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인간에게, 물고기 올림 - 물고기 박사 황선도의 현대판 자산어보
황선도 지음 / 동아시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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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미 출판 한바가 있는 원고를 수정하여 이책의 일부를 구성하고 신문연재한 것을 한 축으로 하는책이다. 이런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 좀 떨떠름 하였다. 거기다 오식도 몇군데 보이니 신뢰도가 바닥을 친다.

장어를 다룬 한 꼭지와 3부를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문어가 폐쇄된 공간에서 자기 발을 뜯어 먹고 버틴다고 한다. 몰랐던 사실이다. 그러면 책에서 언급 한 것처럼 문어발시 사업 확장이라한 것도 제살 깍아먹기 점이란 점에서 맞는 말 갘기도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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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의 장으로서의 고대사 - 동아시아사의 행방
이성시 지음, 박경희 옮김 / 삼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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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사는 현대사와 더불어 언제 어디서라도 화약고나 다름 없어 보인다.  현재의 정치적 혹은 여러 이유때문에 고대사를 새로이 발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차원에서 벌어지는 역사 분쟁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단연 동북공정이다. 그에 따라 촉발된 논쟁은 고구려연구재단이 설립되어 대응을 모색되기도 했다.  그리고 국가 내의 차원에서는  스스로를 재야사학자라 칭하며,  메인스트림에 있는 학자들을 강단사학자, 매국사학을 잇는 자들로 정의하고, 고대 한반도 국가들의 위대하고 넓은 영토를 칭송한다.  이제 대한 대응으로 최근 <젊은역사학자모임>에서 이러한 욕망의 고대사를 바로잡고자 몇권의 저작을 내놓고 있다.  그냥 얼핏 보아도 이러한 모습은 고대사 인식을 둘러싼 ‘투쟁’이라 하는 것에 이의는 있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그 제목의 강렬함에 이끌려 구입했다.  물론, 저자의 이름도 어느정도 들은 바가 있어 부담 없이 구입한 것이기도 하다.(저자의 책은 이 책이 처음이긴 하지만)

 책은 기본적으로 발표된 논문을. ‘사학사’에 카테고리에 해당되는 것을 묶어 낸 것이며,  전작 <만들어진 고대>와 중복으로 게재된 것이 있다.  저자가 인용하는 이시모다 쇼가 사학사에 대해 논한 것을 보면 “학설사,연구사적인 측면에 그치지 않고 사학사상,역사관,역사의식의 측면이 통일되고 나아가 역사 서술의 역사도 포함되었을때 비로소 사학사가 역사학의 일로 성립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중요 역사학자들의 입장과 세계관을 살펴보는 논문이 두 편 실려 있는데, 하나가 마르크스사학자인 백남운이며,  하나는 그 유명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다. 저자가 인용하는 쓰다 소키치를 글을 읽으면서 어지간히도 ‘서양’을 의식했다는 소감이 들었다.  그에 따라 중국과, 한국에 대한 멸시도 동시에 있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오늘날까지 존속하는 일본의 아시아관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특질을 밝히려고 했다 하는데,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일본제국주의의 메인스트림에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 ‘서양’을 강하게 의식하여 일본의 것을 강조하고,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자신들의 선망하는 세계에 기어코 진입하고자 하였다.(脱亜入欧). 그런데 한국(한반도)에 대한 멸시관의 기원은 깊은 것 같다. 임진전쟁을 비롯하여 대한제국의 병합에 이르기 까지 진구황후의 삼한정벌 설화를 현창했다.  그리고 일본의 고대대외관계사를 설명하는데서도 기이하게 한반도를 부러 제외하고 견당사만을 강조하기도 한다.  굳이 한국에 대한 멸시적인 내용의 글을 적지 않더라도 일본 저자의 글을 보면 꼭. 괄호안에 한반도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없는 경우가 많다. 가라타니 고진도 이러한 경향을 언급한 기억이 난다(그런데 어떤 맥락에서 언급한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목차에서나 저자가 공동저자로 참여한 저서를 보면 짐작 할 수 있듯 국사만들기에 대한 해체작업물이 있다. 책의 1부가 그에 가장 해당되는 부분인데,  다른것보다 4장<<발해사를 둘러싼 민족과 국가>가 흥미로웠다.  발해의 지배층의 출식이 고구려임에는 중론이긴 하지만, 피지배층인 말갈족들이 대다수인 상태에서 귀속의 문제가 한층 복잡해진다. 이전에는 민족적인 입장에서 고구려사, 발해사 니것 내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하거나 부동의하거나 였는데, 최근 들어서는 저자와 유사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 대하여는 동양사학자인 김한규의 주장(대표적으로 <요동사>에 동의를 하는 편이다.  그런데 본인의 역량 부족도 있겠지만,  이해가 안되거나 동의가 조금 어려워 보이는 부분이 있다.

