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쬐기 창비시선 470
조온윤 지음 / 창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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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1 #시라는별 82 

계절 산책 
- 조온윤 

여름에는 그늘 아래만 따라 걷다가 
겨울이면 볕뉘를 찾아 두리번거리지 

운동장에 선을 긋고 오엑스 퀴즈를 푸는 것처럼 
사람들은 우르르 마음을 바꾸며 살아가네 

매일 다른 기분이 되어 사나보다 
매일 다른 노래가 되어 사나보다 
구름은 끄덕이며 매일 다른 하늘을 보여주지 

도무지 싫지가 않지 이런 변덕과 회복 
창문은 내키는 쪽으로만 고개를 내밀지만 
언제든지 열릴 수만 있다면 

누군가는 여름 정장을 입고 
누군가는 모직 코트에 부츠를 신고 
거리마다 달라지는 계절을 볼 수도 있겠지 

아직 아무도 모르게 고여 있는 
빛 웅덩이를 만나면 

누군가는 거기 멈춰 더운 땀을 말리고 
누군가는 차가워진 발등을
씻어보기도 하겠지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젊은 시인을 만났다. 조 온 윤. 따뜻할 온(溫), 윤택할 윤(潤). 溫潤하다의 또 다른 의미는 ‘마음씨가 따뜻하고 인정미가 있다‘이다. 이 시집은 시인의 이름과 시집의 제목을 빼다박은 듯 빛과 따스함으로 넘쳐난다. 나희덕 시인이 해설을 썼다는 이유로 주저 없이 누른 클릭은 내게 봄날의 빛 웅덩이˝를 한아름 선사해 주었다.

조온윤은 광주에서 태어나 201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현재는 문학동인 ‘공통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햇볕 쬐기》는 시인의 첫 시집이다. ​

[너희가 슬픔을 주었구나 
나는 슬픔을 어르는 손길을 줄게]
- 시인의 말 

슬픔이 없는 세상, 슬픔이 없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너희는 곧 나다. 내 슬픔을 알아봐 주는 것만도 울컥한데, 내 슬픔을 달래주러 손길까지 내밀어 주겠다 하니 울컥을 넘어 뭉클했다. 조온윤의 시는 지면을 빼곡히 채운 긴 호흡의 시들이 대부분인데,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창비 서포터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도 모르게 시 속에 서사를 집어넣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떤 화자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그 말을 발화하는지, 또 어떤 모습으로 끝맺게 되는지를요. 시 속의 화자가 첫 문장에서는 슬퍼하고 있다 하더라도 마지막행에 도챡해서는 작게라도 변했으면 하는 바람이 시를 쓸 때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 굴곡을 시 한편에 고스란히 집어넣기 위해 호흡도 자연스레 길어지는 듯하고요.˝

『햇볕 쬐기』는 슬퍼하는 이들이 시를 통해 어떻게든 위로 받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긴 시집이다. 마음이 추운 이들에게 온기가 봄볕처럼 스며들기를 바라는 시집이다. 세상살이에 절뚝거리는 이들을 부축해 주고 싶어 하는 시집이다.

[모두가 조금씩만 아파주면 
한 사람은 아프지 않을 수도 있지 않냐고]
- <원주율> 중 

[도마뱀이 말했다 
무족한 것은 
넘어지지 않고 살아남아 영원하겠지 
하지만 넘어진 이들에게 다가가 
내밀어볼 수 있는 손이 없다면 
영원 따위는 주머니에 넣어두고 꺼내보지 않는 
슬픔일 것 같다]
- <무족영원> 중 

조온윤은 영원히 살 수 있는 무족한 삶보다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손을 가진 부족한 삶이 더 낫다고 말한다. 무족한 삶은 슬픔을 꺼내볼 수조차 없는 서늘한 삶이다. 부족한 삶은, 부족하기에, 부족함을 알아, 서로 손 내밀어 부축하고 눈물 닦아 주게 되는 따스한 삶이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문장은 아름답지 않아도 된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 <십오행> 중 

말하지만, 나는 오래 머물게 되는 아름다운 문장을 많이 만났고 시인의 마음씀이 앞으로 어떤 시구로 탄생할지 기대가 되었다. 나는 새로운 봄날이 시작될 즈음부터 이 시집을 들고 다니며 봄빛과 봄볕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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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4-11 0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넘어지지 않는 도마뱀처럼
따스한 햇살이 빛나는 4월 봄
책읽기님 건강하게 행복하게 😊
오늘 하루 무족한 영원 꿈꿔붑니다🤗

얄라알라 2022-04-11 15: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쁘신 와중에도 시집을, 더군다나 따뜻한 조온윤님의 시집을 놓지 않고 읽으시는 행복한책읽기님^^
溫潤
모두 물 수 변 한자네요. 꽃들 피어오르는 4월에 더 없이 필요한 물과 온기,
소개해주신 시뿐 아니라 행복한책읽기님이 직접 찍으신 사진에서 얻고 갑니다

책읽는나무 2022-04-11 2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뻐요~예쁜 봄입니다.
꽃잎이 꼭 손으로 곱게 접어 놓은 것 같아요.^^
조온윤.
정말 이름도 이쁘군요.
그러고보니 울딸 이름에도 윤택할 윤자가 들어갑니다. 시인 덕에 울 아이의 이름 뜻도 좋게 들리는 것 같아요.^^

