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 걸작선 - <오이디푸스 왕> 외 3대 비극작가 대표선집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이스퀼로스 외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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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래간만에 천병희의 번역을 보았다. 역시 안정된 문체, 맥락을 밝히는 번역이 좋다. 


아가멤논의 작가는 아이스퀼로스, 기원전 525년 태어난 사람이고 그리스 비극의 창시자로 꼽힌다네. 

트로이로 처들어 가려고 그리스 군대를 모아 아울리스 항에 집결했는대 맞바람이 불어 항해가 불가능한 상태 

사람들을 하릴없이 빈둥거리게 하고 

굶주림에 시달리게 하고 주위를 배회하게 하네

배와 밧줄을 상하게 하니 

점을 친다. 

예언자들 말이 아르테미스가 폭풍을 일으키고 있다하니, 그녀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딸을 제물로 바친다. 

마침내 트로이로 출격 후 10년후 승리하고 돌아오지만 

아내 클뤼타이메스트라가 딸릐 복수로 아가멤논을 죽인다는 이야기


일이라드를 보면 아가멤논은 정치적 술수에 능한 권력지향적 인간이다.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를 좋아하고, 그것을 과시하는 것도 좋아하는 탐욕적인 인간으로 보여 

아킬레우스가 엄청 싫어하고 보기만 하면 다투던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아가멤논 왕의 이야기는 관심도 없었거든, 잘먹고 잘살았을 줄 알았지.

그리스 비극의 원조가 되어 있을 줄이야. 

전쟁을 위해 딸을 제물로 바치니까 그렇지. ㅠㅜ


그리하여 그가 한번 운명의 멍에를 목에 매니

그의 마음의 바람도 방향이 바뀌어 불경하고

불손하고, 부정하게 되었다네. 이때부터 그는

마음이 변해 무슨 일이든 꺼리지 않게 되었다네

치욕을 꾀하는 미망은 사람의 마음을 대담하게

만드는 법......

딸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정말 운명의 멍에를 목에 매는 것이다. 

다른 복수가 있기 이전에 이미 그의 마음이 변해 불경하고, 불손하다, 심지어 무슨일이든 꺼리지 않게 된다. 

인간이 얼굴을 잃은 것이다. 

2500년전 비극이 여전히, 흥미롭다.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은 여기서 끝나지만, 뒤에보면 

아이스퀼로스가 죽은 다음 세대에 태어난 에우리피데스는 제물로 바쳐진 딸 이피게네이아를 쓴다. 

딸을 제물로 바친 아가멤논은 아내 클뤼타이메스트라가 죽이고, 

아빠의 복수를 위해 엄마 클뤼타이메스트라는 아들 오레스테스가 죽인다. 그리고 복수의 여신들에게 쫒겨 

아르테미스에 의해 구사일생 살아난 죽은줄 알았던 누이 이피게네이아를 만나 함께 탈출한다. 

이런 흐름이 더욱 흥미롭다.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를 쓰고, 일리아스에 영감을 받아 아이스퀼로스가 아가멤논을 쓰고 

아이스퀼로스에게 영감을 받아 에우리피데스가 이피게네이아를 쓴다. 

여러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조각보처럼 

동일한 기반위에 서로 영향과 영감을 주며 인간의 희노애락, 삶과 죽음, 존속살인과 운명에 대해 

인간의 감성 가장 밑에 있는 이야기의 원형을 그리스 인들이 모두 힘을 합해 기록하고 열광하며 즐긴 것 처럼 느껴진다. 


캇산드라는 프리아모스왕의 딸로, 아폴로 신에게서 예언의 능력을 부여받았으나 신의 구애를 거절한 까닭에 그녀가 하는 예언은 아무도 믿지 않는 벌을 받았다. 

앞날이 보이는 능력이 뛰어난들, 아무도 믿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돌아가는 수레바퀴를 막을 수 없다면, 막는 시늉도 못한다면 

미리 알아버린 비극의 고통과 슬픔을 더 빨리 알아, 더 많이 슬퍼야 하다니. 

차라리 모르는게 낫다. 없느니만 못한 능력이다. 

