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파즈 - 무라카미 류 걸작선
무라카미 류 지음, 김지룡 옮김 / 동방미디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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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들이 내 등이나 엉덩이에 촛농을 떨어뜨린 날, 내 방에 돌아와 샤워를 할 때, 그 자국이 화끈거려서 거울을 보면, 빨간 귀여운 반점이 되어 있다. 나는 그 빨간 반점의 아픔이 좋다. 그 반점은 내 고향집 베란다에 있는 불꽃놀이 흔적과 겹쳐진다. 행복의 상징처럼. - p. 53 코가 비뚤어진 여자

 

 어쩐지 '창녀'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에선 '몸파는 여자' 즉 돈을 받고 섹스상대가 되는 여자를 주로 일컫는 것 같다. 그러나 변태천국 섬나라인 일본에서는 유곽에 다니는 여인들이 다양다재한 봉사(?)를 한다. 이 소설에서는 그 중에서도 SM클럽에 다니는 아가씨들을 소재로 삼은 소설이다. 특히 번역을 하신 인물이 SM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본인이 글 말미에서 선뜻 밝혔다.) 전문용어들이 아주 제대로 써있다. 묘사도 그만큼 자극적이고. 괜히 19금이 아니니 미성년자들은 보는 것을 삼가주시길.

 본인에게 제대로 자극적이라고 생각했던 소설은 어떤 여성의 남성 편력에 대해 써 놓은 코가 비뚤어진 여자, 선량해보이는 남자의 위험함을 제대로 드러낸 펜라이트, 잘못된 사랑때문에 비에프를 버리는 고등학생 여자애가 나오는 Some day 정도였다. 성관계가 드물게 나오긴 하지만 하나같이 정상적인 성관계는 아니다. 펜라이트같은 경우엔 대놓고 고어물이 나온다. 나름 무라카미 류가 반전물이라고 쓴 소설이겠지만 하도 배드엔딩들을 써대다보니 처음부터 대충 어떤 소설인지 감이 잡혔었다. (오히려 무라카미 류가 해피엔딩물을 쓰면 반전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들에겐 마음을 위로할 물건 혹은 인물들이 꼭 하나씩은 있다. 어쩌면 그 덕분에 소설 속의 여성들은 그 지독한 삶을 살아나가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다보면 과거를 밝히지 않은 주인공에게조차 무언가 안타까움과 절절함이 배어들어갔음이 느껴진다. 여자들은 창녀밖에 없고 남자들은 살인자밖에 없는 뒷골목세상. <씬시티>의 배경과 비슷하다. 그러나 둘은 차이점이 있다. <씬시티>에서는 마초성이 철철 넘치는 남성 히어로와 연약한 여성 히로인을 주인공으로 세워둔다. 그러나 토파즈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견뎌내는 강인한 이미지의 여성 히로인과, 변태에 폭력을 가하길 좋아하며 끊임없이 바람을 피지만 여성이 없으면 한없이 나약한 남성이 등장한다. 작가가 남성인 걸 고려하면 자신에게 가학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도서관이나 중고서점에서 책을 읽다보니 가끔 이렇게 사람들이 끄적거린 글들을 발견하곤 하는데..

14살에 이 글을 보고 이해했다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나이에 ㅋㅋㅋ

책에 대한 평가는 정확했지만.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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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관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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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아이들의 괴롭힘이 중단된 것은 아주 좁은 범위를 비추는 손전등 불빛과도 같았다. 그 불빛을 보았을 때 아쓰코는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캄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은 불빛이 사라지면 자신은 다시 완전한 암흑 속에 빠진다. 그리고 불빛은 언제 꺼질지 모른다.- p. 59

 