희선 2022-04-12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름이 좋네요 그렇게 살라고 지어준 이름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시에 담긴 마음이 따듯하고 인정미가 있겠네요 행복한책읽기 님 남은 봄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희선
 

20220322 #시라는별 81 

참 우습다 
- 최승자 

작년 어느 날 
길거리에 버려진 신문지에서 
내 나이가 56세라는 것을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아파서 
그냥 병(病)과 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 
그동안은 나는 늘 사십대였다 

참 우습다 
내가 57세라니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 
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 


최승자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은  2009년 출간된『연인들』이후 시인이 11년 만에 발표한 시집이다. 그 침묵의 11년간, 시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랜만에 詩集을 펴낸다. 
오랫동안 아팠다. 
이제 비로소 깨어나는 기분이다.
- 시인의 말(2010년 1월) 

˝아파서 / 그냥 ​병(病)과˝ 노는 사이 사십대였던 시인은 오십대가 되었다. 담배 한 대 피우는 사이 십 년이 흘렀다고 시인은 털어놓는다. 

담대 한 대 피우며
한 십 년이 흘렀다
그동안 흐른 것은
대서양도 아니었고
태평양도 아니었다

다만 십 년이라는 시간 속을
담배 한 대 길이의 시간 속을
새 한 마리가 폴짝
건너뛰었을 뿐이었다
- <담배 한 대 길이의 시간 속을> 중

˝쓸쓸해서 머나먼˝ 그 길고도 짧은 시간 동안 시인은 이사를 준비했던가 보다. 절망의 나락으로 치닫던 선언적 시구들이 조금 순해졌고, 자기 속으로만 파고들던 응시를 세상 밖으로 조금 돌렸다.

내 詩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이다
오랫동안 내 詩밭은 황폐했었다
너무 짙은 어둠, 너무 굳어버린 어둠 
이젠 좀 느리고 하늘거리는
포오란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 
그러나 이사 갈 집이 
어떤 집일런지는 나도 잘 모르다 
너무 시장 거리도 아니고 
너무 산기슭도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예는, 다른, 다른, 다, 다른, 
꽃밭이 아닌 어떤 풀밭으로 
이사 가고 싶다 
- <내 詩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 전문

˝꽃밭이 아닌 어떤 풀밭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시인이 한 작은 행동은 어떻게든 시를 쓰는 것이었다. 

더더욱 못 쓰겠다 하기 전에
더더욱 써보자
무엇을 위하여
아무래도 좋다
- <더더욱 못 쓰겠다 하기 전에> 중

˝어둠만이 들끓고˝ ˝길 끊어진 시간 속에서˝(<나는 기억하고 있다> 중) 시인은 오래 침잠해 있다 간간이 시를 쓰다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죽음도 삶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삶 뒤에 또 삶이 있다는 것이었다 
죽음 뒤에 또 죽음이 있다는 것이었다 
- <중요한 것은> 중 

삶과 죽음이, 순간과 영원이 순환하는 세상에서 우리 인간은 사막 한가운데서 ˝별빛 아래 홀로 가는 낙타˝이다.

누구나 별 아래서 잠든다
길을 묻다 지쳐서
길 위에서 잠든다

누구나 별 아래서 잠든다
죽음을 죽음으로 일깨우면서
- <홀로 가는 낙타 하나> 중 

결국 별 아래서 잠들고 말 찰나의 인생이지만, 어떤 순간은 우리가 영원을 산다는 느낌을 준다. 바로 이렇게.

병원 앞 컴퓨터실
고요한 실내
책상 앞에서가 내 인생의
가장 큰 천국이었음을 깨닫는다
- <책상 앞에서> 중

그가 읽는 詩의 행간들 속에서 
고요가 피어오릅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時間의 무상함 
- <어떤 풍경> 중 

황홀합니다
내가 시집을 쓰고 있다는
꿈을 꾸고 있는 중입니다
- <바가지 이야기> 중

코로나19 양성자가 되었다. 오미크론은 차례를 기다리면 번호표를 준다더니, 딸과 아들이 번호표를 받더니 나까지 얼결에 받게 되었다. 번호표는 계시처럼 온다. 나의 계시는 약간의 목 따가움과 수상한 기운이었다. 사흘을 앓았다. 끙끙. 고열은 없었으나 미간이 기분 나쁘게 지끈거렸고 침을 삼키기 힘들 만큼 목이 따가웠으며 뭐라 말할 수 없이 온몸이 아팠다. 경험자들의 말이 늘 옳은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적중했다. ˝한 사흘 아프고 나면 좋아져.˝ 진짜로 그랬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천국˝은 바로 책 앞. 내 삶의 ˝고요가 피어오˝르는 때는 책을 읽는 순간. 나흘째 되는 날, 나는 최승자의 『쓸쓸해서 머나먼』을 다시 펼쳐 읽었다. 아프면 사람들이 멀어진다. 쓸쓸해진다. 쓸쓸해서 더 멀어지고, 더 멀어져 더 쓸쓸해진다. 나도 너도 누구도 오래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시집은 최승자 시인이 오래고도 지긋지긋한 아픔에서 깨어나려는 꿈틀거림으로 읽혔다. 마지막 시 마지막 연의 ˝황홀합니디˝라는 고백에 숙연한 울컥함이 올라왔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시인이 아이처럼 팔랑거리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날아다니면 좋겠다. 시집을 읽는 동안 나는 ‘황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고요‘에 빠져들 수는 있었다.

