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젠 다들 지친 것 같다. 3단계로 상향한다고 해도 이곳저곳의 인파는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내 가족과 지인들은 아직 건강하지만 마치 비 사이로 막 다니는 사람들처럼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다. 살이 많이 쪘고 관찰예능을 많이 보았고 쿠팡 와우 회원이 되었다. 뭐 하나 좋은 게 없다.

    

 

2. 엄마는 뭘 그렇게 정의로운 척 해? 며칠 전 영달이한테서 들은 말이다. 곧 열두 살이 되는 영달이는 내 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와 닮지 않았다. 일단, 말이 없다. 선을 넘거나 오버하는 것을 싫어한다. 신중하다. 온몸으로 분노하고 돌아와 그 분노의 양상을 재현하는 내 모습을 본 영달이는 엄마는 별로 잘난 것도 없으면서 뭘 그렇게 항상 정의로운 척 하냐고 일침을 가했다. 엄마는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잘도 하면서, 왜 다른 사람이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화를 내는 거냐고 나를 궁지로 몰았다. 하도 기가 막혀서 웃었더니, 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를 않고 장난처럼 웃는 거냐고 기분이 나쁘단다. 결국 정색하고 사과했다. 많이 컸다. 그리고 당황스럽긴 하지만 뭔가 되게 학습이 잘 되어 있다.

    

 

3. 지난 4년간 근무했던 학교를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았다. 소규모 학교 중에서도 소규모 학교였고 한 집 식구처럼 가깝고 끈끈한 관계들 속에서 인간적으로 배운 것이 많았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물도, 사람도, 시간도 흘러야 한다. 다만, 학교를 떠날 때마다 항상 홀가분한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어째 아이들을 뿌리치고 가는 느낌이다. 정이 많이 들었다. 어쩌면 나 혼자만. 여러 가지 면에서 조금 소외된 아이들인데 더 잘해 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까짓 영어 한 줄 더 읽는 것보단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힘이 되는 따듯한 추억들을 만들어주었어야 하지 않은가, 후회도 된다. 남아 있는 날들이라도 우리 더 많이 웃자. 웃을 일을 부러 만들지 말고 아무 것도 아닌 것에도 크게 웃어보자.

 

 

4. 30대는 혈기가 왕성하고 40대는 그 혈기가 굳어버리고 50대부터는 혈기 자체가 사라진다는 말을 어디서 보았던 것 같다. 결국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욱하다가 고집쟁이 중년이 된다는 이야기인가? 그리고는 혈기 있는 젊은이들을 부려먹을 궁리나 하는 교활한 늙은이가 된다는 결말? 너무나 와 닿는 지적이라서 욱함과 고집스러움 사이에서 갈지자로 방황하던 요즘, 제발 아름답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추하게는 나이 들지 말자고 다짐하며 마음의 거울을 비춰본다. 에픽테토스를 다시 읽기 시작했고 채근담도, 그리고 이해인 수녀님의 말씀도 꼼꼼히 읽어본다. 그러면서도 영달이로부터 날카로운 펀치를 한 방씩 먹을 때면 책상머리 바보로 살아온 건 아닌가 싶어 허무해지고 우울해진다.

    

 

5. 당신은 캘리그라피로 그에게 맞는 아름다운 문구를 써 주시오. 나는 타로 상담을 맡겠소. 평수는 그리 넓을 필요 없고 상담을 받는 분들에게는 무료 커피를 드려야 하니 바리스타 자격증도 필수겠지. 코로나 집콕으로 인해 보석십자수부터 크리스털 블록까지 집안 곳곳에 우리의 작품들이 즐비하니 나중에 가게 인테리어용으로 사용하도록 합시다. 우선 내년에 타로 자격증 연수를 듣고 자격증을 따서 학생 상담부터 해봅시다. 이제 야매로 하는 타로 상담은 그만두자요. 요즘 남편과 내가 나누고 있는 대화다. 뭔가를 시도 때도 없이 시도해야만 혈기가 굳는 것을 예방할 수 있으리라. 실현 가능성이라곤 없어도, 실현이 되어도 감당이 안 되긴 하지만, 그냥 내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일, 해보면 좋은 일들을 구상해 보는 것도 참 즐거운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내년에 새 학교에서 새 친구들을 만날 때에는 마스크를 벗고 활짝 웃어 보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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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 페이퍼에 간간히 등장하곤 했던 S, 신혼여행 첫날, 늦은 밤 전화를 걸어 결혼은 왜 한 거냐고, 결혼해서 좋으냐고 따져 물어 새벽 내내 울어야했던 기억. 왜 나의 꿈에 나타나는 어린아이는 항상 영달이가 아닌 S양인지, 내가 나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했던 그녀. 그토록 아련하고 사랑하는 S양이 엊그제 왔었다.

