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우수상은 우수한 댓글 덕분이라는 야클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 제가 쓴 글보단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보며 더욱 재밌고 즐거웠던 이벤트였습니다. 그런데 벌써 마지막이라네요. 글을 쓰는 동안 저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를 다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기에 참 고맙고도 유익한 시간이었는데 말이지요. 태그 주제 없는 나날들을 상상하려니 갑자기 쓸쓸함이 밀려옵니다.

 요러한 서운함은 잠시 뒤로 하고! 자그마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제 맘대로 시상식을 준비했습니다. 백퍼센트 주관적인 평가라는 점, 이백퍼센트 즉흥성을 띤다는 점을 감안하여 비록 의아하거나, 설마 섭섭한 점 눈에 밟히시더라도 널리널리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시상식이라는 건 대개 어느만치 편파적이기 마련이잖아요. :)  


☆ 역마살상 - 메피스토펠레스님  

하루 다섯 시간 미만의 수면 시간 이외에는 항상 알라딘을 주시하고 계신 분이죠. 메피님 댓글이 달리지 않은 페이퍼 있음 나와 보라 그래! 실시간으로 발빠르게 움직이는 구동력으로 알라딘오너설, 서재지기설, 문자전송설, 유체일탈설, 분신설, 총각설 등 별별 풍문이 오가고 있는 바. 새해에도 변치 않는 마이 퍼스트로서 올해에 버금가는 부지런한 활동 부탁드립니다아.^^

☆ 산전수전상 - 아프락사스님

올 한해 많은 토론에 참여하시면서 알라딘의 메인 논객으로서 열심히 활동하셨죠. 차가운 지성과 따듯한 열정을 겸비하신 분으로 아프님 없는 알라딘은 별사탕 빠진 동물원이요, 새알심 없는 팥죽이라는.(고작 먹는 거에 비유하는 한계를 이해해주심이) 내/외면의 미모를 두루 갖춘 훈남 기근 현상에 시달리는 요즘 같은 세태에 참으로 보기드문, 소중한 훈남이세요.

☆☆ 세일러문상 - 웬디양님

명랑만화 속에서 금방 튀어나올 것처럼 위트 넘치고 재기발랄한 우리의 웬디양님. 저는 종종 이런 환청에 시달립니다. "사랑과 정의의 힘으로 이명박을 용서하지 않겠다!" (용서 못하면 머? 네. 이렇게 된 마당에 할말은 없습니다만.-_-) 저와는 동갑내기 아가씨로 그녀의 페이퍼를 조금만 훑어보면 알 수 있듯 매우 똑똑하고 야무진 사람이에요. 거기에 인간미 넘치는 유머본능까지 갖추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죠. 08년도 무자년. 무쟈게 촉망받는 알라딘의 기대주입니다. 

☆ 레간자상 - 로쟈님

엄청나게 읽으시고 엄청나게 올리시는 자타공인 막강 알라디너시죠. 제 쪼매난 소망 중의 하나는 로쟈님의 오프라인 서재에 구경가는 것인데요. 놀러가고시포요- 라고 하면 여긴 롯데월드가 아닌데요^^;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댓글을 남기실 분 같아요. 털썩~ 이렇게 공짜로 흡수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좋은 글들을 빠른 속도로, 부지런히 올려주고 계신 알라딘 쵝오의 지성인. 소리 없이 강하신 로쟈님 되시겠사와요. (상 받으로 오시지도 않겠지만요. 훙!)

☆ 아름다운서재폐인상 - 순오기님

자칭타칭 내노라 하는 서재폐인이시죠. 가족 구성원 5인 모두가 A형이라는 순오기님은 이웃집에 대출을 불사할 정도로 수많은 장서를 소유하신 이 시대 쵝오의 책벌레이자, 메피님에 버금 가는 레이더망을 자랑하는 진정한 서재폐인이십니다. 순~ 오기로 버티시는 게 아니라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책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지적인 어머니이자 부지런한 알라디너시죠. 순오기님을 뵈면 제가 나중에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어도 이만치 열심히 읽고 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존경심이 물밀듯 밀려오곤 합니다. 순오기님을 본받아 주부가 되더라도 쉬임 없이 읽고 쓸게요!

 
☆ 책벌레상 - 물만두님

어쩌면 알라디너로서 가장 알라디너스러운 상이 아닐까 싶어요. 이미 눈으로 확인하셨다시피 알라딘 연말결산, 쵝오의 독서가셨죠. 하루에도 백만스물두번 이상, 감정의 파고를 겪고 사는 저와는 달리 無를 사랑하는 특유의 초연함으로 오늘도 열심히 독서 중이신 우리의 물만두님. 비록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물만두님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알라디너 분들 중 하나에요. (사는 일이 피로하고 어딘가 기댈 곳이 필요하신 분들은 물만두님의 백문백답을 추천해 드립니다.)

☆ 터줏대감상 - 마태우스님

올해는 많이 바쁘셨는지 활발하게 활동하진 않으셨지만, 페이퍼만 떴다 하면 실시간으로 좌르르 달리는 댓글들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알라딘의 영원한 터줏대감이시죠. 냉철함과 순수함, 예의와 일탈을 양면에 겸비하신, 참으로 매력적인 분이세요. 비록 미녀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시지만 미녀들 역시 마태님에겐 사족을 못 쓴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그야말로 행운의 사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년엔 더 자주 뵐 수 있음 좋겠네요!

☆ 로맨틱멘토상 - 부리님

아마 페이퍼를 읽으신 분들은 알고 계실 거에요. 실연의 아픔으로 제대로 강의를 수강할 수 없었던 여학생을 배려해주신 로맨틱 멘토, 부리님. 물론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 여학생이 미녀일거란 상상을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자손만대에 오래도록 회자될 배려 아닙니까. 학계에는 아무쪼록 우리 부리님 같으신 교수님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별과 미모에 상관없이 사랑의 아픔을 이해해 주시다면 더욱 멋진 부리님 되시겠사와요.^^

☆ 염장대왕상 - 야클님 & 가시장미님

다들 눈치채셨죠? 박빙이라서 공동수상자로 올립니다. 새신랑이 되신 야클님, J군과 대놓고 열애 중이신 가시장미님. 이 분들의 페이퍼 때문에 불면증, 수전증, 니코틴 중독, 잠수 타기 등등... 쓸쓸히 고통받고 계신 분들 많을 줄로 압니다. 그래도 말이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일상을 엿본다는 것은 참 감질나고도 행복한 일 아닌가요. 저는 이젠 아예 말라비틀어져가는 연애호르몬을 사사받기 위해 주기적으로 이분들의 서재를 방문합니다. 새록새록,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사랑의 향기로 아주 진동을 하더만요. 새해에도 아름다운 두 커플의 사랑이 더더욱 깊어지길 바라구요. 염장무늬 페이퍼 많이많이 올려주시길 부탁드려요. :)

☆ 엽기블러드상 - 엘신님

저와 같은 동족이라 잽싸게 하나 챙겨드렸습니다. 행님! 최근에 와서 자주 들락거리게 된 서재인데요. 페이퍼에 자주 올리시는 고양이마냥 아주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분이시더라구요. 스스로를 외계인이라 칭하며 지구인들을 희롱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뛰어난 기량의 4차원의 사고체계를 자랑하고 계시죠. 08년도에는 알라딘 기네스에 나란히 이름을 올려 가족 이기주의의 저력을 보여주자구요!

☆ 아기자기서재상 - 혜경님

참으로 꼼꼼하고, 아기자기하게 서재를 꾸려가는 분이십니다. 글과 사진, 댓글, 모두 그렇게 참하실 수가 없다는. 제가 지향하는 서재상이자 추구하는 여성상인데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도전하는 기분이라죠. 혜경님의 대문에는 이런 문구가 있는데요. 함부로 인용하자면, "나는 어떤 특별하고 특이한 것을 좇지 않는다.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아름다운 이미지란 가슴을 통해 만들어지는 기하학이다." - Willy Ronis - 혜경 (참으로 참하시지 않습니까?)

☆ 베스트드레서상 - nabi님

일단 서재에 가보시면 압니다. 아이들이 아픈 와중에도 섹시한 크리스마스 컨셉으로 이미지를 걸어주시는 그 화려한 쎈쓰! 하마터면 못 보고 지나칠 일상의 틈과 여백을 그림으로 담아낸 후, 아름다운 싯구로 다시 그 틈과 여백을 채워가는 알라딘의 소중한 예술가이시죠. 새해에도 nabi님의 그림과 글, 음악을 꾸준히 보고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하루빨리 쾌유하길 바라구요.

