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0 #시라는별 43 

영속永續- 백은선 

아니다 그렇다 괜찮다 괜찮지 않다 보인다 보이지 않는다 빛이다 어둠이다 포옹이다 밀침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본다 한낮의 나무 한낮의 섬
한낮의 그림자

ㅡ돌아본 사람은 영영 잃어버리게 된대
ㅡ어째서 사랑은 손보다 더 손이 될까 

돌아본다 한밤의 어둠 속 웅크린 심장을 
한밤의 두근거림 
펄럭이는 커튼 아래 놓인 심장을 

ㅡ한번 잃을 것을 다시 잃는 게 뭐 
ㅡ한 번도 가진 적 없는 것을 소유한다는 게 좋지 

늘어난 소매를 물어뜯으며 기린은 어떻게 울지 생각하다가 세상에는 침묵의 동물도 있다고 결론지었다 
모든 게 너무 빨라서 기린의 리듬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나무가 있어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물속에서 숨 쉬는 법 얼음이 녹는 동안 불어나는 것들을 헤아리며 기도 위에 기도를 놓고 다시 허무는 방식으로 허물어진 자리에 다시 다시

놓고 허물고 놓고 허물고 놓고 허물고 

손을 대봤어 뜨거웠다 그것을 마음의 열도라 한다면 

ㅡ계속할 수 있겠니
ㅡ두 개의 손은 열 개의 뿔이었대 

괜찮지 않아 괜찮지 않아 부러지는 것들 숨을 참으며 매일 침묵을 연습하며 어떤 백색증은 몸의 가죽이 아니라 내부에서 생겨난다

죽은 몸을 가르면 모든 것이 하얗다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세포는 하나씩 어둠을 잃는다고 


백은선 시인의 <<도움받는 기분>>은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집은 내가 정의한 대로 ‘시로 쓴 고발극‘이 맞다. 시인은 이 세상의 부정하고, 부당하고, 어이 없고, 그래서 슬프고 아픈 일들을 직접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까발린다. 시인의 마음을 가장 뒤흔든 사건은 세월호 참사였던 듯하다. 곳곳에서 그 참혹함과 싸늘함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들이 발견된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시인은 이런 말로 자위를 한다.

신이 아픔을 몰라서 
아픔을 줄 수 있다고 

그렇게 믿자고 시에 썼습니다. (<해피엔드> 중) 

신이라고 썼지만, 실은 인간의 다른 이름이다. 아픔을 모르는 인간은 아픔을 주는 줄도 모르고 아픔을 줄 수 있다. 

‘괜찮다‘라는 말도 그렇다. ‘괜찮다‘는 나쁜 뜻의 말이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 어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혹은 타인에게는 사소해 보이지만 내게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그럴 때 우리는 흔히 ˝괜찮아? 괜찮아요?˝라고 묻는다. 좋은 의도의 말인데, 이 질문은 이상하게도 ‘응, 괜찮아.‘라고 대답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중압감을 준다. 내 마음이 절대로 괜찮지 않은 순간에도 말이다.

아이가 넘어지거나 어디에 부딪히거나 했을 때 예전에는 ˝괜찮아?˝라고 먼저 물었다. 지금은 몸부터 달려가 ˝아이쿠, 어떡해, 아프겠다˝라고 먼저 말해준다. 그러니까 아이의 고통이 가라앉아 아이 스스로 ‘괜찮다‘고 느끼게 될 때까지 그 말을 유보하는 것이다. 아픔에 반응해주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아파서 뜨거워진 ˝마음의 열도˝가 식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 것은 숨을 참고 침묵을 강요당하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그런 일이 반복됐을 때 우리의 속은 백색증에 걸려 어둠을 잃고 ˝모든 것이 하얗˝게 변할 수 있다. White lie. 선의의 거짓말도 켜켜이 쌓이면 독이 된다.

백은선 시인이 알고 싶어 올해 3월 채널예스와 가진 인터뷰를 찾아 읽었는데, 산문집도 읽고 싶어졌다. 남편의 카드 빚을 갚기 위해 계약한 책이었다니. 백은선은 현재 남편과 이혼했다.

“파편이 내 삶의 숙명 같아요. 엄마로 시인으로 작가로 가사노동자로 선생으로 살면서 매일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습니다. 그래, 그게 숙명이라면 파편의 대마왕이 되고 말 거야.”​


별처럼 생긴 식물은 돌나물과에 속하는 섬기린초.
흰색 꽃은 개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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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10 07:5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늘의 시 너무 좋네요. 뭔가 힘이 나는거 같아요. 나에게 하는 괜찮아 괜찮다는 말은 위로가 되는거 같아요 ^^

행복한책읽기 2021-06-10 15:24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 맘에 드신다니 뿌듯뿌듯.^^ 백은선 시인은 파고들고 싶네요. 자기 위로, 맞습니다. 넘 필요합니다.^^

미미 2021-06-10 11:5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니 남편 카드빚ㅠㅇㅠ
위로 라는거 배려 라는거
이게 진짜인지, 제대로 마음이 전달 되는지 갈수록 신경 쓰이더라구요. 🤔

행복한책읽기 2021-06-10 15:27   좋아요 4 | URL
근데 이혼 후에도 남편이랑 의절하지 않고 산대요. 이혼하면 인생 끝장나는 줄 알았더니 해보니 살 만하다네요. 생계형 저자의 삶이 만만찮을 텐데, 시보다 산문이 돈이 더 되는데도 시를 더 쓰고 싶다고 합니다. 천상 시인^^

mini74 2021-06-10 12: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픔에 반응하는 것이 먼저 란 말 참 좋아요

행복한책읽기 2021-06-10 15:28   좋아요 5 | URL
와우. 미니님 찰떡같이 캐치하심요. 이런 공감이 저는 참 좋습니다.^^

scott 2021-06-10 16: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카드빚을 아내가 왜? 갚아야 하는지 ㅜ.ㅜ
개망초 꽃말은
화해 ,,,,

행복한책읽기 2021-06-10 16:22   좋아요 3 | URL
그래서 서류상으로만 이혼하는 부부도 꽤 있어요. 월급을 차압당하거든요. 우씨.
scott님 개망초 꽃말, 감솨!!!^^

