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억들을 꺼내어서 활자로 풀어놓고 싶은데 언젠가부터 그것이 잘 되지가 않는다.

페이스트리 같던 마음의 결이 틈 없이 단단한, 뻔한 맛의 쿠키가 되어버린 것 같다.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알약 한 알의 작용이라기엔 인정하고 싶지가 않다. 핑계 같다.

 

아직 정리가 덜 되어서일까.

아니다. 쓰면서 정리해 나가곤 했었다.

정리할 수 없어서일까.

아니다. 그 정리할 수 없음이 곧 글이 되곤 했었다.

 

나 대신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영화를 보고,

나 대신 내 슬픔을 읽어주는 활자를 읽는다.

분명 공감과 위로와 진실이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정확하지는 않다.

 

그래서 오늘도 읽는데,

이제는 쓰고 싶다. 이렇게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 수줍고 차분한 목소리. 누구니? 선생님, 저 ○○이에요. 아, 그래그래. S구나. 잘 있었어? 오랜만이다. 이제 네가 몇 학년이지? 선생님, 저 고3이에요...

 

그렇다. 코로나의 정점을 지나던 즈음, 전근 온 지금 이 학교에서 처음 담임을 맡은 반 학생들이 그새 고3이 되었다. 몸집보다 조금씩 큰 교복을 입고 동그마니 앉아 있던 귀여운 중학교 새내기들이 대입 수시 원서 마감 중인 것이다.

 

전염병이 창궐하여 시시때때로 전원 귀가조치 방송이 나오던 그 무렵에도, 우리는 마니또를 하고 벼룩시장을 열고 연극을 하고 소소한 기념일들을 자축하며 성실히 친해졌다. 마스크를 쓴 채, 서로의 입모양은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눈빛으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새 학교에서의 첫해를 무탈히 보냈었다.

 

그 사이 세월은 흘러 올해 이 학교에서의 마지막 근무다. 햇수만으로 보면 사실 지난해 떠났어야 맞지만 나에게, 내 주변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S의 목소리를 들으니 반가움과 회한, 속절없음이 복잡하게 스친다.

 

주님의 뜻과 달리 견제와 경쟁이 난무하는 미션스쿨에서 S는 나름 괜찮은 성적으로 서울에 있는 몇몇 대학에 원서를 넣은 상태였다. 소위 우주상향은 아닌 듯한데도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숏컷에 무쌍, 스팽글이 달린 까만 점퍼... 손재주가 좋아서 각종 행사 때마다 재능발휘를 하던 깜찍하고 개성 넘치던 소녀였는데, 그 유니크한 당당함을 좋아했는데, 대학 입시 앞에서는 그저 여느 여고생들과 하등 다를 게 없었다. 얼마나 두렵고 쓸쓸했으면 수년 전 담임을 소환했을까 싶어 빨래를 개다 말고 내가 가진 모든 격려와 응원을 보냈다.

 

영어 시간에 관계대명사보다는 관계 맺기에 더 열중했던 그 시기가 아스라할 지경이지만, 마스크가 헐거워질 때까지 즐겁게 썰을 풀던 때가 있긴 했나 싶을 만큼 우리의 대화는 성적, 대입, 망해가는 교육 현실 등으로 우울하게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고1인 내 딸을 위해 참고할 만한 정보는 없을까 싶어 S가 제공하는 정보에 귀 기울이는 나 자신을 보라...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중3 아이들에게 공부를 많이 시키라고, 정말 많이 준비해서 와야 한다고 조언하는 S는 이미 내 기억 속, 장난스런 눈빛을 반짝이던 그 사춘기 소녀가 아니었다. 저는 똑같은 건 싫어요, 라고 말하던 그 당찬 아이는 어디로 간 걸까. 나는 여전히 문과라서 황송하고 의치한약수반도체에 열광하는 아이들에게 행복은 연봉 순이 아니라고 설파하곤 하지만, 이미 세상 다 산듯한 얼굴로 나를 생경하게 바라보는 중학생들도 적지 않다.