비극적인 아가멤논 집안으로 끌려온 캇산드라의 운명도 비극이다. 

주연은 아니지만 캇산드라 같은 캐릭터 또한 인간 감성의 근원을 탐색하는 힘이 있다. 



2.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참 끝내주는 상상력이야. 

프로메테우스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사나이. 불이란 참 적절한 상징이다. 

어둠을 밝힐 뿐 아니라, 야만의 세계에서 문명의 세계로 진화가 가능한 도구가 불이다. 

신화의 세계에서 역사의 세계로.

불을 인간에게 전해준다는 것은 지혜와 지식의 도구를 준것이지만 동시에 신들의 세계에 막을 내리는 도구를 준 셈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이성이면서 반항과 저항의 상징이기도 하다. 

감히 제우스에게 반항한 자이고, 그 결과 바위에 묶여 날마다 독수리에게 심장을 먹이로 주어야 한다. 

모든 저항하는 자의 운명에 대한 예언으로 보인다. 



3. 

오이디푸스일가의 비극은 정말 비극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는다. 

자신이 죽인 사람이 아버지이고, 아내가 어머니인줄 안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되고 

아들들은 싸워 서로 죽여 한날한시에 죽는다. 

오빠의 장례를 치뤄주다 잡힌 딸은 목을 매서 죽는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에 일가의 비극이 전개돈다. 


존속살인, 그중에서도 아버지를 죽이는 것은 문학의 단골 소재다. 

햄릿도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이 소재다. 

그리스 고전이 인간 영혼의 심연을 들추어내는 통찰이 있다. 

오이디푸스 일가는 가족에 대해,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의 지혜를 탐하는 욕망과 저항에 대해 



4.

격렬한 분노가 구제할 길 없는 악이라는 것을 

지금 처음 안 것이 아니라 전부터 나는 잘 알고 있었소.

통치자들의 명령을 고분고분 참고 견딘다면 당신은 

이 나라와 이 집에서 살 수도 있을 텐데. 허튼소리를 

늘어놓다가 나라에서 추방되는 신세가 되었구려 

아이손을 사랑해서 그를 위해 가족을 배신하고 고향을 떠나 이국땅에서 사는 메데이아

무엇보다 아이손이 불가능한 시험을 통과하고 살아남은 것은 모두 메데이아의 도움 때문인대 

이제와서 메에이아에게 말한마디없이 코린토스의 공주와 결혼을 한다니 

분노한 메데이아에게 코린토스의 왕은 추방령을 내리고 

아이손이 찾아와 메데이아를 약올린다. 왜 화를 내냐고. 화내다 쫒겨나게 되었으니 꼴좋다고. 

어처구니가 없는 이 장면 

지는 배신을 해놓고, 그녀는 화도 못내냐. 

메에이아와 아이손이 싸우는 이 장면은 인류역사에서 오래된 부부싸움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이유가 모두 자식들을 위해서라는 저 뻔뻔함, 

가만히 있으면 평생 편안하게 살수 있게 해줄수 있다는 저 모자람  

마지막까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는 저 오만방자함 

닥치고 가만있으면 잘 살게 해줄텐대, 왜 바보처럼 분노하냐는 아이손에게 


고통만 안겨줄 뿐인 행복한 생활과 

미음을 갉아먹는 부는 내게 필요없어요. 

복수하는 그녀는 얼마나 영리하고 대담한지 

물론 그녀들은 그 똑똑함으로 악녀라고 불리지만 


실컷 조롱하시구려! 당신에게는 피난처가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의지가지 없이 이 나라를 떠나야 해요.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아이손처럼 뻔뻔하고 메에이아 처럼 불쌍한 처지가 되었던가. 


분을 삭이시오. 그래야 당신이 덕을 보게 될 것이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이런 황당한 말을 강요받고 감옥에 갇힌듯이 답답했을까. 

끝까지 사과 하지 않고, 참으라고 한다. 

너는 여자고 힘이 없으니, 내가 뭔짓을 해도 참을 수 밖에 없는 처지라는 거지. 


한 헬라스 남자의 감언이설을 믿고 선조들의 집을 

떠났을때 나는 이미 실수했던 거예요. 