붕붕툐툐 2021-06-10 1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괜찮아?라고 물을 때 괜찮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중압감이 넘 와 닿네요. 저도 괜찮아?를 버려야겠습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6-11 00:45   좋아요 1 | URL
하하. 버리지는 말고 봐가면서 쓰는 것이. . . .^^;; 저런 생각은 부모 집단 상담 때 배웠어요. 많은 부모가 넘어진 아이에게 괜찮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당황한대요. 아픈데 괜찮아야 하는 건가? 울고 싶은데 못 울게 된다고요. 자기 감정을 억압하는 기제가 된다고. 진짜 그런가 지금도 계속 확인해 본답니다^^

희선 2021-06-11 0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살아온 게 달라서 누구는 아픈 말인데 누구는 아무렇지 않은 말도 있더군요 그렇다 해도 자신이 아프면 다른 사람도 아프다는 걸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런 것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니...


희선
 

20210531 나는 느린학습자의 엄마입니다 2 편

<나는 느린학습자의 엄마입니다> 1편을 쓰고 자신 있게 'To be continued'를 외쳤건만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바쁜 일이 있긴 했지만, 그보다는 귀차니즘이 더 작동했다. 머릿속으론 종종 썼다. 그러나 머릿속 글은 아무리 열심히 써대도 활자화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응시에 의해 조각된다."

이 말은 2015년 내가 즐겨 듣던 팟캐스트 <공공상담소>  운영자이자 정신분석가인 이승욱 박사가 한 말이다. 부모가 아이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 이 때 경험된 자극들이 몸 안에 저장돼 자기를 통해서나 타인을 통해 외부로 발현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어느 시점부터는 타인의 응시를 넘어 내가 나를 어떻게 응시하고 있는가, 즉 내 안의 시선을 들여다보는 차원으로 넘어가야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한 개인의 이미지는 외부의 시선에 조형될 수 있다. 나는 내 아이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는 전에도 말했듯 탄탄한 플롯과 스토리를 가진 훌륭한 소설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작품에 별 하나를 뺀 것은 작가의 의도(행복한 가정의 허상) 때문에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어른이 한 아이를 끔찍할 만큼 무서운 시선으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다른 아이들과 어떻게 다른지, 달라 당황스럽지만 어떤 장점이 있는지, 다르다면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지, 아무도 정말 아무도(심지어 의사조차) 고민하지 않았다. 엄마를 비롯해 모두가 다섯째 아이 벤을 소름 끼치는 "도깨비나 요괴", "외계인", "난쟁이", "괴물"로 보았다. 벤은 비정상의 아이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아이일 뿐이었지만, 엄마 해리엇은 이 아이를 "보통 아이"로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그 노력이 좌절되자 아이를 요양소에 보냈다가 동네 청년에게 맡겨 버린다. 내가 장담하는데, 장애아이를 가진 요즘 부모들은 해리엇과 데이비드처럼 수동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많은 부모가 요인을 찾고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 앤 지나치게 활동적인 아이에요 ㅡ 그게 요즈음 쓰이는 용어죠."(<<다섯째 아이>> 86쪽) 

 "그 앤 비정상적으로 과민하죠? . . .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어요. 그 앤 조용히 오래 못 있어요. . . ."(같은 책 135쪽) ​​

책에서는 벤의 성향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학계에서 이런 아이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이다. ADHD는 전전두엽 발달 미숙에 의한 기질적인 질환으로, ADHD 아동의 경우 전두엽이 평균 아동에 비해 10% 작고, 대뇌 전상부와 전하부의 크기도 10% 작다고 한다. 문제는 벤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가져 지나치게 활동적이고, 과민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많은 아이들에게 ADHD라는 꼬리표를 달아 약을 복용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우리집 느린 학습자도 2학년 때 3개월간 약을 복용했다. 약을 끊은 것은 약의 효과는 전혀 보지 못하고 부작용만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 번에 소개했듯 우리집 아이는 ADHD보다 경계선 지능에 가깝다. 읽은 책과 내 경험으로 볼 때 ADHD 아동은 대개 지능이 높거나 정상이다. 이 아이들의 주된 특징은 산만함이다. 














<<산만한 우리 아이 혹시 ADHD​?>>  김태훈/ 청출판 ​

이 책은 우리 아이 담당 임상 치료사가 추천해준 책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집 느린 학습자가 ADHD인 줄 알았다. 신경정신과 교수를 역임한 김태훈 박사는 ADHD의 A부터 Z까지, 치료법과 부모의 역할에 대한 지침까지 소상히 다루고 있다. 다만 나는 이 선생님의 견해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었다. 남자아이들 중에는 장난이 심하고 산만하며 집중력이 약한 아이들이 더러 있다. 우리 아이도 그런 아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아이들 모두를 ADHD라는 낙인을 찍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흔들리지 않고 ADHD​ 아이 키우기>>  이영민/ 팜파스​

ADHD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아이와 맞닥뜨리게 되는 온갖 문제를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마인드와 대화법과 대처법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이영민 엄마는 아이 때문에 날마다 당황스럽고 지치고 힘들지만 아이를 외계인 취급하지 않는다. 아이의 행동과 아이의 인격을 동일시하지 않고 아이의 행동에 초점을 맞춰 문제 해결을 도모한다. 내 경우에는 이 책이 위의 책보다 더 큰 도움이 되었는데, 더 구체적이고 더 실천적이며 무엇보다 공감이 많이 되어서였다. 

