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인들 공평한가


 

 자본주의는 도덕과 윤리에 특별히 예의를 두지 않는다. 효율과 생산에 집착하고 불평등을 당연시 여긴다. 그래서 심화되는 불평등에 놀라지 않으며 반대편의 불평등을 향해 혀를 차거나 가끔 동정어린 시선을 보낼 뿐이다. 더 매서운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기도 한다. 효율성을 저해하는 모든 것에 불만이 가득 차 있으니까. 그래서 ‘불평등’이 문제라 목이 터져라 외쳐도 허공에 흩날릴 뿐이다.

  그래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 교수는 시장주의자들에 맞춰 그 ‘효율성’의 관점에서 불평등을 비판한다. 불평등을 이야기할 때 원인과 폐해에 집중하며 항상 윤리적 측면에서 옳지 않다고 부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불평등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으로는 이성과 감성에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 이유다.

  저자는, 불평등은 정치 시스템의 실패라고 주장한다. 불평등이 경제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불평등이 시장경제의 활성화의 필요악이 아니라 반드시 해결해야 할 부분인 것이다. 불평등이 제대로 자리잡으면 정치·사회의 여타 제도들 역시 안정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불평등의 책임은 정부 정책에게 있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의 심각한 불평등과 그의 원인이 시장 왜곡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시장은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행위 대신에 다른 사람들에게서 부를 빼앗는 행위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왜곡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불평등의 해결은 항상 경제성장이 해답이라고 주장하지만, 경제성장도 제대로 된 적 없거니와 경제성장을 통해 이익을 보는 집단은 따로 있었고 불평등은 완화되지 않았다. 또한 불평등 완화로 늘 내밀었던 사회복지에 대한 투자도 안전을 위한 정책도 아무것도 나아진 것이 없었다. 또한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 대신에 분열만이 가득한 상황이 되었다. 특히나 가난한 사람은 늘, 그들 스스로가 게으르고 부족하다는 논리로 불평등의 결과를 개인에게 전가시킨다.


가난한 사람들보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물리고 효과적인 사회 보호 시스템을 제공하는 내용의 누진적인 조세 정책 및 지출 정책은 불평등의 심화를 억제한다. 반대로, 국가의 자원을 부자들과 좋은 연줄을 가진 사람들에게 몰아주는 프로그램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p121 


  중요한 것은 시장의 힘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정치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익히 보아온 대로, 그 힘을 불평등을 완화시키는데 사용하지 않는다. 세계 금융위기에도 심각한 시장실패가 나타나는 상황에서도 항상 정부는, 정책을 “분배”에 집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특정 집단에 힘을 실어주는 법률로 정책으로 노동자들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흐른다. 경제학적 논리로 “자본 수익률 격차가 노동 수익률 격차에 비해 아주 작게 나타나는” 데도 그렇다. 정부는 보다 효율적일 수 있는 정책들을 외면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사회복지정책이 효과가 있음에도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되고 소수에게 혜택이 가는 기업지원 제도를 만든다. 세수를 확충하고 효율성을 증진하고 평등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세 제도를 설계할 수 있는데도 전혀 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것이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심각한 불평등은 정치 균형을 잃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균형을 잃은 채 균형을 잃은 경제를 관리하게 되면 치명적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아주 위험하다.


 불평등은 대부분 과학 기술과 시장의 힘, 그리고 광범한 사회적 힘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견인하는 정부 정책에서 비롯한 결과다. 바로 여기서 희망과 절망이 교차한다. 이런 불평등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며, 정책을 바꾸면 보다 효율적이고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반면에 이런 정책들을 만들어 내는 정치 과정을 바꾸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절망에 빠진다. p186


    그래서,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할까.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우리는 우리의 근본적인 가치관에 더욱 부합하는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 그것은 곧 더 많은 기회와 더 높은 국민 소득, 더 강건한 민주주의, 그리고 대다수 성원들에게 더 높은 삶의 질이 보장되는 사회다. 물론 그곳에 다다르기는 쉽지 않다.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는 여러 시장의 힘들도 존재한다. 이런 시장의 힘들은 정치, 우리가 집단적으로 선택한 규정과 규제, 그리고 우리 사회 내 기관들이 행동하는 방식에 의해서 형성된다. p432


  전세계적으로 불평등으로 인해 야기되는 심각한 문제들을 보면서도 지금까지 해온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놀랍다. 과연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든다. 시장경제가 기회만 주면 결과의 불평등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논리를 펴지만, 그 기회가 공평하지 않다는 것, 그 기회에서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체감하고 있는 현실이다. 결국 어떤 시스템을 작동하는가는 그 사회가 가진 가치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누구의 지배논리가 어떤 가치를 우선하느냐에 좌우된다. 그래서 한없이 암울한 전망이다. 정치과정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으니까. 또 한편으로 정치과정을 바꾸는 것이 무엇이 어렵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정치는 ‘권력’을 잡기 전엔 눈치를 보고 고개를 숙이기는 하니까. 경제적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흔든다. 경제적 불평등과 민주주의 모두를 잃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을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살고 싶은 사회시스템에 대해서 생각해 볼 일이다. 정부가 만드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따져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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