<사라진 시간>은 작년에 본 최고의 영화였는데,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머리 위로 둥실 떠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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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22 15: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슈 있는데 ㅠㅠ 최승자 시인의 시들은 저랑 같이 늙으며 공감해주는 거 같아요. 진짜 작가님 아프지 않기를. 행복한 책읽기님도 오미크론으로 며칠 고생하셨군요. 잘 드시고 회복 잘 하시길 바랍니다 ~

행복한책읽기 2022-03-24 18:17   좋아요 2 | URL
격리 해제됐습니다. 넘 좋아서 집을 뛰쳐나가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했답니당~~~^^ 아직 두통이 남아 있지만 괜찮아요. 미니님 회복 기원, 냉큼 주워담아요. 고맙습니다~~^^

scott 2022-03-22 15: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흘 동안 책읽기님 오미크론에 ㅠ.ㅠ 완치 되어도 후유증이 있다고 하니 꼬옥 폐 검사 받으셔야 합니다 비타민과 zinc 꼬옥 챙겨드세요 ^ㅅ^

행복한책읽기 2022-03-24 18:19   좋아요 2 | URL
후유증이 제겐 경미한 두통인 듯해요. 폐 사진도 찍어볼게요. 비타민도 먹고. scott님의 살뜰한 처방에 힘 불끈!!! 고마워요~~~^^

새파랑 2022-03-22 16: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읽기님도 걸리셨군요 ㅋ 저도 걸렸었는데 왠지 동질감이 느껴집니다 ^^ 후유증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행복한책읽기 2022-03-24 23:59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은 많이 안 아팠어요?? 후유증은요?? 읽고 리뷰와 페이퍼 올리는 속도가 변함없는걸 보면, 후유증 따위 없어 보여요^^ 천만 확진자 동지 새파랑님, 우린 이제 여유롭게 살 수 있겠어요. 그죠^^

새파랑 2022-03-25 06:56   좋아요 0 | URL
저도 나름 아프더라구요 ㅋ 사회성 있는걸로 확인했습니다 ㅎㅎ

프레이야 2022-03-22 16: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습니다. 모든 일에는 전조가 있더군요. 지나고 나서 느끼게 되지만. 최승자 시인의 시집 “연인들 “이 불과 얼마전 제게도 무한 위로가 되어서 다른 시집이지만 반갑습니다.

행복한책읽기 2022-03-24 18:27   좋아요 4 | URL
고맙습니다. 최승자 시인 <연인들>을 읽으셨군요. 지는 올해 이분 시집을 차례차례 읽어보려구요. 프레이야님께 무한위로가 되었다니, 또 궁금해지네요. 격려 감사합니다. 봄맞이를 코로나로 한 느낌이어요^^

미미 2022-03-22 17: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최승자 시인의 시집을 저도 사두었는데 얼마전 소리내어 읽다가 그만 눈물이 주룩 나더군요. 마치 흉부외과의사가 직접 심장마사지를 하듯 마음을 직접 마사지당하는 기분이었어요.
책읽기님 천국앞으로 돌아오신것 환영합니다~^^♡

행복한책읽기 2022-03-24 18:32   좋아요 3 | URL
미미님이 사둔 시집은 무엇일까요?? 미미님을 울린 시는 무엇일까요?? 흉부외과의사에게 심장마사지를 받는 느낌이셨다니. 최시인이 들었다면, 정말 기뻐했을 것 같아요. 아프고 나니 날마다 천국입니다. 넘 좋아요~~~^^

미미 2022-03-24 18:38   좋아요 3 | URL
<즐거운 일기>에서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란 시예요! 다시 봐도 울컥해요ㅠㅜ

행복한책읽기 2022-03-25 00:01   좋아요 2 | URL
오호. 저 시 제목은 엄청 들어봤어요. 신경숙 소설 제목이었던거 같은. <즐거운 일기>는 몰랐던시집인데, 미미님 덕에 냉큼 보관함에 넣었어요. 아, 읽을 시집도 자꾸 늘어나는군요. 고마워요~~~^^

희선 2022-03-23 00: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사흘 힘드셨군요 그 시간이 지나가기는 했다 해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행복한책읽기 님뿐 아니라 식구도...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지요 평소와 다름없다 해도...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2-03-24 18:34   좋아요 4 | URL
희선님 혹, 모르니 기억해두세요. 성인의 경우엔, 보통 사흘 아프더라구요. 희선님께는 비껴가기를요. 책은 언제나 최고의 친구이자 도우미에요. 아프니 더 그립더라구요. 고마워요~~~^^

페넬로페 2022-03-23 18: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중.고등학교 시절때는 정말 시간이 안갔는데 요즘은 10년이라는 세월이 후딱입니다.
‘참 우습다
내가 57세라니‘
이런 느낌이 뭔지 알것 같아요^^
책읽기님!
저도 코로나 확진 3일차입니다.
이놈, 소문대로 세네요~~
그래도 몸은 힘들지만 1주일 휴가를 얻은것 같아 그냥 푹 쉬고 있어요.
얼른 쾌차하시길 바래요^^

행복한책읽기 2022-03-24 18:39   좋아요 5 | URL
헉. 페넬로페님 걸리셨군요. 많이 아프지 않으시길요. 휴가 받은 기분으로 즐기시는 이 긍정적 태도, 역쉬 페네로페님이세요. 저는 머리랑 몸이 아파 책 대신 영상을 엄청 보았답니다.^^ 저는 격리 해제 됐구요, 페넬로페님의 쾌차와 해제를 응원할게요. 아. 인후통에 비피더스, 요구르트 짱 좋아요. 경험자들이 알려줬는데, 이걸로 목 통증 이겨냈어요. 로페님 화이링~~~.

