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 - 제주4·3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김금숙, 오멸 원작 / 서해문집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묵화로 보는 4.3 학살에 대한 이야기 

저 끔찍한 인간사냥과 죽임에 대한 결정을 누가 했는지, 왜 했는지 설명이 없다. 

한꺼번에 그때 그장소로 들어가서 

이유도 모르고 사람을 죽이는 군인들을 피해 아이들을 엎고, 안고 도망가서 

눈내리는 산속에서 몇달을 살다가 발각되어 죽은 사람들


붓터치가 시원하고 명징하다. 

제주도의 바람과 눈과 우직한 사람들을 수묵화로 그려낸다. 

영화 지슬을 보지 못했는데 

아마도 배경음악이 있고, 소리가 들리고, 컬러의 리얼한 화면으로 보면 더 생생하겠지. 

김금숙의 그림은 시처럼 그려진 그림이다. 


여전히 함부로 사람을 학살하는 국가권력을 용서할수 없을 뿐더러 

'빨갱이'라는 말을 앞세워 사람을 죽이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저 천박한 영혼들도 용서할 수 없다.


벌건 대낮에 자식들이 수장되어 떼죽음 당하는것을 보아야 했던 

세월호 유족들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요구를 

전문시위꾼으로 몰아붙이는 자들의 허랑하게 구멍난 영혼도 천박하다. 

사람의 죽음이 어쩌면 저렇게 가벼울 수 있는지 

1948년 제주도에서도 2014년 팽목항에서도 

누가 사람을 죽이는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경예술견문록 - 중국 현대미술을 탐하다
김도연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이주헌의 눈과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에 매혹된 후, 

소개된 러시아의 미술관과 그 미술관들에 배치된 그림과 그것을 소개해주는 이주헌의 속깊은 마음 모두에 매혹되어 

한동안 이주헌이 소개해주는 그림들을 보았다. 


어쩌면 중국의 현대미술도 러시아의 미술만큼이나 설레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일본에서 짧은 교환학생 생활을 하며 아시아 예술에 흥미를 갖게 된 나에게 중국 현대미술은 뿌리칠수 없는 매력을 가진 애인 같았다. 

김도연의 뿌리치지 못하는 애인, 중국현대미술을 본다. 


그저 큰 얼굴로, 웃는 입으로 우리에게 단편적으로 기억되는 중국 현대미술이 어떤 시간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는지 안다면 그 얼굴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책머리에 붙은 작자의말과 플롤로그를 읽으며 

김도연 문장의 장점은 솔직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점이다. 

늦깍이 어학연수를 하며 낯선 중국땅에서 설레이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고 

그렇지만 중국현대미술에 홀려 보낸 시간들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본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좋았다. 


거대하다. 파워풀하다. 자극적이다. 상상을 초월한다.

실로 격동의 세월 속에서 피어난 중국 현대미술은 지글지글 볶이는 중국 요리처럼 우리의 오감을 강렬하게 사로잡는다. 일본과 우리나라보다 반세이 이상 늦게 서양의 현대미술을 받아들인 중국은 단시간에 이를 소화하고 자기화했다. 억압받은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은듯 폭발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열대 우림의 나무들처럼 쑥쑥 자라났다. 

서사의 힘이 있는 러시아의 미술이 문학과 뗄수없는 영향을 주고받으며 극적으로 아름답더니 

줄국 또한 3천년전 제자백가 이후 수천년동안 인문학의 통찰의 전통이 깊은 나라다. 

그힘이 자유로운 인간중심의 서양미술을 만나 열대우림의 나무처럼 자란다니, 설레이네. ^^



2. 

중국의 현대 미술을 이끌어가는 화랑이 많이 있는 동네 이름이 '798'이다. 

황당했다. 

먼 마을 이름이 798이다냐. 

798은 나의 베이징 생활의 원점이었고, 늦은 오후 잠을 깨우는 중독성있는 커피였다. 

798이? 


군수용품을 제조하는 그래서 비밀스러운 공장이었단다. 그래서 이름도 798이다. 

평등하게사는  이상적인 세상, 사회주의의 꿈을 거쳐 

피비린내나는 문화혁명의 열정을 넘어 

마침내 자본에게 문을 여는 거대한 관료들의 나라 

중국의 현대미술을 이끌어가는 동네 이름으로 798만한 것도 없네, 싶다. 


