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첫왕은 한국인이었다.
이종기 / 동아일보사 / 1997년 4월
평점 :
절판


상당히 오래 전 내용이다. 책이 출판된 시기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원고 자체의 작성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논지는 1970년대 중반에 완성되었고, 이 책의 일본어판인 <卑彌呼渡來の謎>가 1976년에 나왔기 때문이다.(二見書房, 발매 직전 회수) 지금이야 해외여행이 자유로운 시절이지만 그 무렵 일본과 인도를 오가며 취재, 답사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 곳곳에 보이는 탁견은 동시대 역사학자들의 틀에 박힌 연구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주장의 요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허황후의 인도 아요디아 기원설이 역사적 사실이란 것이며, 두번째는 일본사에서 최초로 나타나는 야마다이(邪馬臺)의 여왕이 수로왕의 공주라는 것이다. 원고의 작성 시기를 감안해볼 때, 수로왕릉의 쌍어문과 아요디아 라마 사원의 물고기 문양을 비교하는 등의 허황후 인도기원설은 오늘날에야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발표 시기를 감안해볼 때 저자의 주장이 퍼진 결과인 듯하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두번째 주장 역시 독창적이며 나름대로 주목할 만한 근거들을 제시한다. 구마모토현 야쓰시로 신사와 마루야마 산의 어원 추적, 마루야마 산 정상의 증토산성 유지, 미야지에서 발견한 고깔모자 쓴 아난도상, 3첫명의 가랏파가 상륙했다는 전설과 '오래오래 데라이다' 구호, 레이후 신사의 납작머리 신상, 이쓰키 마을의 3박자 민요, 에비야 벌의 전투에 얽힌 민담 등은 쉽게 넘길 것들이 아니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저런 자료가 부족하기 마련인 1970년대인 데다, 기본적으로 역사학자가 아닌 문인이라 군데군데 오류와 상상력에 의한 논리 비약이 보인다. 예를 들면 허황후의 아요디아 기원설을 펼 때 펜클럽대회에서 인연이 닿아 만난 인도 문인 나가르(Nagar)씨의 이야기를 권위의 근거로 내세우는데, 샴 족의 아유타야 왕조가 라마 왕조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오류이다.(도읍의 이름은 힌두 신화에서 빌려왔지만 그런 관계는 아니다.) 또 김해김씨 보첩 기록의 10남 2녀 가운데 1남 1녀가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과 선견왕자가 '선녀와 더불어 구름을 타고 떠났다'는 부분을 일본으로 건너간 부분으로 해석한 부분도 그럴듯하긴 하지만 다른 증거가 전혀 없이 단지 상상력으로만 재구성하고 있어 아쉽다.

게다가 아난도상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김유신 수련설화를 끄집어내고, 답사기를 쓰는 중에 생뚱맞게 자신이 30년 전에 썼다는 동시를 끼워넣는 등 세련되지 못한(역사학 연구서로서는) 글쓰기가 시선을 어지럽힌다.

정연한 논리와 적확한 증거를 갖춘 책은 아니나, 이곳저곳에 담긴 발로 뛰며 수집한 자료가 돋보이는 원고이다. 한일고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짚어보고 갈 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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