얄라알라 2022-03-29 11:34   좋아요 1 | URL
뒤늣게 보았네요.
주변 분들 보니, 2주 뒤에도 몸이 예전같지 않으신 분 있으신 반면
확진 시기에 집에서 쥬스 마시며 밀린 책 보고 즐거운 휴가 보내셨다는 분도 있고...
페넬로페님 어여 쾌차하시고요. 행복한 책읽기님께서도 후유증 없으시길요

페넬로페 2022-03-29 14:18   좋아요 1 | URL
얄라알라님!
감사합니다.
1주일 꽉 채우고 격리해제 되었는데 감기몸살의 끝이 남아있는 느낌입니다.
완전히 나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것 같아요. 그래도 심하지 않아 저도 휴가받은 기분으로 1주일 푹 쉬었습니다^^
 

20220314 #시라는별 80

진짜 이야기 True Stories 
- 마거릿 애트우트 Margaret Atwood 

1
진짜 이야기를 청하지 마라. 
왜 그게 필요한가?

그것은 내가 펼치는 것이거나 
내가 지니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항해하며 지니는 것, 
칼, 푸른 불, 

행운, 여전히 통하는 
몇 마디의 선한 말, 그리고 물결. 

2. 
진짜 이야기는 해변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잃어버렸다, 그것은 내가 결코 

가진 적 없는 어떤 것, 이동하는 빛 
속에서 검은 나뭇가지들이 엉킨 것, 

소금물로 
채워진 흐릿한 
내 발자국, 한 움큼의 
조그마한 뼈들, 이 부엉이의 죽음. 

달, 구겨진 종이, 동전, 
옛 소풍의 반짝임, 

연인들이 모래 속에 
백 년 

전 만든 구멍들, 단서는 없다. 

3
진짜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 속에 있다. 

어지러한 색깔들, 폐기되거나 버려진 
옷더미 같은, 

대리석 위의 마음 같은, 음절 같은, 
도살업자가 버린 것과 같은. 

진짜 이야기는 악랄하고 
다층적이며 결국 

진실하지 않다. 왜 너는 
그것이 필요한가? 진짜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청하지 마라. 


마거릿 애트우드의 『진짜 이야기』를 두 달 전 구매한 뒤 고이 모셔 놓았다가 2주 전부터 뒤적거리기 시작하다 며칠 전 다 보았다. ‘읽었다‘가 아닌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을 거의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난 해 하 다. 꺼이~~~

2020년 12월에『도덕적 혼란』을 읽고 나는 애투우드의 문체에 반해 버렸었다. 당시 100자평에도 썼지만, 글을 읽는 내내 물 위를 거니는 느낌이었다. 찰랑찰랑. 남실남실. 거문고 줄을 타는 느낌, 튕튕튕튕.(그래본 적은 없지만 ^^;;;). 물결 치는 리듬감. 음악 같은 시적 문체. 거리 두기 화법. 무심한 섬세함. 묘한 긴장감. 일상 속 익살까지. 뭐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 연작 소설이었다. 어떻게 이런 글쓰기가 가능할까 신기해서 애트우드의 삶을 엿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애트우드의 창작 활동의 시작은 ‘시‘였다.​

1939년 캐나다에서 태어난 애트우드는 곤충학자인 아버지를 둔 덕에 학교라는 공간의 짜여진 수업보다 캐나다 북부의 산림 지대를 돌아다니며 자연과 책을 벗하며 지냈다. 관찰과 읽기를 바탕으로 여섯 살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애트우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영어 선생님이 이런 말로 제자의 시작 활동을 격려해 주었다고 한다. ˝너의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정말 훌륭한 작품이야.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렴.˝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126쪽) ​

애트우드의 시를 처음 읽어본 외국 독자로서 말하자면, 나는 제대로 이해한 시가 거의 없다. ˝정말 훌륭한 작품˝ 이라고는 아예 못 느꼈다. 내가 느낀 것은 역부족이었다. 번역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배경 지식이 모자란 탓인 듯하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진짜 이야기>는 61편의 시들 중 가장 읽기 편했다. 시인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진짜 이야기란 무엇인가. 진짜라고 믿었던 이야기는 과연 진짜일까. 진짜 이야기가 있기는 한 것일까. 화자가 달라지면 이야기도 달라진다. 이것은 리베카 솔닛도 주목한 지점이다.