☆ 센티멘탈상 - 레와님&다락방님

이분들은 내노라 하는 감동의 귀재들입니다. 아아-로 시작되는 댓글들을 읽다보면 왜 똑같은 페이퍼를 읽고도 나는 왜 이분들처럼 감동할 수 없는가, 스스로의 사막스러운 감성을 통탄하게 된다는. 정서가 매우 부드럽고 다정하신 분들 같아요. 새해에도 아무쪼록 많은 호응 부탁드립니다. :)

☆ 아마도칠공주상 - 치니님

치니님 리뷰를 읽다보면 저라면 장장 스무페이지에 걸쳐 쓸 내용을 이토록 쉽고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거로구나 싶어져요. 사람과 사물을 단번에 직시하고 꿰뚫는 통찰력이 있달까요. 그건 그렇고, 저는 왠지 치니님이 칠공주의 대빵이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어요. 대체 왜 그런거죠.-_-

☆ 아임쏘리상 - BRINY님

저와 같은 직종에 종사하고 계시는데 저만 이렇게 놀구 앉았습니다. 가끔 BRINY님이 댓글 남겨주시면 전 속으로 뜨끔, 하곤 한답니다. 이렇게 샤방샤방한 세월도 한철이겠죠. 한 해만 더 봐주세욤. 눼에?

☆ 짝퉁카뮈상- Hansa님

카뮈를 좋아하는 제 취향이 마이 반영되었습니다. 그나저나 대체 진료는 언제 하시는 건지. 우리는 한사님의 점잖으신 이미지와 하하-라는 댓글 앞에서 가만히 숨을 죽이게 됩니다. (버르장머리 없다고 화내실라-_-)

☆ 잔다르크상 - 와키자카야스하루님

잔말 필요 없이, 이 분을 국회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택시만 태워드리면 되는 겁니까?!

☆ 밉지않은공주상 - 미미달님

왜 미미달이게에-요. 미미 인형을 닮아 미미달이라네요. 너무 솔직해서 어이가 없을 지경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본색은 로또홀릭이라는.^^ 그녀의 페이퍼를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저의 학부시절을 떠올리게 되고 그 안에 담긴 일상과 고민들이 무척이나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새해엔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 태그홀릭상 - 깐따삐야 (지가 주고 지가 받고- 좋댄다)

얼떨결에 태그 4관왕을 차지한 후 생각했습니다. 저만큼 한가한 사람은 없었던 거라고.-_- 장기간의 레폿질이 끝난 후 한 차례 공황장애로 시달리다가 태그질을 하면서 가까스로 극복했는데 이제 이벤트가 끝나면 저는 뭘 하면 좋을까요. 흑흑-

 

  뒤늦게 발동 걸린 서재질로 알라딘과 보다 친밀해진 듯한 기분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제가 얼마나 이런 일을 좋아하는가도 새롭게 깨달았구요.

 써놓고보니 어떤 면에서는 참으로 건방지기 짝이 없지만 연말연시의 훈훈함을 빌어 이해 부탁드릴게요. 상품은 따로 없구요. 필요하시면 저를 드릴 수는 있습니다만. 아무쪼록 악플은 사양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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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7-12-21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켁~~~수상자에 제 이름이 있어서 한번 놀라고, 잘못 읽으면 가시장미랑 저랑 커플인줄 알까봐 또 한번 놀라고. -_-+

마늘빵 2007-12-21 16:41   좋아요 0 | URL
축하해요 (뭘? 두 분이 커플인걸?)

깐따삐야 2007-12-21 18:56   좋아요 0 | URL
놀라시긴! 깨소금 볶는 냄새가 예까지 흘러들어와 야클님을 수상자 명단에 안 넣어드릴수가 없었어요. 자-알 읽으시면 됩니다.^^

마늘빵 2007-12-21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닛. 마지막 태그상도 줄 수밖에 없는 뻬빠잖아. 이유는? 나한테 상줬으니까.
근데 오지랖 상이 아닌게 다행... 휴우.

웽스북스 2007-12-21 17:04   좋아요 0 | URL
우리 깐따삐야님의 5관왕을 위해 추천도하고 댓글도 마구마구 달아보아요 ^^

깐따삐야 2007-12-21 18:58   좋아요 0 | URL
아프님- 또또 오버하신다. 오지랖상은 어감이 어째 좀 그래서요. 어차피 도찐개찐이지만. 흐흐.

웬디양님- 역시 자갸밖에 없엉!

웽스북스 2007-12-21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봐이봐이봐요 내가 세컨드인데 왜 아프님 아래 있는 거에요?
나 언제 써드로 가라앉은 거에요?
(별데 다 의미부여하고 ㅋㅋ)

깐따삐야 2007-12-21 19:00   좋아요 0 | URL
알쏘.-_- 닉넴 앞에다가 별표 두 개 붙여줄게욤. 그럼 돼얐지?

웽스북스 2007-12-21 22:33   좋아요 0 | URL
우와~ 진짜 별 두개다~ 헤벌쭉
* 아 놔, 왜 진짜 좋지? ㅋㅋㅋㅋㅋㅋㅋ

깐따삐야 2007-12-21 23:14   좋아요 0 | URL
흐음. 아무래도 내가 알라디너 여럿 망치고 있단 자괴감이 드는 건 몰까.-_-

마늘빵 2007-12-22 10:11   좋아요 0 | URL
나두나두 별 두개(요런다고 별 두개 안줄거 다 알아욧)

깐따삐야 2007-12-22 10:29   좋아요 0 | URL
아프님- 알면서 왜 그랬대요오? ㅋㅋ

비로그인 2007-12-21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하하핫, 4차원의 세계라. 그래서 3차원의 세계에선 적응을 못하고 있죠 ㅡ.,ㅡ
그나저나, 이쁜 내 동상!! 수고하셨소~ ^^ (나는 이런거 엄두 못내..ㅋㅋ)
08년에도 우리 가족의 저력을 발휘해 봅시다~ 캬앙-!! (다 물럿거라~)

깐따삐야 2007-12-21 19:02   좋아요 0 | URL
3차원 애들은 우리가 왕따시켜 버림 되지 모.
"이쁜"에 모두들 주목했음 좋겠다. 흐흐.
형님만 믿을게욤. 빠샷!

Mephistopheles 2007-12-2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제 댓글이 달리지 않는 페이퍼는 의외로 많습니다. 가는 곳만 가는 묘한 습성때문에.^^그리고 정말 다행입니다. 도화살이였음 큰일이잖아요. 차라리 역마살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ㅋㅋㅋ

깐따삐야 2007-12-21 19:06   좋아요 0 | URL
당연히 장기간 잠수 타는 분들 서재엔 안 가시겠죠.ㅋㅋㅋ
도화살이 더 맞는 것 같기도 해요. 마이 퍼스트이신데. 아무렴. 자신감 불어넣어드렸으니 새해엔 사진 공개 하셔야 합니당.^^

Mephistopheles 2007-12-22 00:19   좋아요 0 | URL
오호호호 제 컨셉은 신기주의인지라...=3=3=3=3=3

깐따삐야 2007-12-22 00:37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엔 메피님을 사진으로 뵙고 나면 어쩐지 더 신기할 것도 같은데욤.ㅋㅋㅋㅋ

순오기 2007-12-21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기발한, 참신한, 창의성 넘치는 깐따님 글에 매번 감동하면서 우리 애들에게 중계방송한답니다. 오호~ 깐따님은 5관왕을 넘어 태그의 제왕이십니다!!
'순오기'란 이름 한 자리 올려주심에 황송해 마구 마구 감동받는 자칭타칭 서재폐인 ^^
쬐끔 미화된 거 같아 부끄럽사와용~~~~~~ 하지만, 저렇게 살기 위해 계속 노력할랍니다! 두 주먹 불끈**

깐따삐야 2007-12-21 23:01   좋아요 0 | URL
"얘들아, 일루와봐. 살다보니 이런 요상한 선생도 다 있구나." 설마 이러시는 건 아니겠죠? ㅋㅋ
순오기님처럼 아이들 앞에서 항상 책을 가까이하는 엄마가 되고싶은 자그마한 소망이 있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집부터 보내주심이-_-)



순오기 2007-12-22 00:01   좋아요 0 | URL
"애들아, 알리딘에서 진짜 멋쟁이 선생님 발견했다~~" 이러거든요 ^^

햐~~~~~ 훈남동생 없는 게 천추의 한이로다! ㅠㅠ

깐따삐야 2007-12-22 00:06   좋아요 0 | URL
우움. 솔직히 멋은 없구요. 그냥 가아끔 좀 웃기긴 한 것 같아요.^^
그래도 구석구석 자-알 찾아보시고 연락 주시길. 머 꼭 반드시 훈남일 필요는 없어요. 좀 덜 훈남이어도 괘안습니다. 괘안고말구요.(어쩌다 이리 됐누)

순오기 2007-12-22 00:19   좋아요 0 | URL
ㅎㅎㅎ 구석 구석 찾았으면 내 친구 먼저 보내야돼욧 ㅎㅎ
내일 모레 지천명이거든요! ^^

깐따삐야 2007-12-22 00:22   좋아요 0 | URL
허걱! 걍 구석에 찌그러져 있겠습니다.-_-

부리 2007-12-21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로맨틱멘토상이라니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마태가 받은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상이네요 호호홋 새해에는 더 열심히! 아자아자!