"가장 먼저 부모가 자녀의 편이 되는 것이다. 자녀의 ADHD 행동과 자녀의 인격을 분리시킨다. ADHD의 행동 양상을 잘못된 행동으로 꾸중해서도 안 된다. 자녀도 원치 않는 행동을 자기도 모르게 하는 거다. 꾸중보다 조절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자녀의 자존감을 높여주려면 행동보다 인격을 칭찬해야 한다."(156쪽) ​













<<ADHD는 없다>> 김경림 / 민들레

제목이 도발적인 이 책의 저자는 ADHD에 대해 널리 퍼져 있는 잘못된 인식과 약물 치료의 위험성과 폭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저자가 지적하는 우리 사회의 ADHD 진단과 약물 치료 남발성에 동의하는 편이다. 내가 아는 한, 기질적 질환인 ADHD, 지능에 문제가 있는 경계선 지능, 언어 발달에 문제가 있는 언어 장애 아동은 모두 주의집중력이 약하다. 약도 한 가지 대안일 수 있으나, 나는 이 엄마 저자의 문제 해결 방식, 이른바 CPRT(부모-자녀 관계치료) 방식이 훨씬 바람직하고 효율적이며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엇보다 이 엄마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큰 감명을 받았다. 

"부모나 선생님이 자기 가치를 부정하고 있다는 인식은 아이 자신에게 내면화된다. 자기 가치의 부정, 자기 존재의 부정과 맞서 싸워서 스스로 자기 가치와 존재를 증명해 내는 일은 아이에게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다. 자기 가치를 증명해 보이려는 시도를 할 때마다 더 큰 부정과 거부를 경험하게 되면 그 학습 효과로 인해 '해 봐야 어차피 안 된다'는 믿음이 굳어진다."(127쪽)

"엄마, 내가 힘들다고 하면 그냥 그날 하루만큼의 위로만 해 줬으면 좋겠어. 그럴 때마다 엄마가 '다시 생각해 보자' 이러면 나는 힘들다는 말도 못하고, 위로도 못 받아. 나는 그게 더 힘들어'라고 했다.(161쪽)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며 존중해 주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인 어느 날 ADHD 판정을 받아던 이 아이가 한 말이었다. 이 친구는 ADHD가 아니라는 것에 나 역시 동의한다.

"'어떤 아이로 키우겠다' '어떤 교육을 하겠다'는 것은 폭력이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나에게 태어난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이고 그 아이에 대해 배우고 맞춰 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자녀가 둘이면 자식을 두 번 새로 키우고, 열이면 열 번 새로 키운다고 하는 것이다."(184쪽) 














<<리틀 몬스터>> Robert Jergen / 학지사

나는 이 책을 아이와 함께 가는 치료 센터(놀이, 언어, 인지)마다 보았다. '대학 교수가 된 ADHD 소년'이라는 부제 때문인지, ADHD 아동의 성공 사례로 치료사들이 많이 권하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스물네 살이 되어서야 ADHD 진단을 받았다. 자신의 장애를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을 아쉬워하며 ADHD를 가진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약물만으로 ADHD를 가진 사람들을 돕는 것은 크게 효과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연구 결과 밝혀졌다. 다른 전략들이 동시에 수반되어야 한다. 결국, 약물이 가르쳐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약물은 사람들이 집중하거나 조용히 있는 것을 도울 수는 있지만, 아동에게 책을 읽는 방법이나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며 대하는 태도까지는 알려줄 수는 없다."(310쪽) 


"우리 생각들을 부정적이게 하고, 우리 행동을 파괴적이게 하는 것은 ADHD 그 자체가 아니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우리와 우리의 ADHD를 대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느냐에 따라 일어난다. 우리 부모님들, 선생님들, 또래 친구들이 나를 비웃고, 조롱했고, 그들의 비난이 그때부터 내 머릿속에서 반향을 일으켜 왔다. 만약 그들이 좀더 지지적인 태도로, '애, 넌 괜찮다. 넌 좋은 아이야' 라고 말해 주었더라면, 나는 내 읺생에서 좀더 일찍 행복해지는 법을 세웠을 텐데 말이다."(284)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 조응주 옮김 / 민들레

이 책은 정말로 훌륭한, 강강추 책이다. 미국에서 30년 넘게 교사로 일한 저자가 ADHD 진단을 받은 아홉 명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 해결력을 키워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아이들은 이런저런 좌충우돌을 겪지만 자신들을 문제아로 바라보지 않는 선생님들의 다정한 응시와 기다려주는 태도에 서서히 좋아진다. 그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지 않고도 나아지는 법이 있다는 것을 알아나간다. 

"우리가 보기에 한시도 가만 있지 않는 아이는 활동적인 것이지, '과잉행동'이 아니다. 전자는 아이를 묘사하는 단어고, 후자는 아이를 규정짓는 단어이다." (10쪽) 

"우리가 사회적 발달을 많이 강조하는 이유는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아이들이 더 행복하고 자신 있게 인생을 살기 때문이다. 나아가 행복하고 자신 있는 아이들은 더 빠르게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목표를 달성한다. / 우리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사회화라는 배움의 과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안전하고 애정이 넘치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 번째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바로 교사가 개입을 자제하는 것이다. . . 우리에게는 어른중심적인 통제 대신 전체회의라는 제도가 있다. 아이들은 전체회의의 틀 속에서 서로 솔직하게 소통함으로써 의견 차이를 좁히고 해결책도 스스로 마련한다. 교사는 그 자리에 동석하는 것이지 관리를 하지는 않는다. 물론 선생으로서 우리는 안내인이자 조언자 역할을 할 때도 있다 . . . 아이들이 스스로 얻거나 서로에게 배우는 교훈이야말로 평생 가는 경우가 많다. / 그러나 그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또한 애매모호할 때가 많고, 전진과 후퇴가 거듭될 수밖에 없다."(107)












데이비드 시리즈 /  데이빗 섀논 / 지경사

많은 남자아이가 데이빗 같다. 우리집은 딸도 데이빗 같았다. 손에 닿는 서랍 속 물건을 모조리 꺼내 놓고, 소리 지르고, 쿵쿵 뛰고, 책장을 암벽인 양 오르고, 욕실을 물감으로 도배하고, 칫솔을 변기에 빠뜨리고 물 내리기 등등등. 이 책은 남매 모두 좋아해 닳도록 보았다. 데이빗의 말질이 등장할 때면 어김없이 엄마의 '안 돼'가 뒤따르지만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데이빗은 눈물을 글썽인다. 그때 엄마가 말한다. "그래 데이빗 / 엄만 널 가장 사랑한단다." 그리고 꽉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딸이 어렸을 때 이 책을 읽고 내게 부탁했다. 엄마도 데이빗 엄마처럼 해달라고. 말썽 부리는 아이들을 언제나 정답게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모도 감정을 지닌 사람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잠들기 전에는 아이들과 화해할 수 있고 마음을 전할 수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 아이를 '괴물'처럼 바라보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때만큼은 부모의 눈길은 순해진다. 아이들은 그 응시를 몸에 새긴 채 잠이 든다. 








