하는 것을 계속할까를 고민하게 하지 않는다. 그냥, 오기 씨는 어떻게 될까가 관건이 된다.

  사고 이전의 그의 아내와의 관계, 오기 씨의 행동은 둘만 아닌 듯 아닌 듯 오기 씨의 기억에 저장되어 있지만, 그 파장은 사고 이후의 그의 삶을 지배한다.

 

간혹 자신의 성공만으로 성에 차지 않을 때가 있었다. 가까운 누군가의 실패가 더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p184

 

  우리는 오기 씨의 성공을 바랄까, 실패를 바랄까. 사고 이후 몸을 회복하고 다시 일상의 생활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응원의 마음이 갈림길에 놓여 있는데, 오기 씨가 인생을 살면서 가졌던 저 마음이 내 마음에도 스르륵 자리잡는다. 나에게도 저런 순간이 있었던 건가?

 

어떻게 삶은 한순간에 뒤바뀔까.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릴까. 그럴 작정으로 하고 있던 인생을 오기는 남몰래 돕고 있었던 걸까. p28

 

  삶이 한순간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 뒤바뀔 순간을 위해 여러 층의 행동들을 쌓는 것 같다. 그러니까 무너질 탑을 쌓아 가는 순간순간의 행동들이라고 해야겠지. 아내의 행동들, 장모의 행동들에 불안감을 느끼는 오기 씨 역시도, 지난 순간순간의 자신의 행적들 때문에 그토록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눈에 띄지 않는 듯하지만 내 행동은 세밀하게 기록되어 남는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기록의 페이지가 세상에 펼쳐지는 것. 살아가면서 내가 느끼는 삶의 헛함은 무엇일까. 그 헛함으로 만들어 버린 구멍은 무엇일까. 사람을 더욱 공포스럽게,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뜻하지 못한 불행한 사고가 아니라 하나하나 만들어 낸 떳떳하지 못한 삶의 행동들 아닐까. 아니, 그 행동들이 드러나는 것. 잊어먹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 순간, 아무도 모르리라 여겼던 것을 타인에 의해 까발려지는 순간.

 

죄와 잘 어울린다는 것만큼 사십대를 제대로 정의 내리는 것은 없었다. 사십대야말로 죄를 지을 조건을 갖추는 시기였다. 그 조건이란 두 가지였다. 너무 많이 가졌거나 가진 게 아예 없거나. 즉 사십대는 권력이나 박탈감, 분노 때문에 쉽게 죄를 지었다. 권력을 가진 자는 오만해서 손쉽게 악행을 저지른다. 분노나 박탈감은 곧잘 자존감을 건드리고 비굴함을 느끼게 하고 참을성을 빼앗고 자신의 행동을 쉽게 정의감으로 포장하게 만든다. 힘을 악용하는 경우라면 속물일 테고 분노 때문이라면 잉여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십대는 이전까지의 삶의 결과를 보여주는 시기였다. 또한 이후의 삶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영영 속물로 살지, 잉여로 남을지. p78

 

  어쩌면 오기 씨의 고발자가 되었을 아내는,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그 역할을 맡은 것은 오기 씨의 장모다. 오기 씨의 장모는 특유의 분위기로 오기 씨를 옥죈다. 그 장모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오기 씨의 공포는, 자신의 지난 날의 잘못에 대한 기억이 선명할수록 더욱 더 커진다. 그래서 오기 씨는 아름다운 나의 집, 정원이 있는 자신의 집에서 꼼짝할 수 없는 몸과 심리에 놓인 자신을 탈출하기 위해 애를 쓴다.

 

어떤 가정도 낙관적이지 않았다. 이 순간을 무사히 넘기더라도 얼마 후 비슷한 일이 끝없이 반복될 것 같았다.

오기는 무력해졌고 내부의 공동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 구멍 속으로 자신이 아예 빠져버릴 것 같았다. p184~185

 

  오기의 불안을, 공포를 잠재워 줄 수 있는 것은 작가다. 그러나 또한, 독자의 몫이기도 하다. 구멍 속으로 ‘빠져버릴 것 같은’ 오기를 구멍으로 밀어버릴지 말지를. 오기 씨에게 다시 기회를 오기 씨에게 연민을. 아니면 내 성공과는 상관없이 누군가의 실패에 느낄 안도감을 위해 오기 씨를 더 깊은 구덩이로 쓰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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