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이야기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
오비디우스 지음, 이윤기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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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이야기 Metamorphoses


오비디우스, 이윤기 옮김, 민음사, 1998.



  변신이야기는 서사시로 천지창조에서부터 작가인 오비디우스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변신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전체 작가는 그리스신화뿐만 아니라 당시에 떠돌던 소아시아 설화, 트로이아 전쟁사, 로마 건국 신화까지를 두루 섭렵하여 전체 15권의 이야기로 엮어 내었다. 1~5권은 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6~10권은 영웅에 관한 이야기를, 11~15권은 역사적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천지창조에서부터 거인족의 시대를 거쳐 신과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면서 주로 신이나 인간이 동물, 나무, 식물 등으로 변신하는 이야기가 초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신들과 신들에 의해 ‘변신’된 인간의 모습보다는 전쟁을 거쳐 그리스 문명이 끝나고 트로이 유민들이 로마를 건국하는 과정과 케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를 다루며 이야기를 맺고 있다.

  이 책은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이 순간 순간 바뀌는 특징을 가진다. 묘사에 치중하며 작가가 이야기를 서술하다가 등장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거나 제3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태로 서술되고 있다.

  또한 변신이야기는 연대기 순으로 신과 인간의 대립을 담고 있다. 늘 신에게 당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는 안타깝고 연민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것을 묘사하는 오비디우스의 탁월한 능력 덕분이다. 작가가 수사학을 배웠다고 하는데 그가 내 앞에서 말하고 있지 않아도 책을 통해 그의 언변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실체적이지 않은 사물에 대하여 구체성을 더하는 묘사들, 안타까움과 사랑을 토로하는 말들, 타인을 설득하는 논리적인 언어 구사 등, 작가의 상상력과 필력에 존경을 보내게 된다. 그러므로 보통 책에 대해 글귀에 대해 ‘감동적’이라 할 때, 특히 이와 같은 이야기를 읽어 나갈 때의 감동을 무엇으로 정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덜하게 해준다.

   그러니까 내가 감동받는 것이 단지 스토리인지, 작가의 묘사인지를 정하는 것에 고민이 되는 것이다. 문학에 관해서는 스토리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엮어 내느냐가가 필시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그러므로 변신이야기 속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그 내용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글 자체로만 파악하여 감동적인 부분을 찾고자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역시 작가의 탁월하고 세밀한 묘사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잠의 신에 대한 묘사, 복수의 신에 대한 묘사, 질투에 대한 묘사 등. 실체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마치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양 적확한 묘사가 놀라웠다. 또한, 구구절절하게 자신에 대한 변명들을 늘어놓는 주인공들의 그 언변들도 놀라움을 안겨줬다. 생각하면 황당한 발언에 답답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그렇게 수려하게 자기의 심정을 고백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힘 아니겠는가.  


  책을 몇 페이지 읽자마자 ‘그리스로마 신화’이야기를 굳이 ‘변신이야기’라 제목을 바꿔서 다루고 있는가 의아했다.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감히 그리스로마 신화이야기를 또 떠들어대는가 싶었다. 그리고 이내 신화 속에서의 ‘변신’에 관한 이야기가 주제임을 알고는 넘쳐나는 신들과 인간의 이름에 지쳐, 명칭의 표기 차이에 지쳐 연대기 순이 아니라 일목요연하게 식물도감 동물도감과 같은 형태로 이야기를 끌고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 변신을 당하는 자가 아니라 변신을 시키는 자를 중심으로 한 구조이다. 변신을 시키는 이들이 신들이므로 각각의 신들이 누구를, 무엇을, 어떻게 변신시켰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법은 어떨까. 그리하여 가장 많이 인간을 변신케 한 신은 누구인지도 파악해 보고.

  두 번째, 변신의 형태별로 다루는 구조이다. 동물, 식물, 광물, 무생물로 변신하였는가. 그 중에서도 동물 변신이라면 포유류, 조류, 파충류로 변신하였는가, 식물이라면 꽃과 나무 각각 어떤 꽃과 어떤 나무로 변신하였는가 하는 식이다. 마치 식물도감의 꽃을 다루듯이 그 이야기를 다루는 형태를 생각해 보았다.

 이러한 두 가지 형태의 이야기로 짜여진다면 좀더 ‘변신’에 초점을 맞춘 일목요연한 내용으로 다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변신이야기의 본질이 변신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아우구스투스’를 신격화하는, 신의 위치로 격상하기 위한 의도를 가진 책이라면 작가가 정리한대로 연대기적인 서술 형태가 가장 바람직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어찌되었든 일관되지 않은 시점은 산만한 느낌이었다. 그의 탁월한 묘사력과 상상력이 아니었다면 참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번역자가 2인칭으로 된 것을 읽기 편하게 바꾸었다고 하는데 원문을 읽지 못하기에 그러한 번역의 영향인가 싶기도 하다. 기록에 의하면 변신이야기는 작가가 추방되기 훨씬 전부터 쓰여졌다. 그리고 이 작품을 쓰는 동안 오비디우스는 추방된 것으로 나타난다. 변신이야기의 흐름이 후반부로 갈수록 변화를 겪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작가는 작가의 마음이 가는대로 그가 많이 다루었던 사랑과 애욕의 변신 모티브를 뽑아내어 이야기를 다루고자 했을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던 어느 날, 그는 추방되었고 유배지에서 마무리되는 책의 내용이기에 번역가 이윤기의 말처럼 ‘용비어천가’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그가 유배되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의 마무리는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을까 생각하며 작가의 처음의 의도대로 완성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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