<<무민의 특별한 보물>> 토베 얀손 / 서하나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이 책은 느린학습자인 아들이 5학년인 지금도 생각나면 펼쳐보는 책이다. 무민은 아빠와 엄마와 친구들에게는 있는 자기만의 특별한 보물이 없는 것이 슬퍼 길을 나선다. 바다에도 가고 숲에도 간다. 그런데 나만의 보물이 될 만한 물건을 발견할 때면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에게 더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숲에서 길을 잃은 무민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오고 자신의 모험담과 함께 끝내 보물을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엄마가 무민을 꼭 끌어안고서 다정하게 하는 말. 직접 찾아 보시라. 스포라 쓰지 않겠다.^^ 정서 지능이 높은 아이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이 무민 시리즈는 무조건 읽기를 권한다.  데이빗처럼 어디로 튈지 몰라 뒤꽁무니를 졸졸졸 따라다녀야 했던 우리집 말썽쟁이는 무민처럼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어린이로 변했다. 

ㅡ 엄마, 검도 동생이 놀이터에서 더 놀고 싶은데 못 논다고 막 울었어요.

ㅡ 어머, 그랬구나. 동생이 많이 속상했나 보네. 

ㅡ 네에.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해줬어요.

ㅡ 으응, 뭐라고?

ㅡ 나도 그 마음 이해한다고!​ (캬!!) 


Again, To be continued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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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5-31 09:3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ADHD자체문제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몇년전 어느 수업의 교수님이 수업시간 내내 돌아다니시면서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티칭 스타일이 그러려니 생각했는데, 스타일로 보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왔다 갔다 하시길래..스타일이 강하시다 정도로 느껴졌어요. 그러더니 2번째 수업시간에 얘기하시더고요. 본인 ADHD라고....그렇다고 하셨어요. 추가적인 다른 말씀도 없으셨고, 그렇게 한학기 내내 수업 하셨어요.

행복한책읽기 2021-05-31 13:22   좋아요 3 | URL
저도 ADHD 어른이 있다는 사실을 <리틀 몬스터>를 통해 알게 됐어요. 그 교수님 힘드셨겠어요. 어른들은 대부분 증상 완화를 위해 약을 복용한다고 해요. 일을 해야 하니까요. 학생들이 그 교수님을 어떤 시선으로 보았는지 궁금하네요. 한님은 특이한 강의 스타일로만 보았다니, 다르십니다^^

새파랑 2021-05-31 11: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To be continue~! ADHD 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많이 알게 되었네요.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포용성이 중요한거 같아요~~★

행복한책읽기 2021-05-31 13:30   좋아요 4 | URL
맞습니다. 포용성. ADHD 생각보다 많답니다. 그런 진단을 받는 아동이요. 학년기 될 무렵, 좀 별난 아들 둔 엄마들은 맘이 바빠져 진단 받고 치료 받고, 애 학교 보내놓고 전전긍긍 그래요. 학교에서 전화 오면 벌벌 떨구. 약에 의지하는 경우, 약의 농도를 점점 높이게 되는 불상사도 생겨요. 저는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아이가 순한 양이 되는 경우를 봤어요. 똑똑한 아이가 어떻게 바보가 되는지도요. 공격성은 방향을 조금만 틀어주면 추진력과 지도력으로 바뀔 수 있답니다. 진짜루요.

미미 2021-05-31 11: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다섯째 아이>의 배경이 어느 시대인지가 급 궁금하네요. 당시는 무지로 인해 저런 경향이 있던걸까요? 의사가 저렇다는건...<200년동안의 거짓말>에서도 과거 부조리하고
비논리적인 의학의 실상이 나오거든요. 저는 <무민>킵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5-31 13:36   좋아요 4 | URL
<다섯째 아이> 1988년에 출간됐어요. 레싱의 후기 작품들 중 하나인데. 저도 책 읽다가 1988년에? 것도 영국에서 이랬다고?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저는 미미님이 무민을 킵할 줄 예상했습니다. 저 시리즈 모조리 읽으십시오. 대박 좋습니다. 무민은 꼬마 철학자구요. 맘도 무쟈게 따뜻해요. ^^

scott 2021-05-31 15: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 부모가 아이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 이 때 경험된 자극들이 몸 안에 저장돼 자기를 통해서나 타인을 통해 외부로 발현될 수 있다는 주장]
이 말씀에 동감!!
시선 맞추는거 엄청 중요!!
그런데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시선 맞추는거(선생님들) 싫어하게 되지만
부모님은 다르죠 ㅎㅎ!!
행복한 책읽기님은 아이들에게 따스한 눈빛으로 시선 맞춰주실것 같습니다
[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어린이]로 성장한 아들!
장하고 기특하고
행복한 책읽기님!의 사랑의 힘!!໒( ♥ ◡ ♥ )७

행복한책읽기 2021-05-31 17: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히히히. scott님 격려는 언제는 힘을 솟게 합니다. 근데 애들이 커갈수록 따스한 눈빛, 이거 보내기 어렵습니다. 관계 재정립이 필요한데, 애들보다 부모가 더 못하는 것 같아요. ^^;;;

붕붕툐툐 2021-05-31 21: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승욱님 책 읽고 너무 좋았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행복한책읽기님 아들 넘 멋져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엄마한테 매 맞았어도 항상 약을 발라주시던 그 모습만 진하게 남아 있네요~ 따뜻한 눈빛 많이 많이 보내주세요~ 전 개인적으로 ADHD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6-03 09:01   좋아요 0 | URL
와. 툐툐님. 이승욱님 아는 플친 만나니 겁나 좋아요. 저는 이분 넘 좋아해서 독서 모임에도 참여했어요. 아. 때리고 약 발라주는, 저도 그랬던 맘 중 한 명입니다.ㅠ 툐툐님 얘길 들으니 우리 애들도 맞은 기억보다 약손 엄마를 더 기억해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저는 ADHD는 의문부호를 달고 노려보는 편입니다^^

