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말했듯, 나는 지하철에서 사람 관찰하는 일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뭐, 요즘은 내가 누구 관찰하고 다닐 상황이 아니라, 굳이 관찰하지 않지만서도. 오늘은 정말 독특하고 재밌는 일을 겪어 본의아니게, 관찰이 되어, 글을 남기고 있는 상황.
그러니까, 나는 삼각지 역에서 탔다. 내 앞에는 중년을 향해 가는 여성 세분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세분 중에 한 분은 인상이 참 곱고 예쁜 게 꼭 깐따삐야님을 닮았는데, 알고보니 그 분의 직업도 선생님이었다. 조곤조곤 상대의 얘기에 공감하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스타일.
그런데, 사당역 즈음에서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등장했다. 새로 등장한 아저씨라면 어머, 안녕하세요, 부터 시작했어야 했는데, 이 아저씨 너무 자연스럽게 등장해 대화에 끼어든다.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 나는 뭐 별로 신경쓰지 않고 읽던 책을 계속 읽고 있었다. 아저씨는 세명중 깐따삐야님을 닮은 고운 여선생님과 아는 사이였다. 무슨 인터넷 공부 모임 같은 데서 꽤 예전에 알던 사이인 것 같았고, 그리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다. 세 여자분은 계속 하던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 아저씨 자꾸만 그 여선생님께 말을 건다. 000선생님 아세요? 일산에서 선생님 하시는데... 뭐 이런 걸 한 다섯번쯤 반복하다보니, 친절한 여선생님은 웃으며, 선생님들은 전국에 십만명 정도 되세요. 전혀 모르죠. 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대화를 좀 하다보니 여선생님은 내가 나온 고등학교의 국어 선생님을 하고 계신 분. (순간 나는 어머, 저 거기 졸업생이에요,라고 말하며 대화에 끼어드는 시트콤스러운 상상을 했다. 물론 절대 실현했을 리 없다) 그 아저씨는 본인이 그 여선생님과 함께 가입되어 있는 카페에 매일 유머를 올리는데 조회가 3 정도밖에 안된다며 읽고 댓글좀 달아달라는 시덥지않은 이야기를 하다가 인덕원 역에서 내린다. 내리려던 아저씨가 여선생님의 손에 무언가를 안겨주더니 씨익 웃으며 간다. 죽염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당황스러운데, 진짜 재밌는 건 여기서 시작. 이제 여자분 세분 대화 시작이다. 이건 아마도 내가 타기 전 상황에 대한 이야기인듯.
와. 난 또 그냥 슥 가시길래 그냥 다른데로 가시나보다 했지.
그러게 슬그머니 다시 나타날 줄은 몰랐네. 끝까지 갔는데 아는 사람이 없었나보지.
여자분들의 대화를 종합해보니, 이 아저씨는 내가 타기 전에 이미 여자분들께 인사를 하고 다른 아는 사람이 있는가 찾아보겠다며 옆칸으로 유유히 가셨던 분이다. 그러니까, 지하철을 타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아는 사람이 있나 없나를 한번 찾아보고, 아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대화를 걸면서 집까지 가는 아저씨였던 것이다.
사실 지하철에서 아는 사람이 함께 타고 있을 확률은 매우 높다. 다만 지하철의 칸이 분리되어 있고, 같은 칸에 타고 있어도 굳이 둘러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건, 내렸을 때 여러 번 아는 사람을 만나 반가워하면서, 우리가 같은 칸에 타고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사실 만날 확률이 만나지 못할 확률보다 희박하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충분히 실감한 바 있다. 한 번은 대학 후배와 두 번이나 같은 칸 한번은 바로 옆옆 자리, 한번은 바로 맞은편 자리에 오면서도 거의 내릴 때까지 서로 알아보지 못하다가 뒤늦게서야 반가워한 적이 있었다. 그 후배는 그 전에도 나를 몇번 본 적이 있다고 했었고, 모르긴 몰라도 그 후에도 우리는 여러 번 한 지하철을 탔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번도 지하철 첫칸에서 끝 칸까지,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지를 찾아봐야겠다, 라는 시도는 해본 적도 없고, 할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데, 누군가는 지하철을 타면 본인이 아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훑어보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그리고 그 결과 이렇게 희박하나마 인연이 닿았던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며 오는 일을 일삼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참 재미있는 일이다. 모르긴 몰라도, 정말 이렇게 훑어보며 다니다 보면, 세번에 한 번 쯤은 아는 사람을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물론 아는 사람을 만나도 가급적 모르는 척 하면서 오고 싶은 심정이다보니, 실행에 옮길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