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영의 새로운 사극이 시작된다고 한다. <불의 여신 정이>라는 제목이며, 문근영은 사기장인 정이의 역할이다. 이 작품은 요즘 많이 시도되고 있는 원작 소설이 있는 드라마인데 사실 무엇이 원작인지는 불명확하다. 원작 소설이 기존에 출간된 소설이 아니라 드라마와 맞춰 기획 출간된 소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이자, 이 드라마의 작가인 권순규씨는 일타이피의 효과를 노리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어 살짝 호감은 아니다.

 

사실 거기까지는 그 책이나 드라마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온라인 서점 구경을 하다 눈에 익은 제목이 보였다. <불의 여신 백파선>이란다. 아, 그럼 정이 = 백파선? 작가 이름은 달랐다. 이경희라는 내게는 생소한 이름의 작가였지만 그녀의 첫 소설집 『도베르는 개다』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정식 등단을 한 소설가와 극작가의 같은 시기에 출간된 같은 인물에 대한 책, 게다가 이름 빼고는 수식어마저 같은 두 책의 출간은 내용에 대한 궁금증 이전에 '이건 뭐지?'와 같은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거기다 중견 역사소설가인 이수광이 <백파선>이라는 소설을 또 이 시기에 출간을 했다니, 뭔가 노림수가 보이는 듯 하다. 

 

같은 인물에 대한 소설을 여러 작가가 쓸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제목도 비슷하고 표지도 사실 거기서 거기이고, 결정적으로 드라마 시작에 맞춰 동시에 출간하는 것은 좀더 공들인 소설을 읽고 싶어하는 독자로서는 참 맥빠지는 일이다. 이것도 결국은 장사인건가?싶은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믿게 하는. 이쯤 되니 도리어 극작가가 드라마 기획 소설로 낸 것이 솔직한 것이 아닌가 싶은 마음도 든다.

 

 

 

 

 

 

 

 

 

 

 

기존에도 같은 인물에 대한 비슷한 제목의 소설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김탁환의 <리심>과 신경숙의 <리진> . 두 작품은 1년의 시차를 두고 출간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뒷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엇이 진짜인가?와 같은 의문들. 하지만 어차피 허구라는 틀을 가진 소설로서 나는 무엇이 진짜에 가까운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작가의 정신이 듬뿍 들어가 있느냐는 것이다. 두 작품 중 나는 그동안  쭉 읽어오던 연장선으로서 김탁환의 <리심>을 선택했다. <리진>에 1년 앞서 출간되었지만 <리진> 출간 후 어쩌면 마음 고생을 했을 그의 책이었겠지만 그의 전작인 역사소설들과 연장선으로 보아 그의 책을 읽었다. 그렇다고 당시에도 유명 작가였던 신경숙 작가가 1년이라는 시간을 더 끌어 다른 노림수를 두고 책을 쓴 것으로 볼 수도 없다. 더욱이 결정적으로 리심이든 리진이든 드라마나 영화는 나오지 않았다. 두 분 모두 작가의 열정으로 두 작품을 쓴 것이지 드라마나 영화의 시작에 맞춰 부랴부랴 낸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기에 독자는 독자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작품을 선택하기에 당당했다.

 

 

 

 

 

 

 

 

그런데 이 불편한 느낌은 뭐란 말인가? 예전에 영화 <외출>이 있었다. 사실 소설 <외출>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이 영화도 원작 소설에 기댄 것인 줄 알았고 영화를 본 후 소설을 읽었다. 그런데 왠 걸? 대사를 활자화시킨 것에 지나지 않아 그동안 작가에게 가졌었던 호감마저 다 떨어져버렸다. 지금도 나는 김형경 작가의 책을 읽지 않는다.

 

 

 

펜은 쉽게 휘두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팬은 쉽게 휘둘려지지 않는다.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는 소설을 사랑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소설을 쓰는 소설가의 태도마저 사랑하는 것이다. 작가가 불까지 태우지는 않더라도 자신을 좀더 아프게(?)한 결과물이 소설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어미가 아이를 낳듯이 말이다. 한 소설가를 사랑하는 독자는 소설가의 성격나 소비패턴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그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아니다. 다만 반가운 것이다.

 

이렇게 반갑지 않은 소설들, 나를 불편하게 한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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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또 한 권의 백파선이 ㅠㅠ 추가되었다. 이건 넘 상업적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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