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을수록 좋은 이야기


  작가는 도시에 대해, 그리고 수십만 개의 좁고 더 좁은 골목에, 혼자 걷고 있는 사람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잠시 혼자였던  그 순간에 대해서.

  바쁜 도시, 바쁜 생활의 도시인의 잠시의 그 시간, 순간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이야기가 짧은가. 짧은 소설이다. 그것두 매우. 그리고 일상에서 마주쳤음 직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말하자면 좋은 사람들인 건가.

  

그해 봄과 여름의 경계에서 내가 춥고 겁에 질려 있었다면, 춥고 겁에 질린 사람이 오직 나 하나뿐인 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p148~149 <그 여름의 끝>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당장 옆에도 함께 하는 가족들이, 애인이, 친구가 있지만 고독하고 외로운 시간이 있다. 또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혼자이고 싶은 시간들이 있다. 순간이란 아득하리만치 짧아도 그 틈에 비집고 들어오는 감정의 내용들은 다양하다. 불안, 공포, 외로움, 편안함, 자유........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지금은 혼자라는 것. 혼자의 시간에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질까.

  <비밀의 화원> 속 아내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소망이라고 해야 할까 욕망이라 해야 할까. 아내는 스마트폰의 세계에 빠져 점점 예전의 모습과는 다른 행동을 보인다. 그리고 아내가 비밀처럼 간직한 페이스북의 세상에선 아내와는 다른 누군가가 삶을 살고 있다. 아내인데 아내는 아닌 다른 누군가. 현실의 ‘나’가 아닌 위장된 ‘나’로 살아가는 가상 세계에 헤어나지 못하는 아내의 시간. 그것은 꿈꾸는 시간일까. 지치고 병든 시간일까.

  <말하자면 좋은 사람>의 짧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 현실에서 ‘나’를 견디며 현실에서 벗어난 곳을 향해 내 마음을 두고 있는. 그렇게 그들은 삶을 견디고 있는 것인가. 이별하고, 취업을 위해 애쓰지만 힘들고, 시험에 낙방하고, 집을 구하기 위해 전전하며, 마이너스 통장은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근근히’ 견디고 있는 그들.

  

 이럴 때 누군가 툭 어깨를 치며 “같이 가자!”고 말해주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러면 든든할까? 하지만 혼자도 나쁘지 않았다. p121 <아일랜드>


   이런 삶을 살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가 옆에 있어서, 그래서 위안이 될 리는 없다. 그런 삶을 같이 하고 있기에, 나 혼자 겪는 것이라서가 아니라 그런 삶 속에서 견디며, 버티며 같게 되는 ‘불안’을 공유하는 ‘누군가’가 위안이 되는 것이다. 그런 존재가 없다면야, 그때야말로 혼자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짧은 소설, 몇 페이지 안되는 이야기들을 담은 소설들을 몇 권 보고 느낀 생각은 이야기가 ‘짧아서 다행이다’였다. 그들 이야기가 희망과 아름다움을 향한 이야기가 아니라 힘겨운 삶의 현실을 다룬 내용들이 많기 때문이다. 짧은 소설들은 마치 ‘이렇게 힘든 현실이군요’를 말하는 수기들 같다. 그러니 슬프고 답답한 이야기는 짧을수록 좋다. 고되고 힘겨운 삶의 이야기는 길수록, 답답하다. 삶은 그런 것 같다. 쉽게 결정내리지 못하고, 정확히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것.

 

 그녀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모든 것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고, 동시에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p27 <견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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