발해사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는 면이 있기도 하지만, 상세히 다룬 교육을 받지도 못한 것도 있어서 발해가 가지는 재미난 사실이 흥미로웠다.  저자는 발해의 외국의 통교 과정에서 보이는 교섭의 형태를 제시하면서(건국초기 발해와 함께. 불열부, 월희부, 철리부, 흑수부 등 각 말갈족이 단독으로 당과 교섭을 하는 기록등) 발해가 일반적으로 오해하는 것처럼 압도적 군사력을 배경으로 피지배 공동체를 지배/복속하는 관계와는 다른 타협적인 정치 편성을 이룬 것이라 하는데, 마치 더 이전의 삼한연맹체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저자는 4장의 끝에 “....발해의 오경이 발해의 대외 교통망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밝힌 가와카미 히로시의연구는 주목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발해의 국가 발전 및 말갈족의 통합은 발해에 포섭된 여러 말가족의 대외 교역 보증 여부에 있었다고도 할 수 있으며, 따라서 발해 국가 체제의 요체인 오경이 당/일본과의 교통을 중시한 제도의 일환이었다는 점이야말로 발해의 국가 성격 자체를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근데 이와 같은 이해가 어느정도 주류인 건지 궁금하다.  발해사는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져 살펴보지는 않았는데, 관련 책을 찾아서 읽어볼까 싶다. 

광개토태왕비에 대한 견해 또한 흥미롭고 동의가 가는 편이다.(제2부 5장과 6장). 주로 해석을 둘러싸고 논쟁이 되는 부분이 신묘년 기사,  즉 광개토대왕의 무훈 관련이다.  저자는 비를 세워 누구에게 보여주고자 했는지는 당시의 상황을 보자고 했다.  저자는 만약 비가 묘비였다면, 일개장군도 아닌 왕의 묘 비의 무훈을 넣은 것도 의아하며(개인적으로는 이상할게 있나? 싶기는 하다. 시호인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이. 땅을 넓힌 것에 강조를 주고 있기도 한데),  또 중국왕조의 전쟁에서도 이긴바가 있는데 그것은 빼놓고 한반도 내 국가와의 전쟁을 강조했는가.  그것은 뒤에 왕의 유언으로 본인이 공취하여 데려운 한족과 예족만을 데리고 묘를 관리하게 하라는 것 때문이었다. 왜 그것을 강조하려 했는가.  그것은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비 자체가 수묘인 제도를 공포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그 대상은 누구일까. 그것은 비에서 보이는 것처럼 (“또 명령을 내리기를, 수묘인은 이제부터 다시는 서로 전매할 수 없다. 부유한 자라 하더라도 또한 제멋대로 매입할 수 없다. 누구든 명령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형벌에 처한다. 매입하는 자는 제령으로써 묘를 지키게 하겠다”) 부유한 자로, 수묘인을 사는자다.  계루부를 비롯한 나머지 5부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정리하자면,  광개토왕비는 수묘역체제라는 법령을 선포하고자 하는 매체이며,  비문의 대상 독자는  수묘인을 살수 있는 ‘부유한 자들’이다.  당시 왕을 내고 있는 계루부의 다른 부와는 다른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추모왕의 창업과정에 있었던 신이함을 보여주고,  말미에 수묘역체제를 공포하여 흔들림없이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왜’가 강력한 존재로 묘사가 된것은 광개토왕의 위대함을 돋보이게 하는 트릭스터로 보는데, 이에 따라 대상 독자에 대한 자기 세계 질서를 환기시켰다고 본다. 여기서 칼 슈미트를 인용하는데, “정치적 관계의 본질은 구체적인 대립과 서로 관련을 맺음으로써 유지되는데, 모든 인간 집단은 바로 적을 가졌기 때문에 비로소 자기편을 찾고 자기편을 찾는다”. 

책에서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이라면 역시 2부였다. 어서 다른 학자들의 견해도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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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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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베르트 에코의 마지막 소설이라고 해도 뭐 거창할 것 없다. 솔직하자면, 에코의 소설은 <장미의 이름>때문에 읽었다. 역자가 평한대로 대가니, 거장의 소설이니 하며 추켜세울 만한 점도 느끼지 못했다. <로아나 여왕의....>는 도저히 읽지 못할 것 같아(지루함이 주요 원인이다) 결국 덮어 버렸고, <프라하의 묘지>는 아직이다.