 

나는 S에게 거의 다 왔다고 말했다. 그 말이 입시의 끝을 뜻하는지, 이 시절의 끝을 뜻하는지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해주고 싶다. 똑같은 것은 싫다던 네가 어느새 남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때의 네가 사라진 것은 아닐 거라고. 대학 간판이나 연봉이나 스펙으로 설명되지 않는 너의 어떤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을 거라고. 그러니 지금은 조금만 더 가자. 그리고 다 가고 나면 잠시 멈춰 서서, 그때의 너를 다시 만나면 좋겠다. 마스크 너머로 눈빛을 주고받던 그해의 아이들과, 아직도 세상이 정해놓은 답을 믿지 못하는 나와, 어쩌면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S에게. We’re almost ther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1. 이젠 다들 지친 것 같다. 3단계로 상향한다고 해도 이곳저곳의 인파는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내 가족과 지인들은 아직 건강하지만 마치 비 사이로 막 다니는 사람들처럼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다. 살이 많이 쪘고 관찰예능을 많이 보았고 쿠팡 와우 회원이 되었다. 뭐 하나 좋은 게 없다.

    

 

2. 엄마는 뭘 그렇게 정의로운 척 해? 며칠 전 영달이한테서 들은 말이다. 곧 열두 살이 되는 영달이는 내 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와 닮지 않았다. 일단, 말이 없다. 선을 넘거나 오버하는 것을 싫어한다. 신중하다. 온몸으로 분노하고 돌아와 그 분노의 양상을 재현하는 내 모습을 본 영달이는 엄마는 별로 잘난 것도 없으면서 뭘 그렇게 항상 정의로운 척 하냐고 일침을 가했다. 엄마는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잘도 하면서, 왜 다른 사람이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화를 내는 거냐고 나를 궁지로 몰았다. 하도 기가 막혀서 웃었더니, 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를 않고 장난처럼 웃는 거냐고 기분이 나쁘단다. 결국 정색하고 사과했다. 많이 컸다. 그리고 당황스럽긴 하지만 뭔가 되게 학습이 잘 되어 있다.

    

 

3. 지난 4년간 근무했던 학교를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았다. 소규모 학교 중에서도 소규모 학교였고 한 집 식구처럼 가깝고 끈끈한 관계들 속에서 인간적으로 배운 것이 많았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물도, 사람도, 시간도 흘러야 한다. 다만, 학교를 떠날 때마다 항상 홀가분한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어째 아이들을 뿌리치고 가는 느낌이다. 정이 많이 들었다. 어쩌면 나 혼자만. 여러 가지 면에서 조금 소외된 아이들인데 더 잘해 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까짓 영어 한 줄 더 읽는 것보단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힘이 되는 따듯한 추억들을 만들어주었어야 하지 않은가, 후회도 된다. 남아 있는 날들이라도 우리 더 많이 웃자. 웃을 일을 부러 만들지 말고 아무 것도 아닌 것에도 크게 웃어보자.

 

 

4. 30대는 혈기가 왕성하고 40대는 그 혈기가 굳어버리고 50대부터는 혈기 자체가 사라진다는 말을 어디서 보았던 것 같다. 결국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욱하다가 고집쟁이 중년이 된다는 이야기인가? 그리고는 혈기 있는 젊은이들을 부려먹을 궁리나 하는 교활한 늙은이가 된다는 결말? 너무나 와 닿는 지적이라서 욱함과 고집스러움 사이에서 갈지자로 방황하던 요즘, 제발 아름답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추하게는 나이 들지 말자고 다짐하며 마음의 거울을 비춰본다. 에픽테토스를 다시 읽기 시작했고 채근담도, 그리고 이해인 수녀님의 말씀도 꼼꼼히 읽어본다. 그러면서도 영달이로부터 날카로운 펀치를 한 방씩 먹을 때면 책상머리 바보로 살아온 건 아닌가 싶어 허무해지고 우울해진다.

