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8 나는 느린학습자의 엄마입니다 3탄
몇 달 전 이 제목으로 페이퍼를 썼을 때 한 달에 한 번은 써야지 생각했다. 올초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 를 읽고 영감을 받아 페북에 <느린학습자의세계>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집 어린이가 자기 인생을 아직은 제 머리로 기억해서 제 입으로 말할 수 없으니, 너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얼만만큼의 노력을 했는지를, 그러니 주눅들지 말고 우쭐해져도 된다고 알려 주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덜커덩, 수레가 진흙구덩이에 빠졌다. 나는 오춘기가 시작되었고, 이 어린이는 유사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예상치 못한 미움과 의심과 회의. 나는 이 어린이를 무한 사랑하는가? 내가 쓰는 글은 과연 진실한가? 그런 의심이 들자 글을 쓰기가 무서워졌다. 기특한 마음은 짧아지고 괘씸한 마음은 길어졌다. 그런데도 느린 학습자 이야기를 쓰는 것이 옳은가? 내 이런 고민에 친한 후배가 명쾌한 답을 주었다. "언니, 그 얘기도 쓰면 되잖아요!" 그래서 다시 쓴다.
2021년 8월말. 작년부터 출근길이 지옥길이라 노래 부르는 옆지기가 소파에 앉아 만화 삼매경에 빠져 있는 우리집 어린이에게 말을 걸었다.
ㅡ 아들아, 아빠가 요즘 인생에 낙이 없구나. 출근하기 싫다.
ㅡ 낙엽이요?
ㅡ 낙엽이 아니고, 낙이 없다고.
ㅡ 그니까요. 낙엽이 없다고요? 낙엽은 단풍나무, 그거 아닌가?
ㅡ 낙엽이 아니고! 낙이 없다고 ~~~~~~! (목소리 커짐)
ㅡ 아빠! 나뭇잎이 다 떨어졌단 거예요? 아빠가 무슨 겨울 나무에요?
ㅡ . . . . . . 아빠, 출근할게.(머리카락이 빠지고 있어 겨울 나무처럼 변해가는 아빠는 할 말을 잃고 지옥행에 올라탔다.)
우리집 느릭학습자와의 대화는 대개 이런 식이다. 이 어린이가 또래와, 심지어 저학년 동생들과의 대화도 비슷한 실정이다. 낱말을 못 알아듣는 것은 그래도 봐줄 만하다. 시정해주고, 설명해주고, 반복해주면 시나브로 나아진다. 그러나 대화의 맥락을 못 알아먹을 땐 고구마를 삼킨 듯 목이 멘다. 가끔은 매운 고추를 씹어 삼킨 듯 속에서 불이 난다.
화성으로 이사온 지 1년 6개월만에 오산 지역 느린학습자 부모 자조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한 달 전 오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주최한 인지 훈련 프로그램 저자의 <체험형 진로 교육> 강의를 들었다. 이 강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이것이다.
ㅡ 느린학습자의 형 친구가 집에 놀러를 와서 우리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대요. "oo 쌔끼야, 반갑다." 어머님들, 맥락상, 형 친구 말의 골자는 무엇일까요? 새끼인가요? 반갑다인가요?
ㅡ 한숨과 함께 이구동성으로) 반갑다요!
ㅡ 그렇죠. 어머님들은 이렇게 다 아시잖아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이게 잘 안 돼요. 이 친구가 씩씩거리며 엄마한테 말했대요. 형 친구가 자기한테 새끼라고 욕했는데, 형이 아무 말도 안 했다고요. 자기를 변호해주지 않았다고요.
그렇다. 나 역시 우리집 느린 학습자, 신장과 체중 모두 엄마를 넘어섰음에도 여전히 귀여운 초딩 5학년 아들에게 "아이구 귀여운 내 새끼"라고 말하는 데 조심스럽다. 이 어린이는 대꾸한다. "엄마! 귀여운 아들이지 내가 왜 새끼에요!" 깨갱. 그러나 이 깨갱보다 더 무시무시했던 것은 강사 선생님의 마지막 당부의 말이었다.
ㅡ 어머님들, 우리 아이들은 펴~~~~엉~~~~생 사회적 지원이 필요해요. 그러니 포기하시면 안 돼요.
사실 나는 요즘 그만 내려놓고만 싶다. 인생의 낙은 고사하고 인생의 가을에 접어들어 마음이 낙엽처럼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고 바삭바삭 마른다. 해서 뭐하나, 한들 되려나 하는 회의감과 의기소침함이 찾아들었다. 이런 마음에 부채질을 하는 것이 우리집 어린이의 태도다. 사춘기 초입에 이른 이 느린학습자가 전에 없이 "왜요, 왜요"하며 따박따박 따지고, '아, 네 네' 같은 뒷골 당기는 대답도 곧잘 한다. 나는 착각했다. 경계선 지능 아이들은 순진하고 착하고 해맑다는 문구에 사로잡혀, 이 어린이가 그런 아이에 머물러 있을 줄만 알았던 것이다. 우리집 느린학습자가 나를 가장 당황스럽고 기운 빠지게 만든 말은 이것이다.
