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네 번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네 개의 말투로 매일 다른 인사말을 건네는 게 아닐까요.

(p.18)

종이를 좋아하는 만큼 책을 좋아합니다. 종이를 좋아하는 이유 여럿을 곱한 만큼 책을 좋아해요. 책은 쌓기 좋고, 꽂기 좋고, 마주 보기도 좋지요. 책에 붙는 동사에는 읽다, 보다, 모으다, 사다, 놓다, 꽂다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어울리는 동사는 역시 '펼치다'입니다. 펼쳐야만 비로소 마주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걸, 책은 매번 알려줍니다.

(p.84)

가을에는 온 동네가 노란색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노란 기운이 낮게 깔립니다. 푸른색으로 가득하던 나의 동네를 한 순간 노랗게 마주할 때, 색을 쓰는 건 이 세상을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p.113)

주변에 소중하고 친한 사람 몇 명만 두어도, 1년간 선물을 고르며 지내게 됩니다. 봄에 태어난 사람에게는 일렁이는 설렘을, 여름에 태어난 사람에게는 활기찬 기운을, 가을에 태어난 사람에게는 잔잔한 마음을, 겨울에 태어난 사람에게는 따뜻한 온도를 선사하고 싶어집니다. 가끔씩 오래 알고 지낸 사람에게는 생일과 다른 계절의 물건을 골라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음 해가 되면 결국 계절에 맞는 선물을 고르게 됩니다. 계절에 맞춰서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게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느지막이 듭니다. 일단 지금을 잘 보내자, 하루씩, 한 계절씩 잘 살자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p.140)

지금 좋다고 느끼는 것 앞에서 머뭇거리면, 다음에는 똑같은 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지금은 늘 가던 여행지에 갈 수 없고, 바다 건너의 친구를 만날 수도 없지요. 안타깝게 놓쳤던 다음들을 떠올리면 고개가 숙여지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에 버금가는, 어쩌면 지금 안에서 으뜸인 하루를 이제부터 찾아보려고 합니다. 어느 때를 살든 더 이상 머뭇거리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골목에서 만난 고양이는 내일 그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같은 자리에서 만날지 모르니 매일 작은 간식을 챙겨 다닙니다. 다음에 주는 게 아니라 우연히 만난 오늘 줄 수 있도록요.

(p.153-154)

카페에서 낯선 잔들을 만납니다. 했던 걸 또 하길 좋아하고 한 가지만 고집하는 성향이다 보니 카페에서 남이 골라준 잔 덕분에 미처 몰랐던 취향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내가 주문한 건 음료지만, 그것이 담긴 잔까지가 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도 좋구나 하면서, 좁디좁은 취향의 칸은 바깥에서도 충분히 넓어지고 있습니다.

(p.167)

저는 날씨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날씨 이야기를 매일 나누는 일이기도 해요. 매일의 이야깃거리를 차려주는 날씨가 고맙습니다.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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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나의 2022년 목표는 중구난방!


시집도 읽고 싶고

미니멀도 읽고 싶고

한국문학 읽고 싶고

현대로맨스도 읽고 싶은


가지각색의 나와 친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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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읽은 『아무튼, 술집』에 이런 구절이 있다.

No podemos entender, podemos entender.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서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어.



그사세 덕후는 여기서 또 그사세 내레이션을 곱씹는다.

이상하다.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
이 말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게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였는데,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준영일 안고 있는 지금은 그 말이 참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더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지금 몸 안의 온 감각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 아니구나. 또 하나 배워간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4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녀들의 이야기, 지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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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아모리'를 말하기 위해서는 견고한 정상 연애와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경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상이라는 환상을 강화하는 규범은 애인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곳곳에 스며 있어서, 눈길이 닿는 흐름에 따라 질문을 이어 가다보니 성소수자와 청소년의 욕망과 권리, 가족구성권, 종 차별 문제까지 언급하게 되었다. '두 애인과 살아도 괜찮다'는 비교적 뾰족하던 처음의 메시지는 점점 '누구와 어떤 형태로 함께해도 괜찮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나아갔다. 이 책은 이상한 연애에 관한 책이 아니라, 이상한 세상에서 보고 겪은 다양한 관계의 풍경이다.
(p.13)


