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상깊게 읽었던 말이 있는데,

- 한 번 일어났던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만, 두 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라는 말이었다. 두번 일어난 일이라면, 원인이 좀 더 근본적인 데 있으니, 그 원인을 찾아서 제거함이 맞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어떤 일이 한 번 일어났을 때는 다른 사람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두 번 일어났을 때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공산이 다분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그리고 그런 한계는, 늘
결정적 순간에 드러나게 되고야 마는 것 같다.


얼마 전, 매우 실망스러운 일을 겪으면서.... 결심하게 된 것 중 하나가... 상대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인격과 비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단순한 인간인지라, 자꾸만 책을 읽는다, 고 하는 사람에게는 늘 뭔가 다를 것을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책을 읽는다는 건 알고 보면 참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는 일이다. 그저 유희나 즐거움을 위한 일일 수도 있고, 지적 허영을 채우기 위한 일일 수도 있고, 단순히 시간을 떼우기 위해서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드러내기 위해서일 수도 있는 것 같다. 나는 과연 책을 읽는다고 더 나은 인간이 되는가, 스스로 묻는다면 글쎄다. 요즘엔 그저 유희를 위해서만 읽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일단, 내게는 다른 매체들보다는 재밌으니까.


나이가 많아진다고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오늘의 내가 작년의 나보다, 재작년의 나보다 더 나은지는 모르겠지만, 스무살의 나보다 조금이나마 좀 낫지 싶은 걸 보면 나이를 먹으면서 좀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다가, 또 다시 생각해보면 여전히 철이 없고, 고쳐지지 않는 근본적 문제들이 보이고, 그런 것들을 보면, 내가 굳이 더 나은 인간이 되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제 친한 언니와 대화를 하다가 나왔던 얘기는....
"나이 먹는다고 인간이 나아진다면 어버이 연합 같은 게 있겠냐? 그분들은 어버이신데!!!"


격하게 공감하며, 다시한 번 스스로를 다잡는다. 상대가 책을 읽는 사람이라고 해서 더 나을 것을 기대하지도,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라 해서 철이 들었을 것을 기대하지도 말자고. 사람의 심성이란 그리 쉽게 변하는 게 아니구나, 라는 걸 느끼게 하는 순간이 너무도 많다.



그렇다면 인간은 변하지 않는 존재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결국은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보는 일이 중요하겠지. 타인의 위로나, 심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말에만 귀를 기울이며, 자기만족적 자아성찰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며 스스로도 인정할 수 없는, 그러나 본인은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존재에 한계에 부딪치면 바로 타인을 탓하면서,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적절히 성찰하며, 더 나은 인간이 되었다고 자위하는 것이 아닌, 그 내밀하고 혹독한 목소리를 듣는 것. 받아들이는 것.


결국 그 결정적 순간에 무엇이 보이게 되는가, 그것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는지가, 그 사람의 전부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스스로에게 관대해지지도 말아야겠다. 나는 나 자신에게 성실할 의무가 있으니까. 나도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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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9-07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을 왜 빨리 먹었어요? 천천히 먹지. 난 샌드위치 따위로 먹었더니 지금 몹시 화가나요.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겠어요. (응?)

그러게요. 이상해요. 왜 책을 좀 읽는다, 고 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기대같은걸 하게 될까요? 그런 편견은 대체 왜 생길까요? 그렇지 않다는걸 내 자신만 들여다봐도 아는데 말예요. 이 페이퍼를 읽으니 저도 얼마전에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했던 게 떠올라요. 무슨 드라마였지..뭐였더라..아, 그 드라마는 생각이 안나는데요, 드라마안에서 누군가가 무슨 잘못을 한거에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당연히 뭐라고 했겠죠. 이사람도 저사람도 다 뭐라고 하니까 그 잘못을 한 사람이

왜 나한테만 그래!!