 미치오 슈스케. 이름만 들어봤지만 정말 대단한 작가였다. 소설의 전개나 소재에서 매우 독특한 맛이 풍겨나는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을 잡았는데도 한 편의 동화를 읽는 것처럼 술술 읽혀나가졌다. 그만큼 재미와 스릴이 느껴졌다. 마치 그가 내가 입고 있는 옷을 순식간에 촥촥 찢듯이 벗겨서 내가 여태까지 벗어나지 못한 나의 과거를 드러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무난하게 친구도 사귀고 있고 경제력은 없지만 대가족들과 함께 평범한 시골 생활을 하는, 약간 빨리 철이 든 중학생 남자애가 있다.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중학생 여자아이의 사연은 안타까우면서도 신선하다. 그녀는 바로 그가 약간은 동경하는, 특이함이 있는 여자애였던 것이다. 아버지와의 별거로 인해 어머니와 여동생을 따라 시골로 내려온 아쓰코 이야기이다. 그녀는 다른 데서 전학을 왔다는 이유로 초등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 아이들은 인간의 악한 본능에 솔직하기 때문에, 낯선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왕따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으레 조그만 마을에서 그러하듯이, 그녀는 중학교에 올라와서도 왕따를 당한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살해당할 위기를 느끼고, 스스로 자살계획을 꾸미기 시작한다. 언뜻 보면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는 설정이다. 어쨌던 인간은 고통을 싫어하며, 살고 싶어하는 게 본성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녀의 본성을 거스르게 하며 죽어야 더 편할 것 같은 기분으로 몰아넣는다. 그녀는 '젖어서 차가운 교복. 엊어맞고 걷어차여 아픈 몸과 알몸이 되었을 때 느낀, 감정이 모조리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듯한 그 감각. 앞과 뒤에서 잇달아 들려오던 휴대 전화의 깜찍한 셔터 소리. 밝은 웃음소리. 침이 든 우유의 맛'을 이해하고 있다. 만약 그런 일을 겪지 않았더라면 보통 여자애들처럼 그럭저럭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이쓰오가 모든 전말을 알고 나서 그녀에게 느낀 이상한 감정은 바로 이 모순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 모순을 깨뜨리고 할머니와 이쓰오를 구원하기 위해 내면의 '자신'들을 죽이는 방법을 계획한다. 그렇다. 그 일은 '구원'이라 할 만한 숭고한 일이었다. 소설을 읽고 이쓰오가 한 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입었고, 입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직접 책을 보시길~

 

 

살아서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자신의 색깔을 인정해 줄 사람이 온다.

나약한 자신을 죽여라.

당신이 남들과 다르다면, 남들과 똑같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럴 수도 없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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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과 몽상 -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홍성영 옮김 / 하늘연못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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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진정 그렇다! 이 거친 별은... 두 손을 부여잡고, 타오르는 눈으로 내 사랑하는 여인의 발 밑에 몸을 던지고, 몇 마디의 열정적인 문장으로 내가 태어나게 했던 별이다. 저 아름다운 꽃들은 이루어지지 못한 가장 소중한 꿈들이며, 저 격렬한 화산은 더없이 격정적이고 순수한 마음의 열정이다.- 말의 힘

 

 

한번 보면 잊혀질 수가 없는 인상이다...

 

 위에 인상적인 구절에서처럼 서정적인 소설들을 쓸 줄도 알지만, 환상 편이나 풍자 편에서도 가끔씩 고어틱한 장면들이 등장하곤 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재밌었던 건 열기구 시리즈였다. 열기구로 바다를 건너는 이야기, 열기구로 달나라를 가는 이야기 (전혀 낭만적이지 않으며 주인공이 일정 대기권에 올라가자 눈과 귀에 피를 쏟는 장면이 나오는 등 무지 리얼하다.), 2800년도에 열기구를 타고 여행을 하는 이야기 등등. 연작시리즈로 등장하는 이야기와 과학이야기가 쏟아지는 걸 보고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에드가 앨런 포는 열기구를 타고 하늘 위를 날아다니고 싶었던 걸까? 근데 중요한 건 환상 편에서도 풍자의 요소를 살짝살짝 넣어서 인간들을 비꼬았다는 것이다. 풍자 편에서는 마치 물을 만난 듯, 제대로 코믹한 고어소설들을 쏟아내었다. 유머있는 B급영화를 만들고 싶은 분들은 참조해도 되겠다.