깐따삐야 2007-12-21 23:04   좋아요 0 | URL
한 해 동안 읽었던 가장 감동적인 페이퍼 중의 하나였답니다. 새해에도 학생들의 존경과 사랑을 듬뿍 받는 부리교수님 되시길 바랄게요. 제가 바라지 않아도 이미 좋은 교수님이시지만요.^^

물만두 2007-12-21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문의 영광입니다^^
올해 최고의 상이라 생각되네요.
메리 크리스마스!!!
아직도 무가 마이 남았으니 가져다 깍두기라도 담가드시와요~

깐따삐야 2007-12-21 23:08   좋아요 0 | URL
물만두님을 알게 된 제가 영광이죠.^^ 저도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여기서 물만두님을 알게 된 후론 깨갱~하고 말았답니다. 물만두님을 본받아 새해에는 더욱 열심히 읽어볼게요.
저도 메리 크리스마스! (근데 전 깍두기보단 "총각"김치가 더 좋아욤. 흐흐)

프레이야 2007-12-2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어머 깐따삐야님 저도 가문의 영광이에요.
올해 제가 받은 선물 중 제일 기억에 남을 듯해요.
아기자기 우리자기 이러면서 '참하게' 살게요.
가끔은 그런 모습을 벗어나고 싶은데 그것도 천성인가 봐요.
근데 저 가끔 뚜껑 열리면 안 참해요, 우히힛~~
저 이 페이퍼 뽈찜해두고 가요~~

깐따삐야 2007-12-21 23:12   좋아요 0 | URL
제 서재에서 놀다가 님의 서재를 방문하면 참말로 참하고 호젓한 것이, 자고로 서재는 이래야 하지 않을까 싶었답니다.^^
저도 가끔 이런 모습을 벗어나서 혜경님마냥 참하디 참하고픈데 천성은 잘 안 바뀌나 봐요.
저는 항상 열려 있는 뚜껑이라서 누가 좀 닫아줬음 하네요.ㅋㅋ
(참! 뽈찜이라는 음식도 있죠? 또또 배고플 시간 됐다.)

다락방 2007-12-22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므낫.
제가 여기에서 이런 상을 받고 있었군요. 후훗.
저 상받는거 되게 좋아해요. 부끄럽지만, 되게 잘 받을수 있어요. 하하 :)

감사드려요.
늦은밤, 야근에 지친몸을 이끌고 들어왔는데 웃게 해주셔서. :)

깐따삐야 2007-12-22 00:25   좋아요 0 | URL
상품은 필요 없으신가요? 저 드릴 수 있는데.ㅋㅋ
그리고,
사진으로 뵙기엔 하나도 안 지쳐 보이십니다. 편히 주무세욤. :)

시비돌이 2007-12-22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웬디양님만 별이 두개인 이유는 멀까요?

Mephistopheles 2007-12-22 02:32   좋아요 0 | URL
혹시..전과 2범.? =3=3=3=3=3

깐따삐야 2007-12-22 09:15   좋아요 0 | URL
시비돌이님- 실은 제 세컨드입니다.-_- (댓글이 더 재밌으니 함 읽어보시길^^)

메피님- 그르지 마요. 투기 조장이나 하구 다니구 말이죠. 퍼스트라고 거만스러우시긴!

레와 2007-12-22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__________________________,^

아름다운 아침이예요~!! 감사합니다.!

깐따삐야 2007-12-22 09:13   좋아요 0 | URL
우리 퀸오브감동 레와님- 주말 잘 보내세요!

로쟈 2007-12-22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상식은 벌써 끝났나요? 어디로 가야?..

깐따삐야 2007-12-23 21:08   좋아요 0 | URL
어머낫! 로쟈님. 반갑습니다. 요즘 연말시상식 찾아다니시느라 바쁘시겠어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아. :)

치니 2007-12-2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핫, 제가 상을 타다니! 그것도 무려 칠공주상!
깐따삐야님 말씀대로, 저도 대체 왜 제가 칠공주 대빵 같은지 모르겠어요.
알아내면 꼭 알려주세요, 진짜 칠공주 대빵 같은 거 해보고 싶어져요. ㅋㅋ

깐따삐야 2007-12-23 21:09   좋아요 0 | URL
후움? 걍 솔직히 고백하시죠.-_-

미미달 2007-12-2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이가 없으셨군요. ㅋㅋㅋㅋ
퍼가고싶은데 어케 퍼가는건지 ... ㅋㅋ

깐따삐야 2007-12-23 21:10   좋아요 0 | URL
귀여운 미미달님. 없던 어이는 다시 찾아왔어요.ㅋㅋ
잘 퍼갔나 몰겠네.

- 2007-12-23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언니 안녕! 이거 웃기다...
상 뽑힌 사람들한테 수상소감 들어야 되는 거 아니야?

깐따삐야 2007-12-23 21:13   좋아요 0 | URL
무진장으로 반갑다만... 얘는! 웃기려고 한 게 아니라 감사하려고 한 거란 말이얌.
그리구 소감은 무슨. 짱돌방어시스템 가동 중이라고 너무 막 나가면 안돼.-_-
 