 

커피숍에 들러 아이스커피 여섯 잔을 사서 친정으로 가는 길, 마음이 참 묘했다. 몇 년 전 큰이모의 장례식장에서 거의 스치듯 헤어진 후 어느덧 이십대 중반이 되어가는 S양이 모처럼 고모와 언니를 보겠다고 온 것이다. 말 그대로, 아주 선명하도록, 예쁘고 착하고 야무진 동생, 사람은 유년기의 본질을 씨앗처럼 간직하는 존재이니 너 역시 그렇겠지.

 

조막만하고 오밀조밀한 얼굴에 귀여운 눈웃음, 그나저나 내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은 어머, S, 너 왜 이렇게 말랐어!” 였다. 아가씨는 아가씨인데 어릴 적 말투와 눈웃음이 그대로여서 감격스럽기도 하고 가느다란 팔목을 보니 애틋하기도 해서 거의 울 뻔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함께 들른 엄마의 형제들, 그러니까 나의 이모, 외삼촌 사이에서 숱한 대화들이 오가고 함께 웃었지만 내내 나의 마음은 S를 향해 있었다. 나는 어쩐 일인지 결혼식장에서 S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고 그 울먹이는 마음이 신혼여행 내내 지속되어서 남편은 영문을 몰라 했었다. 그 후로 S가 몇 번 놀러왔었고 마음이 조금 회복되었다가 그녀가 사춘기를 지나고 여고생이 되고 대학에 가면서, 그리고 내가 정신줄 온전히 붙들고 살기 힘든 영달이 엄마가 되면서, 우리는 조금씩 멀어져갔다.

 

한 번쯤 연락을 해봐도 좋았으련만 왜 그러지 않았을까. 내 코가 석자라서? 망설이다가 타이밍을 놓쳐서? 외삼촌에 대한 원망 때문에? 그저 알아서 잘 살겠지 싶은 믿음 때문에? 이유는 대려면 여러 가지이고 핑계는 만들려면 수십 가지도 넘겠지만 그냥 그때는 그랬던 것이고 시간은 잘도 흘러 또 다시 우리를 만나게 했다.

 

마치 다시는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듯 S와 나는 연락처를 묻고 서로 편지를 하기로 약속했다. 그때도 쿠키포장지나 귀여운 메모지에 헤어질 때마다 편지를 써주곤 했던 S였다. 집에 있는 앨범에는 뻥이요 과자에 들어있던 메모지에 S가 써준 편지가 아직도 있다. 영원히 언니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말 옆에는 웨이브 단발에 동그란 안경을 쓴 이십대의 내 모습이 그려져 있다. S가 나의 동생이고, 내가 기억하는 그녀가 맞다면, 지금 그녀가 지나고 있는 이십대도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당차 보이지만 자기만의 아픔이 있고, 구슬처럼 예쁘지만 단단한 슬픔 같은 것이 있으리라.

 

그 와중에도 순진하고 바보 같은 언니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생각보다는 좀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진정 진심어린 눈빛으로 나를 놀려댔지만 S, 언니가 멀쩡할 리가 있겠니. 너나 나나, 그때나 지금이나, 그냥 남들 보기 멀쩡한 척 사는 거야. 다들 그러고 산단다. 딱히 다른 방법이 있지도 않아. 다들 각자 생긴 대로, 깜냥대로, 꼴리는 대로 사는 거란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으니 너도 당분간은 외삼촌 등에 빨대 꽂고 너 하고픈 대로 살아. 못 그랬으니까 실컷 그래본 다음, 그 다음은 그 다음에 생각해도 돼.

