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
미야지마 히로시 지음 / 창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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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가 왜 그런가?를 알려면 그것이 형성되어 온 과거를 알아야 한다. 일본의 역사인식 또한 그러하다. 본책은 일본인 한국사 연구자인 미야지마 히로시의 논문집으로, 그러한 일본의 역사인식, 역사관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했던 논문을 모은 것이다.

 

 저자는 현재의 일본의 역사인식의 뿌리(?)를 근대 일본의 태동기, 메이지유신을 전후로 하는 당시의 역사인식에서 찾는다. 하나는 일본의 봉건제론이고 또 하나는 당시 일본 지식인들의 유교인식(이른바 유교망국론?)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은 1부에서는 일본의 봉건제'론'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것들을 정리한 것이고, 2부는 당시 일본의 유교인식에 대한 비판적 제기를 하고 있는 논문을 모은 것이다.

 

 일본의 봉건제'론'은 이른바 탈아입구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바로 아시아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유럽과의 유사성을 강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봉건제는 유럽의 발전도상에서 생겨났던 제도로 역사발전 단계 중 하나로 설정되었다. 당시의 선진화된 서구, 낡고 정체된 동양라는 구도를 생각했을때 우리(일본)은 낡고 정체된 아시아와는 다르고 선진화된 유럽과는 유사한 봉건제가 있었다라는 것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주로 역사학자라들이 주장했다기 보다는 그 주변적인 경제사학자와 법제사학자가 주창하기 시작한 것이라 한다.  이런 봉건제론은 천황제(황국사관)와 더불어 국사 창출의 이데올로기였다는 점. 그리고 한국과 중국에는 이와 같은 봉건제 부재를 이류로 들어 '침략'의 이데올로기로 작용도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는 가운데 이시모다 쇼의 <중세적 세계의 형성>이라는 연구물을 통해서 통설로 굳어졌고, 봉건제'론'의 이데올로기성은 망각된 채 이에 왔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 지점에서 일본의 보수적/진보적 사학자를 막론하고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봉건제'론'을 비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보수/진보나 이러한 역사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와 동시에 유럽 중심적인 인식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한일 양국의 역사교과서의 단원 제목을 통해서도 그러한 인식의 일환을 볼 수 있다. 하나의 발전단계일 뿐일 유럽의 봉건제가 단원의 제목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중국의 성립과 '발전'이라는 단원의 제목과는 대비가 된다. 중국의 발전을 강조하는 듯하지만, 유럽의 봉건제라고 올라온 제목을 비교할때 발전의 정도가 달라보이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현재는 예전과 달리 유럽과 목표가 되던 시대가 아니다. 적어도 서구화가 민족과 나라를 살릴 유일한 절체절명의 방법이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은 역사관을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저자의 말을 인용하면 "무엇보다 현재의 실증 수준에서 보면 18세기 말까지 세계의 여러 경제지표를 보더라도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가 서구를 능하거나, 적어도 동등한 수준이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럽 봉건제를 기준으로 18세기까지의 동아시아사를 파악하려는 것 자체가 본말이 전도된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문제는 동아시아사에 봉건제 개념을 접근하지 못하게 된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19세기적인 구미중심의 세계체제가 근본적으로 재편을 요구받고 있는 오늘날, 새로운 역사상을 탐색하기 위해서 라도 19세기적인 세계관으로 이전을 파악하려는 '봉건제'론은 서둘러 근복되지 않으면 안된다."(p.98) 그리고, 서구와 동아시아 사이에 봉건제라는 공통점이 존재했던들, 그것이 서구의 봉건제가 본질적인 것인지, 동아시아의 봉건제가 본질적인 것인지 어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히 당시의 서구제국주의의 위력에 따른 것일뿐이다.

 

 유교인식의 비판을 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당시 일본이 하려고 했던 근대화의 내용은 유교(주자학)을 국가와 사회의 작동원리로 했더는 한국,중국에서는 이미 선취된 것인데, 당시 후키치와 유키치와 같은 일본 지식인들은 일본의 유교만을 생각하고 비판한 것란데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의 주자학에 대한 호감이라고 해야되나? 뭐 그런 것이 느껴지는데 그게 과연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것은 일단 앞으로의 독서 과제라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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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까마귀 2024-04-20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말 메이지 유신 초기 인물들이 유학의 영향을 많이 받음 사대부적인 면모가 어느 정도 존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