˝누가 이야기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는지는 대단히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은 유명한 고전의 서사를 전복하고 주인공이 아닌 주변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새로 쓴 여러권의 문학 작품을 선물하기도 했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35쪽) 

애트우드는 이 시집에서 그런 전복적 이야기를 시화했다. ˝폐기되거나 버려진 옷더미˝ 나 ˝도살업자가 버린 것과 같은˝ 이야기를 찾아내 그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한다. 그들은 돼지, 쥐, 올빼미, 까마귀 같은 짐승들이거나 사이렌, 키르케, 에우리디케, 뱀 여자, 오르페우스,
페르세포네, 트로이의 헬렌 같은 신화 속 인물들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원한다.
나를 화나게 했던 것은 이런 탐욕이 
아니라, 거짓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에게 
당신이 계획한 여행을 위해 
요구한 음식을 주었다. 그러나 당신은 여행을 계획하지 않았고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키르케 / 진흙 시> 중) 

키르케를 마녀로 규정한 것은 누구인가. 그녀가 목소리를 낸다면 뭐라고 항변할까. 이런 의문과 이런 시도는 정말 멋지지 않은가. 애트우드의 시들을 태반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인의 의도만큼은 대충 헤아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나희덕의 『가능주의자』와 함께 재독, 삼독을 할 예정이다. 물론, 지켜질지는 미지수지만. ㅋ

˝역사상 인간이 어딘가에서 이미 한 일만을 이야기 속에 넣는다.˝

이것은 애트우드의 창작 원칙이다. 내가 『도덕적 혼란』을 비롯한 여러 외서에서 느끼는 인간 삶의 어떤 보편성, 그 느낌이 저 원칙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러니까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 도찐개찐이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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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3-14 13: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진짜 이야기‘가 61편의 시 중 가장 편하다~~ 와우^^
시는 정말 어려워요
그런데도 시를 계속 읽어 나가시는 책읽기님, 넘 대단하고요.
마거릿 애트우트의 ‘도덕적 혼란‘을 읽다가 쉬고 있는데 책읽기님의 표현에 넘 공감합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에 따라 문체가 달라지고 리듬이 다르다는 걸 저도 느꼈거든요.
시를 많이 읽으면 글도 닮아가나봐요.
책읽기님의 글에 리듬이 있어요^^

행복한책읽기 2022-03-15 15:36   좋아요 3 | URL
저는요, 뭘 꾸준히 해온 게 없더라구요. 책도 중구난방으로 읽어서리, 시집을 다시 펼쳐든 순간, 아 이건 죽을 때까지 꾸준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 글에 리듬이 있다고 해주시니, 어깨가 으쓱해졌어요. 그런 글을 원하거든요.^^ 페넬로페님 감사감사^^

mini74 2022-03-14 19: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애트우드가 시도 쓰는군요 전 그냥 소설가인줄로만 알았어요 ~ 시가 강렬한 느낌 !! 신화가 담긴 시라 흥미가 막 생깁니다 ~~

행복한책읽기 2022-03-15 15:40   좋아요 3 | URL
그죠. 저도 소설가인줄만 ㅋ 시를 보면요, 애트우드 언니 여전사 같습니다. 똑똑하고 당차고 야물어 보인다는 ㅋ 신화!!! 맞아요, 미니님이라면 저보다 애트우드의 시를 더 잼나게 읽으실 것 같아요. 기대되는걸요^^

희선 2022-03-17 01: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애트우드는 여섯살 때부터 관찰과 읽기를 바탕으로 글을 썼군요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여섯살 때 일 하나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선생님한테 칭찬받은 것도 글을 죽 쓰게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키르케를 안 좋게 쓴 건 남자 작가... 키르케 잘 몰랐는데, 몇달 전에 소설 보고 아주 조금 알았습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2-03-22 13:41   좋아요 2 | URL
희선님 저도 여섯살 때 제가 전혀 기억에 없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니, 애트우드를 움직이게 한 또하나의 동력이었을 거예요. 그죠. 저는 이 시집이 신화 속 인물을 재해석해낸 점이 가장 맘에 들어요. 근데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를 몰라^^;;

얄라알라 2022-03-22 0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물결 치는 리듬감. 음악 같은 시적 문체. 거리 두기 화법. 무심한 섬세함. 묘한 긴장감. 일상 속 익살˝

와, 행복한 책읽기님이 주르르 나열하신 이 표현들, 넘 좋습니다

만약 여기 알라디너 분들 다수가 애트우드처럼 정규 학교교육보다는 캐나다 산림 지대에서 자연과 벗삼으며 성장했다면 어떤 어른기를 맞고 있을까요? 우리 한국 어린이들, 학교와 스크린에 매여 두는 교육 방식은 얼마나 많은 미래의 작가를 지우게 하는 걸까요?^^;; 혼자 넋두리를 하다 갑니다. 항상 행복한 책읽기님과의 오프라인 회동을 꿈꾸고 있습니다 ㅎ

행복한책읽기 2022-03-22 13:44   좋아요 2 | URL
북사랑님 안뇽~~~ 넘 반가워요.^^ 소설은 시 같았는데, 정작 시는 소설 같다는 ㅋㅋ 리듬감이 더 안 느껴졌어요. 원문으로 읽으면 다를까요?? ㅋ 저희는 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보아요~~~^^
 

20220308 #시라는별 79 

곰의 내장 속에서만 
- 나희덕 

괴혈병에 걸리면 더이상 고기를 씹을 수 없게 되고 
북극에서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 

북극에서는 죽어도 썩을 수가 없어서 
유빙들 사이로 떠다니며 영원히 잠들 수 없다지 

죽으러 갈 수 있는 곳은 
북극곰의 내장, 
따뜻한 내장 속에서만 천천히 사라질 수 있을 뿐 

아들은 병든 어머니를 업고 가서 얼음 벌판에 내려놓고 
어머니를 곰에게 먹이로 바치고 
어머니는 어서 가라, 아들에게 손을 흔들고 
아들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고 
언젠가 자신이 묻힐 곰의 캄캄한 내장 속을 생각하고 