희선 2021-06-03 0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 보고 그러면 안 될 텐데 생각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ADHD라고 다 약을 먹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어릴 때는 다 여기저기 어지럽히고 정신없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어땠는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부모가 그 모습 그대로 보고 기다려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다 장애가 있다면 그것도 받아들이면 좋겠지요 말은 쉬워도 쉽지 않은 일이겠습니다 어떤 아이든 부모가 마음을 쓰면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6-03 09:04   좋아요 2 | URL
제가 아는 한 의사들은 대개 약을 권해요. ㅠㅠ <그 모습 그대로 보고 기다려주기> 희선님, 맞아요 그게 첫번째구요. 숲처럼 가꾸어주려면 개입도 필요해요. 적절한 개입이요. 이게 어렵답니다^^

초딩 2021-06-04 09: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응시에 의해 조각된다
이 아침 울림을 주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다섯 째 아이는 다시 읽고 싶음으로 지정해 순위를 높여 봅니다 :-)
저의 시선이 어땠는지 돌아보게 되는군요

행복한책읽기 2021-06-05 00:31   좋아요 1 | URL
저 말 참 좋죠. 가슴에 새기고서 제 눈길이 어떤가 살핀답니다. 얼굴에서 숨길 수 없는 부위가 눈이라잖아요. 다섯째아이는, 문제작입니다. 토론의 여지가 많은^^

scott 2021-06-04 20: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책읽기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
주말 멋지게 보내세요 ^ㅅ^

행복한책읽기 2021-06-05 00:28   좋아요 2 | URL
감사해요. scott님 자극을 많이 주네요 ㅋ 주말 평안하게^^

새파랑 2021-06-04 21: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책읽기님 축!하! 드려요 ^^

행복한책읽기 2021-06-05 00:28   좋아요 2 | URL
감사감사. 새파랑님 따라잡진 않겠습니다. 엄두가 안나서 ㅋ

초딩 2021-06-04 22: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아 그리고 행복한책읽기님 5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20210527 #시라는별 40 

도움받는 기분 
- 백은선 

나는 네게 시를 읽어준다. 제목은 학교야. 이렇게 시작해. 학교에 가면 책상이 없었다. 책상을 찾아 다녔다. 어떤 날은 화장실에서, 어떤 날은 화단에서 책상을 찾았다. 책상에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씨발년 죽어. 이런 시야. 너는 음, 소설 같은데 하고 말한다. 나는 빨간불이 켜진 교차로에 서서, 그건 정말 있던 일이야. 그래? 그래서 서사적인가 봐. 네가 말한다.

다시 학교를 읽어본다. 네게 읽어주지 못한 뒷부분도 읽는다. 매일 혼자 벤치에 앉아 있던 얘기,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해주세요. 종말이 오게 해주세요. 빌고 빈 얘기. 아침이 오는 게 싫어 밤새 깨어 있던 얘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로 끝나는 마지막 문장까지.

너희가 보낸 발신자 없는 문자를 받을 때마다 미칠 것처럼 무서웠다. #죽어. 죽어. 죽어.# 문자들. 책상을 찾아 교실 맨 뒤에 놓고 엎드려 있으면, 너희는 키득거리면서 웃었지. 미친년 밤마다 한강에 가서 서 있는데, 그러면 폭주족들이 태우고 다니다가 돌아가면서 한대, 손가락질하면서 까르르 웃었지.

내가 스무 살이 되어 처음 데이트를 했을 때, 너희는 뒤 테이블에 앉아 있었지. 너희는 크게 다 들리게 욕을 했지. 애인은 나를 창피해했다. 나는 슬프고 무섭고 화가 났어.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어. 왜.

나에게만 다른 중력이 작용했어. 세계가 이렇게 파랗고 무겁고 사람이라는 것이 이렇게 악의로 가득 찰 수 있다는 게, 이상했어. 그치. 봉인된 검은 상자들이 내 안에 쌓여. 그 안에 기억들이 켜켜이 썩고 부서지고 지독한 냄새를 풍겨. 어떨 때 나는 단지 상자들로 이루어진 부패 덩어리지.

참 이상하다 그치. 이 시는 발표하지 못할 거야. 나는 자꾸만 중학교 때로 돌아가 그때를 생각한다. 빈집에 돌아오면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브라운 신부 시리즈를 읽고 또 읽었다. 영스트리트 스위트뮤직박스 고스트스테이션 고릴라디오 끝날 때까지 라디오를 들었다.

사물함 뒤에서 머리카락이 몽땅 잘렸을 때 

가윗날이 귀 끝을 스칠 때 차가움과 공포 

계속 걷다가 걷다가 끝없이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던 순간. 그렇게 무언가를 건너고 다른 사람이 된다면 어떨까, 상상하던 오후의 빛, 칼처럼 꽂혀 있다. 마음.

왜. 너희에게 주고 싶던 한마디.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쓴다. 읽어봐. 기억 나? 책상을 찾아 헤매던 찢긴 그림자. 물에 젖은 여자애. 비명처럼 가벼운 날들.

나는 어쩌면 너를 만나 이것을 다시 읽어줄 거야. 응, 골목을 헤매는 생쥐 같은 심정으로 전부 다시 쓸 거야. 

하얀 얼굴과 초록. 정적 속에서 일어나던 살인 사건. 그걸 해결하는 늙은 신부. 펄럭이는 커튼, 가느다란 기도 소리, 피가 빠져나간 몸의 형상. 종이를 펼쳐 적었지. 먼 미래는 없고 기적만 있는 과거들과 표현할 수 없는 길들. 보도블럭의 금들 회색 붉은색 건너뛰며 걷고, 비행기가
날아가는 하늘을 멍하니 보면서 선 캡을 고쳐 쓰며 나는 많은 친구야. 지하철에 앉아 버스 정류장에 앉아 꾸벅꾸벅 졸면 매번 새로운 꿈. 매번 똑같은 꿈. 무지와 기억을 탓하며. 조금씩 더 어려졌지.

