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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지마 히로시의 양반 - 우리가 몰랐던 양반의 실체를 찾아서 ㅣ 조선 문명의 힘 1
미야지마 히로시 지음, 노영구 옮김 / 너머북스 / 2014년 3월
평점 :
양반은 무엇일까? 역사적 용어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조선왕조의 지배계층이었다. 하지만 양반은 법제적인 절차를 거쳐 정의된 이들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습에 따라 형성된 계층이다. 그러면 양반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책에서 양반을 1차적으로 구분하는데 서울과 그 근처에 거주하는 재경양반, 경반이다. 이들은 과거합격자들도 많이 내고, 고위 관직에도 오른 이들도 있었다. 그러기에 이들은 양반 신분으로 사회적으로 쉽게 인식되었다. 문제는 지방에 거주는 재지양반, 즉 향반들이다. 이들의 존재양태는 재경양반들과는 달랐다. 일반적으로 재지양반이 양반으로 인식 받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준이 있어야 했다:
1. 과거합격자 내지는 저명한 학자를 조상으로 둘 것. 그리고 그 조상과의 계보관계가 명확할 것.
2. 여러대에 걸쳐 동일한 집락에 집단적으로 거주할 것.
3.양반의 생활약식을 준수할 것(봉제사, 접빈객)
4. 대대로 결혼상대도 1과3까지에 해당되는 집단에서 고를 것
그런데 이러한 기준이 대략적으로 위와 같이 잡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위와 같은 네가지 기준 모두를 충족하는 경우는 많이 없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예시를 간단히 해주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아서 아리송하다.) 이렇게 양반이 순수하게 생득적인 신분이 아니라 객관적인 기준 자체도 모호 했기에 양반으로 상승코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후에 다른 책에서도 접할 수 있는 관점이다. 개인적으로 조선조 후기의 양반지향의 현상은 어느정도는 설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후 저자는 재지양반층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는데, 일단은 저자는 고려시대 지방통치의 임무를 가진 재지 유력자들인 이족吏族에서 중앙관료를 배출하고 다시 세거지로 정착하는 과정으로 거쳐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는 가운데 중앙관료로 진출하여 고위관작까지 낸 뒤 그 인물은 입향조, 시조로 하여 족보가 생겨나는데, 잘 알려진 것처럼 족보는 정말로 모든 가계를 그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내가 속한 이 가문이 뼈대 있는 가문이며, 그렇기에 이러한 특권을 누릴 만 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계급의식을 필연적으로 나와 남을 구분하는데, 자신들의 모체인 향리와도 구분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혼인 대상으로서의 차별에서 나타난다. 초반에는 향리층과도 혼맥을 이었으나 이후로 재지양반으로 신분이 공고화 되는 과정에서 혼인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특권층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사회적인 위세도 필요하지만, 절대적으로 무시할수 없는 겻은 경제적 기반일 것이다. 양반이라 함은 전혀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 계층으로 알고 있지만, 조선 전반기에는 농업과 관련하여 적극적으로 관리감독 하고 사적으로 농서도 하는 등 농업, 농지개발등에 적극적이었다. 그렇기는 해도 역시 양반이 땀흘리고 농사를 짓는 모습은 상상할 수가 없다. 채신머리가 있지 어찌 양반이? 여기에 필요한 것은 노비다. 이들 노비들이 농사는 물론이고 농지를 개척하는데 최전선에 섰다. 그렇기에 양반의 입장에서 노비는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고, 양반의 상속문서인 분재기에도 상세히 기록을 해두었다(도망간 노비들도 향후 그들의 자손이 발견된 것을 대바하여 적었다) 여기서 조선의 노비의 비율이 전 시대에 비교해서도 많음을 지적하며, 그 이유로 법제적인 이유로 늘어 났다고 보았다. 일천즉천, 종모법등. 이것을 보면 마치 가축을 교배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역겨웠다. 그들의 혼인과 출산은 소유주인 양반들의 입장에서는 재산 증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경제발전도 한계가 있는 법이고, 그들의 경제적 저하는 상속문서인 분재기에서도 경향이 뚜렷해진다.
경제력이 저하 됨에 따라 생길 수 있는 가문의 몰락, 제사를 지낼 수 없음을 예방하기위하여 남녀균분의 경향에서 남자, 거기다 장남을 위주로 상속하는 경향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아들, 딸 구분없이 상속되었고, 사위에게도 상속하기도 하였지만, 18세기 들어서는 거의 완벽하게 정착이 되었고, 비로소 성리학자들의 기획은 완성된다. 저자는 이 주자학의 주장이 종국적으로 이러한 경향을 만들었다기 보다는 이런 경향이 뚜렷해지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활용된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그쪽보다는 역시 조선 사회 전체를 성리학화 하려는 성리학자들의 프로젝트의 종국적인 성공이라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건 사견이고.
문중의 발생 역시 이러한 경제력의 저하에서 발생하는 동족결합의 강화에서 비롯하였다고 본다. 물론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조상의 눈아래에서> 읽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승종인에 집중 되어 있는 것에 본인의 어려움과 다른 형제, 친족등의 불만을 봉합하기 위한 것도 있을 것이다.
'양반'을 읽으면서 노비의 존재양태 역시 상당히 궁금해졌다. 일전에 역사획에서 나온 '노비, 농노, 노예'를 구하려고 여기저기 뒤져봤는데 아직 구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