이글루 속에서 
이글루 속에서 

아이들은 자라고 
아이들의 이도 자라고 
물개나 바다표범을 사냥하는 법을 배우고 
곰을 잡아 곰고기도 먹지만 
이누이트족이 곰의 내장을 먹지 않는 건 그래서일까 

더운 그것이 어머니의 무덤인 것만 같아서 
아직 그 속에 남아 있는 것만 같아서 


* 실제로는 곰의 내장에 치사량의 고농도 비타민A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학동네시인선 167번째 시집이자 나희덕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 『가능주의자』에서 나희덕이 전하는 ‘시인의 말‘은 묵직하고 뜨끈하다.

어떤 핏기와 허기와 한기가 삶을 둘러싸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벌거벗음에서 왔다.

피. 땀. 눈물.
이 세 가지 체액은 늘 인간을 드나든다.

마음이 기우는 대로
피와 땀과 눈물이 흐르는 대로 가보면
통증과 배고픔과 추위를 느끼는 영혼들 곁이었다.

시는 영원히 그런 존재들의 편이다.

피. 땀. 눈물. 인간을 드나드는 세 가지 체액. 이 시집에 실린 대부분의 시가 이 세 가지 체액의 넘나듦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곰의 내장 속에서>라는 시가 내게는 가장 큰 일렁임으로 다가왔다.

자식은 부모의 피로 태어나고 땀으로 길러지고 눈물로 삼켜진다. 시신이 썩을 수 없는 차디찬 북극. 아들은 괴혈병에 걸린 어미를 업고 곰이 드나드는 얼음 길목에 어미를 내려놓는다. 그래야 어미의 육신이 ˝유빙들 사이로 떠다니˝지 않고 곰의 ˝따뜻한 내장 속에서˝ 서서히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미의 피와 땀과 눈물을 먹고 자란 아들은 어서 가라 손짓하는 어미를, 제 젖줄의 존재를, 돌아보고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아들은 눈물과 한숨과 회한을 삼키며 발길을 돌렸으리라. 그에게는 기다리는 처자식들이 있고, 살아남은 이들은 이들대로 무시로 찾아드는 ˝통증과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며 살아가야 하므로.

곰의 내장에 들어 있는 치사량의 고농도 비타민A. 이누이트족이 곰의 내장을 먹지 않는 건 그것 때문이지만 시인은 그곳이 ˝어머니의 무덤인 것만 같아서, 어미가 ˝아직 그 속에 남아 있는 것만 같아서˝일지 모른다고 해석한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적 풀이.

˝피와 땀과 눈물이 흐르는 대로˝ 가서 ˝통증과 배고픔과 추위를 느끼는 영혼들˝의 편에 서려는 자가 비단 시인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정치인도 그런 이들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자여야 한다고. 그러니 투표는 ˝불가능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일종의 진단 키트가 되어줄 것이다.

저는 가능주의자가 되려 합니다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믿어보려 합니다 
.
.
(중략)
나의 시대, 나의 짐승이여, 
이 이빨과 발톱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찢긴 살과 혈관 속에 남아 있는 
이 핏기를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 것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무언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떤 어둠에 기대어 가능한 일일까요 
어떤 어둠의 빛에 눈멀어야 가능한 일일까요 

세상에, 가능주의자라니, 대체 얼마나 가당찮은 꿈인가요 (<가능주의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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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셀통통 2022-03-08 15: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은 기존에 내가 읽었던 시집과 다르다.

충격이다.



어둡고, 슬프고

우울하고, 고통스럽다.

핏물이 진하고 흥건하게

‘가능주의자’라는 책을 덮는다.

그래서 표지도 시뻘건 피의 색인가???
시인은 현실의 무게를 끝까지 응시하고 기록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인식하는 것 같다.



점점 나빠지는 세상을 향해 문을 닫는 것
여섯째 날의 어둠을 받아들이는 것


어둠을 끝까지 응시하는 것

토리노의 말 중 일부


큰 빛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반딧불이처럼 깜박이며

우리가 닿지 못한 빛과 어둠에 대해

그 어긋남에 대해

말라가는 잉크로나마 써나가려 합니다

가능주의자 중 일부


어둠속에 선명하고

차가움속에 날카롭다.

‘백운에서 다산 생각’ 다만 서정적이다.



머뭇거리는 발등에 동백꽃이

말을 걸듯 투욱, 투욱, 떨어져내리고

그 꽃을 누군가의 마음처럼 받아들고 내려갔다.


