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일기만큼 펼치기 두려운 장르가 또 있을까. 언젠가 다시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일기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때문에 시간이 흘러 우연히 맞닥뜨리게 되는 일기들은 분명 내가 쓴 것인데도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용기를 내 마주한 일기들은 지루하고 진부하게만 느껴지는 오늘의 나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힌트가 되었다. 추억하기에 좋고 나쁨과는 별개로, 하나같이 현재에 충실했던 기록들은 내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얼마나 고유한 나인지를 다시금 확인하게 해 준다.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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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감정일수록 더 잘 감춰지고 쉽게 잊힌다. 매일 처리해야 하는 일이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 안에 작은 요동들은 그다지 중요한 게 못 되니까. 나에게 무심해질 것 같을 때, 어느 소설가의 글을 떠올린다. "우리가 우리를 알아주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오늘 밤에도 일기를 쓴다. 내일의 나를 더 잘 알아볼 수 있도록.

(p.19-20)

1919년의 울프처럼 "일기라는 것이 도달할지도 모를 희미한 형태의 그림자"를 생각해 본다. 눈이 빠지도록 일기를 읽었건만 해답은 의외의 곳에서 발견됐다. 10월의 어느 가을, 케임브리지 강연에서 울프는 이렇게 말했다.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재치를 번뜩일 필요도 없지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할 필요도 없고요."

(p.181-182)

문보영 시인의 산문집 《사랑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을 읽으면서 책 여백에다 "일기는 시간을 건너게 한다"라는 문장을 따라 적는다는 게 그만 "시간을 건네게 한다"라고 잘못 써 버렸다. 이것 또한 그럴듯해 보였다. 과연 그동안의 일기 쓰기란 미래의 나에게 지금의 시간을 건네는 일이었던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읽는 책은 모두 미래의 책이라는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매일의 일기도 하나같이 미래의 일기가 될 것이라면 나는 틀림없이 일기 부자가 돼 있겠지. 그날이 오면 중고서점에 되팔 수도 없는 일기를 몽땅 끌어안고 무해한 일기와 유해한 일기를 셈해 가며 일기 쓰기의 수지타산을 맞춰보리라.

(p.195-196)

요즘은 어디를 접속해도 누군가의 하루를, 누구의 기분이나 생각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글을 쓰고 있고(쓰려 하고) 또 그것이 충분히 공유되기를 바라는 덕분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계정을 '팔로우'하고 피드를 둘러보다 보면 어느 순간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혹시나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라도 하게 될까 두렵다.

그럴 때면 정지우 작가의 글을 떠올린다. 그는 작금을 "모두가 작가가 되어 가는 시대"라고 썼는데 그 말이 참 좋았다. "모든 사람이 서로의 작가이자 독자가 되어 주는 시대야말로 그렇지 않은 시대보다 더 인간다운 시대"라고 덧붙인 말에선 어떤 풍경 하나가 그려지기도 했다. 말과 글로 촘촘하게 짜인, 부딪혀도 다치지 않을 만큼 유연하고 넓은 울타리가 세워진 들판. 그곳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작가이자 독자인 셈이라니, 가슴이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p.25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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