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이사가 결정되고(전적으로 집주인의 의지), 이사를 준비하다 보니 역시나 우리집의 가장 큰 골칫덩이는 책이다. 과감하게 책을 정리하기로 결단을 내리니 남편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런데 책 정리라는 게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일단 거실 긴 두 면 가득 책장이요, 친정엄마의 책과 안방과 공부방의 책장들의 책들도 모두 이중 삼중으로 겹쳐진 상태라 가끔 몇 박스 내보낼 때에도 겹쳐진 것을 풀기만 할 뿐 티가 나지 않는다. 단지, 좀 정리되었다는 '느낌' 뿐. 결과적으론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이번엔 결단을 내려 그간 손대지 않았던, 친정엄마의 불교 서적을 근 70권 뺐다. 그중 40권 가량은 기증을 했는데, 절반은 폐기되었다. 스레드에 10권 정도 나눔을 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알라딘에 권당 1000원 정도로 팔거나, 기증 예정이다. 절 근처에서 노점상을 하는 게 더 잘 팔릴 것 같은데.....아무튼 우리 동네는 교회만 많아 그런가 불교 서적은 안 팔렸다.
그다음은 아들들의 책이다. 그림책은 팔지 않기로 했다. 나에겐 학교가 있으니, 거기에 꽂아두면 될 터이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 책꽂이도 거의 꽉 찼다는 점이다. 개학을 하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책을 한 권씩 골라 가지라고 할 참이다. 25권이 빠지겠지? 아무튼 그림책을 제외하고 책들을 당근에 내놨다.....만 거의 팔리지 않는다. 흔한남매 시리즈만 팔았을 뿐이다. 뜻밖에 청소년 도서들이 잘 팔린다. 하지만 상태가 최최상급인 책들이 아니라 상급인 그러니까 권당 1000원 정도에 내놓은 책들만 팔린다.
불경기란 이런 것인가 문득 생각한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조금 비싸도 상태가 좋은 중고책들이 팔렸는데 요즘엔 상태가 어떻든 필요한 책이 싸다면 판매가 된다. 책에 대한 신성한 마음이 사라진 탓인지 불경기라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중고책도 이렇게 후려쳐야 팔리는데 새 책은 얼마나 안 팔릴까? 동네 서점 갈 때마다 최소한 한 권씩이라도 사와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책을 정리하면서 판 책은 얼마 되지 않는다. 흔한남매 불꽃튀는 우리말 5권, 닌자고 책 3권, 청소년도서 10권, 수능 문제집 9권, 알라딘 회원 팔기와 알라딘 팔기 책이 20권! 생각보단 많이 팔았네? 나머지 책은 모두 나눔했다. 마침 책정리가 성탄절 즈음에 시작되어, 성탄 선물로 주기로 했다. 그 과정은 정말 즐거웠다.
인스타와 스레드에 내가 올린 글은 "원하시는 분야를 말씀해주시면 책장에서 한 권을 찾아 선물해드립니다."였다. 대체로 에세이 분야를 원해서 집에 에세이가 별로 없는 터라 난감했지만 어찌저찌 찾아졌다. 그 과정에서 나도 내 책장을 꼼꼼히 살펴볼 수 있었다. 아, 내 책장에 사회과학 책이 별로 없구나, 같은. 대체로는 에세이 중에서도 문학 에세이를 좋아하나, 여행 에세이를 좋아하나를 더 물어 개인맞춤형서비스로 보냈다. 인스타와 스레드에 총 6명에게 20권 가량을 보냈다. 기분 좋은 나눔이었는데, 택배 박스 구하는 것과 택배비가 좀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그 다음은 엄마의 불교 서적을 찍어 그중 원하는 만큼을 착불로 보내드렸다. 10권 정도 보내드렸다. 그 나머지가 알라딘으로 간다. 그런데 착불로 보내자니 이번엔 마음이 불편했다. 4권 신청하신 분의 택배비는 무려 6000원이었다! 다행히 흔쾌히 받아주셔서 감사했다. 그러니 자연 눈이 당근으로 갔다. 주변 이웃에게 나누자! 그래서 지난 번 북플에 올렸던 흔적 있는 책을 당근에서 나눔했다. 아주 신속하게 사라졌다. 책을 없애는 데에는 당근 나눔이 알라딘에 이고지고 가는 것보다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북플에는 최근에 재밌게 읽었던 책들과 시집을 올렸다. 아직 반응은 없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아무튼, 이러저러 책을 처분하는 과정 속에 지내다보니 책을 덜 읽게 된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사방을 둘러싼 책들이 모두 '처리 대상'으로만 보이는 거다. 읽지 않은 책의 대부분은 소설인데, 일단 읽어야 보낼게 아닌가 ㅠㅠ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소설은 더더욱 읽히지 않는다. 내일 모레 이삿짐 견적내는 날이라 더 조급하다. 그래서 책을 읽고자 카페로 나왔다. 집에서 '꼴'을 안 봐야 책에 몰입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나와서도 처분 대상 책들에 대한 글을 쓰니 내 마음 속은 당분간 어지러울 예정이다.