굳이 화랑들을 일일이 소개하느라 책 절반의 지면을 소모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는 하다. 

내 욕심에는 그림과 작가를 더 많이 소개해주지. 

물론 798의 저 다양한 실험과 다양한 실패, 

그리고 다시 시도되는 새로운 방식의 화랑들이 그자체로 중국의 현대미술을 보여준달수도 있지만

나름 쟁쟁하고 모두 가치있는 중국현대미술을 이끌어가는 화랑들이겠으나 

내게는 모두 그만그만, 별다를것 없는 화랑들로 보였다. 



3. 

천원링의 홍색기억은 당혹스럽다. 

여러가지 몸짓과 표정의 발가벗은 붉은 사람들, 아이들 

붉은 색과 중국을 연결시키는 것은 매우 익숙하지만, 중국에 대한 붉은 기억이 천원링의 작품들로 하여 새로워졌다. 


팡리쥔 인물들의 표정도 극적이다. 

참 중국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고. 

어떻게 이런 표정을 이런방식으로 표현할수 있을까. 

팡리쥔의 얼굴은 그 자신의 얼굴이고 동시에 중국 현대인들의 시대의 얼굴이다.

그 얼굴들의 제목은 <1998 No.1> 이런식이다.

시대와 번호로 얼굴들에 이름을 붙인다.

여전히 마을이름이 798이었던 시대가 익명의 대표성을 번호로 부여하는 방식으로 남아있는것은 아닌지

 

페이지를 넘기며 작품들을 보면 

중국현대미술에 1989년의 천안문은 지울수없는 영향을 주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의 현대미술에 1980년 광주는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베이징대 역사학과 간부였던 아버지와 도서관 사서였던 엄마가 문화혁명시기 비판과 파괴의 대상의 되어 

각각 감옥과 집중교육 받으러 갔을대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쉬빙은 

파괴의 대상이던 아버지에게서 배운 붓글씨 실력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인정받는다. 


당시 중앙미술학원에서 소묘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수업 이외의 거의 모든 시간을 이가짜 글자 파는 일에 몰두했어요. 완전히 수공적인, 단순한 이 일이 굉장히 원시적인 만족을 주었죠. 인생의 핵심명제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에요.  바로 어떻게 시간을 써버리는냐 하는것이 능력이죠. 

아, 쉬빙. 저 문장 어디에도 없는 외롭다는 말이 들렸다.

시간을 붙들거나 유용하게 촘촘하게 메우려고 종종종종 걷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보내야 하고, 써버려야 하는 초등학교 5학년의 쉬빙이 어른이된 그의 얼굴에서 아직도 보이는 것 같아. 


중국의 현대미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이 파격이든 실험이든 소통이든 인내든 

물론 수많은 중국의 현대미술가들 중에 검증되고 성공을 거둔 미술가들을 소개해서 작품의 수준이 높은거야 당연지사라지만 

작가들의 인터뷰를 보며

서양의 현대미술가들, 예술가들의 그 독특한 자신감과 식상한 오만함이 안보여 좋았다.

중국의 현대미술가들은 수줍어하고 내성적이며 겸손하다.

상품화에 기대야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반대하지 않지만, 휘둘리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사람과 삶에 대해 성찰한다.

나는 이사람들의 무게가 좋다.


카메라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며 도전하는 표정의 젊음은 더 뒤로 가서야 나온다.

디즈니의 만화를 알고 문화혁명을 경험하지 않은 80년대에 태어난 청춘들

이 사람들은 앞선세대보다 훨씬 자유롭고 훨씬 서양예술가들의 표정에 닮아있다.

도전하는 젊음이야 늘 아름답고 빛나지만,

나는 이제 성찰하고 돌아보고 그리고 거장이 되어서도 수줍어하는 저 중견의 예술가들에 더 마음이 간다.


북경예술 반가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8세기의 맛 - 취향의 탄생과 혀끝의 인문학
안대회.이용철.정병설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안대회의 서문이 시작이라면 소래섭의 '창난젓깍두기와 테루아'는 총괄하며 마무리하는 글로 적절하다. 