 

그리고 예전처럼,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함께 하자.

(그런데 언니는 요즘도 알라딘에서 책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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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 남편은 자기한테는 발현되지 않는 모성애가 남한테는 차고 넘친다고 비아냥거렸지만 내가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당신이랑 엮이지도 않았다고요.

 

아무튼 내 입으로 말하기 참 뭣하지만 나란 사람은 동글동글하고 팡파짐한 게 인상부터 접근이 용이한데다 내 딴에는 낯설기에 조심하고, 지인이기에 친절한 건데 어느 순간 상대방이 훅, 하고 선을 넘는 순간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사람은 가려가며 사귀어야 한다고 초장에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면밀히 살피고 거리를 두어야 마땅한데 어영부영 지내다 보면 호의를 호구로 안다고, 내가 굉장히 만만한 위치에 서 있는 거다. 나 스스로는 단연코 만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그야말로 내 생각일 뿐. 상대방이 나를 그렇게 보고 있는 거다. 열 번 잘해주다 한 번 의견을 내면 쌍심지를 켜고 덤벼든다든가, 본인은 하고 싶은 말 못 참고 다 뱉어내는 주제에 나의 한 마디에 상처 입은 듯 오버를 한다든가, 뭐 그런 일들 말이다.

 

처음부터 약간 싸가지 없이 상대를 해줬으면 그럴 일도 없을 텐데 해맑게 웃고 있다가 한 마디를 하니 그게 서운해서 그러는 건지, 심상한 얼굴로 정곡 찌르기인 나의 악취미에 상처를 받은 건지... 보자보자 하지 말고 참을 만큼 참지도 말고, 그냥 쭈욱 보든가, 쭈욱 참든가, 그러지 못하겠으면 입을 다물고 있던가, 한 마디 할 것 같으면 처음부터 단호하게 선을 긋던가. 나를 위해서도, 상대를 위해서도 확실히 그러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냥 나는 좀 단순하게 생각했다. 엄청난 기대를 했다기보다 내가 친절하면 상대도 친절하겠지.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면 주변 사람들도 함께 움직이겠지. 되도록 공평한 게 좋은 거 아닐까... 하지만 그럴 때보다 안 그럴 때가 비교 불가할 정도로 많다는 것을 직장에서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더욱 심각하게 느낀다.

 

똥싸배기 같은 꼰대들 때문에 열 받아서 분노도 식히고 감정도 정리할 겸 이렇게 글을 쓰는 거다. 본인이 싸고 싶으면 본인이 후처리까지 할 것이지 만만한 데다 말뚝 친다고, 관리자나 꼬장꼬장한 사람한테는 한 마디도 똑바로 못하는 주제에 젊은 후배 교사, 계약직 직원들은 아주 수족 부리듯 한다. 더구나 이런 인간들이 본인 약점 들통날까 그러는지 목소리는 무지하게 크고 약점이라도 잡히면 아주 노발대발 난리를 쳐댄다. 엊그제 몇 마디 뿜어줬더니 좀 조용해진 것 같은데 며칠 못 가서 새로운 먹잇감을 찾든가, 기존의 먹잇감과 유대를 더 공고히 하려 하든가, 지속적인 사기꾼 쇼를 하겠지. 하여간에 직간접적으로 한 번만 더 나하고 엮이면 꼰대질은 느네 집에나 가서 하라고 혼구녕을 내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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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달이: 다양한 장르를 읽는다. 인디밴드의 일상적인 노랫말부터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까지, 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부터 햄스터에 대한 101가지 비밀까지. 책을 좋아하는 엄마 덕분에 뱃속에 있을 때부터 지금껏 꾸준히 활자에 노출되어 왔으나 요즘엔 아빠와 한 팀이 되어 즐기는 휴대폰 게임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학교와 언론을 통해 안전교육을 받아서인지 스스로 조절하며 이용 중이긴 한 것 같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그토록 책을 사랑하던 영달이가 다른 데 시선을 빼앗기는 것이 못내 아쉽다. 지금은 열심히 독서록도 작성하고 알라딘 장바구니에 책을 골라 담기도 하고 이런 책을 사달라, 저런 책이 보고 싶다고 이야기 하지만 머잖아 영달이도 이상한 줄임말을 써가며 듣도 보도 못한 활자로 비밀스런 문자를 주고받는 건 아닐까. 책을 권해주면 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엄마가 고르냐고 째려보면서 세상에 책보다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 줄 아냐고, 나를 완전히 간서치 취급하면서 소외시키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세상에 재미있는 책, 예쁜 장정의 책, 갖고 싶은 책, 휴대폰처럼 다 보고 나면 꺼지는 책이 아니라 여전히 손에 남아 있는 책들이 많고 또 많다. 요즘 들어 영달이는 내가 읽는 그림은 없고, 글밥은 많은 책들에 관심을 보인다. 재미있는데 말해 줄 수 없다고 하면 빼앗아 읽기도 한다. 이 또한 즐거운 일이다.

