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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미술의 고백 - 우리가 미술관에서 마주칠 현대 미술에 대한 다섯 답안
반이정 지음 / 월간미술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1.
이 책을 쓰면서 소박한 다짐이 두가지 있었다. 그게 뭔고 하니 현대 미술의 가장 최신 경향이 반영된 동시대 작품을 소개하자는 것과, 작품의 미학적 성과를 호들갑스럽게 상찬하여 독자를 기죽이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의 소박한 다짐에 고맙다.
반이정이 순서대로 선택하여 보여주는 현대미술이 재밌다.
관습과 권위를 뒤집는것, 패러디부터 사회비판적 예술, 거품을 허무는 예술, 미술관을 등진 옥외 예술 등이 목차순서다.
그의 시각으로 미술을 볼수 있어 즐거웠다.
순수하게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는 천재들이 아니라
과거를 불러내 현재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비판적 전복을 보여줘서 즐거웠다.
이런것.
동상은 권위적이고 불친절하며 뻣뻣한 자세를취한 명망가들로 제한됩니다. 더욱이 동상의 주체는 남성이 대다수입니다. 이런 전례에 비춰, 팔없고 다리 짧은 임산부여성 같은 소수자가 좌대에 오르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격입니다.
정말, 그렇구나. 이렇다는 걸 알면서도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채 지나치고 있었다.
'임신한 앨리스 래퍼'같은 작품이 있다는걸 알려줘서 고마워.
더 차분하게 미술을 알려주는 반이정을 반나고 싶다.
작품들을 선택하는 안목은 좋은데 너무 짧게 설명하니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직 젊은 현대 동시대 작가들의 참신한 작품들을 어렵지 않고 재치있게 소개했다.
반이정은 독자들이 왜 현대미술을 어려워하는지, 그 모호성을 잘알아 독자의 수준에 맞추어 친절하고 간략하게 서술한다.
여러가지가 고맙네.
반이정을 더 찾아 봐야겠다.
2.
현대미술을 소개하며 제목이 왜 새빨간 미술의 고백일까, 궁금했는데.
'새빨간' 이라는 말은 굳건한 전통의 레드컴플렉스에 빛나는 빨갱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고
저항, 반항, 회침, 소란, 선명한, 이런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보면 안다.
반이정이 보여주는 현대미술은 정말 볼수록 새빨갛다.
전복, 저항, 권위의 부정, 조롱.
그림을 통해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미술가들이 현대사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볼수있는건 매우 재밌는 일이다.
누구하나 만만한 사람이 없고, 모든 권위를 부정한다해도 진지하다.
미술의 역사를 보년 미술이 뭐냐고 끊임없이 묻는다. 현대미술도 그렇다.
미술이 뭐냐는 질문은 인간은 뭐냐는 질문, 우리가 누구냐는 질문과 닿아있다.
대체로 현대미술은 현실을 더 깊이 보려고 분투한다.
사물을 꿰뚫어 보는일, 아름다움도 부조리도 소외된 것에 대한 배려도.
모리무라 야스마사 이사람의 작품을 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사람이 많을 것이고
김학량의 부작란은 멋지다.
예술이란 고상한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아가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쉽게 즐길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시멘트 틈에난 들풀이 허허로운 난이되고, 김학량은 그 마른풀에 기댄다.
나두, 그렇게 기대고 싶어진다.
예술이란 삶을 돌아보는 여유를 말하는 것 같다. 그곳이 어디든 해석하고 즐기는 여유가 아닌지.
3.
미술 비평을 하다보면 난처한 순간이 있는데, 첫눈에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이 하필 대민 정서에 저축되는 불경한 소재를 다뤘을 때입니다...... 불특정 다수의 취향과 가치관을 지향하지 않는 현대 미술의 숙명은오래된 사회적 금기를 파괴하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아이셋(정확히는 마네킹 셋)을 목매단 이 불경한 설치물은 극단까지 간 경우이지요......
"무력한 아이들을 목매단 작품으로 무슨 재미냐!"며 노여움에 몸 떨지 마십시오.
저건
그저
아이들 모양의
마네킹 세 개일 뿐입니다.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상처는 어쩔 거냐" 고요?
만인의 마음에 위안과 안정을 기약하는 것은 더이상 현대 미술의 과제가 아닙니다.
만세!!!
동의한다. 이런 반이정의 현대미술이 참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