모든 여자에게 결혼이란 이런 실수였다. 선조들의 집을 떠나 언제든 배신할 준비가된 남편을 따라 이방으로 가는것. 

그리고 쫒겨나지 않기 위해 분을 삭이고,늙고, 병들어 죽는것. 

그리하여 메데이아의 복수는 시원하고 후련하다. 

그래도 어떻게 자식을 죽이냐고? 현실에서 못하니 연극에서라도 죽일밖에. 


2000년동안 변함없는 인간의 삶을 본다. 그리스 비극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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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17-07-12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하네요. 읽어도 읽을때 그때 뿐 이야기가 하도 헷갈려서 항상 이게 저거같고 저게 이거였나 하던 이야기의 네비게이션 역할을 해 주셨네요.그런데 문제는 좀 지나면 또 헷갈릴것 같단 말이죠.ㅎㅎ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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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정신나간 생각과 의기투합 할 수 있는가? 심지어 죽일 의무가 있다는 생각까지 하다니


읽기 시작하면 중단할 수 없다. 

읽는 것을 중단하는 것은 전쟁에서 살아남아 여전히 전쟁을 살고 있는 그녀들을 모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읽고 기억하라고.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 무엇인지. 


전쟁이 끝나고 나는 몇년 동안 피냄새에 시달렸어. 정말 지긋지긋하게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지. 빨래를 하려고 해도 피냄새가 풍기고 식사를 준비하려고 해도 또다시 그 냄새고, 누가 빨간색 블라우스를 선물해 줬어. 당시는 천이 귀할때라 블라우스는 참 값비싼 선물이었거든. 그런데도 나느 그 옷을 한번도 입지 않았어. 빨간색이라서 그래. 나는 이제 빨간색이라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끔찍해.

호메로스 이후로 남성이 기록한 인류의 모든 전쟁이야기는 영웅서사 였다. 

전쟁의 잔인함과 죽음, 기르고 고통은 노래하지 않는다. 전리품을 나누고 또 다른 전쟁을 계획하며. 


여자가 남기면 전쟁의 이야기도 이렇게 다르다. 그런데, 왜 여자가 남기면 다를까. 

왜 남성들은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함과, 두려움과, 이와 더러움과 피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걸까. 

그동안 기록된 전쟁이야기는 남자의 이야기 일뿐 아니라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누가 승리로 이끌었는지, 그것이 어떤 뛰어남이고, 어떤 운명적 조우인지, 왜 그 승리가 정당한지에 대한 기록들 이기때문에 

영웅서사시는 의도된 빛이 난다. 


"조국이 우리를 어떻게 맞아 줬을것 같아? 통곡하지 않고는 이 이여기를 할 수가 없어......40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뺨이 화끈거려. 남자들은 나 몰라라 입을 다물었고, 여자들은......여자들은 우리에게 소리 질렀어. '너희들이 거기서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아! 젊은 몸뚱이로 살살 꼬리나 치고......우리 남편들 한테 말이지. 이 더러운 전선의......군대의 암캐들아......' 우린느 정말 온갖 말로 모욕을 당했어.....알다시피 러시아어 어휘가 좀 많아야지....."

러시아 대조국전쟁에 참전해 남성과 똑같이 모든 임무를 수행한 여성들은 그녀들이 목숨바친 조국이 승리했음에도 

영웅이 되지 못하고 암캐가 되었다. 


"군대를 따라 베를린까지 다녀왔어......

 두개의 명예훈장과 메달들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지. 집에서 3일을 지내고 나흘째 되는 날 다들 자고 있는데, 이른 아침에 엄마가 나를 깨우더라고. '딸아 네 짐은 내가 싸 놨다. 집에서 나가주렴.....제발 떠나......너한텐 아직 어린 여동생이 둘이나 있잖아. 네 동생들을 누가 며느리로 데려가겠니? 네가 4년이나 전쟁터에서 남자들이랑 있었던 것을 온마을이 다 아는데......'

내 영혼을 위로할 생각은 마.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받은 포상에 대해서만 써......"


