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도쿄밴드왜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4
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도쿄밴드왜건

  문화와 문명에 관한 이런저런 문제라면 어떠한 일이든 만사 해결

  이런 가훈을 갖고 있는 집이 있다. 헌책방을 경영하며 4대가 함께 살고 있는 집이다. 요즘 주위에서 흔히 보기 힘든 대가족이다. 이 대가족의 다양한 일상들을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도쿄밴드왜건』이다. 처음에는 도쿄에서 밴드를 하는 이야기인 줄만 알았지만, 소설을 읽어보니 헌책방의 이름일 뿐이었다.

  『도쿄밴드왜건』은 4대 걸친 가족이 나오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름을 외우기도 벅차다. 초반에는 등장인물 소개를 여러 번 들쳐봐야했다. 그래도 기억력을 발휘하여 나중에는 헷갈리지 않고 인물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헌책방이라는 배경도 마음에 들었지만, 그 옆에 카페도 하고 있다는 점도 좋았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공간 중에 하나라고 할까.

  이 소설은 처음에 배경 무대인 ‘도쿄밴드왜건’을 설명하는 장 이후로 사계절로 나뉜 옴니버스 형식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 미스터리한 상황을 제시하고 답안을 알려주는 형식인데 호기심도 자극하고 이야기도 따뜻하고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작가가 메피스토상을 받았다고 했기에 짐작하고 있었지만(내가 읽은 메피스토상 수상작이 라이트 노벨인 니시오 이신의 『잘린머리 사이클』등이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매일 헌책방에 백과사전을 꽂아놓고 간다든지, 책 한권을 읽고 갑자기 요양원을 나간 노인의 대한 이야기 등 일상의 미스터리한 사건이 벌어지고 도쿄밴드왜건 가족들이 이 사건들을 푸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읽는 재미가 있었다.

  보는 내내 이야기가 진지하고 심각하기 보다는 편안하고 따뜻했다. 가족들의 유대감도 다루고 있고, 정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착한 소설이라고 할까? 때론 이런 소설을 읽는 것도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 중 하나는 드라마로 만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개성 넘치는 정겨운 캐릭터들과 다양한 사건들 그리고 에피소드별로 구성된 이야기들이 드라마로 하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일본 드라마 특유의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아니나 다를까, 책 마지막엔 “그 시절 많은 눈물과 웃음을 거실에 가져다준 텔레비전 드라마에”라는 헌사가 적혀 있었다. 작가 역시 홈드라마를 추억하며 쓴 소설이었구나. 과연 그랬던 거였구나. 납득이 갔다. 그만큼 이 책은 가족 모두가 읽어도 좋을 만큼 즐거운 소설 중 하나다. 이제 우리 가족들에게도 한 번씩 권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실제로 드라마로 제작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에피소드별 구성이라 얼마든지 후속작도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 역자후기에도 후속작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풍부함으로 드라마로 제작되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저번에 읽은 일본 소설인 『면장선거』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 역시 캐릭터의 매력이 잘 그려져 있다. 묘사나 서술은 적절하게 간소화 되어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 설정이 끝나고 나면 차례로 사건이 벌어지고 푸는 형식인 것이다. 그리고 캐릭터의 매력을 차츰 알게 되면 책의 애정을 느끼게 되고 그들이 벌이는 모험이 재미있게 다가온다. 다 읽고 나면 정까지 들고 말아 후속작이 나왔다는 얘기에 자연스레 기쁜 마음까지 든다. 깐깐하지만 강단있고 정정한 노인인 헌책방 점주 79세의 홋타 칸이치. 전설의 로커이자, 60세 나이에 아직도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록정신으로 살아가는 가나토. 그리고 가나토의 딸 싱글맘이면서 화가인 아이코. 자유기고가인 큰 아들 콘과 부인인 아미. 투어가이드며 잘생긴 외모를 가진 아오. 아이코의 딸 카요와 콘의 아들 켄토. 그리고 멋진 나레이션으로 소설을 이끌어 준 칸이치의 죽은 부인 사치. 유령이면서 가족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가끔은 콘과 대화도 나눈다. 이 소설은 서술이 전부 존댓말인 ‘해요’체로 쓰여 있는데 이는 사치가 이들을 지켜보면서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가훈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도쿄밴드왜건 식구들은 ‘식사는 가족이 모두 모여 왁자지껄하게 먹는다.’라는 가훈을 잘 지키며 살고 있다. 매일 아침 시끄럽게 서로 대화를 나누며 먹는 식당의 풍경이 왜 이리도 멋진지. 핵가족화가 심화되고 가족끼리 다 같이 모여 밥 한 번 먹기 힘든 요즘 시대에 참으로 보기드믄 풍경이라 그럴 것이다.

