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복영광사 지음, 이동철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1999년 2월
평점 :
절판



 

삶과 죽음은 하나다. 어렸을 적에는 이 소리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에 들어서는 어느정도 느끼고 있다. 나는 죽어가고 있기에 살아 있고, 살아있기에 죽어간다. 아직 죽음에 대한 공포나 걱정이 있을만한 나이는 아니지만, 죽음에 조금 더 다가 갔을때 나는 초연할 수 있을까. 


도란, 스스로 생겨나 스스로 변화한다. 난 태어남을 당했고, 이런 변화무쌍한 세계를 살아야 한다. 과거는 흘러간 현재이며, 미래는 아지 오지 않을 현재이므로, 난 지금 현재를 살아야 한다.  <장자> 소요유에서 나오는 우화처럼 못생긴 나무가 결과적으로 살아남아 무용의 용을 보여준 것처럼 긴 흐름에서 생각하며 자신의 존재방식을 다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슬픔이 오면, 기쁨이 오고, 걱정이 생겨나면 곧 걱정이 사라지기도 한다.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무심의 경지란 얽매이지 않음이다. 하지만 이런 류의 경우 깊게간다면 사회적 관심이 거세 되어 결국에는 인간의 힘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마저 변화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냥 나의 존재의미를 고민하는데에서 채택해야 할뿐이다. 


최근들어 폭탄 같은 내 마음이 진정되고 있는데, 그래서 이 책이 생각보다는 쉽게 다가온 걸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길은 여전히 찾기 어려우며, 난 나만의 방식으로 그 길을 찾아간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가는 여행이라도 가라 하지만 그건 도저히 못하겠다. 일터에 나가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어찌하랴. 그 작은 경험과 독서가 나를 꾸리는 자양분이 된다. 나는 구만리를 날아가는 대붕이 아니며, 좁은 시야로 비웃음을 당하는 찌르레미일 것이다. 허나 내가 하나 다른 것은 보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인정한다.  우물안 개구리가 우물안의 개구리임을 아는 정도라고 하면 지나칠까.  세상의 흐름은 기나긴 것이고 그것에 비하면 나라는 존재는 일시적인 존재이지만, 나라는 존재를 생각하면 전부이다. 어떻게든 결론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어딘가 익숙한 해석이라 생각하였는데, 국내의 장자의 해석에 많이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후쿠나가 미츠지라는 분으로 도올 선생이 동경대 시절에 밑에서 수학했다던가. 잘 모르겠지만 학연은 있는 것으로 안다.  책에는 한자독음인 복영광사로 되어 있어 누군가 했다.  찾아보니 90년대 초에 난세의 철학, 장자라는 제목으로 나온 적이 있는 것 같다.  


조만간 <장자>를 다시 읽어야 겠다.  그나저나 저자처럼 <장자>를 자유자재로 인용하려면 얼마나 읽어야 할까. 위편삼절이란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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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pirin 2022-10-28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서치하다가 외람되지만 부탁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제가 복영광사의 장자 책을 너무 구하고 싶은데 구할 수가 없어서요 저는 전북 전주에 거주중이고 실례지만 책을 받아서 제본을 하고 돌려드리면 안될까요??ㅠ 소정의 사례는 하겠습니다 연락부탁드립니다 010-6789-4783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