  짧기만 했던 10분간의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단잠을 방해하는 종소리가 울려퍼지면, 고개도 못 든 채 서랍 속에서 다음 교시의 교과서를 꺼내며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내가 얼른 여길 뜨던지 해야지... 원..." 까칠한 불만투성이의 여학생이었던 내게 학교란 기필코 떠야 할 곳이었고, 언젠간 지루한 학교를 뜨기 위해 힘내서 공부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의 팔자라는 것이 또 아이러니하여 이제는 오나가나 학교와 학교종을 떠나 살 수 없게끔 되어버렸다. 베토벤이 사랑하는 테레제를 위해 지은 이 아름다운 곡이 아이러니하게도, 학교종이라는 고루한 용도로 쓰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시골은 메아리가 크게 울린다. 내가 살던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중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학교 종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터울이 많이 져서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오빠는 벌써 중학생이었는데 학교가 파하고 일찍 집에 돌아온 나는, 중학교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오빠가 돌아올 시간을 헤아리곤 했다. 물론 오빠가 집에 온다고 해서 내가 덜 심심하거나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하던 일을 멈추고 부지런히 손발을 놀려야 했기 때문에 숙제가 많은 날엔 오빠가 좀 늦게 왔으면, 하고 바랄 정도였으니까. 귀가하는 오빠의 행보에 관해서는 당시에 키우고 있었던 '해피'라는 발바리가 가장 먼저 알아채곤 했다. 해피는 하루 종일 언덕배기에서 귀를 쫑긋 세운 채 앞발을 모으고 앉아 있다가 갑자기 무한질주를 하며 신작로 쪽으로 달려가곤 했다. 멀리서 오빠의 장난스런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해피가 요란법석을 떨며 환영하는 몸짓이 언덕을 울려대면, 나는 슬리퍼를 끌고 나가 오라버님, 오셨쎄여? 까지는 아니더라도 있는 성의, 없는 성의를 다하여 오라버니를 맞이했다. 일단 자전거 뒤에 묶인 참고서부터 풀어드리고, 무거운 가방 쯤은 반짝반짝 방으로 들어다 드리고, 손잡이에 매달린 도시락을 꺼내서 설거지통에 넣는 등, 그 정도야 네추럴 본 무수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일 터. 단촐한 네 식구에 형제라곤 오빠 뿐이었던 나는 나날이 반복되는 육체적 피로(?)에도 불구하고 오빠를 위해 이것저것 해줌으로써 나름 기쁨과 보람을 찾았던 것 같기도 하다. 점점 머리가 커지면서 내가 얼마나 모순덩어리인지 뒤늦게 깨닫긴 했지만 어릴 적에 주입되거나 세뇌된 것은 잘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주 어릴 적부터 들어온 '엘리제를 위하여'도 나의 본능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거겠지만. 작년에 이사온 이 동네도 어찌된 우연인지 학교가 둘러싸고 있는지라 의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엘리제를 위하여를 듣지 않고 흘러가는 하루란 없다. 종소리에 맞춰 와와-하는 아이들의 북적거림이 들려오고 조금 후에 이어지는 종소리에 맞춰 주변엔 다시 정적이 감돈다.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는, 이 또한 직업병인가 싶다가도, 가끔 그 안의 일상들이 그립기도 하다. 잠시 학교를 떠나 온 지금, 미니홈피의 일촌평에 '보고싶음'이라는 말이 뜨면 '보고싶어요'라고 쓰지 않은 그 짖궃음을 헤아리며 웃음이 나는 동시에, 문득 아이들이 보고싶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엘리제가 커피 좀 한 잔 마시라고 해서 얼씨구나 하고 자리에 앉기만 하면 하염없이 쏟아지는 공문에 한숨 짓는 찰나, 아무 때고 벌컥벌컥 문 열어젖히며 "쌤~ 저희 체육복 갈아입어야 하니깐 5분만 늦게 들오삼~ 정 보고싶으심 갠적으로 연락하삼~" 요렇듯 느물거리는 녀석들이 소중한 5분을 잡아먹고, 머잖아 엘리제는 앙칼지고도 또랑또랑한 음성으로 재차 울려퍼지는 것이다. 띠리리리 띠리리리리- 깐선생, 커피홀릭인것 같어! 수업 들어가야지이! 나는 사실 클래식에 거의 문외한이다시피 한데 학교와의 질긴 인연 덕분에 엘리제를 위하여 만큼은 통달한 듯 싶다. 비록 앞부분만이긴 하지만.         

 다 자란 어른도, 그렇다고 코찔찔이 어린애도 아닌, 어정쩡한 연령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안 사실은 무척 힘이 들었다. 축적되는 테트리스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종종 감기에 걸렸고, 아침에 머리를 감을 때면 쑴풍쑴풍 빠져대는 머리카락 때문에 또 다시 테트리스가 쌓이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끊임없이 스스로의 자질과 능력을 의심했고 어쩌면 이 길이 내 길이 아닌지도 모른다고, 더 늦기 전에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며 남모르게 방황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새롭게 발견한 사실 하나는, 나란 인간은 그렇듯 힘들다고 징징대면서도 결국엔 어떤 식으로든 숨 쉴 구멍을 찾아내고 긴장의 물고를 터서 그럭저럭 적응해 나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 혼자의 힘으로 통째로 갈아엎을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외면했고, 욕심껏 따라주지 않는 아이들에 대해서도 어느만치 체념하고 들어갔기에 가능했던 바. 호흡은 편해졌는데 마음은 편하지 않은, 참으로 찝찝한 날들이었다.

 결국 낙서장 같던 머릿속을 말끔히 비우고 도망치다시피 찾아온 곳이 또 학교. 깐따삐야 네가 뛰어봤자 도우너고 튀어봤자 투니버스지. 다시 학생으로 돌아와 공부를 한 지 벌써 일 년이 되었고 이젠 졸업시험까지 신청하고 오는 길, 서른 살이 되는 해에 나는 다시 반인반수의 교사들과 아이들로 북적대는 학교로 돌아간다. 공부를 하게 됨으로써 지적인 충족감 면에서도 만족스러웠지만 무엇보다 '부재'를 느낌으로써 그리움과 고마움을 새로이 깨달았다는 점이 가장 큰 수확일지도 모르겠다. 어딘가에서 엘리제가 흘러나오면 사뭇 반가워지는 것도 일상에 스민 익숙함 때문일텐데, 새로움만을 좇느라 항상 거기 있어주는 소중한 일상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가 반성해 보아야겠다. 살가운 표현에 서투른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사실은 우리 오라버니를 좋아하고 아이들도 종종 보고싶다. 어쩌면 오늘의 태그, 엘리제를 빌미 삼아 수줍은 사랑고백을 하고 싶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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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07-12-20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빼빠를 학교 게시판과 오라버니 메일로..!!
익명으로 올려야겠지만, 과연 누군지 모를까..^^;

요즘 깐따비야님의 빼빠는
고리타분하고 삭막한 업무속에 만나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입니다.
감사를..!


깐따삐야 2007-12-20 14:37   좋아요 0 | URL
저는 바로! 그런 일에 서툴답니다.-_-

갑자기 행복해지네요. 구정물이 되지 않게끔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감사드려요. 레와님도 힘내시구요.^^

물만두 2007-12-20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의미심장합니다^^

깐따삐야 2007-12-20 22:34   좋아요 0 | URL
그랬다면 다행이네요. 물만두님의 백문백답에 비하면야 너무 얄팍하죠.^^

미미달 2007-12-20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원가인 줄 알았어요. 엘리제를 위하여, 응원가 있는데 ㅋ

깐따삐야 2007-12-20 22:36   좋아요 0 | URL
아, 미미달님 그 학교에 다니시는군요? 그만큼 멜로디가 친숙하기에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거겠죠.^^

Mephistopheles 2007-12-20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종으로 쓰였던 그 클래식이 요즘은 잘 안들리지만 자동차 후진할 때 혹은 정화조차 등장할때도 울려퍼지곤 합니다..^^

깐따삐야 2007-12-20 22:39   좋아요 0 | URL
정화조차에서 꽈당~ 넘어갑니다.ㅋㅋㅋ
이거야 원. 내 인생의 OST라기엔 넘흐 흔한걸요.-_-

웽스북스 2007-12-21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토벤 연주회 들으러 가서 잠깐 했었어요 그런 생각
엘리제를 위하여,는 비운의 곡일까 행운의 곡일까
근데 오늘 결론이 났네요
깐따삐야님의 오에스티라니 행운이네 행운!

깐따삐야 2007-12-21 01:19   좋아요 0 | URL
베토벤 연주회라니. 부럽소! 나 '비창'도 좋아하는데.
댓글들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엘리제를 위하여'는 가장 대중화된 클래식곡이 아닐까 싶네요. 베토벤 자신은 비운의 작곡가였지만 '운명'을 비롯, 행운의 곡들을 참 많이도 썼다는.^^

순오기 2007-12-21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애들 피아노 배울때 지겨우리만치 두둘겨 대는 엘리제 ^^
근데 이게 무슨 영화에서도 분위기 있게 나왔는데, 뭐였더라~~~~~~~ ?
깐따삐야 선생님의 엘리제는 테트리스와 함께 감동이었어요!

깐따삐야 2007-12-21 01:24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ㅋㅋ 생각해보니 초인종 소리도 있어요!
'불멸의 연인'인가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다양한 영화 속에서 많이 나왔을 거에요.
테트리스는 언어유희의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개 친구들, 또는 친구라고 부르기엔 뭣하지만 친구 아니라고 하기에도 달리 호칭이 없는 여인네들로부터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시원섭섭하달까, 잠시 그런 기분이 든 다음, 결혼하는 상대는 어떤 남자일까 문득 궁금해졌다가는, 몇 마디 식상한 축하인사를 건넨 후에 나도 어여 가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는 찰나, 다시 먹는 일이라든가 책 보는 일로 관심을 기울이곤 했다.