  ‘책은 저절로 자기 주인을 찾아간다.’  ‘담뱃불은 한시라도 눈을 떼어서는 안 된다.’ ‘사람의 체면을 세워주고 문은 열어두고 만사 명랑하게.’

  이런 가훈들을 성실히 지키고 있는 도쿄밴드왜건 식구들. 그들 앞에 또 어떤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나타날까? 하지만 또 언제나 멋진 팀워크를 발휘하며 해피엔딩으로 만들 것이다. 가나토가 매일 말하듯 ‘상처를 덮고 치유하는 건 말이지 역시 러브라는 이름의 반창고’일 테니까. 다음에 또 그들 가족의 소란스런 아침 식사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길 소망하며 짧은 리뷰를 마치겠다.

  홋타 가의 아침은 변함없이 시끌벅적하답니다. 그런데 뭐랄까, 오늘은 아무래도 톡 쏘는 느낌이 좀 부족하다 싶은데. 맞아요. 상석이 비어 있네요.

  칸이치 영감이 감기가 덧나서 불단 있는 방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워 있군요.

  “증조할아버지, 아직 안 좋아?”

  “외풍이 심하구나. 문풍지나 뭐 좀 더 붙여야 하겠다.”

  “열은 이제 내렸는데, 아직 기침이 심하셔. 목도 아프다 하시고.”

  “어서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해요. 저러다 진짜 돌아가시겠어요.”

  “건조하지 않게 해야지.”

  “행여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생강차 만들었어? 드시게 했어?”

  “켄토와 카요도 양치질 잘 해라. 학교에서도 감기가 유행이지?”

  “죽이라도 드셨으면 좋겠는데.”

  “그러게요, 병원엔 안 간다고 하셔요. 어떻게 좀 해보세요, 아버지.”

  오늘은 온통 칸이치 영감 얘기뿐이군요. 아이코에게 어떻게 좀 해보란 말을 듣고 가나토가 으음 하네요.

  “확고한 병원 거부증이니 말이야. 어찌 해볼 수가 없잖아.”

  “그래도 저, 나이가 나이시잖아요. 이대로 가다간 체력이 떨어져서 더 나빠지실 거예요.”

  스즈미가 걱정하는군요.

― 『도쿄밴드왜건』, 쇼지 유키야, 작가정신, 276~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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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05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벌써 읽으셨어요? 전 아직 안 읽어서 리뷰는 대강 읽었습니다.
추천하고 가요, 나중에 다시 읽을게요^^

twinpix 2007-08-05 23:00   좋아요 0 | URL
앗, 감사합니다. 쉽고 재미있는 소설이라 금세 읽히더라고요.^^/

비로그인 2007-08-0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어보입니다.
저는 이런 소설은 언제쯤이나 읽을 지 몰라 리뷰도 악착같이 읽고 갑니다.

twinpix 2007-08-07 11:53   좋아요 0 | URL
앗,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특하고 편한 소설이었어요.

