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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문으로 백제를 읽다
노중국 지음 / 학연문화사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책은 흔히 백제사를 시기별로 분류할 때 기준을 두는 백제의수도를 기준으로 나눈 후 그 시기에 해당 되는 금석문을 하나씩 맡아 백제사에서 가지는 의미를 음미 하고 있다. 한성도읍기에 세 꼭지 외에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게 거의 없다. 기억이 나는 것이라고는 백제시대는 연호 보다는 간지를 주로 썼고, 백제명망의 기록인 대당평백제국비명이 따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정림사지 5층 석탑에 새겨 졌다는 점 정도만 새로 알게 된 사실이다.
아, 그리고 최근에 발굴된 금석문에 담긴 내용 중에 일반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가질만 한 것으로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금제사리봉안기의 내용이다. 분명 문헌에서는 무왕에게 선화공주에 청하여 미륵사지를 지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금제사리봉안기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당시 왕비인 사택적덕의 따님의 원에 의하여 창건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실제 하였는지의 여부 미륵사지의 창건 주체로서 전면적으로 부정되었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라고 한다. 무왕의 오랜 재위기간(42년)을 고려 하면, 왕비를 여럿 두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으며, 그 탓에 미륵사지의 창건이 완성될 시점에 왕비가 사택씨였으므로 그렇게 기록된것이라는 것이다. 물론에 그와 다르게, 서동과 선화공주의 설화는 당시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가 백제 지역의 주민들을 달래기 위한 것으로 삼국유사에 까지 담기게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며, 추후 어떤 연구가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