산다는 것은 먹는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요설을 늘어 놓아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돼지도 먹어야 살고, 소크라테스도 먹어야 산다. 옛 속담에 이르기를, 사흘 굶으면 포도청의 담도 뛰어넘는다고 했다. 사흘 굶고도 담을 넘지 않는것이 도덕적이라면, 사흘 굶으면 담을 넘는 것이 인간적이다. 도덕도, 정치도, 경제도, 모두 먹는 것 다음이다. 1789년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프랑스 시민들은 입을 모아 소리쳤다. 

"우리에게 밥을 달라!" 


사는것과 먹는것에 대해 정확하게 표현한 글이다. 

맞다. 사는것과 먹는것은 동일해. 


사실 오래동안 인문학에서 먹는것은 천대받아 왔다. 

영혼을 밝히는 학문과 몸을 살찌게하는 음식은 비교대상이 되지 못했다. 

흔히 욕망에 충실한 자들은 돼지라고 표현되었고, 

먹는것에 연연하는것, 먹는것을 가치있게 생각하는것은 천박하다고 치부되기도 했다.  


저 문장에 돼지와 소크라테스가 괜히 나오는게 아니거든.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말은 

뭐랄까, 먹는것이 철학이라는 교양보다 훨씬 떨어지는 욕망으로만 폄하하는 문장으로 읽힌다. 

몸을 움직이는 것, 먹는것은 머리를 움직이는것 영혼보다 비천한 하층계급의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 더 많이 먹는것들이 인문학을 하고 철학을 하는 지배계급이었고 

늘 굶주리는 것이 비천한 하층계급이었다. 

애초에 철학이 배부른 돼지와 더 가까왔다는 말이다. 


사는것은 먹는것과 같다. 

도덕은 평등하게 나눠먹기 위함이고, 정치는 인민의 먹거리를 풍요롭게 하기 위함이며, 경제는 도덕과 정치를 위한 방편이다.

다른 무엇보다 먹는것에 온당한 대접을 해주어 좋은 책이다. 

먹는것을 잘 보면 삶이 보이고, 시대가 보이고, 사람이 보이는 법이다. 

인문학이 별거냐고. 

누군들 안먹고는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먹는 즐거움은 누구나 누릴수 있는 일상의 기쁨이다. 

맛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는 인문학자들이 동시대에 사는 것은 좋은 일이다.  


서문에서 밝힌 안대회의 야심을 지지하는 이유다.  

한국 18세기학회 회원들과 이 책을 함께 만들어가며 가장 공들인 부분은 독자들과의 교감이다......맛은 모두의 것이다. 우리 모두 먹는다. 그리고 맛이 그러하듯, 인문학 또한 우리 모두의 것이다. 이 책을 집필하고 엮으면서, 누구나 우리 이야기를 듣고 침을 꼴깍 삼치기를 바랬다. 그 맛깔난 이야기 속에서 동서양의 역사와 문화, 교류, 때로는 치밀하고 정교한 정치술, 그리고 인간 본연의 본능까지 성찰 할수 있게 안배하려 했다면 야심이 컷다 할까.


내 알라딘 서재에 가장 재미있게 본 책의 카테고리 제목은 '맛있는!'이다. 

책이 맛있고, 혹은 배부를 때가 있다. 책에 갈증날때도 있고, 물릴때도 있다. 

인문학을 그것도 계몽정신이 시대를 풍미하던 폭주하는 기관차의 시대, 18세기를 맛으로 말한다. 


안대회, 주경철, 정민을 신뢰한다. 

그들과 그들의 친구 학자들이 엮어내는 18세기의 인문학을 기대했고, 좋다. 



2. 

영국 1700년대에 진거리가 있었다. 

조금만 먹어도 금방 취하는 진이 사랑을 받아 대량생산되고 소비되었다. 

조금만 먹어도 금방 취하는 독한 술이, 

18세기 산업혁명시기 영국의 빈민가에서 먹고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환영받았다.


대한민국의 술소비가 세계 1위라던가. 

한국인이 사랑하는 소주 또한 독한 술이지.

맞다. 노동에 지치고 내일이 불안할수록, 사는것이 공평하지 못해 억울할수록 소주의 소비량 또한 늘어날 밖에.