비로그인 2007-08-07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별로 기대 안하던 책이었는데.. 무척 재미나 보이네요. 마음안에서 보고싶다고 아우성치는 군요.ㅎㅎ

twinpix 2007-08-07 11:54   좋아요 0 | URL
분량도 적고 내용도 소소한 일상의 미스터리를 다룬 작품이라 그냥 가볍게 즐기는 마음으로 읽기에 적당해요.^^/ 뭐, 무거운 소설들만 읽을 게 아니라 가끔은 이런 가벼운 소설도 접할 필요가 있다면 괜찮죠.^^

fallin 2007-08-08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보고는 별로 감이 안 왔는데..이런 책이군요..헌책방을 하는 대가족의 이야기라..일본도소설을 읽다보면 은근히 우리와 닮은 구석이 많은 나라란 생각이 들어요. 너무 다르단 생각이 드는 때도 있지만.. 리뷰 보니깐 읽어보고 싶네요 ^^

twinpix 2007-08-08 09:07   좋아요 0 | URL
아, 역시 제목 보고는 감이 안 오는 작품이죠? 전, 사실 제목에 낚인 것도 컸어요. 정말 무슨 밴드 이야기인줄 알고 기대했었는데, 제대로 안 알아본 탓이 크죠. 하핫. 그래도 전설의 로커 가나토가 활약을 해주니 그런대로라는 느낌이랄까요. 'ㅁ' 리플 감사합니다.^^
 
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미니북을 보면 귀엽다. 이번에 동생방에 갔더니, 미니북이 있어서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일하면서 틈틈히 볼 생각으로 가져왔다. 그 책이 바로 『면장 선거』였다. 오쿠다 히데오는 전작『공중그네』로 131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갖고 있다. 특히 요근래 일본 소설 붐을 일으키는 주역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가의 책은 물론이고 여러 일본 소설들을 접하지 않았다. 즉, 이게 요즘 유행하는 일본 소설과의 첫 만남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첫인상은? 예상했던 것보다 재미있었고 흥미진진했다.
  마치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라이트 노벨이 연상되는 듯한 개성넘치는 이라부 의사와 마유미 간호사는 이 소설의 매력 그 자체이다. 개성 넘치고 주위 사람들에게 바보라고 평가되는 이라부 의사지만, 그가 맡은 환자들은 그에게 당하고 이끌리고 또 치료받는다. 이 책은 총 4편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옴니버스 형식처럼 이라부 의사와 만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야구팀 구단주이면서 신문사 대표인 남자, 젊은 나이의 일약 재계의 스타로 떠오른 남자, 마흔을 넘기고도 미모를 유지하려는 여배우 등 유명인사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작가의 전작들은 우리 주변의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고 하는데, 나중에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는 이런 유명인들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다양한 고민들을 껴안고 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치료사는 항상 황당하면서도 거침없는 이라부 의사이다. 마치 무책임 함장 테일러를 연상시키는 캐릭터였다. 어리숙한 바보로 보이면서도 결과는 항상 최선으로 이끌어내는 사람 말이다. 사실 그들의 고민은 모두 같을 것이다. 집착. 그리고 이라부는 그런 집착을 가볍게 버리라고 말하고 있다. 또 그것을 느끼게 만들어 준다. 독자는 이라부가 과연 어떤 기괴한 행동을 하며 환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지 기대하게 된다. 또 그 기대감 때문에 다음 내용을 궁금해 하는 것이다. 군더더기가 없는 간결한 문체와 빠른 속도감 그로 인해 이야기 전개가 빠르고 흡인력이 강했다. 일하면서 한 문단만 읽어도 바로 다음 문단이 궁금할 정도였다.
  심각하기 보다는 힘을 빼고 즐겁게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미니북으로 읽었지만 작은 글씨로도 이야기를 읽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만큼 유쾌하고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나는 보통 순서대로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역순으로 읽게 되는 듯하다. 읽으면서도 내내 이라부와 마유미 간호사가 겪었던 과거들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인 더 풀』이나 『공중그네』를 다음에 꼭 찾아 읽어야겠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또 이라부와 마유미 간호사의 이야기를 기다리게 될 것 같다. 다양한 정신적인 병들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들도 재미있었지만, 그보다 캐릭터의 매력이 이 소설을 지탱하고 있었다. 캐릭터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의 등장 자체가 기다려지게 된 것이다. 새로운 시간, 낯선 공간에서 정든 친구들과의 재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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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gghhhcff 2007-08-02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공중그네나 인더풀은 봤는데 이 책은 아직도 못보고 있네요.
이라부와 엽기 간호사 너무 재미있죠 ㅎㅎ
그나저나 이 책을 그 조그만 미니북으로 보셨단 말입니까? 대단하십니다. ^_^