 그런데 친구 K 같은 경우는 머리보다 몸으로 먼저 반응했던, 특별한 경우였다. 오늘 그녀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 하마터면 나는 짠하다 못해 거의 울컥할 뻔 했다. 감격과 서운이 동시에 엄습해오는 바람에 내가 지금 축하인사를 건네야 하는 건지, 왜 그렇게 빨리 가버리는 거냐고 칭얼대야 하는 건지, 당최 애매무쌍해서 잠시 갈피를 잃었었다. 그렇지만 언젠가 그녀의 부군이 될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고, 그의 선한 인상과 따듯한 마음씀에 나조차도 훈훈해졌던 터라 재차 목소리를 높여 진심으로 축하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그녀도 마치 철딱서니 동생 놔두고 시집 가는 언니처럼 이런저런 염려를 해주었는데 나는 걱정 말라는 투로 코 큰 소리를 하다가는, 사실은 조금 서운하다고 이실직고를 해버린 후, 조만간 곱창을 사주겠다는 말에 기분이 반짝 들어, 아니, 들은 척 했다. 부케는 네가 받아달라 하길래 왠일인지 한번 더 짠해졌고, 그녀의 부군이 나를 한번 더 만나고 싶어한단 말에 벌써 바람을 피우는 건가, 오버한 다음 평소처럼 심하게 깔깔거리다간 통화를 맺었다.

 새내기 때 처음 만나 지금까지 만나오고 있는 그녀는 말하자면 내게 있어 든든한 큰 언니 같은 존재였다. 터울이 많이 지는 오빠 밑에서 무수리로 자란 나에겐 또래 자매들의 살가운 제스처들이 못내 부러웠고, K는 딸부잣집 둘째 딸로서 태생적으로나, 후천적으로나 매우 노련미 넘치는 언니였던 셈이다. 면접고사 날,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땐 그녀가 과연 남자화장실로 들어갈까, 여자화장실로 들어갈까, 모두들 귀추를 주목했을 만큼 성별이 불분명한, 살짝 톰보이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당시 기억을 떠올리자면 그것은 매력적이라기 보다는 어느만치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했는데, 그렇듯 중성적인 이미지가 내뿜는 카리스마로 덜컥 과대표가 되더니만 "너 처음 봤을 땐 디게 독종 같았는데. 알고보니 바보잖아. 하하하하하!"라고 내게 들이댈 만큼 근사한 구석이 있었다. 그녀 앞에서 철옹벽 같던 내 자아는 삽시간에 본색을 드러냈고, 그것은 부끄러운 발가벗음이 아니라 화사한 만개였다. 나는 완벽하게 나일 수 있었고, 내가 나 아니고 싶은 날 조차도 그녀는 나를 나로서 봐주었으니, 내가 그녀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우리는 허구언날 토이의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불러제끼며 대체 우린 언제쯤 사랑 때문에 좀 야위어 보겠냐며 너스레를 떨었고, 과축제 때에는 촌스런 후드티를 맞춰 입곤 북어와 백세주를 상품으로 준비하는 등, 유치찬란하기 짝이 없는 만행을 저질러가며 듀오엠씨를 보기도 했었다. 웃기고, 웃겨주는 게 일상이었고 그게 지루해지면 서로를 울려놓곤 달래주기까지 했다. 포화상태의 에너지를 담아내기엔 이노무 세상이 너무 비좁고, 내 진심을 알아주기엔 그노무 자식이 너무 경박하다며, 눈에 띄거나 손에 집히는 것들은 모두 묵사발을 만들어가며 날밤을 새기도 했다. 아무런 눈치도 보지 않고 사심없이 헤매일 수 있었던 참 좋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항상 순탄할 수만은 없듯이, 우리에게도 오해와 이해 사이를 위태위태 오가며 그간의 사연들을 몽땅 되짚어 볼 만큼 위기의 순간이 없지 않았다. 많이 좋아했기에 서로 그만큼 실망도 컸던 셈인데, 실망이 크다고 해서 안 좋아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더욱 힘들었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한편으론, 그녀가 남자가 아니었던 덕분에 우리가 지금까지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단순한 생각도 든다.

 언니도 없는데 큰 언니 시집 보내는 기분이란 게 이런 걸까, 하는 묘한 느낌. 하나 뿐인 오빠가 결혼할 때도 칠칠맞게스리, 눈물 참느라 콧잔등을 문질러대고 안경 밑으로 손수건을 비집어 넣으며 온갖 추레한 꼴을 다 보였더랬는데 이번에도 K의 동생들보다 내가 더 울면 어쩌나 벌써부터 염려스럽다. 조만간 그녀의 부군을 만나게 되면 형부 한 분 생긴 거라 생각하겠다고, 오버 섞인 진담을 늘어놓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놓고는 제가 쫌 동안이죵? 고따구 말로 시시하게 무마하겠지. 바보. K는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씩씩한 사람이니,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해주는 듬직한 부군과 함께 알토란 같은 가정을 이루고 잘 살 것이다. 벌써 기대가 된다. 그녀가 얼마나 믿음직한 아내이자, 현명한 엄마가 될지.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되는 것은 언제고 그리우면 만날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게 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학 동안 그녀가 고향집에 가 있을 때보다 왠지 더 멀고도 막막하게 느껴지는 이 기분이란, 어쩌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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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2-19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그분이 얼마 전 남이섬 동반 나들이 갔다 오셨던 분인가요??

깐따삐야 2007-12-19 00:32   좋아요 0 | URL
걘 저처럼 방바닥만 잡아먹고 있는 무모한 싱글이구요.ㅋㅋ 이번에 결혼하는 친구는 그런 저희랑은 스케일 자체가 다른, 대고모, 왕언니 쯤 되시겠습니다. 하루 다섯 시간 주무신다니 체력이 좋으신 건지, 그렇듯 긴장 타는 삶을 살고 계신 건지, 문득 걱정 됩니다요.-_-

가시장미 2007-12-19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님이 퍼스트? 막이래 ㅋㅋㅋ

아 친구들 결혼하면 무지 심난하고 그러던데..
깐따님은 아직 어리셔서 안그런가요?
(나이도 모르면서 어리다고 막이래 ㅋㅋ)
<- 이 말투는 웬디양님 말투? =_=

K가 궁금해서 잠을 못 이루고 있어요.
K가 디스코치면서 나올 때까지 기다릴꼬에요.
전해주세요 으흐흐

깐따삐야 2007-12-19 01:42   좋아요 0 | URL
K라니요.-_- 가시장미님은 이미 J군한테 빠져 계셔서 저의 퍼스트 따윈 눈에 들오지도 않으실텐데요 머. 훙!
저 아마도 장미님이랑 동갑일걸요? 유치한 게 나이만 들입다 먹었나 봐요. 흐흐
(써어드 되셨으니 웬디양님과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시길.^^)

가시장미 2007-12-19 01:51   좋아요 0 | URL
그럼 여기서 질문!
써드에서 퍼스트로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그리고 원래 경쟁자들끼리 친하게 지내는거 아니에요. -_-;;
막 질투하고 서로 미워하고...
인형사서 주문걸어서 대신 때려주고. 막 그러잖아요.
아 웬디양님과 퍼스트(누군지는 모르지만)님과...
그런 사이가 되어야 한다니....
저 아무래도 써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께요. ㅋㅋㅋ
(치고 빠지기?! -_-*)

깐따삐야 2007-12-19 01:58   좋아요 0 | URL
허걱~ 장미님. 인형 사서 주문 걸어서 대신 때려주고... 저도 장미님 써어드로 책정하는 거, 다시 생각해 볼래요.-_-

Mephistopheles 2007-12-19 02:45   좋아요 0 | URL
가시장미님이 말씀하신 그 지푸라기 인형은 정말로 인터넷에서 판매하고 있더군요...정말입니다..

웽스북스 2007-12-19 09:02   좋아요 0 | URL
가시장미님 무서운 사람이네요
써드로 만족한다고 말씀하셨던 건 일단 떡밥? ㅋㅋ

깐따삐야님과 가시장미님과 저 셋다 같은 나이인 걸로 알고 있어요
내년에 스무살의 막바지를 즐겁게 보내는 모임 이런거 만들어볼까요?
근데 퍼스트가 새파랗게 눈뜨고 막 돌아다니면서
우리 깐따삐야님과 서로 수면시간도 챙겨주고 막 그러고 있는데
진짜 모르시겠어요?

가시장미 2007-12-19 19:55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_-;;
왜 나는 모를까요.
엘신님이 아니시라고 하시니...
아무리 생각해도 잘..
혹시 메피님?
아이. 그건 안되는뎅..
마님이 계신데 ㅋㅋㅋ

그래요? 우리다 동갑이에요? 와우~!
모임하나 만들어야 겠군요. ㅋㅋ
그 인형.. 인터넷에서 판다니,
더 무섭네요. _-_)~
한 번 사봐? ㅋㅋㅋ

깐따삐야 2007-12-20 13:18   좋아요 0 | URL
메피님- 퍼스트의 갑빠가 있으실텐데 투기를 종용하심 안되져.-_-

웬디양님- 모임 결성 좋아요! 진짜 함 추진해보까요? 근데 메피님은 진짜 주무셔야 돼. 날로 거만해지시는 게 알라딘과 수면부족 때문임.