남성과 똑같이 목숨을 바치고 똑같이 훈장을 받았으나, 그녀 가슴의 훈장은 낙인이되어 숨겨야 했다. 

전쟁에서 돌아온 남성들이 승리의 영광을 나누는 사이, 그녀들은 재빨리 갈아입은 치마에 적응하고, 

언제나 변함없이 부엌에 있었던 것처럼 연기해야 했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선 그 부엌에서 그녀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건 사실이 아니오! 유럽의 반을 해방시킨 우리 병사들에 대한 중상모략이란 말이외다. 그건 우리 빨치산에 대한 모독이고 우리 민중의 영웅들에 대한 모독이오. 우리는 그따위 저급한 이야기는 필오하지 않소. 위대한 이야기가 필요하지. 승자의 이야기 말이오. 당신은 우리네 영웅들을 좋아하지 않는것 같군! 우리의 위대한 사상 역시 좋아하지 않고. 마르크스와 레닌의 위대한 사상말이오, 

1984년 이이야기를 출판하려고 했을때, 그것을 금지하려고 하는 검열관의 말이다. 

누가 '우리' 인가. 당신네 빨치산과 당신네 민중의 영웅은 여성들의 빨치산과 여성들의 영웅은 아니었던 거다. 


출판검열관이 두려운 것은 진실이다. 

위대한 소비에트 병사가 잔인하고 비겁할 때도 있었다는 것을, 때론 짐승처럼 학살도 하고 강간도 했다는 것을 

그런데, 전쟁은 그런것이다. 인간을 그렇게 잔인한 상황으로 내모는 것이다. 

그래서, 도대체 더많이 죽여 승리하는 것이 뭐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있는가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놈들의 땅을 밟았어......독일 땅에 들어서자마자 반들반들 닦인 길에 그만 입이 떡 벌어졌지. 농가들은 또 어찌나 큼직큼직 지었던지......집집마다 꽃 화분들에 화려한 커튼에, 창고에까지 커튼이 쳐져 있더라니까. 게다가 가는 집마다 하얀 식탁보가 깔려 있고, 값비싼 식기들, 사기 그릇들, 나는 거기서 세탁기를 처음 보았어......도무지 이해가 안되더라고. '이렇게 잘들 살면서 대체 왜 전쟁을 일으킨 거지?' 우리는 좁아터진 움막같은 곳에 살지만, 자기들은 하얀 식탁보까지 깔고 살면서......'


스탈린그라드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사람 피로 물들지 않은 땅이 단 1그램도 없을걸. 러시아인들과 독일인들이 흘린 피로 말이야. 

위대한 영웅들의 위대한 승리의 이야기게 가려진 사람들, 생존의 벼랑에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

그녀들이 오랫동안 잊기위해 애썼던 그러나 결코 잊을수 없었던 이야기를 하고, 스베틀라나는 듣는다. 


"......연금이 나왔어. 그 돈으로 얼마든지 나를 위해 살 수 있었어.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더라고. 나는 공산주의자니까......"


"......그중 정말 예쁜 아가씨가 있었는데, 임신을 했더라고. 일하던 곳의 주인이 성폭행을 하고 억지로 데리고 살았다는 거야. 그 아가씨는 걸어가면서 계속 눈물을 흘렸어. '독일놈의 씨를 지브로 데려갈 순 없어! 안 데려갈 거야!'라며 자기 배를 때렸지. 다른 아가씨들이 그녀를 달래고 설득했지만......결국 목을 맺지 뭐야......뱃 속에 든 독일놈의 씨와 함께......

바로 그때 귀를 기울였어야 했어. 잘 듣고 기록했어야 했다고. 그때 아무도 우리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은게 너무 안타까워. 그땐 너도나도 '승리'를 말하기 바빴지. 나머지 다른 것들은 다 하찮게 취급되고......"

독일에도 여자의 얼굴을 한 전쟁이 있을 것이다. 


러시아 여성들이 대조국전쟁에 참전해 임무를 다하고 있을때 

항일무장투쟁을 했던 조선 여성들의 이야기도 있을 터인데, 우리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그녀들은 죽어버렸구나. 