 

<제0호>는 내가 읽은 에코의 소설 중에서 제일 재미가 없다. 책소개에서 언급된 그럴싸한 미스터리도 없다. 그냥 저널리스트의 세계를 다룬 것이 흥미로울 뿐이다.

 

뉴스가 뉴스를 덮기 위해 생긴 것 같다는 말처럼, 어떤 주장의 신빙성을 훼손하기 위하여 주장하는 이의 신뢰도를 깎는 방식으로 사건의 초점을 돌려버리는 것들 말이다. 이탈리아나 대한민국이나 뭐가 크게 다른가.

 

그러한 의도에 넘어지지 않으려 중심을 잡아보려 하지만, 사람들 인식의 맹점을 노리는 날카로운 악마의 낫을 피하기는 힘들다.

 

재미있게도 이 책의 리뷰에서 그런 맹점을 건드리는 글을 보았다.

 

이 책의 번역본이 불어 중역본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글의 댓글에 다른 알라디너가 중역본이 아니라고 하자, 그래도 불문과니 베이스는 불어가 아니겠냐는 내용의 대댓글을 달았다. 여기서 이 글을 쓴 사람이 막연한 추측에 근거해 적은 글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어림짐작으로 쓴 글에 대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품이 많이 들어 갈 것 같았다. 책의 판권지를 다시 들추어보고, 검색을 해보고... 마지막에는 출판사에 직접 문의를 넣어 볼까 하다가 ‘아이, 귀찮게, 말어.’하고 그만두었다. 모든 사람이 정보를 낼 수가 있고, 모든 사람이 그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이때, 아님 말고 식의 글에 대하여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런 탓에 약간의 사실에 거짓을 섞으면 혹하고 빠져 들어간다. 사람들은 귀찮아서 확인 안 해보니까. 나처럼.

 

우리 모두 눈 밝은 자가 되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알고 있기로 역자는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을 번역하기 위해 이탈리아어를 공부한 것으로 안다. 프랑스어, 영어, 일본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역자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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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시 기행 1 -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 편 유럽 도시 기행 1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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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직업정치인을 그만두고 쓴 책을 몇권 읽었는데 생각보다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책을 덮고는 했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

개인적으로 여행은 좋아하지 않아 집돌이로 지내는데, 특별히 세계의 도시가 궁금해서 읽었다기 보다는 여행자가 여러 다른 곳을 여행하며 얻은 이야기를 듣는게 좋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란 단순한 지식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내 인식의 지평을 넓어 줄 수 있는 저자의 사색쯤 되겠다.

개인적인 평으로는 그건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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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정치사
노중국 지음 / 일조각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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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의 백제정치사연구를 개정한 것으로 1988년도에 초판이 나왔다 하니 30년만에 개정되어 나온 셈이다. 몇년 전에 이 책의 초판보을 읽고 난 이후로 저자도 퇴임을 하였고 이후 책을 더는 못 보겠다 싶어 중고로 구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개정증보판이 나오니 기쁘면서도 아쉬움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사료를 대하는 방법론으로는 변함이 없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온조왕이 졸본부여에서 출자하여 한반도 남쪽의 땅을 얻어 십제를 세우고, 형이 세운 미추홀국이 귀부해옴에 따라 백제라 하고 마한을 병합했다 하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당대의 삼국지 동이전에 따르면 백제는 마한연맹체의 구성원이었다.

 

 이렇듯 나라를 세운 시조에 압축적으로 그 업적을 넣었는데, 이것을 분해하여  국가 발전 단계와 연관하여 재정리 하는 것이 분해론이며, 삼국지 동이전에 보이는 고구려, 부여, 옥저등의 국이 국가 발전 단계가 동일하지 않은 것을 단계화 하여 백제사를 구성하다는 것이 주요 방법론이다.  삼국지 동이전으로 뼈대를 만들고, 삼국사기 초기기록 내용을 분해하여 살을 덧붙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조 온조왕에 일어 났던 것으로 기록 된 것을  부체제의 성립은 고이왕대에, 마한 병합은 근초고왕대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이와 같은 방법론을 통해서다.  거기다 백제사에 있어 중요한 참고를 할 수 있는 일본서기에 경우는 익히 알려진 악명과 같이 윤색된 바가 커서 조심스러게 활용한다 하였다. 그런데, 오랜 세월 공부해온 학자가 못 미더운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자의적이란 점은 변함이 없다.