가시장미님- 나를 니코틴 중독으로 몰아세운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가정파괴범으로 몰고 있군요. 역시 연애하는 츠자들은 눈에 뵈는 게 없다는.-_-

더씨크릿 2007-12-26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주 들러 이것저것 뒤져보는 알라딘에서 우연히 서평을 하나 보았어요...
눈에 아주 화아악 띄는 서평~!

그 서평의 주인이 누군가 궁금해서 따라와 보니 여기네요...ㅎㅎ...
작가 못지 않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글솜씨에 반해서 잠시 머물다 갑니다...

가끔 들러서 훔쳐보다 가도 되겠죠?
마음의 평화 늘 함께 하는 나날이길요......

깐따삐야 2007-12-26 14:5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훔쳐보시다니요. 대놓고 보셔도 됩니당.^^
그나저나 더씨크릿님의 눈에 확 들어온 서평이 대체 몰까요.
 

  메멘토인 내게도 잊지 못할 멘토는 있었으니 오늘의 태그를 보며 자연스럽게 '고마움'이란 말을 떠올리게 된다. 얼핏 이만큼 혼자서 잘 살아온 것 같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많은 것들이 내 삶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오늘의 나는 과거의 나와 한 통속일 수 밖에 없다. 그 많고 많은 것들 가운데서 어디 한 가지만 꼽을 수 있겠냐만은 삶과 사랑과 배움에 있어, 내게 비교적 큰 포스를 발휘했다고 생각하는 세 가지를 골라 보았다.

 



★  책 - "시지프의 신화"


  단연코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이다. 시간을 거슬러 정확히 스물 한 살의 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나는, 가벼운 우울증이 아니었나 싶다. 일년 전, 대학에 갓 들어온 스무살 때엔 거의 정신이 없었다. 완전한 자유에 내동댕이쳐져서는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줄 몰라 바둥거려야 했다. 사람들과 곁을 트는데 기복이 심했던 나는 어느 날은 소주 한 잔에 마음을 몽땅 열어보이기도 하고, 어느 날은 누군가 나한테 말이라도 걸어올까봐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반듯하고 야무진 첫인상을 가졌던 것에 비해 마음은 한없이 여렸고 종종 우울감에 시달렸다. 결국 스물한 살의 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돌연 휴학을 결심했다. 일년 동안 단짝처럼 붙어다니던 친구는 "내가 왜 네가 휴학했다는 소식을 다른 사람한테 들어야 하는 거냐."며 거의 울상을 짓다시피 했지만 나는 짤막하게 "그렇게 됐다. 미안하다."란 말로 아무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수많은 사각의 책들을 벽돌 삼아 견고한 성을 쌓은 후 그 성에 안착했다. 그만큼 사람들로부터 멀어졌고 안으로만 깊이 침잠했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가까운 대학 캠퍼스로 자전거를 타러 다녔고, 입맛을 잃어 휴학 후 겨우 몇 달 만에 급속도로 살이 빠졌다. 얼굴이 변했고, 말수가 줄었고, 마음은 우울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울지 않는 캔디처럼 희희낙락했다.

 그 날도 오늘의 먹이감을 찾기 위해 책사냥을 나선 길이었다. 장 그르니에와 카뮈의 만남이 우연으로 시작해 운명이 되었듯, '시지프의 신화'와 나의 만남도 그랬다. 당시 나는 '이방인'의 작가로서 카뮈를 알고 있었고 세계문학전집 속에 한 자리 차지하는 흔하디 흔한 프랑스 작가 쯤으로 여겼다. 도스토예프스키나 토마스 만 같은 북구권의 음울한 작가들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당시라서 왠지 프랑스, 하면 속없이 들뜨고 부산해 보였다. 교만하게도 어느 정도 무시, 하고 있었다면 적확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온 카뮈의 인상과 시지프의 신화는 나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단숨에 사로잡힌다는 것. 난 그런 적이 많았고, 그 결과야 어찌 되었건 지금도 그 말을 믿는다. 그렇게 그 책은 내게로 왔다.

 무엇보다 내 마음에 들었고, 나를 정신차리게 했던 것은 저 너머의 이상향을 인정하지 않으리라는 카뮈의 현실감각이었다. 주어진 잔이라면 마셔야 하며, 배당받은 인생이라면 살아야 한다는 그 차디찬 기개가 나를 사로잡았다. 학문도, 사랑도, 종교도 모두 나를 구원하지는 못하리라는 절망에 시달렸던 내게 평생토록 굴러떨어지는 바위덩어리를 밀어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처럼, 적극적으로 운명에 순응하라고 조용히 명령하고 있었다. 그 때는 고민의 정체 자체를 잘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아마도 실존과 부조리의 문제 쯤이었나 보다. 나는 마치 숙제에 휘둘리며 생활하다가 숙제가 없어져 심심해진 초등학생 같았고 그 권태와 허무에 짓눌려 잠시 길을 잃었던 것이다. 때마침 등장한 카뮈는 시지프의 신화 외에도 많은 책들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이방인'을 읽으며 정직을 배웠고 '안과 겉'을 읽으며 사랑을 보았다. '결혼, 여름'을 통해서는 낭만을 느꼈고 '페스트'를 접합으로써 인간조건을 깨달았다. 카뮈는 나를 대신하여 나를 표현해주고 있었고, 영원히 죽지 않는 시지프스처럼 고통스러울지언정 의연한 모습으로 내 정신을 키워주었다. 공평하게 내리쬐는 지중해의 태양 속에서 절대적인 삶의 긍정과 아름다움을 볼 줄 알았던 카뮈는 작가로서, 연극배우로서, 레지스탕스로서 평생을 자신의 신념에 의거해 살았다. 카뮈를 전후로 많은 작가들을 만났고, 앞으로도 만나게 될 것이지만 길을 잃은 나에게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주었던 그 고마움은 잊지 못할 것이고 가장 첫번 째 책이었던 시지프의 신화 또한 그럴 것이다.           
        



★  영화 - "Before Sunrise & Before Sunset"

  영화는 책 속의 활자와는 달리 스크린이 꺼지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 벌써 다른 생각이 자리잡게 되곤 했기 때문에 내 인생의 멘토로서 그다지 많은 역할을 하진 못했다. 지금도 무의식 속에서 작게나마 어떤 사소한 영향들을 끼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포선라이즈'와 '비포선셋'을 멘토로 꼽는 것은 내가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연애의 형태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길 위의 우연한 로맨스가 가져오는 설렘, 세월이 흐른 후 재회한들 변하지 않은 아름다움, 그렇듯 지극히 영화스러운 요소들 때문이라기 보다는 제시(에단 호크 분)와 셀린느(줄리 델피 분)가 나누는 케주얼한 대화들이 무엇보다 좋았다. 공교롭게도 비포선라이즈와 선셋 모두 개봉 당시 극장에서 보지 못하고 두 영화 모두 dvd로 혼자 보고야 말았다.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그 점, 지금 생각해봐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고 좋다, 라는 말 이외에 더 어떤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 한 마디 말로도 아무 부족함이 없이, 충분히 공감대를 이룰만한 사람을 그 당시의 난 가지지 못했다.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만 소위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기대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잘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서로의 갭을 느껴서 아니 만난 것만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처음엔 이런저런 이유로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는데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매력적인 만남도 있다. 제시에게 "난 기차 안에서 너를 처음 보자마자 너와 함께 있게 되리란 걸 알았어."라고 말하는 셀린느의 말은 그런 면에서 참 질투가 날 수 밖에. 하지만 그들의 로맨스는 어쩌면 운명이라기 보다는 적절한 타이밍의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지적인 프랑스 아가씨와 자유로운 미국 청년. 그들은 홀로 여행 중이었고, 대화를 원하고 있었고, 젊고 아름다웠다. Don't miss it! 이란 말이 어디서 들려오는 것 같지 않은가. 돌아온 백문백답과 오리지널 백문백답 사이의 갭처럼, 세월이 흐른 후 재회하는 두 사람도 예전의 모습 그대로는 아니었지만 비엔나에서의 그 짧았던 하룻밤이 그 이후의 모든 일상을 비루하게 할 만큼 아름답고 간곡했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셀린느는 제시를 향해 왈츠를 들려주고 제시가 그 날, 셀린느와 헤어져 비행기를 탔는가에 대해서 영화는 조용한 여백으로 침묵한다. 영화의 여운 너머로 읽을 수 있는 것들은 각자가 지닌 영혼의 몫일 것이다.