벌써 흙이 스며드는 꽃도 있다

흩어진 동백꽃은 밟지 않고 지나기가 쉽지 않았다


행복한책읽기 2022-03-10 23:59   좋아요 2 | URL
몽셀통통님. 이 시집이 님에게 충격을 주었군요. 붉은 표지는 통통님 해석이 맞을 거예요. 피. 땀. 눈물이 섞여도 결국 붉은 색이잖아요. 저는 나희덕 시인을 좋아하는데, 이 시집 읽고 더더 좋아졌어요. 시사성 짙은 내용에 어떻게 이토록 슬프면서 아름다운 서정성을 입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일 한편씩 또 읽고픈 시집이에요.^^ 몽셀통통님이 느낀 충격은 값진 충격일 것 같아요. 왜냐하면 머리를 둔중히, 혹은 강렬히 얻어맞는 경험은 아무때나 할 수 있지 않잖아요. 그 충격은 아마도 책이 선사한 희열! 의 다른 버전일 것 같아요. 책으로 종종 뵈어요~~~^^

mini74 2022-03-08 17: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곰의 내장이 내 어머니의 무덤이라니 ㅠㅠ 자연에 따라 장례풍습은 다르지만 애끓는 마음은 다 같죠. 시인은 역시 시인이군요. 넘 슬퍼요 ㅠㅠ

행복한책읽기 2022-03-11 00:02   좋아요 2 | URL
그죠. 시인은 정말 다르죠. 이 시집에는 애끓는 이야기들이 제법 많아요. 근데 흘려보거나 들으면 안될 이야기들이에요. 정말 강추하고픈 시집이랍니다.^^

희선 2022-03-09 01: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극에서는 그렇게 하는군요 마음이 아프겠습니다 괴혈병은 비타민 C가 모자라서 생기는 병이었군요 오래전에 바다에 나간 사람이 걸린 병... 북극 사람은 사냥한 동물 콩팥과 그 위에 붙은 부신까지 먹어서 괜찮다는 말이 있네요 국민이 흘리는 피와 땀과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인이 많기를 바랍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2-03-11 00:05   좋아요 2 | URL
세상 어디에나 슬픈 이야기들이 있네요. 북극 이누이트족의 고려장 같은 이야기는 참 충격이었어요. 당선된 새 대통령이 국민의 피땀눈물을 닦아주길 간절히 바라나, 물음표가 자꾸 생겨 좀 암담하답니다. ㅠㅠ
 

20220302 #시라는별 78

꿰매다
- 나희덕 

바닥에는 
방금 실을 끊어낸 실패가 놓여 있고 
실패에는 실이 남아 있다 

무언가 열심히 꿰맨다 

바늘이 
천과 천 사이를 드나드는 동안 
실패에서 풀려난 실은 한 땀 한 땀 길을 낸다 
한 걸음 한 걸음 찢어진 길을 꿰매듯 

뜯어진 바짓단이든 구멍난 양말이든 떨어진 단추나 후크든 
조금 해지거나 터진 구멍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실패를 두려워할 것 없다고 
바늘구멍한한 진실은 어디에든 있다고 
꿰매다 실이 모자라면 
실패를 집어올려 새로 꿰면 된다고 

무언가 꿰고 꿰매는 동안에는 
다정한 이가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실패를 갖고 놀던 아이는 보았을까 
실을 꿰는 엄마를 
무언가 열심히 꿰매는 엄마를 
엄마는 아이의 불안한 마음까지 꿰매주었을까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fort˝와 ˝da˝ 사이에서
엄마의 사라짐과 나타남 사이에서 
가까워지는 발소리와 멀어지는 발소리 사이에서 

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실패에는 실이 아직 남아 있고 
무언가 꿰매는 손등에는 고요가 내려와 반짝이는데 


*‘fort-da‘: 프로이트가 말한 없다!있다! 놀이. 이른바 까꿍 놀이.

2021년 12월에 출간된 나희덕의 『가능주의자』를 2022년 1월에 구매해 두었다가 2월 내내 드문드문 읽다 2월말 막판 스퍼트처럼 몰아 읽었다. 100자평에도 썼지만 이 시집은 정말 훌륭하다.

<이 자욱하고 흥건한 시대를 시는 어떻게 건널 수 있을까>

​『가능주의자』는 시인이 스스로에게 던진 저 물음에 대한 화답가 같다. 시로써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표현해야 하는지를, 시인은 한 마리 거미처럼 제 몸에서 언어라는 실을 자아내 한 땀 한 땀 엮고 또 엮어 시집이라는 거미집을 만들었다. 완성품이 천의무봉 같다.

이 시집은 총4부로 구성되어 있고 52편의 시가 실려 있다. 나의 부족으로 따라잡기 힘든 시들은 있었지만 이맛살이 찌푸려지는 시는 없었다. 대개가 고루 좋았다. 52편의 시들 중 내 눈과 맘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시가 <꿰매다>였다. 우리는 이 세상에 나서 저 세상으로 갈 때까지 ˝무언가 열심히 꿰매˝며 살아간다. 그렇다. 열 심 히.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꿰매도 실이 끊어지거나 풀리거나 모자라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한다. 그런 일을 대수롭지 않게, so cool하게 넘기는 법.

뜯어진 바짓단이든 구멍난 양말이든 떨어진 단추나 후크든 
조금 해지거나 터진 구멍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실패를 두려워할 것 없다고 
바늘구멍한한 진실은 어디에든 있다고 
꿰매다 실이 모자라면 
실패를 집어올려 새로 꿰면 된다고 

실패(失敗)와 실:패의 멋진 언어 유희. 실패하면 실:패를 집어 들어 다시 꿰매면 된다. 그러면 끝! 실패 그까이것! 이 다정한 위로라니. 

˝fort-da 포르트-다.˝(없다! 있다!) 