    

 

5. 당신은 캘리그라피로 그에게 맞는 아름다운 문구를 써 주시오. 나는 타로 상담을 맡겠소. 평수는 그리 넓을 필요 없고 상담을 받는 분들에게는 무료 커피를 드려야 하니 바리스타 자격증도 필수겠지. 코로나 집콕으로 인해 보석십자수부터 크리스털 블록까지 집안 곳곳에 우리의 작품들이 즐비하니 나중에 가게 인테리어용으로 사용하도록 합시다. 우선 내년에 타로 자격증 연수를 듣고 자격증을 따서 학생 상담부터 해봅시다. 이제 야매로 하는 타로 상담은 그만두자요. 요즘 남편과 내가 나누고 있는 대화다. 뭔가를 시도 때도 없이 시도해야만 혈기가 굳는 것을 예방할 수 있으리라. 실현 가능성이라곤 없어도, 실현이 되어도 감당이 안 되긴 하지만, 그냥 내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일, 해보면 좋은 일들을 구상해 보는 것도 참 즐거운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내년에 새 학교에서 새 친구들을 만날 때에는 마스크를 벗고 활짝 웃어 보일 수 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언젠가 내 페이퍼에 간간히 등장하곤 했던 S양, 신혼여행 첫날, 늦은 밤 전화를 걸어 결혼은 왜 한 거냐고, 결혼해서 좋으냐고 따져 물어 새벽 내내 울어야했던 기억. 왜 나의 꿈에 나타나는 어린아이는 항상 영달이가 아닌 S양인지, 내가 나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했던 그녀. 그토록 아련하고 사랑하는 S양이 엊그제 왔었다.

 

커피숍에 들러 아이스커피 여섯 잔을 사서 친정으로 가는 길, 마음이 참 묘했다. 몇 년 전 큰이모의 장례식장에서 거의 스치듯 헤어진 후 어느덧 이십대 중반이 되어가는 S양이 모처럼 고모와 언니를 보겠다고 온 것이다. 말 그대로, 아주 선명하도록, 예쁘고 착하고 야무진 동생, 사람은 유년기의 본질을 씨앗처럼 간직하는 존재이니 너 역시 그렇겠지.

 

조막만하고 오밀조밀한 얼굴에 귀여운 눈웃음, 그나저나 내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은 “어머, S야, 너 왜 이렇게 말랐어!” 였다. 아가씨는 아가씨인데 어릴 적 말투와 눈웃음이 그대로여서 감격스럽기도 하고 가느다란 팔목을 보니 애틋하기도 해서 거의 울 뻔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함께 들른 엄마의 형제들, 그러니까 나의 이모, 외삼촌 사이에서 숱한 대화들이 오가고 함께 웃었지만 내내 나의 마음은 S를 향해 있었다. 나는 어쩐 일인지 결혼식장에서 S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고 그 울먹이는 마음이 신혼여행 내내 지속되어서 남편은 영문을 몰라 했었다. 그 후로 S가 몇 번 놀러왔었고 마음이 조금 회복되었다가 그녀가 사춘기를 지나고 여고생이 되고 대학에 가면서, 그리고 내가 정신줄 온전히 붙들고 살기 힘든 영달이 엄마가 되면서, 우리는 조금씩 멀어져갔다.

 

한 번쯤 연락을 해봐도 좋았으련만 왜 그러지 않았을까. 내 코가 석자라서? 망설이다가 타이밍을 놓쳐서? 외삼촌에 대한 원망 때문에? 그저 알아서 잘 살겠지 싶은 믿음 때문에? 이유는 대려면 여러 가지이고 핑계는 만들려면 수십 가지도 넘겠지만 그냥 그때는 그랬던 것이고 시간은 잘도 흘러 또 다시 우리를 만나게 했다.

 

마치 다시는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듯 S와 나는 연락처를 묻고 서로 편지를 하기로 약속했다. 그때도 쿠키포장지나 귀여운 메모지에 헤어질 때마다 편지를 써주곤 했던 S였다. 집에 있는 앨범에는 뻥이요 과자에 들어있던 메모지에 S가 써준 편지가 아직도 있다. 영원히 언니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말 옆에는 웨이브 단발에 동그란 안경을 쓴 이십대의 내 모습이 그려져 있다. S가 나의 동생이고, 내가 기억하는 그녀가 맞다면, 지금 그녀가 지나고 있는 이십대도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당차 보이지만 자기만의 아픔이 있고, 구슬처럼 예쁘지만 단단한 슬픔 같은 것이 있으리라.