독한 술이라도 먹어 술복다 독한 현실의 시름을 잠시라도 잊어야 사니까.


신자유주의 이름으로 공기업 민영화, 정리해고 합법화, 노동의 유연화, 비정규직화

이 모든것이 경제의 이름으로 시작된지 10년이 넘은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로 사는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소주라도 마셔서 너무너무 많이 마셔서 스스로의 영혼을 파괴한다.

온전한 정신에는 삶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다.


구한말 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이장할 때의 일이다. 지관이 3대에 걸쳐 군왕이 날 땅으로 지목한 터가 하필이면 고려 때 절인 가야사의 돌탑이 서 있던 자리였다. 대원군은 절에 불을 지르고, 우뚝 선 돌탑을 허문 뒤 그 자리에 아버지 묘를 이장했다. 

어처구니없다. 

그래서 대원군의 아들은 왕이 되었고, 손자가 다시 왕이 되었으나 

결국 왕족의 문만 닫은것이 아니라 국가를 통으로 일본에 바쳤다.

자자손손, 왕이 되고 싶은 욕심에 멀쩡한 절에 불을지르고 탑을 허물어, 지네 아버지 시신을 묻었으니

그 욕심으로 하는 정치란, 겨우 지네 일가족들 잘먹고 잘살기 위해 파괴를 일삼는 것이니 

저 따위것들이 권력을 쥐고 지만대로하니 나라가 안 망할수가 없지.

식민지가되고 되찾아 해방된 후에도 아무도 이씨의 조선으로 돌아가자, 왕을 도로 섬지자,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다. 

친일파든 친미파든, 그가 아무리 보수라도 감히 다시 왕국으로 돌아가자 주장하지 못했다. 


18세기의 맛은 근대의 맛이다. 

산업화하고 생산력이 발전하여 음식의 기호와 섭취하는 방식이 대중생산의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는 시기. 

영국의 노동자들은 진을 마셔 취했고, 조선의 지배계급은 정신못차리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루타르코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천병희가 번역하는 서양 원전들을 읽고 있다. 

그의 번역본을 다 읽지 못한채 죽으면 아까울 것 같아. 

안정감있고 담백한 번역은 이번에도 역시 좋다. 



2. 

내가 쓰려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전기이며, 한 인간의 미덕 또는 악덕이 언제나 그의 가장 탁월한 행적에서 드러나는 것만은 아니며, 수천 명이 전사한 저투나 엄청난 전쟁 장비나 도시의 포위보다는오히려 우연한 발언이나 농담 같은 하챦은 일에서 한 인간의 성격이 더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맞다. 플루타르코스에게 동의한다. 

바로 이 시각 때문에 그의 영웅전은 두번의 천년을 넘어 여전히 공감을 얻는다. 

플루타르코스의 위대함이다. 


당대의 사람입으로 그때의 문화와 시대의식을 직접 듣는다는 느낌이 좋다. 

2천년 전에 그리스를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가치관과 관습이 있었는지. 

그들의 욕망과 재치와 분노와 삶과 죽음이 

2천년 후에도, 전쟁과 폭력과 독재와 민주의 다툼은 여전하니까. 


기원후 50년~120년에 살았던 플루타르코스로 부터 영웅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업적을 중심으로 기록을 남긴것이 아니라 개성과 인물 

그 사람 자체를 자유롭게 서술하여 보여준다는 것이 흥미롭다.  



3.

로마 사람들에게 재판은 논리보다는 선동이 중요했던것 같아. 

논리보다 권력이나 돈이 중요한 요즘보다 솔직하네. 


알렉산드로스가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께 문후드립니다. 선생님께서 구전을 출판하신것은 잘못하신 일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배운 이론들이 만인의 공동재산이 된다면 무엇으로 제가 남들을 능가할수 있겠습니까? 저는 권력보다는 최선의 것들에 관한 지식에서 남들을 능가하고 싶습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알렉산드로스, 마케도니아의 왕자로 태어나 동방원정으로 동서양 문화 교류의 길을 만들어 헬레니즘 문명의 길을 연사람 

지배계급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하네. 지식과 정보의 독점이 최고의 권력이거든. 

그들은 남들을 능가하고 싶거든. 