 

남편: 우선 책을 고르는 안목이 없다. 이 남자가 사들인 책은 주로 알라딘 중고로 되팔거나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한다. 스스로도 쉬이 인정하는 바. 누군가에게 실낱같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며 나날이 되판다. 그럼에도 직장 동료들과 영달이의 눈에는 뭔가 책 좀 읽는 인간으로 비춰지고 싶은지 늘 책을 끼고 지낸다. 소파 위에, 화장대 위에, 식탁 위에, 가방 안에, 언제나 책이 있다. 내 책장을 뒤적이며 본인이 읽을 만한 책들을 가져가기도 하고 매일 소량의 페이지를 짤꼼거리며 읽다가 잠이 들곤 한다. 문맥에 따른 자연스런 띄어 읽기를 못하여 영달이에게 구박을 받고 내가 책에서 읽고 들려준 내용을 본인이 책에서 읽었다며 나에게 들려줄 때, 뒤통수를 가격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간혹 책을 읽고 제법 쓸 만한 비평을 하기도 하는데 같은 책을 읽고도 다르게 느낀다는 점이 재미있어서 내가 몹시 좋게 읽었던 책이나, 반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던 책을 읽히면 의외의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하지만 이 남자가 추구하는 주요한 쾌락의 원천은 주로 네 글자로 된 제목의 웹툰 만화들이다. 뭔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뉴스라도 보고 있나 다가가 살펴보면 어김없이 웹툰을 보고 있다. 매번 기승전결이 똑같은 영웅 스토리가 질리지도 않는지... 정말 질린다.

 

: 며칠 전 경향신문에서 소설가 한강이 책을 읽지 않을 땐 자신이 부스러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읽고 나면 부스러졌던 부분이 다시 모아지는 느낌이 있어요.” 라고 이야기한 인터뷰 기사가 있었다. 작가의 말들을 수첩에 메모해 두었다. 나 역시 그렇다. 인생의 힘들었던 시기마다 내게 찾아와준 책이 있었고 글로 맺은 인연들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텅 빈 책장은 텅 빈 냉장고만큼이나 나를 우울하고 허기지게 만든다. 너무 꽉 채우지는 말고, 어느 만치 여유 있게, 책들끼리 적당한 기울기로 가지런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고, 손이 자유로울 만큼 공간을 확보하여 쉽게 넣다 뺐다 할 수 있는 폭과 깊이로 정리된 책장... 그 앞에 서거나 앉아서 요즘은 책에 관한 책, 책읽기에 관한 책, 글쓰기에 관한 책, 인생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다. 삼십대 초반까지는 줄곧 소설 위주로 읽었는데 다시 푹 빠져서 읽고픈 마음은 늘 있는데도 주로 손이 가는 책은 위와 같은 책들이다. 허구와 타인의 삶에 감정을 몰입하기에는 내 생활이 너무 빠듯한가 보다. 보다 젊었던 시절에는 주디도, 안나도, 캐서린도, 개츠비도, 다 나 같았는데 지금 다시 그 소설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계속 읽다 보면 언젠가 그 작품들과 다시 만날 날도 있겠지. 책의 미래를 염려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지속가능한 종이책 독자로 남고 싶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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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6-24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책에서 읽고 들려준 내용을 본인이 책에서 읽었다며 나에게 들려줄 때, 뒤통수를 가격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저도 경험한 바 있기에 웃으며 읽었습니다. 하하.

오랜만이에요, 깐따삐야 님!