우물에 대해 
들판 한가운데 놓인 
우물에 대해 
자정에 우물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달이 들어 있고 
가늠할 수 없는 찬란과 어둠이 함께 흔들린다 

이계의 창처럼 숨 막히게 아름답지 

서로 마주 보는 기쁜 마음 

모두 죽게 될 거야 


백은선 시인과 처음 만났다. <<도움받는 기분>>은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라고 한다. 시인의 출생년도를 보고 받은 신선한 느낌 하나. 독자인 나와 거의 20년의 나이 차이가 나는데도 저자가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라는 것. 그렇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것. 어머나. 그런 새삼스런 깨달음에 <도움받는 기분>의 마지막 행 ˝모두 죽게 될 거야˝가 내게는 ˝계속 늙게 될 거야˝로 읽혔다. 오마나.

백은선 시인은 1987년생이다. 이 시집은 저자의 첫 시집 <<가능세계>>가 출간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씌어졌다. 시인의 나이 서른부터 서른 중반까지다. 수록작이 총 53편에 불과한데, 페이지 수는 해설을 제외하고 무려 255페이지. 이 시집은 단 네 줄인 <퍼펙트 블루> 를 제외하고 모든 시가 길다. 긴 이유는 ˝소설˝ 같고 ˝서사적˝이기 때문이다.

이 시집의 전체적인 느낌은 시로 쓴 고발서 같다. 시인은 따질 것이 많고 할 말이 많다. 이제까지는 꾹꾹 누르고 꼭꼭 숨겨 놓고 살았지만 더는 그리 살고 싶지도, 살지도 않겠노라 의지를 표명하듯 ˝씨발년˝ 같은 기억들을 소환한다. 그 기억들은 ˝가윗날이 귀 끝을 스칠 때˝처럼
차갑고 공포스럽다. 그 기억들은 스무 살 성인이 된 내 뒤를 졸졸졸 쫓아다니며 내 마음을 무너뜨린다. 그렇게 ˝슬프고 무섭고 화가˝ 나는 기억을 시인은 왜 불러들일까. 아니. 이런 기억들은 대개가 제 발로 기어들어 온다.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어 당사자를 약 올리듯 괴롭힌다. 이놈의 거머리들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고, 미쳐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든다. 그런 방문이 잦아질 때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너도 죽고 나도 죽을 것인지, 너도 살고 나도 살 것인지. 시인은 그 기억들과 함께 살 길을 모색했다. ˝죽지 않고 살아서˝ 쓰는 길을. 그 길이 가시밭길이고 방향을 모르겠는 길이어도 어떻게든 쓰고 말 거라고 시인은 다부지게 외친다.

˝골목을 헤매는 생쥐 같은 심정으로 전부 다시 쓸 거야.˝

모든 고여 있는 것은 썩기 마련이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백은선 시인은 ˝봉인된 검은 상자˝에 들어 있는 기억들, ˝썩고 부서지고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기억들. 그 부패 덩어리들을 시로 쓴 이야기로 풀어 헤치고 있다. 기억 상실에 절대 걸리지 않는 기억의 응어리를 쪼개고 부수고 흐트려 놓는다. 그런 다음 우물 속 달을 내려다보듯 그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어느 순간 ˝가늠할 수 없는 찬란과 어둠이 함께˝ 흔들리며
˝숨 막히˝는 아름다움과 ˝서로 마주 보는 기쁜 마음˝이 찾아든다. 그러면 ˝무언가를 건너고 다른 사람이 된다˝는 느낌에 젖을 수 있다. 기억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그 느낌이 ‘도움받는 기분‘이 아니고 무엇일까. 

사진은 보름 전날밤과 보름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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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5-27 12: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학폭의 중력이 상당했던것 같네요. 당사자에겐 상자에서 꺼내는 것 부터가 고통이었을텐데 써 내면서 시인에게 치유의 글 쓰기가 되었겠어요. 여기에 마지막 사진의 조합이 놀랍습니다! 보름달. 역시 직접 찍으신거죠?물에 비친 달까지 으아...작품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27 17:21   좋아요 3 | URL
그랬나봐요. 저자 자신과 타인의 경험들을 다 버무린 듯해요. 시집 제목을 <나는 고발한다>라고 하고 싶은^^;; 물에 비친 달처럼 보이는 것은, 가로등이에요. 저도 달처럼 보여 깜놀했다는. 시랑 상관없이 찍었건만, 이런 조합이 나올 줄이야. 산책과 시의 중력인가 봅니다. ^^

scott 2021-05-27 16: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서로 마주 보는 기쁜 마음

모두 죽게 될 거야]
학폭에 멍든 청춘들 ㅜ.ㅜ
얼굴과 표정없는 SNS의 폭력은 넘쳐 나고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 시대에 ,,,,
서로 마주 보는 기쁨 조차 모를것 같습니다.
오늘 사진은 미루야마 겐지 작품 속 달빛을 닮았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05-27 17:26   좋아요 4 | URL
코로나 어서 끝났음 좋겠어요. 그래도 올해는 작년보다 학교 가는 날이 많아 마주 보긴 하는데. 친구들끼리 접촉을 못해서. ㅠㅠ
마주 보고 마주 잡아야 기쁨이 더해지건만. 그죠.
학폭 없는 교실을 꿈꿉니다. 그런 교실 만들어 가는 분들이 더 많다고 저는 믿어요^^

새파랑 2021-05-27 17: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시를 읽는데 상당히 서늘한 기분이 드네요. 상처와 분노가 느껴집니다. 왠지 달 사진도 무섭고..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게 놀랍고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28 10:09   좋아요 1 | URL
어머나. 달사진도 무서워 보여요? 시의 내용이 사진 분위기까지 이어졌나 봐요. 네. 백은선 시인은 화법이 꽤 직설적이네요. 시원한 맛이 있다는^^;;

붕붕툐툐 2021-05-27 18: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서사적인데 짧아서 학생들도 잘 읽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좋은 시 소개 감사합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28 10:11   좋아요 3 | URL
네네. 이 시집은 십이삼십대에게 추천하고프더라구요. 학생들 반응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희선 2021-05-28 01: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를 보면서 이건 시인 이야기일까 하는 생각을 했네요 아주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겠습니다 이 시집 나온 거 보고 사서 볼까 생각하다 사야지 하고 아직 못 샀습니다 이달이 가기 전에 살지도...