우리가 아무도 들어주지 않은 조선 여성들의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까. 

심지어 위안부할머니들은 그렇게 얘기를 해도, 국가가 못알아 먹는걸. 

미안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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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6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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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마스 만과 친해지기 쉽지 않았다. 

10년쯤 전에, 도서관에서 겁도없이 요셉과 그형제들을 빌려왔다가 몇차례 졸려서 실패하고 

마의산도 사놓고 지루해서 안읽은지 한참되었다. 


로쟈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생겨 읽었는대

아, 이번에는 굿. 만의 작품중 대중적인 소설인가봐. 어렵지도 지루하지도 않아 재밌게 읽었네. 



2. 

안토니 캐릭터 때문에 토마스만이 좋아졌다. 

물론 그의 성실한 문체도 좋지만, 안토니는 매우 현대적인 여성이다. 

보통 근대의 인물들을 쓰는 작가들도 유독 여성에게는 가혹한 경우가 많거든 


부르주아들이 새로운 시대이념을 만드는 대략 1800년대부터 1차세계 대전 전까지 

돈만흔 부자집 상인 계급의 여성이 그륀리히와 결혼하기전 휴양지에서 만난 젊고 매력적인 

그러나 계급이 다르고 가난한 토니와 풋사랑에 빠지는 경우 

1) 사랑에 올인해서 겁없이 집을 나와 현실을 깨달았을때는 가난함에 치어 온갖고생을 하거나

2) 집안의 추천으로 배경을 보고 결혼한 그륀리히는, 그가 사기꾼인것을 알아차린 후에도 그놈의 모성애 땜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덧이나, 멍애인듯이 짊어지고 배신당한 삶을 받아들여 버리는대 


그녀는 

1) 사랑에 올인하지 않을 만큼 계산을 하고  

2) 그륀리히의 파산을 알고 가난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후 미련없이 단 한순간도 그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선언하고 

딸과 함께 부모의 집으로 돌아와서도 여전히, 명랑하다. 


하. 참으로 적당한 영악함이 아닐수 없는대, 밉지 않다. 

운명적 사랑에 속지도 않고, 결혼의 숙명도 걷어차니, 시원하다. 

유독 여성에게만 가혹하게 순종적을 요구하거나 폭력적인 남편을 참아내며 지지리 궁상맞게 사는 것이 당연한 듯이 

그것이 여자의 일생이라는 스토리를 참 한심하고 답답하거든. 


안토니는 적당히 예쁘고, 쿨하고, 결정적으로 이기적이며, 너무 똑똑하거나 바보도 아니다. 

이런 현대적인 캐릭터가 1901년에 씌어지다니. 

2000년대 막장으로 달리는 대한민국 드라마의 여성캐릭터들보다 앞선다. 


아버지에게서 남편에게로 소유권이 옮겨지고, 이혼하고 돌아오니

죽은 아버지대신 오빠에게서 다시 남편에게로 이번에는 재혼이니 가격이 한참 후려쳐져서 그에 걸맞는 남자에게로 옮겨진다. 

이 시스템이 어떻게 온화하고 합리적이란 이름으로 시행되는지 매우 설득력 있는 

왜냐하면 시시콜콜 성실하게 리얼하니까.

돈 많아 세련된 합리적인 부르주아 가문의 깔끔한 계산으로 그녀의 결혼을 본다. 


그런대 안토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 

두번째 남편과 이혼하려는 안토니에게 토마스는 추문을 일으키지 말고 어른스럽게 행동하라고 요구한다. 

"토마스! 추문이라고? 내 인격에 먹칠을 당하는 치욕적인 일을 당했는데도 추문을 일으키지 말라고 명령하는 거야? 그게 오빠로서 할 말이야? 그래, 이런 질문을 내가 꼭 해야겠느냐 말이야! 체면과 사리분별이 좋은 것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거야. 톰. 나도 오빠만큼은 인생을 알고 있어. 추문을 두려워하는 곳에는 비겁함이 도사리고 있다는 거야! 바보 멍청이에 불과한 내가 이런 말을 해야 하다니. 내 참 기가 막혀서......"