twinpix 2007-08-02 23:49   좋아요 0 | URL
앗, 댓글다는 창이 바뀌었네요.^^(편해졌네요.)
정말 재미있어요. 그 둘의 콤비보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미니북이 예뻐서 장식으로 놓게 모으고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분명 이런 미니북 모으는 사람도 있겠죠? 'ㅁ') 아무튼 실용적으로 썼죠. 내용이 그대로 다 있으니 신기해요. 일할 때 읽어서 그런지 작아도 불편하기 보다 재미있게 잘 읽혔어요.

이매지 2007-08-03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는 공중그네가 가장 맘에 들었고, 그 다음엔 면장선거, 그 다음에 인 더 풀 요런 순이었어요 ㅎㅎ 이라부도 계속 만나다보니 왠지 익숙해져서 그런지 이제는 시큰둥-_ㅠ 아쉬워요. 흑.

twinpix 2007-08-03 09:55   좋아요 0 | URL
전 이제 만나기 시작한 터라 기대가 됩니다.^^ 공중그네 정말 재미있을 것 같네요.^^

JINI 2007-08-03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 많이 들어봤다 했더니 인더풀이군요!!! 참... 재미있었어요. 책이.ㅋㅋ 다른책은 읽어본 적 없고 그 책만 읽어봤는데... 딱 일본소설이라고 해야하나? 좋았어요! 이 책도 기대 기대!

twinpix 2007-08-04 20:16   좋아요 0 | URL
재미있었군요. 빨리 봐야겠어요.^^/ 저도 기대가 되네요. 'ㅁ'!!

fallin 2007-08-08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공중그네가 제일 좋았던 거 같아요..그리고 여자의 심리를 다룬 걸도 좋았고..남쪽으로 튀어~는 이 작가의 또다른 매력이 담겨 있고요^^

twinpix 2007-08-08 09:29   좋아요 0 | URL
음, 역시 공중그네 부터 읽어봐야겠어요.^^/ 남쪽으로 튀어는 그 다음으로.^^
 
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청춘의 문장들

  친구가 군대에 있던 시절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며 추천해 준 책이 있다. 바로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 지금에서야 이 책을 읽으면서 군대에서 이 책을 읽었을 친구에게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고 인상 깊었을 지를 생각해보았다. 아마 많은 위안이 됐을 것이다. 작가는 살면서 평탄하게 지내지 않았고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똑같이 헤매고 방황했다. 이 책은 다양한 작가의 경험들을 작가가 읽은 문장들과 결부시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다. 너무 자연스럽게 쓰였기 때문에 초록색으로 표현한 문장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만큼 이야기가 재미있고 오히려 소설보다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리라. (단, 한 권의 책으로 작가가 좋아지는 경우가 있다면 이 경우가 되리라. 그만큼 작가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고 친밀해지고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책이다.)

  평균적인 한국 남자라면 다 알 테지만, 어쨌든 입영통지서를 받게 되면 삶은 애매해질 수밖에 없다. 도서관 건물을 지었다면 그 다음에는 책을 채워 넣어야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입영통지서의 가장 큰 기능은 거기에 있으니까. 예컨대 인간미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그 종이쪼가리에 돌아오는 12월쯤 입대하는 것으로 돼 있다면 그때까지는 어떤 계획도 세울 수 없다. 뭐, 총검술이라도 미리 연습한다면 좋은 계획이 될 듯도 하지만 그런 인간이 있을 리 만무하다.