라고 버럭하더라구요. 그런데 전 그걸 보면서 꽤 놀랐어요. 일단 저는 그런말을 들었다면 그 순간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정말 잘못한걸까? 하는 생각을 하는게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모두가 잘못했다고 하는데도 왜 나한테 그러느냐고 하는걸 보니, 저 사람은 계속 잘못을 저지를 수 밖에 없겠구나 싶더라구요. 반대로 그런 생각도 했어요. 저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윽박지르니 그걸 드러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잘못을 하고 살고 있어요. 그런것들이 켜켜이 쌓이고 있어요. 어제도 오늘도 나는 오늘 내가 한 이 행위가 잘못된 건 아닐까 자꾸만 생각해요. 그게 그 다음의 시간에 어떤 가르침으로 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과거에서 뭔가 배우는 어른이고 싶어요. 웬디양님이 처음에 언급한것처럼 뭔가 내게 같은 문제가 또 일어났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었더니 뭔가 배고픈 글이 나오네요. ㅎㅎ



덧. 그런데 웬디양님의 페이퍼가 평상시 답지 않게 뭔가 손에 잡히지 않을 듯 아련하네요. 명쾌하지 못한, 그런 분위기랄까요.

웽스북스 2011-09-07 13:09   좋아요 0 | URL
나이를 먹어서 인간이 비겁해지나봅니다. 나아가지는 못할망정 퇴화하지는 말아야할텐데...

다락방 2011-09-07 13:11   좋아요 0 | URL
앗. 내가 던진 비난의 화살을 그대로 맞았군요!! 뭔가 미안해지네요.

웽스북스 2011-09-07 13:12   좋아요 0 | URL
비겁한 변명까지 차마 할수가 없어서요. ㅎㅎ

비로그인 2011-09-07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고두고 생각해봐야겠어요, 저도.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는 건지... 제자리 걸음 하면서 점점 앞으로 가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는 건지... 생각하게 만드는 글, 고마워요 웬디양님.

웽스북스 2011-09-07 13:10   좋아요 0 | URL
아이고. 수다쟁이님이 고마워하는 것만으로도 저의 점심시간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싶어요 :) 고마워요 수다쟁이님!

2011-09-07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11-09-07 21:5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사실 기대한 내 죄일수도 ㅜㅜ

개인주의 2011-09-07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많이 보니까=공부 많이 했으니까=연세 많으시니까.=책임 있는 직책에 있으니까
알면서도 사람 헷갈리게 만들죠..;;;

웽스북스 2011-09-07 21:51   좋아요 0 | URL
중요한 건 제가 헷갈리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 일인 것 같아요.

다락방 2011-09-07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이 페이퍼에 쓰신 어버이 연합 보니까 저 생각나는게 또 있어요. ㅎㅎ


어느 미학자의 책표지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딸과 아버지의 대화. "아버지들은 자식들보다 아는 것이 더 많나요?"
"그럼, 그들은 인생을 더 많이 살았으니까."
"그런데 왜 증기기관은 와트의 아버지가 아니고 와트가 발명했어요?"
-허수경,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중에서

건조기후 2011-09-07 13:55   좋아요 0 | URL
그래서 와트 아들이 아니고 와트가 발명한 거잖아.
라고 말하면 되잖아요 아버지. ㅎㅎㅎ
(다락방님 태클걸어서 죄송해요 좋아서 그랬어요 하하하)

다락방 2011-09-07 13:59   좋아요 0 | URL
아 맞구나. 그러면 되네. 건조기후님 완전 천재 아니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웽스북스 2011-09-07 21:57   좋아요 0 | URL
이 와중에 와트의 아버지와 아들이 궁금해져서 네이버 백과사전 검색해봤어요. 아버지는 목수고, 아들은 와트의 사업을 물려받았더군요.

푸른신기루 2011-09-08 13:41   좋아요 0 | URL
아- 건조기후님 천잰데요..?? 감탄했어요ㅋㅋㅋ
신은 왜 나에게 저런 재치를 주지 않으신 거지..ㅠㅠㅋㅋㅋ

레와 2011-09-07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철수&박경철 샘들의 청춘콘서트에 갔을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저는 이 말이 참 많이 와닿아 여기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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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 아닌 지혜를 찾기 위한 독서를 해야한다.
지식의 축적은 메뉴얼(=스펙) 축적과 같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메뉴얼(=스펙)은 기계 설명서를 가리키는 말이지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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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1-09-07 22:00   좋아요 0 | URL
처음에 스펙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의 충격이 떠오르네요.
전 스펙보다 식스팩이 좋아요!

마녀고양이 2011-09-07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부분으로 매우 공감되는 글입니다.
좋은 날 되시기 바랍니다.

치니 2011-09-07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공감! 추천을 한 열 개 날렸음 좋겠어요.

웽스북스 2011-09-07 22:06   좋아요 0 | URL
이 글의 추천은 앞으로 암산해야겠네요. 현재 37개입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