집안의 명예를 위해 참고 살라는 오빠의 요구에 불같이 화내는 안토니 

부르조아 집안의 바보 멍청이가 이렇게 매력적일 수가. 

안토니의 저 분노는 지금도 유효하다. 

집안의 명예를 위해 살해되는 강간피해자처럼 

회사의 명예를 위해 덮어지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처럼 

토마스 만은 매우 현대적이고 지적인 작가다. 남자가 어떻게 이런걸 이렇게 잘 알았을까. 


"...... 이곳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남들한테 <극상>으로 보이고 싶은 우리 부덴브로크가 사람들이니까 남들이 안 보는 집안에서는 굴욕을 꾹 참고 지내자는 거야? 톰, 난 오빠한테 실망을 금할 수 없어! 난 하느님이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고 있어. 난 하나도 두렵지 않아! 율렌 묄렌도르프가 내 옆을 지나가면서 나한테 인사하지 않아도 좋아! 그리고 피피 부덴브로크가 목요일에 여기와서 고소해하며 <어쩜 벌써 두번째 아니야. 물론 두번 다 남자 책임이긴 하지만 말이야!> 하면서 호들갑을 떨어도 좋아. 난 그점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초연해......"

그녀는 오빠의 손을 잡고 말한다.

자기는 망했고, 끝장이고, 이제 부덴브로크가의 명예는 오로지 오빠의 어깨에 달렸다며 

두번이나 가문의 명예를 위해 결혼했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그녀는 톰에게 얹혀사는 신세가 되어 오빠를 위로한다. 


그전에는 없던 계급, 귀족도 아니고 농노도 아니고 

새롭게 세상을 지배하게될 부르주아 가문의 흥망성쇄 

지금도 여전히 부르주아 가문들에 의해, 그들을 위해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봉건적 굴레에서 벗어난 세련된 부르주아 계급의 흥망성쇄를, 우리도 이제 서사로 쓸 수 있을때가 된것 아닐까. 

대한민국의 삼성가니, 현대가니 재벌들 가문 잘 모르지만, 세련된 부르주아 계급이라는 느낌보다 

봉건적 귀족 흉내도 잘 못내서 촌스럽고 천박해 보여. 

많이 가졌으면서 더 가질려는 것에만 악착같아서, 시민사회의 기본의무인 세금내는 것 조차 회피하기만 하고 

그러면서 막강한 권한을 힘없는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수준이 떨어진다. 



3. 

토마스 만이 유서에 동성애자라고 밝힌것이 사후 20년 후에 공개되었다고, 책을 읽은 다음에 들었다. 

그렇구나. 

평생 사람들을 속이며 그의 영혼도 불안했구나. 

마의산은 어쩌면 다르게 보일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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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내일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박슬라 옮김 / 오픈하우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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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잭 리처 시리즈의 재미는 촘촘한 리얼함이다. 

보통 범죄소설에서 경찰이나 탐정에게는 사건이 찾아온다. 

경찰은 사고 접수후 피해자로 오고, 탐정에게는 살아있는 사람이 의뢰인으로 사건을 들고 온다. 

떠돌이 잭은 이 지점, 사건과 만나는 것이 늘 우연이다. 

정말 우연히 FBI수사관이 납치되는 현장에 있다가 함께 납치되거나 

기차타고 가다가 역 이름에 호기심이 생겨 내렸다가 살인공장을 소탕하고.... 뭐 이런식이다. 

이런 식의 우연이 그럴듯하게 느껴지도록, 빤한 거짓말에 속을 준비가 되어 있는 독자들이라 해도, 빤한 거짓말이 아닌듯이 

진짜로 실제 상황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어내는 솜씨가 리는 끝내준다. 

이번에도 그래. 


새벽 2시에 뉴욕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한가한 전철 안에서 승객중 한명이 테러리스트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더라는 설정이다. 

그러니까, 사실 보통 사람들에게 이게 말이 되냐고. 

그런대 리 차일드의 설정을 읽어보면, 정말 테러리스트들의 긴장을 읽어 메뉴얼처럼 알아내는 훈련이 있는것 같고 

정말 잭은 그런 훈련을 받은 실력있는 군인 출신인 듯이 느껴진다. 