 하지만 역시 풍자 쪽에서 좀 지루한 미사여구들과 허풍들 때문에 재미가 반감되었다. 아무리 소설이 허구라지만 허풍을 과하게 치는 소설은 역시 싫다;;; 에드가 앨런 포가 의도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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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무사 1
초우 지음 / 시공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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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옛적에 한 살수가 있었다. 그는 여러 임무들을 맡게 되다가 사혼유령검으로 10대 고수 중 한 명에 속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귀한 집 가문의 딸을 납치하는 임무를 부여받다가 이런저런 섬씽이 생긴다. (이게 중요한 스토리 같으므로 생략하겠다.) 어느날 갑자기 행방불명된 그녀를 찾아 헤메고, 그는 그녀의 호위무사로 잠입해 들어간다. 그러나 호위무사가 되는 데에는 여러가지 조건들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바로...

 

 

고자가 되는 것이었다.

 

 아니 물론 저렇게 린노스케처럼 된 건 아니고, 영약으로 15년간 고자가 되어서 산다고 한다. 외택 즉 남자를 지킨다면 약을 먹지 않아도(고자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내택 즉 여자를 지킬 경우엔 섬씽이 생길 수 있으므로 당분간 고자가 되는 약을 먹게 한다. 그렇다고 여자를 보면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건 아니고, 요컨대 발기(...)만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아무래도 이 기이한 설정 때문에 이 소설이 인기를 끌게 된 것 같다. 보통 80~90년대 초반 무협소설엔 야한 에피소드들이 쏟아져내리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아예 주인공 자체를 거세시켜버리고 플라토닉 사랑을 진행시킨다. 용설아와 사공운의 러브스토리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결국 그들의 (엣찌 없는) 순박한 사랑에 눈물콧물을 쏟게 되는 것이다.

 문체는 전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딱딱함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 책을 읽다보면 선과 악이 모호해지는 캐릭터성, 치밀한 세계관 설정, 그리고 폭풍같은 흡입력에 감탄하게 된다. 이 책을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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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유실물 5
미나즈키 수 글 그림 / 삼양출판사(만화)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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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 때문에 5점 만점.

사랑은 하지 않을 거라면서 왜 신발은 꼭 안고 들어가 ㅠㅠ

도대체 작가는 카오스를 앞으로 몇 번이나 바다에 빠뜨릴 작정이냐.. 불쌍하잖아 ㅠㅠ 

 

 뭔가 이 만화를 보고 있다보면 시냅스가 안드로이드들을 마구 토모키의 집에 처박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토모키의 식량(혹은 인생)을 동강내버릴 생각이라면 현명하긴 한데 ㅋㅋㅋ 결국 카오스도 이 파티에 끼고 싶었지만 절묘한 순간에 시냅스에게도 차이고 토모키에게도 까인 꼴이 되어버렸다. 나중에 바닷속 괴물로 부활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지만, 바보천사가 저 때 물에 익사할 각오를 하고 건져왔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튼 이 때의 결말이 상당히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천사에게 신발을 신기는 토모키의 (쓸데없는데서) 천진난만하기 그지없는 발상도 그렇고 카오스의 이야기에서는 철학적인 요소가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근데 이카로스는 무산소활동 할 줄 알면서 왜 애를 안 건져왔대...라이벌이 느는 게 그렇게 싫었나.

 

 

하긴 이렇게 눈치 없는 녀석을 상대하려면 주위에 라이벌이 아무도 없어도 힘들겠구나...

 

 섹드립 수위도 서서히 증가하고 있는데 이러다가 한국에서 삭제되거나 19금 낙인이 찍히는 부위가 분명히 있을 것 같다. 가끔 미치지만 않으면 괜찮은 작가인데 ㅠㅠ 다 받아줄 수 있는데 '거시기 인공호흡'이라던가 '토모키 타워'는 코믹을 넘어서 혐오스러움-_-;;;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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