 

백제에 대하여는 학창시절 부터 세련된 고대국가로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받은 인상이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는 편이라 지금도 여전하다.  고구려는 강성하고 호전적이며, 문화적으로는 그렇게 볼품이 없는 나라.  신라는 단재선생이 끌어온 프레임에 같혀, 민족의 반역자 쯤은 아니나 괘나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첫 인상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신라는 당시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고 결국에는 해낸 것일 뿐  단재 선생이 짠 인식의 틀처럼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졌다.  둘 다 시대의 소산일 뿐이다.  

 

다시 책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면,  왕의 계보를 살필 때가 너무 머리 아팠다. 흥미진진하면서도.   온조 집단은 남쪽으로 내려와  당시 마한연챙체의 맹주국이었던 목지국으로 부터 100리 땅을 얻어 십제를 건국하였다. 그러다 형인 비류가 세운 미추훌국의 귀부를 받아 백제라 국호를 정했다고 하는데, 이를 마한연맹체 내의 지역연맹체로서 비류의 미추훌국의 영도를(?) 받다 여러모로 국력이 우월해지며 지역연명체의 연맹장을 하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사실을 왕계를 일원화할 요령으로  온조왕-다루왕-기루왕-개루왕-초고왕...이라는 계보를 만들었다고 추정한다. '루'자로 끝나는 왕이  당시 지역연맹체에서 미추홀국이 우세했던 시기를, 즉 연맹장을 맡았던 시기를 반영하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등에 백제 초기의 왕성이  부여씨와 해씨로 상이하게 언급되는 것도 상기와 동일한 이유에서라고 본다(거기다 누구의 왕이 전왕의 아들이고 혹은 동생이고 조카이고를 따지는데 흥미로운 지점인 것도 있지만  항상 마지막은 지루하다).

 

 책에서 다룬 내용중 재미있는 것 하나는 의자왕을 해동증자로 불린 사실이 당시 왕의 후계자로 선정이 되고,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어려움 때문에 그런 것이란 점이다. 그럴만한 상황과 여력이 안되는데 효도를 한다. 어렸을 적에는 생뚱맞게 무슨 해동증자... 라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는 그런 어려움에 있던 의자왕의 처세였던 것이고, 즉위하며 친위정변을 단행하며 비로소 해소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사리봉영기>가 발견됨에 따라 서동(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가 의심 받게 된 것을 두고 무리 없게 이와 같은 사실을 재구성한 것 역시 좋았다. 후손의 나이를 역순하여 의자왕의 출생년도를 추측하여 무왕이 의자왕을 낳은것은 선화공주도, 사택왕후도 아닌 빈천한 시절의 서동때라고 보며, 선화공주의 경우에는 당시 국제정세에 필요로 정략적인 필요로 결혼을 한것으로 보며, 그 이후 사리봉영기에 나오는 것처럼 사택왕후가 마지막 왕후로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노학자의 추측이 사실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저자가 설명하는 것처럼 통일신라때 만들어진 설화에 당시 신라 왕실을 모독하는 내용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모독적인 이야기를 아예 뺄수는 있겠지만, 없는 모독적인 사실을 일부러 만들어 넣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겠다. 그러면 선화공주의 존재를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선화공주의 이야기와 관련하여 서동요를 비롯하여 미륵사지 창건을 청하였다는 문헌적 사실에서 굳이 청한 주체인 선화공주만 부정한다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발굴결과와 미륵사지 창건에 관한 문헌 내용에서 일치한다고 한다). 

 

 어렸을때 읽언던 서동과 선화공주의 설화가 인상 깊어 눈에 띈 대목이었는데,  이후라도 이와 같은 사실이 진실에 가깝게 구성이 될 수 있는 단서가 나온다면 좋겠다.

 

백제는 타의로 자의로 총 두 번의 수도 이전을 감행하였다. 그러면서 왕을 제외한 지배세력의 교체가 큰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백제 지배세력 연구>라는 학술서도 따로 있어 읽어보려고 한다.

 

+사실 한국고대사 관련 학술서나 교양서를 읽을때마다 드는 생각이 절의 창건이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어떻게 왕권강화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줄 수 있냐는 것이다. 고대의 지배자는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기 위하여 여러 신이함에 의탁한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게 어떤식으로 구체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이해가 안되어 항상 궁금하다. 종교학과 인류학의 책을 구해 읽어 참고 해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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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2019-08-26 12: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왕실에서 절을 만들고 백성들은 거기 가서 상과 탑에 감통하고 그로써 멸죄, 극락왕생, 망자추선 등등 하는 거죠. 그리고 이런 장을 마련해준 권력자들은 자신의 능력과 위세를 과시함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중국 중세사 연구자들이 얘기합니다.

가넷 2019-08-26 13:1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