그래서 테러리스트를 알아보는 메뉴얼이 도대체 뭘까, 하며 흥미롭게 읽게 된다. 

그 다음은 줄줄이 자연스럽다. 

그녀에게 잭이 다가가고, 잭이 또 어마어마한 사건을 만나는 과정이 어떤 우연도 없이 모두 납득할 만한 인과가 설명된다. 

거짓말 같은 상황을 사실처럼 느끼게 만드는 시시콜콜 리얼한 서술의 힘

잭 리처의 재미다. 



2. 

그것은 전에도 본 적이 있는 뉴스 보도 사진이었다. 1983년, 로널드 럼스펠드라는 미국 정치가가 바그다드에서 이라크의 독재자인 사담 후세인과 악수를 나누는 사진. 도널드 럼스펠드는 두 번이나 미국 국방장관을 역임했지만 이 사진을 찍었을 당시에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특사를 맡고 있었다. 그는 바그다드에 가서 사담의 엉덩이에 키스하고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미국과의 영원한 우호관계를 상징하는 의미로 금제 박차 한쌍을 선물했다. 그로부터 8년뒤 우리는 사담의 엉덩이를 걷어찼고, 15년 뒤에는 그 자식을 죽여 버렸다.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한다는 미국에 의해 악의축으로 낙인찍힌 사담 후세인이 사실은 미국이 키운 사람이라는 걸 

사담이 미국의 이해관계에 맞춰 석유를 퍼주기만 했으면 지금도 엉덩이에 키스하고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겠지. 

미국 사회에 대한 이런식의 냉소적이고 그러나 경쾌한 비평도 한번씩 시원하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석연치 않네.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잔인한 적으로 상정하는 소설은 의도가 의심스럽다. 

잔인하기로 따지만 미국이 가난한 국가에서 거둔 피가 압도적일걸 

그래도 그렇다 치고, 잔인한 테러리스트라고 치고 


스토리의 인과도 이번에는 떨어진다. 리 스럽지 않아. 

라일라는 아프가니스탄 최고 실력 수준의 살인병기인데 

겨우 사진 한장 없애자고, 그 사진이 뭔지는 모르지만, 이런방식의 무모한 작전을, 이렇게 바보같이.....

잔인한 테러리스트가 어설퍼지는 순간, 시시콜콜의 리얼함이 무너진다. 

미국 문화권 분들의 나르시즘이다. 

세상이 자기들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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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5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5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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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중국인 이야기 

처음 만나는 중국현대사, 격동의 세월을 살다간 다채로운 사람들,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는 재밌다. 


이번에는 무인 린뱌오로 시작한다. 

무관학교를 함께 다니고 항일전쟁의 전선에서 함께한 역전의 노장들이 무산계급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나라를 운영한다는 

이 전제가 중국의 현대사를 풍요롭게 한다. 

조선을 망하게 한 양반들이 친일파가 되어 무장투쟁하는 독립투사들을 고문하고 죽이고 

해방후 친미파로 이름만 바꾸며 정의를 조롱하고 인민을 짓밟으며 힘만 있으면 장땡이라는 천박한 정치철학을 일반화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는 부끄럽고 부러운 일이다. 


황푸군관학교 출신 린뱌오는 항일전쟁과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공이 가장크고 병사들에게 인기있는 장군이다. 

그러나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고 무산계급의 혁명을 위한 정부 수립후 그는 은둔한다. 

어쩌면 그의 마음을 알 것 같아. 

목숨걸고 싸우고, 전장에서 전장으로 몸을 옮기며 싸우는 일은 얼마나 피곤했겠어. 


린뱌오는 전쟁 시절 어느 구석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던 이론가들이 전면에 나서는 것을 경계했다. 

이런 전통은 중요하다고 생각해.

입으로만 항일투사인 사람들의 문제는 뻔뻔함이 아니라, 현실을 모른다는 거거든.  


국,공 양당은 너죽고 사잘자 식의 싸움을 멈춘 적이 없었다. 놀던 동네가 비슷하고 북벌과 항일전쟁을 위해 두차례 연합을 하다보니 뒷구멍으로 연락이 그치지 않았다. 