 

그 와중에도 순진하고 바보 같은 언니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생각보다는 좀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진정 진심어린 눈빛으로 나를 놀려댔지만 S야, 언니가 멀쩡할 리가 있겠니. 너나 나나, 그때나 지금이나, 그냥 남들 보기 멀쩡한 척 사는 거야. 다들 그러고 산단다. 딱히 다른 방법이 있지도 않아. 다들 각자 생긴 대로, 깜냥대로, 꼴리는 대로 사는 거란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으니 너도 당분간은 외삼촌 등에 빨대 꽂고 너 하고픈 대로 살아. 못 그랬으니까 실컷 그래본 다음, 그 다음은 그 다음에 생각해도 돼.

 

그리고 예전처럼,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함께 하자.

(그런데 언니는 요즘도 알라딘에서 책 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러니까 나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 남편은 자기한테는 발현되지 않는 모성애가 남한테는 차고 넘친다고 비아냥거렸지만 내가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당신이랑 엮이지도 않았다고요.

 

아무튼 내 입으로 말하기 참 뭣하지만 나란 사람은 동글동글하고 팡파짐한 게 인상부터 접근이 용이한데다 내 딴에는 낯설기에 조심하고, 지인이기에 친절한 건데 어느 순간 상대방이 훅, 하고 선을 넘는 순간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사람은 가려가며 사귀어야 한다고 초장에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면밀히 살피고 거리를 두어야 마땅한데 어영부영 지내다 보면 호의를 호구로 안다고, 내가 굉장히 만만한 위치에 서 있는 거다. 나 스스로는 단연코 만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그야말로 내 생각일 뿐. 상대방이 나를 그렇게 보고 있는 거다. 열 번 잘해주다 한 번 의견을 내면 쌍심지를 켜고 덤벼든다든가, 본인은 하고 싶은 말 못 참고 다 뱉어내는 주제에 나의 한 마디에 상처 입은 듯 오버를 한다든가, 뭐 그런 일들 말이다.

 

처음부터 약간 싸가지 없이 상대를 해줬으면 그럴 일도 없을 텐데 해맑게 웃고 있다가 한 마디를 하니 그게 서운해서 그러는 건지, 심상한 얼굴로 정곡 찌르기인 나의 악취미에 상처를 받은 건지... 보자보자 하지 말고 참을 만큼 참지도 말고, 그냥 쭈욱 보든가, 쭈욱 참든가, 그러지 못하겠으면 입을 다물고 있던가, 한 마디 할 것 같으면 처음부터 단호하게 선을 긋던가. 나를 위해서도, 상대를 위해서도 확실히 그러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냥 나는 좀 단순하게 생각했다. 엄청난 기대를 했다기보다 내가 친절하면 상대도 친절하겠지.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면 주변 사람들도 함께 움직이겠지. 되도록 공평한 게 좋은 거 아닐까... 하지만 그럴 때보다 안 그럴 때가 비교 불가할 정도로 많다는 것을 직장에서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더욱 심각하게 느낀다.

 

똥싸배기 같은 꼰대들 때문에 열 받아서 분노도 식히고 감정도 정리할 겸 이렇게 글을 쓰는 거다. 본인이 싸고 싶으면 본인이 후처리까지 할 것이지 만만한 데다 말뚝 친다고, 관리자나 꼬장꼬장한 사람한테는 한 마디도 똑바로 못하는 주제에 젊은 후배 교사, 계약직 직원들은 아주 수족 부리듯 한다. 더구나 이런 인간들이 본인 약점 들통날까 그러는지 목소리는 무지하게 크고 약점이라도 잡히면 아주 노발대발 난리를 쳐댄다. 엊그제 몇 마디 뿜어줬더니 좀 조용해진 것 같은데 며칠 못 가서 새로운 먹잇감을 찾든가, 기존의 먹잇감과 유대를 더 공고히 하려 하든가, 지속적인 사기꾼 쇼를 하겠지. 하여간에 직간접적으로 한 번만 더 나하고 엮이면 꼰대질은 느네 집에나 가서 하라고 혼구녕을 내줄 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