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야 레핀 -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영혼
일리야 레핀,I. A. 브로드스키 지음, 이현숙 옮김 / 써네스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1.
눈과 피의나라 러시아미술을 보고난 후 나는 언젠가 반드시 러시아에 직접가서
레핀의 그림들 앞에서 넋을 잃고 말겠다고 결심을 했었다. 
아직 유효하다. 다만 러시아는 멀고 갈증을 다실 책을 본다.


2.
화가들의 자화상을 좋아한다. 
책의 도입부에 레핀의 자화상이 있다.
극적인 화면, 생생한 표정이 담긴 얼굴로 한 사람의 생애를 포착하는 레핀이 
스스로 그린 자기 얼굴
세련된 신사의 얼굴인데 외롭고 지친듯한 눈빛이 나를 본다.
사는게 뭔지 아느냐고 묻는다.
예민하고 고집센 얼굴, 영혼을 꿰뚫어보는 무심한 눈빛이다.


3.
레핀은 열다섯살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배웠다.
열여덟에 이콘화가가 되었고
열아홉에 황립예술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해 단돈 15루블을 들고 상크페테르부르크에 입성한다. 

대한민국은 미대에 가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배우려면
열아홉살까지 국영수를 암기해야 한다.
그림은 학원에가서 정해진 시험을 준비하며 그릴뿐이고 
가난한집 아이들은 일찍 포기한다.

오직 그림에 대한 열정과 실력만으로 입학시키는 예술학교가 있으면 왜 안될까.


4.
책의 판형(그림책은 큰것이 좋다), 종이재질, 시원스럽게 배치된 그림과 글씨 다좋은대
본문중에 사람이름, 작품이름을 중심으로 단어들이 강조되어 굵은 글자로 튀어나온다.
너무많이, 읽는걸 방해해.
왜 이런짓을 했을까.
강조는 독자들이 알아서 하는거지.
지나친 친절은 강요고 감시다. 불쾌해.


5.
자포로쥐에 카자크들에 대한 에바르니츠키의 서술

언젠가 여기에 삶이 우글거렸다. 삶이! 모든 평원에, 모든 방탕함속에 삶이 있었다. 반두라가 연주되고 노래 소리가 울려퍼졌다. 열정적인 댄서는 회오리바람처럼 돌았다. 먼지 기둥이 피어오르고 대기가 신음하고 땅이 울렸다.
러시아 예술가들은 러시아스러운 것으로 카자크를 꼽고서 아끼고 사랑한다. 노골적으로.

레핀의 작품이야기라는 장에서는 레핀의 대작들에대한 제작과정을 소개하는데
마지막에 그려진 대작의 그림 뿐 아니라 그것을 그리기 위한 그많은 스케치들까지
그것으로 아름답다. 모두.  
 

6.
레핀의 편지들은 당대의 미술과 관련한 쟁점에 대한 레핀의 판단이 드러난다.
솔직하고 고집세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판단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다.

그의 편지를 보면 그는 다른 사람의 그림뿐 아니라 거리의 사람들, 건물들
도시의 분위기와 하늘색 배경까지 모든것에 감동을 잘하는 사람이구나!

그의 편지들은 육성으로 레핀이 누구인지 보여준다.
감동잘하고 흥분잘하고 세상의 이것저것에 이깜없이 감탄한다.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보며 그린사람의 마음을 더불어 읽는
낭만적인 공화주의자.
레핀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가 X에게 -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A가 X에게 보내는 편지만  보여주는것은, X가 A에게 보낸 편지를 보여주지 않는 것은
이 그리움을 한쪽만 보여줘도 충분하기 때문인가.

이중종신형이라니 이를 어쩌면 좋아.
아이다는 일기를 쓰듯이 과거의 회상과 오늘의 일상과 동네사람들의 변화
그리고 동지들의 근황을 말한다.


2.
아이다는 "아침 밥맛은 어땠어요?" 라고 남편에게 물어보는 아내처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경비대에 잡혀 살해당한 옆집여자의 애인,총에 맞은 아이
경찰들이 들이닥쳐 사람들을 한쪽으로 몰며 협박한 얘길한다.
그것이 이렇게 일상적인 일이다.
그녀와 그녀주변의 사람들이 살아내는 하루하루가 단단한 저항의 일상들이라는 것을
그렇게 잘 살아가고 있다고 사라피나에게 말한다.
고통과 슬픔과 기쁨과 즐거움은 빼고 그렇게 희망과 사랑을 차분하고 의연하게 말한다.
행간에서 흐르던 눈물이 마지막 편지 묶음에서 참지못하고 울어버린다.

나의 모든 잘못과 결점중에 어떤게 가장 마음에 들어요?