―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마음산책, 143쪽


  공감 가는 이야기들과 가끔 웃음을 유발하는 위트가 섞여 있는 재미있는 산문집이었다. 사실 작가의 청춘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지금 젊은 독자들에게는 시대에 안 맞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들은 모두 애잔하게 읽힌다. 실제 겪어보지 않은 배경일지라도 청춘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까. 지금 이 시대에 청춘을 보내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도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산문집이었다.


 내게는 집을 찾아갈 소똥도 보이지 않았던 그 시절, 엄청나게 들었던 음반이 바로 여행스케치 2집이었다. ‘세월이 흘러가고 먼 훗날,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많이 변해 있을까 지금은 함께 있지만’이라든가 ‘잊혀지면 그만인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어 세월가면 잊혀지려나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을 텐데’ 같은 노래들. 여전히 삶이란 내게 정답표가 뜯겨나간 문제집과 비슷하다.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정말 맞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마음산책, 151쪽


  작가는 주로 한시에서 나온 문장들을 청춘의 문장들로 뽑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보다는 작가가 청춘 때 경험한 이야기나 고민들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누구나 청춘을 보낼 때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게 될 것이다. 특히 이 책에서 작가는 “내가 서른 살 너머까지 살아 있을 줄 알았더라면 스무 살 그 즈음에 삶을 대하는 태도는 뭔가 달랐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누구나 바로 앞날도 예견하지 못하기에 서른 살 이후를 생각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토록 공감 가는 구절들이 몇 페이지마다 나타났다. 곁에 두고 틈틈이 꺼내보고 싶은 책이었다.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영어 가정법 문장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배웠고 3차 방정식을 그래프로 옮기는 법도 배웠다. 하지만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일 수 있는지 알게 된 일이다. 내 안에는 많은 빛이 숨어 있다는 것, 어디까지나 지금의 나란 그 빛의 극히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일이다.

―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마음산책, 195쪽

  난 지금 청춘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앞선 사람이 보여주는 이정표다. 또한 이미 지나간 사람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책일 것이다. 그 시절, 청춘. 즉석 떡볶이를 먹어가며 첫 데이트를 하고, 사격을 배우고, 회의를 느끼고, 학교를 무단결석 하는 일. DJ에게 팝송 강의를 듣거나 매 시간 시를 쓰거나, 만화책 윤문을 하거나. 회사가 끝난 후 매일 밤 가는 떡볶이 집 소녀가 학생이었다가 성인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지나가는 세월. 느닷없이 나타났다가 어느 순간에 사라지는 것. 누구에게나 청춘은 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한 작가의 생각과 삶을 따라가 보면 어느덧 잊고 있던, 혹은 알고 싶었던 무언가를 깨달을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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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02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의 중심에 서 계신 님, 더없이 빛나는 존재입니다. 추천^^

twinpix 2007-08-02 23:49   좋아요 0 | URL
앗, 감사합니다!^^/ 앞으로 진짜 빛나고 싶어요.^^/

거친아이 2007-08-0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군요~ ^^ 제가 이 책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다시금 떠오르네요.
일상적인 개인적 경험담이 더 좋았어요. 책 좋았죠?

twinpix 2007-08-09 12:54   좋아요 0 | URL
네, 읽었어요. 개인적 경험담들이 참 가슴에 와닿았어요.^^ 네, 정말 좋은 책.^^/ 강력 추천작이라고 할까요. 역시.^^
 
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구판절판


서울과 달리 제주도는 여름과 가을 사이의 맑은 날이 계속 이어졌다. 구름의 모양은 바람에 따라, 바다의 빛은 햇살의 각도에 따라 순간순간 바뀌어갔다. 사이에 있는 것들, 쉽게 바뀌는 것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잡아끈다. 내게도 꿈이라는 게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마음을 잡아끄는 그 절실함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쓸데없다고 핀잔둔다 해도 내 쓸모란 바로 거기에 있는 걸 어떡하나.-53쪽

