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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더. 원빈의 팬인 엄마와 함께 봤다. 엄마는 애절한 모성에 관한 영화가 아니고 단순한 범죄물도 아니라며 무척 색다르다고 좋아하셨다. 박쥐는 상을 받았다는데 자식의 일이라면 murder도 서슴지 않는 이곳의 질긴 모성을 서방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흥미로웠던 것은 낯선 두 사람이 서로 상처의 정곡을 찔러 비극에 이르는 모티브였다. 바보 같은 사랑은 많이 보았지만 이런 바보 같은 살인은 처음이다. 나는 왜 마더를 보면서 밀양이 떠올랐을까. 터미네이터도 재미있었고 요즘 영화를 많이 보았는데 보고 나면 뭔가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간다. 기억력을 탓해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일상이 내게 겨를을 주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일상을 탓해보기도 하지만 기억력이 나빠진 것도 사실이다. 며칠 전 점심시간에는 축구선수 기성룡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숟가락으로 머리를 마구 쥐어박고 싶었다. 결국 그의 해사한 얼굴만 어른거리다가는 포기. 퇴근 길 운전 도중에 아! 하고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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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따듯하고 인간적인 곳이라면 참 좋을 텐데 요즘은 너나없이 너무 이기적이라 절로 한숨이 나올 때가 있다. 나 역시 특별히 이타적인 사람은 못되지만 적어도 낯 두꺼운 짓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는데 이곳도 다른 집단처럼 반반인 것 같다. 엄마는 교사인 딸에게 대놓고 “진짜 똑똑한 사람은 교사 못한다.”고 뼈 있는 지적을 하시곤 하는데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지적이다. 아이들은 인간적으로 부족하기 마련인데 교사들 또한 인간적으로 어딘가 모자란 사람들이지 싶다. 그래서 수준 맞는 사람들끼리 같이 놀라고 학교를 세웠는가 보다. 자학이 아니라 현실이다. 나이는 세월 지나면 저절로 먹는 것인데 그 당연한 세월의 힘을 빌려 아이들 위에, 또는 동료 위에 군림하려 들지 말아야겠단 생각을 한다. 정당성이 결여된 권위란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폭력이자 횡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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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좋게 좋게 넘어가려는 남자와 시시비비에 목매다시피하는 여자가 한집에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내가 내지르는 언어들은 창공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때가 많고 그는 그 날생선 같은 언어들을 갸웃거리며 받아들이곤 한다. 나는 “우리가 만약 한 직장에서 근무했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라고 말하고 그는 “아니지. 당신이 나한테 홀딱 빠져서 정신을 못 차렸겠지.” 느물거리며 응수한다. 이러한 농담 뒤켠으로 실은 서로를 서로에게 비춰보곤 한다. 부부는 서로를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자기 자신부터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문제에 있어 내가 때때로 억지를 부린다면 그는 이따금 잘 생각나지 않는 척 한다. 논리가 아닌 막무가내 억지였다, 잘 생각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시 떠올리기 싫은 실수였다, 요렇게 자기 자신을 깔끔하게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지 정말 미혼일 때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부부가 된 이상, 그 상상도 못했던 유치한 행태를 꾸준히 반복하며 살겠지.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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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고 있는 다짐.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의무를 방기하면서 수십 가지의 이유로 치장을 하는 족속은 되지 말자는 것. 안이한 구성원들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이 고생이 많다. 우아하게 포즈만 취하시는 분들 덕분에 발을 동동 구를 때도 있다. 故 노무현은 부지런하고 인간적인 어른이었다.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린 것은 그런 어른이 드물고 귀하기 때문이었다. 서른이 기점일까. 예전에는 젊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는데 요즘은 푸릇한 젊음들이 뭉뚱그려 보이고 외려 나이 든 사람들이 눈에 더 많이 들어온다. 그리고는 저렇게 나이 들었으면 좋겠다, 계속 저리 살면 늙어서 참 한심해지겠구나, 이런 생각들을 한다. 내 머리와 가슴에 훌륭한 역할 모델로 자리 잡은 분들, 그런 분들을 거울삼아 내 삶을 다듬어가야겠다고, 기왕 사는 거 잘 살아야겠다고, 천하지 않게 나이 먹어야겠다고, 조금은 부담스럽게 스스로를 긴장시킨다. 굵어지는 허리 사이즈도 염려스럽지만 순간순간 깜짝 놀랄만큼 점점 굳은살이 붙어가는 나의 의식이 문제, 문제적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