내 인생에서 나의손은 당신을 웃게 해주고 싶었어요.
73호 감방으로 향한 아이다의 마음.

운동장에 들어설때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녀가 있는곳의 날씨는 어떨까 생각해본다. 마치 하늘이 그녀의 겨드랑이라도 되는 듯 냄새를 맡는다.
아이다가 보낸 편지 뒷면에 쓴 사비에르의 마음

그것을 존 버거는 어쩌면 이렇게 잘 알까.
권력에게 폭행당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무장한 병력을 맨몸으로 막겠다고 결심하며 서로 잡는 손들
우리를 겨냥한 총구를 보며 부르는 노래소리
혹시 내가 다른 동지들에게 폐가 될까봐 떨리는 그 악착같은 순간을
그는 어떻게 이렇게 잘 알까.

접히듯 내리는 어둠의 시간에는 어쩌면 희미하게 전해지는 손끝의 느낌 이외엔 아무것도 없는 것인지도 몰라요. 그리고 우리의 행동과.

느리게 천천히 읽는다.


3.
아이다와 73호 감방에 수감되어있던 사비에르에게 무슨일이 일어난걸까.
왜 73호 감방의 칸박이 위에 이 편지뭉치만 남았을까.
이를 어쩌면 좋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점성술 살인사건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
1936년 벌어진 살인사건을 1979년 봄에 추리하면서 해결한다.
재밌는 설정이다.

작품은 1980년 발표되었다.
30년이 지난작품인데 촌스럽다는 느낌이 전혀없다.
시마다 소지의 데뷰작인데
나는 용와정살인사건의 개연성떨어지는 피칠갑을 먼저 보고 실망한탓에
시마다 소지를 미루어두고 있었던 관계로 유명세에 비하면 늦게 읽었다.
기울어진저택의 범죄는 미루지 말고 읽어봐야 겠다.


2.
어쩐지.
시마다 소지의 첫번째 도전장이 나오기 전에, 테이프로 붙인 천엔짜리 지폐가 등장한후
사건의 열쇄를 알았다.
내가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했는데 작품해설을 읽어보고 나서야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똑같은 트릭을 본적이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가물가물하지만, 재밌다.
트릭을 모방한 김전일때문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시마다 소지의 문장이 김전일처럼 극적이다.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 순간에 비장한 김전일 얼굴이 클로즈 업되면서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요렇게 왜치는데

소지의 도전장에도 그런 느낌이었다.
"짜잔, 이제 풀어보시지. 아직도 모르시나."
도전장을 읽으며 아무래도 미타라이는 소지가 스스로를 캐릭터로 해서 만든것이군
의심없이 분명 그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똑똑하고 잘난척잘 하는데다 결정적인 순간에 엉뚱해서 웃기고 나머지는 온통 어설픈 
결국 김전일은 트릭만 빚진것이 아니라 미타라이 캐릭터도 빚진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3.
재밌다.
550 페이지의 소설이 지루하지 않다.
트릭의 비밀만 극적인 것이 아니라 분위기도 잘 만든다.
이야기의 전개를 개연성있게 맞춰나가는데 서두르지않고 천천히 몰아가면서 고조시킨다.
거기에 이런저런 잔재미를 이리저리 배치하는것도 잊지 않았고
재밌다. 데뷰작이라니. 시마다 소지는 이 작품을 출판한후 신이 났겠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낮은 데로 임한 사진 - 나의 인생, 나의 사진
최민식 지음 / 눈빛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1.
사진찍으며 살아온 최민식의 자서전, 사진에 대한 강의
2010년 그의 리얼리즘론은 자칫 진부하고 뻔하다.
그런데 마음을 움직인다.
그가 자신의 말처럼 그렇게 정직하고 성실하고 뚝심있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애정을 갖고 사진을 찍으며 시대를 기록해서 남기는 일에 온힘을 다해
평생을 살아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말과 그의 한평생의 삶과 그의 사진이 모두 같아버리는 이 고집센 장인에게
촌스럽다고 말하는 것은 무례하다.

부귀영화 다 필요없고 가난한 자들의 삶에 정의가 있다고 그것을 기록해 남겨야 한다고
그렇게 평생을 살았다고 자부심을 갖고 말한다.
그리고 후학들에게 자신의 작품세계에 헌신하라고 말한다. 

해방후 지금까지 우리의 사진은 철저하게 민중과 유리되어 왔다. 즉 군사독재자들의 눈치만 보며 아름다운 사진에 치중하였다.
이런 문장들의 주장을 지지한다. 

도로디어 랭은 남을 찍은 인물사진은 곧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의 자화상이라고 했다. 
알듯 모를듯.