 어쩌면 로맨스도 태생적인 것이어서 사랑을 잘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도 같다. 나는 나조차도 '너는 지금 네 마음을 속이고 있는거야.'라고 또렷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누군가를 향해 내달리는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는 스타일이라서 항상 사랑 앞에 용기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태생은 로맨티스트인데 모럴리스트로 살아왔다고 할까. 물론 사랑과 모럴을 대척점에 놓는다는 것이 다소 마뜩찮지만 이를테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사랑하고, 영화에 빠져들고, 음악을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정말로 사랑하게 될까봐 두려워서 말이다. 나라면 아마 셀린느처럼 난생 처음 본 남자를 따라 기차에서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제시보다 더 선하고 다정하고 지적인 남자라 할지라도. 두고두고 그리워하는 것이 두고두고 후회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이유는 늘 간단하다. 낯익은 두려움이 낯선 기회를 매몰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셀린느의 아름다움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그 용기와 솔직함에 있는 게 아닐까. "내겐 남은 게 없어. 너와 보낸 그날 밤, 나의 로맨티시즘을 모두 쏟아부었기 때문이야. 네가 나의 모든 것을 다 가져가 버린 것 같아." 그녀는 사랑과 연애에 있어 진정한 멘토다. 
 



★  사람 - H 할아버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어떤 분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게 된 적이 있었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자수성가한, 성공한 모교 졸업생 중 한 분이었는데 그 분은 3년 동안 장학금을 주는 대신 마치 키다리 아저씨처럼 당신께 편지를 보내주었으면, 하고 바라셨다. 거듭 감사하단 말을 써야 하나, 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써야 하나, 어렸던 나는 갸우뚱했지만 아마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처럼 소소한 나의 일상을 담아 보내면 되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분이 졸업선물로 주셨던 만년필로 나는 난생 처음, 나보다 오십 년이나 더 연상인 한 남자분께 편지를 쓰게 되었다. 사장님께, 라고 쓰자니 내가 그 회사 직원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선생님께, 라고 쓰자니 나를 가르쳐 주시는 분도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할아버지께, 라고 과감하게 첫머리를 써내려갔다.

 그리고는 그 후로 3년 동안 예상치도 못했던 수십통의 편지들이 오가게 되었다. 먼저 장학금을 받았던 선배들은 답장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는데 할아버지는 유독 내게만은 부지런히 답장을 보내주셨다. 잘은 몰라도, 회사일로 무척 바쁘고 테트리스를 많이 받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편지에는 되도록 즐겁고 기분 좋은 내용을 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편지에는 부모님으로부터의 꾸중, 딸로서 받는 차별, 성적에 대한 불안, 친구와의 갈등, 시골 중학교에서의 무료함 등등... 사춘기 여학생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갖가지 고민들이 늘어가기 시작했고, 할아버지는 정말로 주디의 키다리 아저씨처럼 내게 따듯한 답장과 예쁜 선물을 보내주시기도 했다. 명절에 고향에 있는 큰집에 오시면 나를 초대해서 사모님과 따님들에게 나를 소개시키며, 깐따삐야는 내 둘도 없는 소중한 애인, 이라며 껄껄껄 웃으시기도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오랜 연륜과 탄탄한 지성, 자상한 인품도 물론 좋아했지만 그렇듯 친할아버지처럼, 어쩌면 친할아버지보다도 더 나를 아껴주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다는 사실에 감사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볼 때, 내가 참 잘못했던 것은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그 분을 한동안 잊고 지냈다는 것이다. 3년이었지만, 사람의 인연이 무슨 계약기간처럼 만료해지되는 것도 아니련만 새로운 환경, 너무도 바쁘고 긴장된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나 이외의 누군가를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부모님으로부터 할아버지한테서 안부전화가 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후로도 몇 통의 편지가 오가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편지 쓰는 시간조차 아까울 지경이었고 고등학교에 들어와 갑자기 떨어진 성적에 충격을 먹고난 상태였다. 결국 내 뇌리 속에서 할아버지는 점점 멀어져갔고 어느 날, 서울에 있던 오빠로부터 할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딸과 사위를 모두 잃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였던 분이었고, 어떠한 것도 다 웃어넘길 것처럼 멋쟁이셨는데 그 후로 상심이 커서 눈에 보일만큼 많이 늙으셨더라는 말도 들어야 했다. 마음이 아팠고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정신없는 학교생활에 파묻혔고 모든 일들을 저만치 잊고 지냈다. 그 후로 할아버지와 연락이 닿아 두 번 정도 통화를 했고 한번 찾아뵙고 싶다는 말씀까지 드렸었는데 그 약속을 아직까지 지키지 못했다. 배은망덕이란 말은 이런 나를 두고 하는 말일 터. 가장 순수하고 예민했던 시절, 내 사춘기의 든든한 멘토가 되어주셨던 그 분을 더 늦기 전에 찾아뵈어야 할 것 같다.     


 
  진정한 멘토가 참 드문 세상이야, 어느 날 농담처럼 투덜거린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보다 더 어릴 적의 나는 참으로 소소한 많은 것들로부터 끊임없이 뭔가를 배우고, 감동을 느끼고, 감사했던 것 같다. 결국 스스로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달린 문제가 아닐까. 한편으론 이제 누군가를 가르쳐야 되는 입장에 서 보니 한 사람의 삶에 바람직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하지만 그것이 어려운 만큼 또 얼마나 값진 일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12월은 마시고 떠들고 하는 달이 아니라, 나를 키워왔고 키워주고 있는 멘토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달인 것 같다. 오늘의 태그가 심상찮게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 성실히 살고, 사랑하고, 배우는 이에게 멘토는 적재적소에서 그 사람을 기다려준다고 믿는다. 그리고 부족한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서, 받았던 고마움을 돌려줄 수 있다면 더 없이 기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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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2-17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포선라이즈, 선셋 시리즈 ^^
나도 오늘은 살짝 저기압인데, 아무래도 텔레파시까지 통하나봐요, 어쩜 좋아
(저기압이라면서 또 이러고 있다 ;;;)

깐따삐야 2007-12-17 21:26   좋아요 0 | URL
역시 웬디양님은 나의 반쪽!
하지만 우리는 내일이면 또 웃긴다는 거.-_-

웽스북스 2007-12-17 22:20   좋아요 0 | URL
깐따삐야님, 실은 아깐 정신없어서 다 못읽었었고, 지금 정신 차리고 다시 읽었어요- 아유, 조곤조곤 모드의 깐따삐야님 더 좋아요 몰라 흑 할아버지는 꼭 찾아뵙고 인사드리세요. 그래야 할 것 같아요.

깐따삐야 2007-12-17 22:24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이죠. 아까 주소랑 전화번호 찾아놓고 그랬는데 마음 먹었을 때 실천에 옮겨야 할 것 같아요. (아휴, 제발 좀 그래라~)
내가 그렇게 좋앙? 흐흐흐 (우리 일 나겠다, 이러다가.-_-)

Mephistopheles 2007-12-17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여전히 돌을 굴려 올리고 계신가요?

깐따삐야 2007-12-17 21:29   좋아요 0 | URL
가끔은 맘에 안 드는 사람 쪽으로 홱 던졌다 들어올리기도 해요. 조오-심 하시길. (왜 제 글에만 댓글 안 달아줘욧!)

Mephistopheles 2007-12-17 21:59   좋아요 0 | URL
아하하 찾았어요..ㅋㅋㅋ 에이 삐짐쟁이 깐따삐야님 같으니라구..ㅋㅋㅋ

깐따삐야 2007-12-17 22:04   좋아요 0 | URL
아, 역시 난 A형인가봐요. 흐흐. 그래도 찾아봐주시구 감사해요.^^

마늘빵 2007-12-17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흔들리는자아정체성. 오늘 컨셉은 머에욧. -_-
오늘은 넘 진지하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컨셉?