정보의 독점으로 남들을 능가하여 권력을 누리며 잘먹고 잘살고 싶은거거든. 

인간중심이라는 서양 철학의 이런 대목이 불편하다. 


알렉산드로스. 얘는 젊은 나이에 전쟁신이되어 세계를 가로지르더니 일찍 죽는다.

술꼬장도 엄청 심했고. 야심만만에.

그런데 왜 저렇게 살았을까.

허랑방탕, 금으로 만든 그릇에 산해진미를 담아 노예를 거느리고 흥청망청 만찬을 즐기기위해 전쟁을 한다.

쳐들어가 죽이고 빼앗아 오는거지. 이해 할수 없다.

도대체 저 멀리까지 뭐하러 갔을까. 국경을 넓히는게 왜 좋을까.

이미 충분히 부자이고 권력을 충분히 유지할수 있는데, 어쩌면 정치가 싫었나? 지냥 전투가 좋았나? 약탈이 좋았을까?

전투가 정치보다 솔직한 방식의 싸움이지만, 잔인하잖아. 그게 왜 좋았을까? 


동양의 철학에서 정치는 그것이 사기일망정 

하늘의 뜻, 인간의 길, 사람답게 살기위한, 인민을 위한 정치를 표방한다. 

경쟁해서 남보다 위에 있기위한 지식이나 정치는 기본적으로 천박하다 생각하는데

플루타르코스는 2천년전에 이미 경쟁하고 능가하여 최고가 되고자 하는 영웅을 보여준다. 

서양 사람들은 아주 아주 옛날부터 약육강식의 전쟁을 일으키는 제국 강자의 편에선 역사서술이 모범이된것 같아. 


그에 비하면 사마천의 사기열전은 똑같은 인물전이라도 훨씬 많은 사람을 서술할 뿐아니라 

패자, 소외된자, 의리를 지킨자, 교만한자......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 

깊이있고 진보적이며 인간적이다. 


플루타르코스는 열전이 아니라 영웅전이다. 

잘난 사람들. 대체로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 물고 나온자들. 귀족 출신들. 

그래서 지배했던 자들의 영웅 이야기. 

너의 영웅이 나의 영웅은 아니거든. 


어차피 플루타르코스 또한 귀족인지라 

영웅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이라는 기본철학의 서술이, 가끔 거슬린다.

사실 얘네들이 출신이 귀족이고 머리회전이 빨랐다는 것 말고, 뭐 더 영웅적인가 싶어. 사는건 비슷하거든. 


아낙사고라스 덕분에 페리클레스는 마음가짐이 고결하고 진지해졌으며, 말투는 고상해 천민들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번뻔스러움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런 문장 불편하다. 

수단방법가리지 않는 뻔뻔함은 천민들보다 귀족들의 것이다. 

사실 천민들은 가리지 않을 수단방법이 많지 않아. 뻔뻔스러울 기회가 별루 없다는 말이다.

천민들이 천박하고, 가난한 자들은 게으르고, 노예들은 교활하고, 

귀족들이 교양있고, 부자들이 유능하고, 지배계급은 고결하겠지. 

그러므로 2천년동안 서양의 지배계급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자자손존 읽으며 남들을 능가하여 권력을 쟁취하고 싶었던거다. 

과거의 영웅전을 보면서 당대의 영웅이 되는 꿈을 꾸었겠지. 천민들은 감히 따라오지 못하는 고결함이라고 자부하면서. 


2천년 후의 노동자계급이 읽으면서 빈정상한다. ^^



4. 

기원전 700년 경의 왕족출신 뤼쿠르고스가 단행한 개혁은 매우 혁명적이다. 

토지를 무상분배하고 원로원 제도를 만들어 왕에게 집중되는 권력을 나누었으며 

성인남성들의 민회를 소집하여 법을 만들었다. 민회는 원로원의 권력을 다시 인민들에게 나누는 장치이다.

어째서 우리의 초중고 교과서에는 그리스시대에 이미 시작된 평등한 분배와 인민의 권력이라는 정치실험을 알려주지 않는가. 

흔히 스파르타와 아테네를 비교하며 아테네는 민주적이고 문화가 세련된 민족이고 

스파르타는 군대조직이 곧 국가조직인 상명사복의 야만적인 민족이라고 설명하면 땡이다. 