2.
일부러 찾아서 그의 사진들을 좀더 봐야겠다.
한삶을 온전히 몰두해서 온갖 신고를 격으며 기록해온 자에 대한 예의
보고, 느껴줘야지.

앞부분은 살아온것에대한 얘기이도 중간은 사진이고 뒷부분이 사진에 대한 강의이다.
그의 사진은......막막하다.
어떻게 살지 막막하다.

할말, 하고싶은 말을 책 전체를 통해 꾹꾹 눌러가며 거듭거듭 고지식하게 반복하는 그는
마치 수도하는 중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래식 중독 - 새것보다 짜릿한 한국 고전영화 이야기
조선희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조선희의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를 오래전에 본 기억이 난다.
음--, 조선희보다 한겨레신문과 씨네21이 더많이 보였었다.


2.
무난하게 잘쓴다.
특별히 튀는 문장으로 쓰려고 애쓰지 않아서 다행이고
문장 자체를 예쁘고 세련되게 쓰려는 강박이 없어 편안하다.

대한민국 마초사회에서 글을 쓸정도의 지식인 여자들은 몰해도 기를 쓰고 하는것이 습관이다.
안그러면 살아남을수 없다, 오죽하면 정글속의 하이에나가 되어야 한다고 기를 쓸까.
이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것 같다. ^^*
클래식 중독에서 보이는 진지하고 핵심을 찌르는 심미안은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조선희의 여유다.
성실하게 직관을 닦아온 결과인가.
그녀가 고전한국영화, 그 뒷골목과 후일담, 안밖을 열심히 공부했구나. 좋았겠다.

한국영상자료원장이라는 직업은 좋아보인다.
임기가 3년이라쟎은가. 그러니 더욱좋다.
아무리 좋아도 30년을 오래된 필름속에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이미 장인의 경지를 요구하는것이라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멀미나는 지루함이 먼저 압도하고 오히려
3년밖에 못있는다고 생각하니 귀한 필름들이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그런데 후일담을 보니 거기도 치열했군.
이런방식으로 할말을 다하는 조선희를 지지한다.


3.  
그녀가 한국영화를 보고 읽는 방식에 동의한다.
미학적의미의 영화로만 읽지않고, 감독 한사람의 작품으로만 소화하지도 않는다.
사회적인 맥락과 감독의 특성과 고민, 배우들의 색, 배경음악......
무엇하나 놓치지 않고 영화를 보는 그녀의 눈빛에 애정이 깊다.
한국영화가 조선희를 통해 솔직하게 자기성찰을 한다.

한국영화 그 자체에 대한 해석과 사색으로 적절하다.
그녀가 선택한 감독과 그에 대한 해석에 동의하는데
특히 장선우편이 좋았다.
꽃잎을 보며 이 고문같은 영화를 다만 견디며 봐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거짓말과 나쁜영화를 보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거든

이만희 감독 이야길 하며 만추의 필름이 어딘가에 남아있다면 북한쪽일 거라는 문장을 읽으며
웃다가 문득 서글프다.
이런식의 비극과 희극사이에서 이만희 감독이 죽었거든

독재시절 한국예술영화윤리위원회와 문화공보부의 검열내용이 실려있다.
격하지 않고 그저 그랬다고 검열을 체크한 자료들을 그대로 실어놓았다.
씬마다, 대사하나하나, 배경음악, 제목, 스토리 모두다 꼬투리잡아 시비건다.
상상력을 검열하는수준이 한심하다.
난쏘공의 이원세감독은 1985년 여왕벌의 반미시비이후 영화감독 그만두고 미국으로 이민가버린다.  
그의 답답함이 이해된다.
독재국가에 복무하는 검열관들이 가위질한후
상상력을 통제하고 남은것은 권태를 이기지 못하는 뻔하고 뻔한 결과의 통속물뿐이니
누군들 그런 영화를 즐겨볼까.
80년대만해도 한국영화는 돈주고는 절대 안보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국가권력의 검열은 많이 줄었지만(아직 있다오)
오히려 상상력은 자본이 제한하지 않는가.
헐리우드의 물량공세, 엄청난 제작비에 기죽어 블록버스터 '볼거리'를 봐야하는 시대에
상상력이란 곧 자본이 아닌가.
요즘은 부쩍 이런 생각이든다.


4.
씨네 21세대라 그런가 십년도 더 전에 읽은 영화에 대해 알고싶은 두세가지것들 이후에
가장 내 입맛에 맞는 영화책이다.
어렵지 않게 세상을 보는 창으로의 영화 읽기

이제 3년 임기의 한국영상자료원장 임기를 끝내며  한국영화에 사랑고백을 하고난 그녀에게
헤밍웨이처럼 기자의 문장으로 불후의 소설을 쓰시라고
응원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