깐따삐야 2019-06-25 08:24   좋아요 0 | URL
기억력은 나쁜데 아는 척은 하고 싶고... ㅎㅎ

다락방님이 계셔서 알라딘은 언제 들어와도 친숙하고 즐거워요~
 

 

내가 근무하는 지역의 각 학교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학번 동기들이 포진해 있다. 알고 보니 우리도 그 사실이 참 재밌었는데 다들 바빠서 얼굴 한번 보기가 그렇게 힘이 들었다. 그 와중에 K가 함께 출장을 가자고 연락을 했고 마침 업무도 같아서 친구 얼굴도 볼 겸, 이웃 지역 견학도 할 겸, 흔쾌히 동의했다.

 

K20년 지기 친구이니 아마 알라딘 페이퍼에도 이따금씩 출연했을 것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 같은 과 동기이자 기숙사 친구로 만나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멀지 않은 거리에서 서로의 변화를 지켜보고 각자의 삶을 응원해 왔다.

 

내 가방에는 김영하의 책이, 친구의 가방에는 유시민의 책이 들어 있었다. ‘대화의 희열이야기를 하다가 K가 술에 취해 기숙사 가는 길에 토이의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열창했던 추억을 이야기하니 내가 그랬어? 라는 말이 돌아온다. 대학 캠퍼스라 그런가 우리의 민폐와 경거망동에도 주변 사람들은 다 관대한 미소를 지으며 지나쳤던 기억. 그 당시 우리의 이상형은 정말이지 김영하나 유희열처럼 지적이고 샤프한 남자였는데 현재는 둘 다 가까이 오면 쏘고 싶은 토끼띠 남자들과 살고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의 타인들과 점점 조심스러운 대화에 길들어 가는데 친구란 조심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배려가 힘이 들거나 긴장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하고 친근한 리듬처럼 편안하다. 시골길을 걷고 버스에 나란히 앉아, 밥을 먹고 강연을 들으며 정말 모처럼 숱한 대화를 나눴다. 편찮으신 부모님들과 죽음에 대해서, 도무지 합리적 추정이 불가능한 유전적 조합을 물려받은 아이들에 대해서, 중년에 접어들어 여기저기 아프다고 아우성인 심신에 대해서, 학습보다는 계몽이 우선인지, 학습이고 계몽이고 간에 지금 당장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면 그만인가 싶은 시골학교의 새로운 사업들에 대해서, 워킹맘으로서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서...

 

무엇보다도 이쯤 되면 뭔가 사는 게 되게 자신 있어질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에 동감했다. 어떤 하루를 보내더라도 아이 앞에서는 늘 밝게 웃어주고 상냥한 대화를 하는 엄마, 분필 하나만 들고 들어가서도 서너 시간 쯤 멋진 수업을 할 수 있는 선생님, 칭찬과 격려로 남편의 기를 살려주고 피로를 풀어주는 아내, 남들이 다 외면할 때 제가 한번 해보죠! 라고 척척 도맡아 해결하는 직장인, 교양과 상식을 갖추었으면서도 유연한 판단력과 공감능력을 발휘할 줄 아는 지식인, 뭐 그쯤 될 줄 알았나 보다. 그러면서도 자기 관리에 철저하여 이십대 시절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저는 관리 같은 건 안 받아요, 제 젊음의 비결이 있다면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능력 때문이 아닐까요? 호호호~ 뭐 이러면서... 물론 현실은 저 어휘들의 반대말만 찾아서 다시 문장을 쓰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우리를 보우하사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살아가지는 느낌이다. 스무 살 초엽에 나를 사로잡았던 카뮈의 전언들.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 생의 부조리를 깨달은 시지프스의 행복... 요즘 다시 되새기며 생각해보게 되는 말들이기도 하다. 우리가 반듯하고 착실하게 살아가면 우리의 아이들도 우리를 닮아갈 거라고,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K와 훈훈한 마무리로 헤어졌지만 나도 끝까지 가보지 않은 삶, 무엇을 알고 떠든 것은 아니다. 다만 일상을 이루는 소소하고 반복적인 습관들을 소중한 리추얼처럼 살아내자는 너와 나를 위한 격려였다.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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