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호세 무뇨스 그림 / 책세상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새움 출판사의 [이방인]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나도 한 번 사 보았고 이번에 책세상 판을 읽으며 그 책의 역자 노트도 읽고 야외에서 읽을 때에는 그 책으로도 읽었다. 책세상 판은 새움 출판사의 역자인 이정서가 주 비판 대상으로 삼고 있는 김화영 교수의 번역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반 차이를 못 느끼겠다. 나는 불어를 전혀 모르고, 작품을 문장 하나하나까지 애정을 가지며 읽은 것이 아니라서 그런지 두 번역본이 둘 다 흥미롭게 잘 읽혔다.

 

 

이정서가 비판한 김화영 번역의 책은 민음사 판이고 그 이후에 책세상에서 일러스트 판으로 출간된 것이라 이미 김화영 번역은 또 한 차례 수정이 된 터인 모양이다. 물론 시기상 이정서의 번역본과는 무관하게 출간되었으리라. 그렇다면 한 개인의 번역은 한 작품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부던히 수정에 수정을 하는 일을 하게 되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서의 행위가 불필요했다거나 무의미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역자 노트를 보면 굳이 중요해 보이지 않는 점을 꼬투리 잡는 듯 보이는 부분도 있고 일리가 있어 비교하며 읽어보아 이정서의 번역이 더 좋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도 몇 번이고 수정을 하게 될 터 이렇게 일이 커진 망극함을 어찌할 지 지켜보는 내가 다 염려스러울 뿐이다.

 

 

이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서 나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단도로부터 여전히 내 앞으로 뻗어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77쪽)

 

가장 큰 논란이 된 부분은 위의 내용이다. 뫼르소가 속눈썹을 쑤시는 듯함이 결국 첫번째 총을 쏜 계기가 되니 뭐 해석의 개별화라치고 심리적(법적으로는 안되겠지만) 정당방위로 보는 것도 가능할 듯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게 정당방위인가 아닌가 왜 네 발을 더 쐈나하는 문제보다는 재판 과정에서 보여준 뫼르소의 태도에 집중하게 된다. 아마 이정서 논란이 아니었다면 굳이 거기까지 신경 안쓰고 읽었을 것 같은데 책을 나의 흐름대로 읽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한 원망감이 불쑥 생긴다.

 

책세상 판을 읽으며 새움판의 역자노트를 보다보면 그가 민음사판을 주된 비판의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가 같은 역자임에도 해당이 안되는 곳이 있어 대충 읽어도 역자노트가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많이 되는 편은 아니었다. 더구나 책세상의 [이방인]은 일러스트가 정말 흥미를 배가 시킨다. 그림을 보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하여 남들과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여 사형 선고를 받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그것이 정당해 보이는데도) 어떤 제스처를 취하지 않은 뫼르소를 보며 어쩌면 그는 죽음을 살기 위해 생을 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 순간 그 어떤 제스처라도 취하게 되기에 그의 태도는 의문인 동시에 경외감이 들고, 일면 놀랍다가도 질투마저 난다.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를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라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도대체 산다는 건 뭐지? 이런 원론적인 질문마저. 답은 물론 없다. 머리만 복잡해졌지만 살면서 우리는 불편한 질문을 던지며 살아야 하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번역의 논란과 무관하게 나는 어쩌면 그가 실은 '태양 때문에' 살인을 하고 사형 선고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태양은 구체적인 대상으로서의 태양이 아니다. 그가 살인을 하고 사형 선고를 받은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쩌면 사람이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그러니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며, 타인의 생각과 행동이 도대체 무슨 의미라는 말인가. 그저 내가 있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행동할 뿐이다. 그리하여 내가 살고 내가 죽는 것이 아닐까?

 

[이방인]의 문장 하나 하나가 하나의 섬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따라가지 못했고 단 한 번의 독서로 이 책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그것은 그것대로의 가치가 있지 싶다. 다만 나의 상태를 누군가에게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살짝 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인]이라는 제목은 내키지 않는다는 정도로만. 행여 누군가 [일러스트 이방인]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투썸! 

 

 

* 덧붙임 : 새삼 글을 쓴다는 게 무척 어려운 일임을 느낀다. 그림을 가지곤 아무도 딴지를 안 거니 말이다!!! 누군가 [이방인]을 글 없이 일러스트로만 번역을 해야할라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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