이건 아닌걸.


스파르타의 귀쿠르고스, 매력적인 사람이네. 

평등하게 살기위해, 모든 시민이 행복하게 살수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은 자신의 이상에 따라 공동식사, 공동육아

사치를 금하고, 절제하고 소박하게, 몸을 단련시키고 모두가 참여하여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경제적으로 평등하게 나누고 

물론 노예제에 기반한 정치지만 

그러나 소수의 사람에게 부와 힘이 독점되는 것을 이상화하는 것이아니라 

민주적인 방식에 의한 선택과 운영, 자기 이상의 평등한 사회를 자기 대에서 자기 손으로 완성한 사람. 

이상적인 실험을 자기대에서 모두 실현하는것이 어디 쉬운가 말이다. 

스파르타와 뤼쿠르고스를 좀더 찾아서 읽어 봐야겠다.  


"나는 늙어가면서도 언제나 많은 것을 배운다." 

솔론, 이사람도 멋지다. 

솔론의 이런저런 법 가운데 가장 특이하고 역설적인 것은, 당파 싸움이 벌어졌을 때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는 자의 공민권을 박탈하도록 규정해 놓은 법이다. 

으아. 이 법 맘에 들어. 동의한다. 

당파싸움이 벌어지면 어느 편이든 들어야 한다. 

당파 싸움이 벌어졌을때, 정치적인 견해차이가 생길때 자기의 견해로 찬성과 반대를 말하지 않는자는 공민권을 행사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선거가 있을때 투표하지 않는자는 다음에 선거때는 선거권을 박탈해 버리는 것과 같은 법이다. 

재밌네. ^^

이법이 만들어지면 대한민국은 20대, 30대 젊은 사람들은 조만간 모두 투표권이 없어질 것이다. ㅎㅎㅎㅎ 


솔론의 법이 맘에 든다. 

당파싸움은 무조건 안좋은 것이라는 주장이 훨씬 기만적이다. 

정치적인 선택의 문제는 자기 철학의 문제이고 쟁점이 생길때마다 철학이 다른 사람들이 싸움을 벌이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쪽이든 자기철학을 근거로 선택해서 실행하는 일관성을 보여야 한다. 

당파의 나눔없이 모두에게 좋은 그런 정치가 있는듯이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지. 

솔론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플루타르코스, 2천년전의 귀족 인문학자. 

과거의 역사를 공부하여 체계적으로 나눌분 아니라 영웅의 삶을 통해 시대정신과 그들의 실험을 함께 보여준다. 

2천년 후에도 여전히 흥미로운 영웅전이다. 

서로 어울려사는 인간의 삶은 2천년 전에도, 후에도 그닥 달라지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찔레 현대시세계 시인선 10
문정희 지음 / 북인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젊은 문정희를 본다. 

1986년 전예원에서 나온 시집을 2008년 북인에서 다시 펴냈다. 

음....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와 나는 문이다가 더 좋다. 

아직은 서투르고, 특유의 날카로운 직관이 길을 모르고 부유하는 느낌이 있다. 

양귀비꽃이나 나는 문이다를 보며 놀라게되는 

딱 떨어지는 날카로운 직관의 힘이 아직은 덜하다. 

그래서 풋풋한 느낌은 있고, 더 순한 느낌은 있고 


작자가 시를 쓸때의 나이와 읽는 나이가 비슷할때 더 공감이 큰것 같기도 하고. 

이제 나도 마흔넘어 중년이구나, 싶었어. 

부족하고 어설프고 그러나 아직 싱싱하고 순한 그 젊음이 부럽기는 해. ^^


바닥 


나는 바람이 나서 어느날 

대양 한가운데까지 떠밀려 갔다

이 세상 온갖 해를 씻어 올리는 곳이었다

맨몸뚱이로 바닥에 가라앉았다 

우울의 끝의 끝, 참패와 고독으로 

나뒹굴었다. 뼈부스러기를 주워먹었다

그러나 죽지 않고 탕아처럼 돌아가리라

이왕이면 

이 세상 처음인 길로 가리라 


이런 시는 참좋다. 

이십대의 문정희는 마흔넘은 여성의 직관이 이미 보이기도 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