한편의 시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실패를 가지고 노는 아이가 소리친다. fort!(없다) da!(있다). 이것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말한 용어라고 한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손주가 혼자 실패를 멀리 던졌을 때는 ‘fort‘라고 외치고, 다시 잡아당겨 손에 쥐게 되었을 때는 ‘da‘라고 외치는 놀이를 계속하는 모습을 관찰하게 되었다. 이 놀이를 보고 프로이트가 내린 해석은 아이에게 실:패는 엄마라는 상징물이고, ‘fort‘는 엄마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아이들은 불안하다. 유아기의 이 불안은 생존과 결부된 문제여서 마음이 조마조마한 수위를 넘어 숨 막히는 공포에까지 이를 수 있다. 이런 분리 불안을 여러 번(한 번일 수도 있다) 경험한 아이들은 엄마와 절대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아이의 마음은 ˝뜯어진 바짓단˝이나 ˝구멍난 양말˝처럼 해지고 터져 있다. 이런 불안한 마음을 엄마는 어디까지 꿰매줄 수 있을까.

프로이트는 아이의 ‘fort-da‘ 놀이를 이렇게 해석한다. 엄마가 사라지는 공포를 미리 연습하고 그 충격을 완화하고자 하는 아이만의 보호기제라고. ˝엄마의 사라짐과 나타남 사이에서 / 가까워지는 발소리와 멀어지는 발소리 사이에서˝ 아이는 사라진 것은 언젠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게다가 실패, 엄마라는 상징물이 제 손에 쥐어 있으니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다시 끌어당기면 된다. 아이의 마음은 전보다 편안하다. 엄마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예측 가능한 믿음을 갖게 되었을 때, 아이는 엄마가 아무리 멀리, 아무리 오래 떠나 있어도 견뎌낼 수
있다. 실패를 가지고 노는 아이의 손등에는 ˝고요가 내려와 반짝˝거릴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잠깐이라도, 엄마가 아이의 눈앞에서 사라져야 할 순간에는 아이에게 반드시 일러주어야 한다. 엄마 잠깐 쓰레기 버리고 오겠다고. 그러니 무서워하지 말라고. 잠깐 없어지는 그 자체보다 말없이 없어지는 것이 아이에게 공포를 안겼다는 사실을 나도 뒤늦게 알았다. 그러니
˝da!˝는 있다!를 넘어 아이에겐 ‘살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엄마는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꿰매줄 수는 없다. 인생의 어느 시점부터는 아이 스스로 터지고 해진 제 마음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공들여 꿰매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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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3-02 12: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 예술의 주름 쓰신 나희덕 시인님!

[뜯어진 바짓단이든 구멍난 양말이든 떨어진 단추나 후크든
조금 해지거나 터진 구멍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실패를 두려워할 것 없다고
바늘구멍한한 진실은 어디에든 있다고
꿰매다 실이 모자라면
실패를 집어올려 새로 꿰면 된다고 ]

3월! 뭐든지 꿰매보겠습니다!
꿰메다 실이 모잘라도!ㅎㅎ

책읽기님!3월 건강하게 ^ㅅ^

행복한책읽기 2022-03-05 15:03   좋아요 3 | URL
scott님~~~반가워요. 예술의 주름도 읽고픈데, 여의치 않아요. ㅋ 실이 모자라면 이어 붙여 꿰매자구요. 그래요. 3월도 건강하게!!^^

새파랑 2022-03-02 15: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보는 책읽기님의 시네요~!! 책읽기님 덕분에 나희덕 시인님을 알게되어서 좋습니다 ^^

행복한책읽기 2022-03-05 15:06   좋아요 4 | URL
새파랑님~~~저도 넘 반가워요. 애들 방학이 끝났는데도 플친들 서재 방문할 여력이 없어요. 안타까워요. ㅠㅠ 시읽기는 어떻게든 올려보려 합니다. 새파랑님 나희덕 시인 정말 좋아요~~~강추!!!

mini74 2022-03-02 19: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희덕 시 좋아요 ~ 실패와 엄마 아이의 관계 이야기 결국 어느 시점부턴 아이가 스스로 꿰매야 한다는 책읽기님 이야기에 참 많은 것이 담겨있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행복한책읽기 2022-03-05 15:13   좋아요 3 | URL
미니님~~~너~~무 반가워요~~~플친들 모두 그리워요. 나희덕님은 제가 좋아하는 시인인데, 이 시집 읽고 더더더 좋아졌어요. 실패와 엄마와 아이 연결 멋지죠. 이걸 슬라보예 지젝은 또 다르게 해석하더라구요. 엄마라는 압도적인 존재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놀이라고요. 어떤 해석이든, 공통점은 아이의 독립 같아요. 어줍잖은 글 항상 정성껏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희선 2022-03-05 01: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다 뭔가를 열심히 꿰매고 사는군요 실이 모자라면 다시 실을 바늘에 꿰면 되겠지요 엄마라고 해서 아이 마음을 다 꿰매주기는 어렵겠지요 그걸 알아야 할 텐데... 스스로 꿰매기, 그게 힘들어도 해야 하는 거겠습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2-03-05 15:17   좋아요 3 | URL
희선님~~~방가방가.^^ 우리 모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엄마로부터 하나씩하나씩 독립해 스스로 자기 인생을 꿰매고 살아가는 듯해요. 쉽지 않은 그 일을 해내고 사니, 다들 대단하고 존중받을 만하죠. 희선님도 그런 사람입니다. 귀한 댓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