ㅡ 엄마가 소리 질러도 이젠 안 무섭거든요.
이 어린이는 덩치만 커진 것이 아니었다. 머리도 커졌다. 엄마에게 대항할 힘도 커졌다. 아이는 커지고 엄마는 작아져야 할 시기. 인지 선생님의 당부처럼 포기하지 않되 이 느린학습자에게 주도권을 이양해야 할 시기. 그것을 어떤 식으로 현명하게 수행할 지가 나의 숙제다. 무거울 숙제가 어떤 한마디에 잠깐이지만 곧 바스러질 낙엽처럼 가벼워진다. 어떻게 이렇게 일찍 깼니 라는 물음에 아이가 답한다.
ㅡ 엄마의 향기에 잠이 깼죠.
나는 향기로운 엄마로구나. 우하하. 향기 풀풀 날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책을 뒤적거린다.
#느린학습자의공부 #박찬선 #이담북스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들을 위해 꾸준히 연구와 상담과 집필을 해오시는 박찬선 교수님이 지난 6월 새로운 책을 출간했다. 이번에는 경계선 지능 뿐 이나라 학습장애를 가진 아이들까지 아울러 그들의 기초인지 능력 개발에 초점을 맞춰 책을 펴냈다. 나처럼 느린학습자 자식을 가진 부모들에게는 보석과도 같은 저자이다. 7월에 발달장애인 가족과 함께하는 유튜브 채널 <우리아이연구소>에서 북토크를 개최해 저자와의 꽤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 북토크에서 박찬선 저자가 강조한 것은 책에 쓴 것처럼 우리 아이들의 잠재력을 믿고 독립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지 능력을 키워주라는 것이었다. 단, 서두르지 말고 아이들이 클수록 주도권을 아이에게 넘기라고 당부했다. 사춘기 아이는 평균 지능이건 경계선 지능이건 "남의 아이가 된" 것이고, 부모의 말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도. 시행착오를 허용할 것이며, 문제행동은 문제행동이 아닌 배워야 할 행동으로 바라보라는 점도.
사실 이 책은 앞선 두 권의 책들과 겹치는 내용이 많아 아쉬운 면이 없잖지만, 이런 연구를 꾸준히 해주시는 저자의 정성에 별 다섯 개를 주지 않을 수 없다.
#'나의나무'아래서 / 오에 겐자부로 / 까치 / 201712 일독 / 202109 재독
이 책은 <이승욱의 공공상담소> 팟캐스트를 운영했던 이승욱 선생이 추천한 책이었다. 작은 기대를 가지고 읽다 큰 수확을 얻은 책이었다. 느린학습자인 우리집 어린이를 일반 학교에 계속 보내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갈팡질팡하던 하던 내 마음을 붙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나처럼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겐자부로는 자신의 유년기와 소년기를 추억하며 아이들이 왜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아름답고도 감동적으로 설파한다. 나는 이 책의 모든 꼭지가 정말로 좋았다. 이번에 재독한 것은 내가 어떤 엄마로, 어떤 어른으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고 싶어서였다. 4년 전 감동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며 사고하는 근육을 다시 한 번 생성시킬 수 있었다. 오에 겐자부로는 행동하고 실천하는 작가로 일본의 양심으로 불린다. 이 에세이를 읽노라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계속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 . . . .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은, 나의 어머니가 말씀하신 그대로 되풀이한다면, 어른이 되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의 말을 비롯하여 전부를 자기 속에서 계속해서 나아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잇는다고 말해도 좋겠군요. 자기의 의사로 계속해서 나아간다는 것이 잇는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어른이 되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과 잇는 것도 그 하나입니다.] (116쪽)
#아이들은어떻게배우는가 / 존 홀트 / 공양희, 해성 옮김 / 아침이슬
이 책은 2018년에 읽었다. 존 홀트는 미국에서 '언스쿨린 운동'을 창시한 교육 개혁가로 배움을 강요당하기 이전 시기의 아이들의 세계를 탐구하고 배우는 과정을 미시사적으로 관찰해 기록했다. 아이들의 심리가 아닌 '아이들 그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그 어떤 이론서보다 내 머리에 쏙쏙 박혔고, 우리집 어린이에게 실제 접목할 수 있는 것이 수두룩했다.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에게 꼭 읽으시라 권하고 싶은 책이다. 많이 찔리고 많이 깨닫게 만들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중 극히 소수만이 우리가 가르치려는 방식으로 배우는 데 능숙해질 뿐 대부분의 아이들은 수치심을 느끼고, 겁을 먹고, 기가 꺾여버린다. 그래서 무언가를 배우는 데 머리를 쓰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어른들이 시키는 것들을 안 할 수 있을까 하는 데 머리를 쓴다. 어른들이 시키는 일이란 바로 아이들에게 배우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들이다.] (7)