그런데 책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좋은 경험을 몇 가지 했다. 그건 어쩌면 책을 읽는 것보다 좋은 경험일 것이다. 첫번째는 스레드에 책나눔을 한 사람 중에 답장을 보내온 이가 있다는 것이다. 내 또래로 보이는 그분은 곱게 포장한 책과 카드를 보내주셨는데 포장지에 테이핑을 어찌나 곱게 했던지 성품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내가 한때 가장 사랑했던 도시, 춘천에 사시는 분이라 더 마음이 갔다.
두번째는 닌자고 책을 당근에 팔 때의 이야기이다. 책을 사신 분이 톡으로 옆에서 아들이 자꾸 '더 없냐? 피규어는 없냐?' 물어보라고 한다고 보내셔서 팔 거는 없고,,,,(레고 통을 뒤적뒤적,,,, 찰칵!) "이거 드릴까요?"했더니 옆에서 아이가 환호를 지른단다. 아이의 환호는 못 참지! 그래서 더 열심히 뒤적뒤적 해서 찰칵! 아이가 난리가 났단다. 이방 저방 다 뛰어다니다 큰 애한테 걸렸다. 뭐하냐고 물어서 닌자고 찾는다고 하니 자기 추억이 담긴 물건인데 안 된다고 그만 찾으라고(현재 예비고3)해서 일단 멈췄다. 아무튼 구매자의 아이는 행복을 얻었고, 나는 그깟 피규어 두 개로 세상 좋은 사람이 되었다. 아들은? 그분이 덤으로 주신 아메리카노를 얻었다.
세번째는 스레드로 착불 나눔을 받으신 분인데, 이분 어머님이 80세에 책을 읽기 시작하셔서 현재 1300권을 읽으셨단다. 사실 착불 나눔이 그분 한 분이라면 택배비를 내가 부담하고 싶을 정도로 어머님의 열정에 감명받았다. 그래서 가장 예쁜 박스(?)에 담아 드렸....이분은 강릉에서 속옷 가게를 운영 중이신데 톡으로 속옷을 보내주고 싶다고 ㅋㅋㅋㅋㅋ 이사 준비 중이라고 다음에 찾아가겠다고 답변했다.
그 외에도 책나눔을 받은 당근 이웃들과의 소소한 대화들, 그간 인연이 깊었지만 손편지 한 번 전하지 못했던 지인들과의 새로운 만남 등이 기억에 남는다. 비록 지금은 내게 처분 대상으로 가장 큰 부담감으로 다가오지만 그 와중에도 책은 읽지 않아도 그것을 주고받는 과정 속에서 책 이상의 울림을 준다. 까짓거 책 좀 덜 읽으면 어떤가, 처분 대상으로 보이면 어떤가, 읽든 안 읽든 책은 책이 주는 그 기능을 늘 하지 않는가?
아, 그나저나 읽지 않은 책들을 처분하는 게 너무 어렵다....눈 딱 감아? 이 와중에 읽지 않은 책 읽을 생각은 안 하고 빌린 [절창] 가져온 게 어이없다.
추신 : 내게 책 선물을 보내주신 춘천의 스친이의 책을 소개하며 이 정신없는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