이런 재미가 있다. 

공인된 역사서에 나오지 않는 비하인드 스토리의 야사를 읽는 재미 

국민당 고관들 중에는 마오쩌뚱이나 저우언라이 등과 몰래서신을 주고받는 일이 허다했다. 공산당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월덕에 밝혀진 것도 많다. 묻힌 것은 더 많다. 워낙 비밀이 많고, 겉과 속이 같으면 3류취급하는 민족이다 보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왜 안그랬겠는가. 일제라는 동일한 적에 맞서 목숨바쳐 싸우기 위해 군사학교때 부터 여러전선에서 동지이다가 

이제 서로 다른 편이 되었다 한들, 함께 공부한 학교와 전우로의 시간이 단칼에 사라질 수는 없는 법 


덩톄메이는 본인만 몰랐을 뿐 타고난 유격전의 귀재였다. 전대원들에게 엄수할 사항을 주지시켰다. 

"항일 구국은 민중보호가 제일 중요하다. 지혜와 용기, 인자함과 신의를 존중하지 않는 무장 세력은 비적과 다를 게 없다. 주민을 불안하게 하거나 부녀자를  희롱하는 자는 적으로 취급한다."

유격전의 핵심은 숨어 있다가 신속하게 치고 빠지는 것. 

그러기 위해 인민의 지원이 핵심이다. 

숨어있을때와 빠질때, 인민의 바다에 숨어야 하거든. 


"밭에서 태양과 씨름하지 마라. 남는게 없다. 커서도 돼지를 키울 시간 있으면 책과 씨름해라. 공직자 할 생각은 하지도 마라. 일부를 제외하곤 전부 도둑놈들이다. 정치가도 마찬가지다. 평소 말은 번듯하게 잘하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때 책임감이 뭔지를 모르는 망종들이다. 옛사람의 글을 숭상하되 새로운 것을 배척하지 말고, 무를 중시하되 거칠어지지 않도록 노력해라."

마오커슈 아버지의 당부다. 

무를 중요시하되 거칠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라. 

중국사람들 말 참 잘 한다. 


중국 1세대 외교관으로 호남에 미녀들과 어울리고 외교적 지위가 분명했던 구웨이쥔은 특이하게 국,공 양덩의 지지를 받았다.

"50여년간 공직에 있으면서 일관된 원칙을 견지했다. 상부의 지시를 받거나 건의를 할 때마다, 국가에 무슨 이익이 있을지를 스스로 고민했다. 나는 평생 당파나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권력투쟁에 말려들다보면 국가의 이익을 생각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외교 문제를 처리할 때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정치적 득실이나 야심을 실현시키려 한다면, 담판은 파열되기 마련이다. 정치와 외교는 구분돼야 한다. 정치적 야심이 있는 사람은 외교관 자격이 없다. 정치가가 왹에 나서는 것도 위험하다."

일리있는 말이다. 

그러나 '국익'이란 또한 정치가 아니던가. 

한미FTA 협상을 하며 농업을 내주고, 미국이 기침하면 사드를 배치하는 외교를 하면서 모두 '국익'때문이라고 하더라. 

누구를 위한 국인인가,는 여전히 남는 문제다. 


강호에 영웅도 많고 호걸도 많구나!

부자집 딸로 태어나 구웨이쥔, 양광호, 황후이관들과 함께 시대를 풍미한 옌유윈이 109번째 생일날 장수의 비결을 말한다. 

"평생 보약 먹어 본 적 없고, 운동도 하지 않았다. 지난 일은 금세 까먹고, 오늘 일만 생각했다."

재밌는 사람들이다. 


이번편에는 6.25전쟁을 둘러싼 김일성과 마오쩌뚱, 스탈린의 밀당과 중국 인사들의 판단이 소개된다. 

볼수록 김일성 이 바보같은게 뭘믿고 겁도 없이 전쟁을 일으켜 사람들이 서로 죽이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여태 분단국가로 사는 비극을 우리에게 남겼나 싶다. 


중국을 읽으며 한국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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