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삭아삭 알싸하게 씹히는 새싹의 풍미가 그만이었다. 콩나물국과 새싹비빔밥. 남편과 나는 뚝딱 한 그릇을 비웠다. 딸은 예쁜 도둑이라지. 바리바리 빈 통을 싸들고 친정에 온 나를 보시고 위층 아주머니 말씀. 왜 아니겠는가. 계절이 오고 가는 소리를 엄마가 해주시는 먹거리 속에서 혀끝으로 듣는다.
오후 수업 땐 살짝 덥기까지 했다. 창밖 운동장에서 반팔 차림으로 슛을 쏘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그들의 바람과 나의 바람, 그들의 빈틈과 나의 빈틈을 비교할라치면 지나가는 세월의 마디가 다를 뿐. 별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갖은 폼을 다 잡아야 한다니. 얼굴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연습을 일부러 해야 하는 이상한 직업병.
돌려먹는 쿠키. 휴대폰에서 울리는 상쾌한 컬러링. 매일매일 바꿔보는 노트북 배경화면. 누군가의 생뚱맞은 농담. 책장 위에서 아기자기 피어나는 봄꽃들. 교무실인지 교실인지 분간 못하는 장난꾸러기들의 도발. 반복되는 하루를 채우는 사물, 소리, 빛깔들. 나이를 먹고 있을 뿐인데 점점 어려지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마치 지금의 내가 십대 그 시절, 이십대 초반의 그 시절보다 더 답답하고 모자란 사람처럼 생각되곤 하는 것이다. 청춘을 허투루 보낸 것도 아닌데 완벽에 대한 향수는 어째 미래가 아닌 과거에 있을까.
봄을 놓칠까. 며칠 전에는 근처 수목원에 다녀왔다. 알록달록 도시락 가방을 든 가족들과 카메라를 둘러맨 젊은 연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내가 지나온 시간, 그리고 내가 가야 할 시간. 꽃이 꽃 자체로 군더더기 없이 아름다운 것처럼 나도 내내 그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련미보다는 자연미. 어떤 면에서는, 매우 시대착오적인 사람이고 싶다.
영어를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노래를 들려주면 얼굴에 반짝, 불이 들어온다. 그때의 나도 그랬다. 그리운 서정시대. 시를 쓰라고 하면 Love is money, Love is capability, Love is appearance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아이들. 고학년일수록 더 그렇다. 그래도 Love is heaven, sometimes hell. 사랑을 알고 있는 아이들. 언젠간 그 알고 있는 사랑을 겪어야 할 아이들. 그 달콤쌉싸름한 한 줄에 마음은 찌릿하여라.
이름은 모르겠다, 수목원 온실 안에 피어있던 꽃. 초록과 분홍의 조화는 언뜻 촌스러운듯, 완벽하다.
자전거 도로 옆, 길섶에 피어난 민들레. 나는 민들레가 참 좋다.
수목원에서 돌아오는 길. 자전거를 타고 씽씽- 두 번 넘어졌고, 넘어지는 것조차 재밌었던 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