어떤 사람이 소설을 쓰게 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예컨대 기호학자였던 움베르토 에코는 "너는 중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추리소설에 대해서도 잘 아니 중세를 다루는 추리소설을 한번 써보라"는 여자친구들의, 삼단논법에 가까운 권유에 혹해서 거의 쉰 살이 가까워 『장미의 이름』을 썼다. 이건 좋은 여자친구를 뒀을 때 가능한 얘기니까, 쉰 살이 가까워지더라도 여자친구는, 그것도 최소한 삼단논법 정도는 구사할 수 있는 여자친구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56~57쪽

나는 운명도, 운도 믿지 않는다. 믿는 것은 오직 내 몸과 마음의 상태일 뿐이다. 인간이란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고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는 존재다. 나는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글을 쓸 수 있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1968년 프랑스에서 학생운동이 극에 달했던 시절, 바리케이드 안쪽에 씌어진 여러 낙서 중에 'Ten Days of Happiness'라는 글귀가 있었다고 한다. 열흘 동안의 행복, 그 정도면 충분하다. 문학을 하는 이유로도, 살아가거나 사랑하는 이유로도.-68~69쪽

내가 황영조 마을까지 가서 본 것은 결국 내가 그 무엇도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백 같은 시인이 될 수 있고 황영조 같은 운동선수도 될 수 있지만, 어쨌든 그 당시에는 그 무엇도 아니었다.-84~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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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세차게 내립니다. 천둥도 치고요. 밖에 나가보진 않았지만 번개도 치겠죠. 이런 날은 집에 있는 게 가장 좋습니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면서 라면이나 따뜻한 파전을 부쳐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소설책이나 혹은 만화책도 잔뜩 쌓여있으면 또 즐겁죠.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못합니다. 일단 오늘이 도서관 반납일이라 밖에 나가야 하고요. 또, 친구들과 만날 약속이 있습니다. 대학로에서 5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날씨가 이러니 약간 걱정이 됩니다. 뭐, 이것도 돌아다니는 게 짜증날 뿐, 실제 어딘가 들어가서 이야기 나누면 또 새로운 기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비가 오는 건 밖에 나갈 경우를 제외하고는 좋습니다. 무엇보다 더운 여름의 온도를 낮춰주니까요. 에어콘과 별 접촉이 없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올 여름은 비가 많이 오는 게 참 마음에 듭니다.
  다다음주가 기다려집니다. 드디어 여름휴가. 이번주에 일단 수요일에는 회사 50주년 기념으로 호텔에서 창립기념일 행사를 한다고 합니다. 호텔 음식도 먹고 일도 3시까지만 하고 좋을 것 같습니다.
  슬슬 나가봐야겠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책은 안 들고 가는 게 낫겠네요. 저번에 가방에 판타스틱 3호를 가지고 갔다가 젖어버렸죠. 다행히 잡지 책이라 마음이 덜 아팠습니다만, 그래도 책이 젖는 건 기분이 좋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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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 2007-07-29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비 오길래 나가려던 계획 전격 취소했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

twinpix 2007-07-30 00:01   좋아요 0 | URL
다행히 오후에는 해가 뜨고 날씨가 좋았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고 왔습니다. 리플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잘 다녀왔습니다. (__)

asdgghhhcff 2007-07-29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긴 오전에 엄청난 비와 바람, 천둥 번개가 치더니 오후가 되니까 햇볕 엄청나게 쨍쨍..

twinpix 2007-07-30 00:03   좋아요 0 | URL
여기도 그랬어요. 구리시, 서울시 전부 그런 듯해요. 진짜 천둥번개가 몰아치더니 갑자기 날씨가 좋아져서 기분이 무척 좋았어요.^^ 모이는 인원수가 적은 터라 더 우울한 모임이 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날씨가 도와주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