타인과 함께 사는 일은 서로의 생활 습관, 집이라는 장소에 대한 인식과 시선의 차이를 알아차리면서 화들짝 놀라는 일이 아닐까. 놀란 뒤 필요한 건 서로에게 맞춰 가려는 의지와 노력이다. 병아리의 말처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를 정! 말! 사랑해야 한다. 사랑이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노동이라면, 정말 사랑한다는 말은 정말 열심히 노동하겠다는 의지와 같은 말이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감정노동, 가사노동, 돌봄노동 등의 다양한 노동을 어느 한쪽만 감수해선 안 된다. 사랑한다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노동이 서로를 살아 있게 하니까. 제발 함께 사랑(노동)해 주세요.
(p.55)


"제가 생각하기에 사랑은 불안을 견디려는 의지인 것 같아요. 제가 작년부터 고양이를 키우는데요, 고양이를 바라보는 제 마음이 사랑과 비슷하다고 느껴요. 고양이를 집에 혼자 두는 시간에 대한 미안함, 온전히 소통할 수 없다는 거리감, 먼저 나를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 것들을 견디고 함께하는 시간에 집중하는 일이요. 서로를 믿기로 선택하고 의지를 갖는 일, 불안을 견디는 일이 사랑 아닐까요. 사랑할 때, 상대와 나는 서로에게 하나의 증상이 되잖아요. 서로에게 깊이 관여하고 영향을 미치는. 그런 면에서 사랑은 서로 소통하며 만들어 가는 협상인 것도 같고요."
(p.94-95)



2021년 올해의 에세이로 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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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일기만큼 펼치기 두려운 장르가 또 있을까. 언젠가 다시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일기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때문에 시간이 흘러 우연히 맞닥뜨리게 되는 일기들은 분명 내가 쓴 것인데도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용기를 내 마주한 일기들은 지루하고 진부하게만 느껴지는 오늘의 나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힌트가 되었다. 추억하기에 좋고 나쁨과는 별개로, 하나같이 현재에 충실했던 기록들은 내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얼마나 고유한 나인지를 다시금 확인하게 해 준다.

(p.10)

​⠀

사소한 감정일수록 더 잘 감춰지고 쉽게 잊힌다. 매일 처리해야 하는 일이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 안에 작은 요동들은 그다지 중요한 게 못 되니까. 나에게 무심해질 것 같을 때, 어느 소설가의 글을 떠올린다. "우리가 우리를 알아주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오늘 밤에도 일기를 쓴다. 내일의 나를 더 잘 알아볼 수 있도록.

(p.19-20)

1919년의 울프처럼 "일기라는 것이 도달할지도 모를 희미한 형태의 그림자"를 생각해 본다. 눈이 빠지도록 일기를 읽었건만 해답은 의외의 곳에서 발견됐다. 10월의 어느 가을, 케임브리지 강연에서 울프는 이렇게 말했다.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재치를 번뜩일 필요도 없지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할 필요도 없고요."

(p.181-182)

문보영 시인의 산문집 《사랑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을 읽으면서 책 여백에다 "일기는 시간을 건너게 한다"라는 문장을 따라 적는다는 게 그만 "시간을 건네게 한다"라고 잘못 써 버렸다. 이것 또한 그럴듯해 보였다. 과연 그동안의 일기 쓰기란 미래의 나에게 지금의 시간을 건네는 일이었던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읽는 책은 모두 미래의 책이라는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매일의 일기도 하나같이 미래의 일기가 될 것이라면 나는 틀림없이 일기 부자가 돼 있겠지. 그날이 오면 중고서점에 되팔 수도 없는 일기를 몽땅 끌어안고 무해한 일기와 유해한 일기를 셈해 가며 일기 쓰기의 수지타산을 맞춰보리라.

(p.195-196)

요즘은 어디를 접속해도 누군가의 하루를, 누구의 기분이나 생각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글을 쓰고 있고(쓰려 하고) 또 그것이 충분히 공유되기를 바라는 덕분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계정을 '팔로우'하고 피드를 둘러보다 보면 어느 순간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혹시나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라도 하게 될까 두렵다.

그럴 때면 정지우 작가의 글을 떠올린다. 그는 작금을 "모두가 작가가 되어 가는 시대"라고 썼는데 그 말이 참 좋았다. "모든 사람이 서로의 작가이자 독자가 되어 주는 시대야말로 그렇지 않은 시대보다 더 인간다운 시대"라고 덧붙인 말에선 어떤 풍경 하나가 그려지기도 했다. 말과 글로 촘촘하게 짜인, 부딪혀도 다치지 않을 만큼 유연하고 넓은 울타리가 세워진 들판. 그곳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작가이자 독자인 셈이라니, 가슴이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p.25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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