보름달 보셨군요 저는 보름이 되기 전에 봤어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5-28 10:13   좋아요 3 | URL
희선님 좋아하실 것 같아요. 희선님 문체랑 좀 닮은 면도 있답니다. 읽으시거든 느낀점 공유해주시와요.^^

얄라알라북사랑 2021-05-28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로 쓴 고발서˝ 라는 말씀에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29 10:13   좋아요 0 | URL
고발이 많습니다. 오늘의시로 올리기 힘들게 길고도 긴 시들이 많네요.^^

2021-05-28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31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31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24 #시라는별 39 

설탕길 
- 허수경 

늙은 아내를 치매 요양원으로 보내고 
발자국을 깊이 묻으며 노인은 노상에서 울고 있다 
발자국에 오목하게 고인 것은 
여름을 먹어치우고 
잠이 든 초록 

가지 못하는 길은 
사레가 들려 
노인의 목덜미를 잡고 있다 

내가 너를 밀어내었느냐 , 
아니면 네가 나를 집어삼켰느냐 
아무도 모르게 스윽 나가서 
저렇게 설설 끓고 있는 설탕길을 걷느냐 

노인은 알 수 없는 나나들 속에서는 
늙은 아내가 널려 있는 빨랫줄 위로 눈이 내린다고 했다 

당신의 해골 위에 걸어둔 순금의 눈들이
휘날리는 나라에서 
이렇게 사라지는 것이 이상하지만은 않아서 
오래된 신발을 벗으며 
여름에 깃든 어둠은 오한에 떨며 운다 


허수경 시인의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를 거의 다 읽었다. 시집의 전체적인 느낌은 쓸쓸함, 서러움, 서글픔, 허무함 그럼에도 살아냄이다.

<설탕길>은 첫 연과 둘째 연에 ˝목덜미˝가 잡혀 읽어 내려갔는데, ˝설설 끓고 있는 설탕길˝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알 길이 없어 그만 ˝사레가˝ 들렸다. 허수경 시인은 이 시집에서 줄곧 소통의 불가능을 이야기한다. 나란 사람은 ˝다만 나여서˝(<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고독하고, 그렇기에 나와 너 사이엔 어떻게 해도 좁혀지지 않는 간격이 존재한다.

˝늙은 아내를 치매 요양원˝에 놓고 오는 노인의 발걸음은 무겁다. 미우나 고우나 몇십 년을 동고동락한 사이였으니, 늙어도 아파도 끝까지 곁에 두고 살고픈 맘이 왜 없었을까. 다만 그러기 힘들었을 테지. 너무도 힘에 부쳤을 테지. 아내를 거기 그렇게 두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으면 ˝여름을 먹어치우고 / 잠이 든 초록˝이 발자국에 고일까.

늙은 아내가 가고 있는 길은 노인이 ˝가지 못하는 길˝이고 ˝알 수 없는 나날˝이다. 늙은 아내의 눈에 보이는 ˝빨랫줄 위로˝ 내리는 눈은 노인의 눈엔 보이지 않는다. 결코 메워질 수 없는 그 간격,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그 세계 앞에서 노인은 자꾸만 목이 메여 눈물을 삼키다
˝사레가˝ 들린다. 아내는 기억을 잃어가다 끝내는 사라질 것이고, 노인 역시 언제고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눈처럼 휘날리다 녹아 없어질 생은 ˝오한에 떨며˝ 울게 만든다.

엄마가 계신 요양원에 날마다 치매 아내를 보러 오는 70대 어르신이 있었다. 요양원은 경기도 양주 장흥. 어르신이 사는 곳은 경기도 남양주. 승용차가 아닌 대중교통(지하철과 버스)을 이용해 왕복 네 시간 거리였다. 어르신은 점심 시간에 맞춰 요양원에 도착해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고 한 시간 넘게 말없는 아내 곁을 지키다 집으로 돌아가셨다. 엄마를 보러 가는 날이면 거의 어김없이 어르신이 보게 돼 어느 날 내가 물었다.
이렇게 날마다 그 먼 길을 오시는 게 힘들지 않으시냐고. 어르신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에서 돌보던 때에 비하면 전혀 안 힘들어요. (어르신은 늘 존대어를 썼다) 내가 다리 성해서 날마다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아내는 날 못 알아보고 내가 다녀갈 줄도 모르지만, 그게 어떤 때는 마음이 아프지만, 괜찮아, 내가 알아보고, 내가 기억하면 되지, 내가 오래도록 기억해야지 하고 생각한답니다. 그러면 다리에 힘이 생겨요.˝

어르신의 답변 중 나를 가장 뭉클하게 했던 말은 ˝그러면 다리에 힘이 생겨요˝였다. 아! 눈과 가슴이 동시에 뜨끈해졌다. 코로나 19가 터진 이후 어르신은 날마다 의식처럼 행하던 아내 만나러 가기를 못하시지만, 그 날을 위해 열심히 다리 운동을 하고 계실 것이다.