[아이들의 말을 대놓고 바로 지적하는 건 무례한 짓이요, 실수라는 걸 알면서도 도대체 나는 왜 그와 같은 실험을 한 것일까? 내 속에 있는 선생귀신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153) / 많은 어른들이 신봉하는 이 이론(나쁜 습관 이론)은 아이가 말하거나 읽거나, 혹은 어떤 일에서든 실수를 보이면 그때마다 당장 교정해서 더 이상 고치기 어려운 '나쁜 습관'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배우는 많은 것들, 즉 걷기, 말하기, 읽기, 쓰기 같은 것들을 스스로 해보고 그 과정에서 실수를 함으로써, 나아가 그 실수를 교정함으로써 배운다. 이는 수학자들이 '연속 근사법'이라고 부르는 방법과 흡사하다. 다시 말하면 아이들은 일단 뭔가를 하고 난 뒤 그 결과를 자기가 달성하길 원하는 목표(큰 사람들처럼 하게 되는 것)와 비교해서 차이점(실수)를 알아내고, 마침내 그 차이를 줄이려고 노력한다(실수 교정). 모든 아이들이 이 작업을 할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다 작업을 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갖췄다. 가장 극성인 실수 교정자들의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조차 지적받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실수를 스스로 교정한다.] (154)
#학교를넘어서 / 존 홀트 / 공양희 옮김 / 아침이슬
배움에 관한 존 홀트의 생각에 반해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와 함께 읽은 책이다. 이 책은 "학교는 개혁될 수 없다"는 많이 과격하고, 꽤나 편파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 그러나 학교의 개혁 여부를 논외로 두면, 이 책 또한 명심하고 싶은 내용들로 가득하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태평양 건너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아직은 개도국인 한국의 교육계 현실이 붕어빵처럼 닮아 있다는 점이었다. 가령 이런 지적이 그랬다. [우리의 문화는 면허증에 미치고 학위에 짓눌린 문화이며 서서히 세계는 하나의 교실로 바뀌어간다.](12쪽) 자격증 남발의 시대를 비판하면 존 홀트는 자격증에 목 매다는 대신 하면서 배우라고 일갈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행하는 온갖 일, 우리에게 일어난 온갖 사건, 또 우리에게 가해진 온갖 행위로부터 뭔가를" 배우기 때문이라고. 정말 그렇지 않은가. 이 책은 부모들보다 교사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나는 저자와 달리 공교육이 바로 서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무수한 학교 밖 교실이나 수업을 학교 안으로 들이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교사들이 그 방법을 모색해주기를 바란다. 부모로서 나는 이것을 실천하려 노력 중이다.
* 부모가 할 수 있는 일(333쪽)
1) 아이들이 학-교에 대처할 수 있게 돕는다.
2) 학-교에서 도망치도록 돕는다.
3) 대안을 준다.
- 학-교에 대해 속상해하고 겁먹고 있거나 불만을 가지고 있다면, 부모는 아이가 하는 말에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부풀리지 마라"느니 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 아이가 원하는 전부는 자기 말에 귀를 기울여줄 사람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 바로 그것일 때가 많다. 그 기회는 사실 학-교에서는 너무나 얻기 어렵다. 아이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 일이 이루어지면 한결 기분이 나아지는 법이다.
1) 학-교를 좋아하는 않는 자신을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 학-교를 좋아하지 않는 자기들만의 이유를 부모가 이해하고 찬동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아나톨의작은냄비 / 이자벨 카리에 / 권지현 옮김 / 씨드북
내게는 독서심리지도 2급 자격증이 있다. 육아가 힘들어 2014년부터 연세대학교 미래교육원에서 <리딩큐어(독서심리지도)> 강좌를 들었다. 졸업 후 수강생들 중 몇몇 선생님이 의기투합해 1년 정도 공부를 이어 나갔는데, 그때 그 선생님들과 함께 읽고 토론한 책이다. 나는 우리집 느린 학습자와 같이 읽었다. 아나톨은 작은 냄비를 끌고 다닌다. 냄비 때문에 아나톨은 평범한 아이가 되지 못한다. 상냥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고, 잘하는 게 아주 많은 아이지만, 사람들은 자꾸 냄비만 쳐다본다. 냄비는 아나톨의 걸림돌이다. 아나톨이 평범한 아이가 되려면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지만 사람들은 모른다. 그래서 아나톨은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나쁜 말도 하고, 친구들을 때리기도 한다. 우리집 느린학습자도 아나톨과 비슷했다. 어느 날 한 어른이 나타나 아나톨에게 고백한다. "나도 있다" 그 어른에게도 아나톨의 것보다 작은 냄비가 있었다. 어른 아주머니는 아나톨에게 냄비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냄비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 준다. 그 덕분에 아나톨은 전처럼 명랑한 아이가 된다. 이 책은 우리집 어린이보다 엄마인 내가 더 좋아하지만, 단순하고도 귀여운 그림에 반해 아이는 표지 그림을 따라 그렸다. 나는 그 옆에서 화가를 꿈꾸며 냄비와 함께 사는 법을 익혀 가는 내 아이를 응시했다.
To be continued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