깐따삐야 2007-12-17 23:19   좋아요 0 | URL
그 말인즉슨, 오늘은 내가 진지하고 다정하고 사랑스럽다는 말로 해석! 끝!
(밑에 댓글 달지 말 것!ㅋㅋㅋ)
(달아도 무시할 것!ㅋㅋㅋ)

마늘빵 2007-12-17 22:48   좋아요 0 | URL
댓글

잉크냄새 2007-12-17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 인생의 책과 작가군요. 누군가의 인생에 커다란 획을 그은 책과 작가를 본다는 건, 참 묘하고도 짜릿한 경험이더군요.

깐따삐야 2007-12-17 22:54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반갑습니다.^^
그나저나 이 야밤에 묘하고도 짜릿하셨다니 저 잘한 건가욤?

라로 2007-12-17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달기엔 가슴이 너무 먹먹하여라...

깐따삐야 2007-12-17 23:18   좋아요 0 | URL
오늘 날씨도 그렇고, 알라디너들 상태도 과히 좋지 않아 보이는데 제가 괜한 글 쓴 건 아닌가 모르겠네욤. (그래도 지울 의향은 없다는;;)

라로 2007-12-17 23:33   좋아요 0 | URL
지우긴요,,,,,넘흐 좋다는거야요,,,
사람은 이렇게 다른 사람의 글에서 감동을 받아야 하여요,,,
어느날 라디오에서 그럽디다
요즘은 감동이 드물다고,,,참 쓸쓸해요,,,그래서..

깐따삐야 2007-12-17 23:56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근데 오늘 나비님 대문사진 너무 자주 바뀌신다. 살짝 쓸쓸하신가 봐요. 결혼해도 쓸쓸하시니 저는 어떻겠습니까. 저를 통해 위로받으심이...-_-

순오기 2007-12-18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깐따삐야님, 내가 '시지프스의 신화'를 내세울까 하다가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로 택했어요. 그 책이 먼저였고 다음이 시지프시였기에...
음, 저도 그 나이쯤이어서 그 느낌 알 것 같아요.
할아버지, 정말 좋은 분이셨네요. 꼭 찾아뵙기를 바래요! ^^

깐따삐야 2007-12-18 00:23   좋아요 0 | URL
오... 완전 반가운데요? 이런 필연스러운 우연이라니요.^^
찾아뵈어야 하는데 이제는 저를 기억하실까, 괜시리 방해되는 건 아닐까 그게 또 걱정입니다. (이노무 근심꾸러미 A형 같으니라구.)

순오기 2007-12-18 01:32   좋아요 0 | URL
ㅎㅎA형이군요. 우린 다섯식구가 모두 A형!
그 할아버지도 기다리고 있을걸요. 절대 방해하는 거 아니라고 보장함!!

깐따삐야 2007-12-18 18:19   좋아요 0 | URL
모두 A형이라니. 허걱! 왠지 가나다순으로 완벽하게 정리된 강박적인 책장이 상상되네요.
할아버지는 지금 연락이 안 되고 있는데, 그게 좋은 일 때문은 아닌 듯 싶어서 그냥 고마운 마음만 간직하고 있는 중이랍니다.-_-

순오기 2007-12-19 07:52   좋아요 0 | URL
ㅎㅎ 한땐 번호순으로 반드시 꽃아놓았죠. ㅎㅎ A형이 그렇구나!ㅋㅋ
지금은? 온 거실의 책상화... 책꽂이도 넘쳐나서 이웃집으로 억지 대출까지 불사하는 상황! ^^

가시장미 2007-12-18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매일 이렇게 정성스럽게 글을 올리시니,
알라딘을 끊고.. 담배를 필까? 라는 말이 이해가 되네요. ㅋㅋ

멋진 글입니다! ^^
(사실 너무 졸려서 자세히는 못 읽었어요. 내일 다시 읽을께요. 으흐)

멘토.. 정말 찾기 어렵죠.
저도 멘토로 여기는 스승님이 계시긴한데..
예전에 글을 쓴 관계로 또 쓸 글이 없네요.
기력이 없어서 다른 무엇이 떠올라도 못 쓰겠지만...

아.. 오늘 뉴스보고, 너무 짜증이 나서...
기분이 너무 안좋아져서 오늘은 일찍 자야할 것 같아요.
(언제부터 잔다고 보고를 했어? 응? ㅋㅋ)
명박아저씨를 어쩌면 좋죠? ㅠ_ㅠ 아흐 짱나.
깐따삐야님, 우리 오늘은 꿈에서 보지마요~~ ㅋㅋ 좋은 꿈!!

웽스북스 2007-12-18 00:08   좋아요 0 | URL
가시장미님, 그래서 전 옛날글 트랙백으로 대신했어요 ㅋㅋ

가시장미 2007-12-18 00:10   좋아요 0 | URL
아 웬디양님.. 그런 방법이 있군요!
아.. 그래도 귀찮아요.
그냥 잘래요.
웬디양도 잘자요. 굿나잇 :)

깐따삐야 2007-12-18 00:31   좋아요 0 | URL
음, 근데 생각해보니 서재에 글을 쓰면서 담배를 같이 피우면 딱 좋을 것 같기도 해욤.( ..)
오늘 뉴스는 못 봤지만 명박 아저씨는 예전부터 저도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네요.
알흠다우신 장미님, 피곤하면 피부 상해요. J군도 안쓰러워 할거에요. 얼른 주무세요.^^

가시장미 2007-12-18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어보니 할아버님의 소식이 가슴을 짠하게 만드네요.
누구나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예상하고 대처할 수 없다지만,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잊는다면.. 그 충격은 말로 표현하지 못 할테죠.
만약 깐따삐야님께서 찾아뵐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정말 감동하시겠네요.
그날이 오면, 더 감동적인 페이퍼를 올려주세요.

아침부터 붙잡고 있는 문서작업이.. 오늘 안에 끝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오늘 과외는 내일 쉬는 관계로 오후로 미뤄두었고..
예상에 없었던 J와의 데이트가 잡히면서.. 퇴근시간만 기다리고 있네요. ㅋㅋ
오늘 하루가 또 이렇게 반나절이 넘게 지났네요.
깐따삐야님께서도 좋은 하루를 보내고 있으리라 생각해요.
담배는 조금.. 줄이시구요 ㅋㅋ 늙어서~ 콜록콜록 한답니다! :)

깐따삐야 2007-12-18 17:45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저도, 장미님도, 지금 현재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해요.♡
바쁜 와중에 짬내서 즐기는 데이트가 더 설레고 달콤한 법이라고 지금 자랑하시는 거죠?
그리고 남들이 장미님 댓글 보면 제가 골초인 줄 알겠어요! 알라딘 중독+니코틴 중독.
저를 아주 보내버리시네요오-
(알흠다우시니까 용서하겠습니다만. 기왕이면 데이트 후기 올리셔서 저를 완벽하게 보내주신다면 땡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 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출출이=뱁새, 마가리=오막살이 


이 시를 읽을 때마다 항상 저 구절이 내 눈길을 끈다.
사랑은 하고.
사랑하고, 가 아니라 사랑은 하고.
묘하게 마음 아픈 구절이다.

겨울이 되면 백석이 생각난다.
白石, 하얀 돌이란 뜻인데 결국 눈을 가리키는 건가.
그래서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면 시인을 생각하게 되는 건가.
어쩌면 시에 기대어 포개놓았던 기억들을 반추하고 싶은 건지도.

낮게 읊조리는 듯한 근사한 목소리를 가졌던 동아리 선배라든가,
모닥불 주위에 모여 숨죽여가며 들었던 친구의 첫키스 이야기,
입대를 앞두고 눌러쓴 모자 아래로 빨갛게 얼어있던 동기의 얼굴...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하던 시절도 있었지.

"너는 너를 너무 사랑하는구나."
오늘 누군가한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야."
이런 말을 들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나는 마치 오지 않는 나타샤가 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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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2-17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께는 내가 있기는 하고
어쩐지 그게 더 슬픈 것 같기도 하고
오늘 밤도 테트리스는 푹푹 나리고

깐따삐야 2007-12-17 00:10   좋아요 0 | URL
어데서 깐따삐야는 오늘밤이 외로워서 응앙응앙 울으려나. 훌쩍~

라로 2007-12-17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긴 끼면 안될 분위기~^^+이러면서 막 껴~ㅍㅎ

깐따삐야 2007-12-17 12:40   좋아요 0 | URL
역시 전 어필하는 세대가 따로 있나봐요. 털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