인간이란 언제나 기별의 기척일 뿐이라서 
누구에게든 
누구를 위해서든
(<빙하기의 역> 중)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이도 나눌 수 있는 건 고작 ˝기별의 기척˝뿐이다. 그러나 잠깐에 불과한 ˝기별˝이어도 그 잠깐이 불가능의 가능을 꿈꾸게 하는 소통의 시간이 아니겠는가. 그런 꿈이 실어주는 것이 다리의 힘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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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24 07: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책읽기님 시 보니까 좋네요^^ 근데 오늘 시는 왠지 슬프네요. 할아버지의 이야기와 사연은 멋지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ㅜㅜ

행복한책읽기 2021-05-24 07:52   좋아요 3 | URL
좀 바쁜일이 생겨서 북플에 들어오지 못했어요. 저도 시를 읽기만 하고 글을 간만에 썼네요. ㅋ 허수경 시인 시들은 대체로 슬퍼요. 제 느낌은 그렇답니다. 어르신 이야긴, 뭉클하죠. 조용한 씩씩함이 무엇인지 보여주신 분이셨어요. 배우고 싶은^^

쎄인트saint 2021-05-24 2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걸어보고 싶은 길입니다.

scott 2021-05-25 0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중교통(지하철과 버스)을 이용해 왕복 네 시간 거리였다. 어르신은 점심 시간에 맞춰 요양원에 도착해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고 한 시간 넘게 말없는 아내 곁을 지키다 집으로 돌아가셨다]
우와 이렇게 아내를 극진히 보살핀 70대 어르신이 계셨다니 믿기 힘들정도로 가슴이 아픕니다
제가 자주 가는 병원에서 항상 목격하는건 아내에게 온갖 짜증과 신경질을 부리는 폐악한 어르신들을 봐요, 종합 병원-안과-내과-이빈후과 등등 곳곳마다 못됨 성질을 부리는 어르신들이 !!!

시만큼 행복한 책읽기님의 산문을 좋아하는 1人
새벽 포스팅 올라오자 마자 댓글 단거
짠돌이 알라딘이 저장 안함
사라짐 . !!( ๑>ω•́ )۶

희선 2021-05-25 0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설탕길은 어떤 길일지... 설설 끓는 설탕길을 걸으면 발이 데겠습니다 시도 슬프지만 행복한책읽기 님이 만나신 분 이야기도 슬프네요 그걸 슬프다고 하면 안 되겠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요양원에 자주 다니시지 못해서 마음이 안 좋으실 듯합니다 그분 다리 힘 기르고 있으시겠지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희선
 












20210518 #시라는별 38 


아아 광주여, 우리 나라의 십자가여

- 김준태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아아,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리고

때로는 무덤을 뒤집어쓸지언정

아아, 광주여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아아, 온몸에 상처뿐인

죽음뿐인 하느님의 아들이여

정말 우리는 죽어버렸나

더 이상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없이

더 이상 우리들의 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이 죽어버렸나

정말 우리들은 아주 죽어버렸나

충장로에서 금남로에서

화정동에서 산수동에서 용봉동에서

지원동에서 양동에서 계림동에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

아아, 우리들의 피와 살덩이를

삼키고 불어오는 바람이여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이여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나라의 하느님 아들이여

예수는 한 번 죽고

한 번 부활하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백 번을 죽고도

몇백 번을 부활할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살아나는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튼튼하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아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뼈와 뼈를 맞대고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아아,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맞추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져 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 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김준태 시인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1980년 5월의 참상을 처음으로 써서 5.18 민주화운동을 전세계에 알린 시이다. 작년 11월에 올린 이 시를 다시 올린다. 

1980년 6월 1일. 광주 전남고 독일어 교사였던 김준태 시인은 전남매일신문 편집국장 대리로 있던 문순태 소설가로부터 광주의 통곡을 시로 써 달라는 청을 받는다. 시인은 아내와 두 아이를 내보내고 단칸 셋방에서 109행의 시를 일필휘지로 썼다고 한다. 집필 시간이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고.

시는 1980년 6월 2일 전남매일신문 제1면에 실렸다. 이 시가 발표된 후 시인이 겪었을 고초를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25일간의 도피 생활 끝에 체포되어 취조를 받았고 교사직을 버려야 했으며 이후 학원 강사와 신문사 기자로 가족을 부양했다. 또한 '5월광주동지회'를 비롯 5.18광주와 관련된 모임과 활동을 이어갔다. ​

“나는 손만 빌려줬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누가 썼느냐, 내 몸 속에 5월에 죽은 사람들이 들어와 썼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해원(解寃)을 해줘야지. 39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경향신문 20190525 )

https://news.v.daum.net/v/20190525180019424​

대학 신입생 초입에 내가 알던 대한민국이 아닌 대한민국을 알게 만든 세 사건이 있었다. 제주 4.3 사건, 5.18 광주항쟁 그리고 전태일 분신. 몰라서 부끄러웠고, 모르게 해서 분노했다. 

202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가수 안치환은 김준태 시인이 쓴 '노래'라는 시를 빌어 다시 한 번 광주의 넋들을 기렸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분명 있다. 

“봄이 오면 먼 산의 바람/ 먼 산의 구름, 먼 산의 꽃/ 모두 우리 님이어라/ 모두 우리 가슴이어라/ 봄이 오면 먼 벌판의 불빛/ 먼 벌판의 뼈, 먼 벌판의 나무/ 모두 우리 아픔이어라/ 모두 우리 노래이어라.” (김준태 '노래') 

2014년에 한스미디어에서 김준태 시인의 영역 시집이, 2018년에는 일본어판 시집이 출간되었다. 2021년 5월 이정국 감독은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에서 5.18을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미얀마에서는 우리의 5.18 같은 민주화 투쟁이 1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기도밖에 할 수 없는 것이 무력하지만, 나는 믿는다. 미얀마 시민들이 결국은 이겨낼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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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18 13: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이 5월18일이네요. 그날의 희생이 이렇게 잊혀지지 않고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scott 2021-05-18 17: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봄이 오면 먼 산의 바람/ 먼 산의 구름, 먼 산의 꽃/ 모두 우리 님이어라/ 모두 우리 가슴이어라/ 봄이 오면 먼 벌판의 불빛/ 먼 벌판의 뼈, 먼 벌판의 나무/ 모두 우리 아픔이어라/ 모두 우리 노래이어라
이 노래 들으면서
오늘 이땅에서 힘없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간 이들
잊지 말기, 영원히 ㅠ.ㅠ

희선 2021-05-19 0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해로 마흔한해라니... 시간이 그렇게 흘렀네요 그때 이 시를 써서 시인이 참 힘들었겠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미얀마 길어지는군요 좋아져야 할 텐데, 이런 생각밖에 못하겠습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